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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ll)방역, 더불어만진당… 정치권 저격 ‘정치 드립’ 세계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K(ill)방역, 더불어만진당… 정치권 저격 ‘정치 드립’ 세계

  • ●권력자 냉소하는 온라인 놀이 문화
    ●‘피해호소인’ 차용한 ‘백신확보호소인’ 유행
    ●거대 여당 옹호와 비판, 복합적 의미 담긴 “응~ 180석~”
    ●표현 재치 넘치고 발상 기발할수록 인기 몰이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신랄한 풍자로 권력자에게 냉소를 보내는 ‘정치드립’이 유행하고 있다. [GettyImages]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신랄한 풍자로 권력자에게 냉소를 보내는 ‘정치드립’이 유행하고 있다. [GettyImages]

“대단하다 K방역, 대단하다 K인권, 대단하다 K능지.” 

한 누리꾼이 서울동부구치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에 관한 기사 아래 쓴 댓글이다. ‘능지’는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의 지적 수준을 꼬집을 때 쓰는 표현으로 ‘지능’의 앞뒤 글자를 바꿔 만든 신조어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는 1월 5일 현재 1091명에 달한다. 국가 관리 시설에서 발생한 최다·최악의 감염 사례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27일 첫 확진자가 나오기 전까지 수용자들에게 마스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잠복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음성 수용자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을 보도한 기사 아래에는 “진정한 K(ill) 방역 수준” “선택적 K방역” “이게 K난리인가” “마! 이게 K방역이다!” 등의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코로나 방역 실패 꼬집는 ‘K드립’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 관련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 ‘K드립’과 ‘180석 드립’이 보인다. [인터넷 캡처]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 관련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 ‘K드립’과 ‘180석 드립’이 보인다. [인터넷 캡처]

이처럼 비판 대상이나 상황에 ‘K’를 붙여 풍자하는 것을 ‘K드립’이라고 한다. 드립은 애드립(ad lib·즉흥 발언)에서 유래한 단어로, 누리꾼들은 엉뚱한 발언이나 앞뒤가 맞지 않아 황당한 말 등을 총칭해 드립이라고 한다. 정치권을 풍자하는 드립은 정치 드립이다. K드립은 그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인터넷에는 정치 드립이 넘쳐난다. 구의역 사고 피해자에 대한 막말 파문, 성인지 감수성 결여 발언 등으로 수차례 자질 논란을 일으킨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향해 한 누리꾼은 “변창흠 후보자의 K-갬성”이라고 조롱했다. 변 장관은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재임 때 한 청년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사건을 언급하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는데”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사청문회에선 2016년 임대주택 거주자들을 거론하며 “못사는 사람들이 밥을 미쳤다고 사 먹느냐”고 했던 발언을 해명하다 “여성은 화장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아침 먹는 것을 아주 조심스러워 한다”고 말해 성인지 감수성 부족 논란도 일으켰다. 이후 변 장관은 “앞뒤 없이 (제 발언이) 비약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자 누리꾼들은 “K-변명, K-남탓 최강”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인터넷에 정치 드립이 등장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앞선 정부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 발언을 차용한 드립이 인기였다. 2016년 11월 4일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발언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 발언을 활용한 게시글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가 국제대회에서 탄 것으로 알려진 명마(名馬) 사진을 올리고 “이러려고 정유라 태워줬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고 쓰는 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검사와의 대화’에서 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도 전설의 정치 드립으로 남아 있다. 누리꾼들은 사소하고 가벼운 언쟁이 벌어지면 지금도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드립을 주고받는다.

‘피해호소인’ 차용한 ‘백신확보호소인’ 유행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다고 알린 것과 관련해 한 누리꾼이 ‘백신확보호소인’이라고 꼬집는 댓글을 남겼다. [인터넷 캡처]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했다고 알린 것과 관련해 한 누리꾼이 ‘백신확보호소인’이라고 꼬집는 댓글을 남겼다. [인터넷 캡처]

누리꾼들이 인터넷에서 정치 드립을 주고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류 정치 세력을 향한 냉소와 반감을 쉽고 재미있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플랫폼은 정치 드립을 손쉽게 양산하고 소비하게 하는 장치다. 정치 드립을 즐기는 대학생 이성준(24) 씨는 “방역 당국이 백신을 미리 확보하지 못했다는 야당과 언론의 지적에도 ‘먼저 맞는 나라를 관찰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런 와중에 동부구치소에서 집단감염 사태까지 발생하자 정부가 강조하는 K방역의 허상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치 드립을 통해 정치권을 풍자하는 데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요즘 화제를 모으는 정치 드립 가운데는 ‘호소인 드립’도 있다. 지난해 연말 백신 늑장 확보 논란이 일자 12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테판 반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통화해 백신 4000만 회분(2000만 명분) 공급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내용을 전한 기사 아래에는 “백신확보호소인” “모더나구매호소인” 등의 댓글이 다수 달렸다. 누리꾼들은 그 아래 또 “피해호소인 오마쥬ㄷㄷ” “드립 찰지네” 등의 댓글을 달며 환호했다. 여권은 지난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누리꾼들이 이 용어를 드립으로 사용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화 ‘진격의 거인’ 캐릭터 지크 예거에 빗댄 ‘문크 예거 드립’도 눈길을 끈다. 지크 예거는 이 작품에서 자기 민족인 ‘엘디아인’이 사라져야 세계가 평화로워진다고 여긴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을 통해 한국을 더욱 살기 나쁜 환경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한국인의 절멸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게 이 드립의 배경이다. 서울동부구치소발(發)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에 육박하는 사상 최악의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진 뒤 온라인 공간에는 “문크 예거 비긴즈” “문크 예거 빅픽쳐” 등 문크 예거 드립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민주당 입법 독주 비판할 때는 “응~ 180석~”

여권 인사의 성추문이 잇따르던 시절 온라인 공간에서는 ‘더듬다커진당’ ‘더듬어n번당’ ‘더불어만진당’ 등의 드립이 유행했다. [인터넷 캡처]

여권 인사의 성추문이 잇따르던 시절 온라인 공간에서는 ‘더듬다커진당’ ‘더듬어n번당’ ‘더불어만진당’ 등의 드립이 유행했다. [인터넷 캡처]

21대 총선 이후 널리 쓰이는 정치 드립에는 “응~ 180석~”도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석수는 174석이다. 여기에 여권 성향 무소속 의원과 열린민주당, 시대전환·기본소득당 등 ‘우군’에 해당하는 정당 의원까지 끌어 모으면 국회 의결 과정에서 재적의원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표를 확보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 경우 법안·예산안·임명동의안 등의 처리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진, 야당의 필리버스터 무력화 등이 모두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3일 국민의힘이 국정원법 개정에 반대하며 61시간째 필리버스터를 이어가자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을 제출해 찬성 딱 180표로 강제 종료시킨 일이 있다. 

이처럼 여당이 ‘다수의 힘’을 발휘할 때 지지자들은 “응~ 180석이야ㅋㅋㅋㅋ” 같은 댓글을 단다. ‘반대편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상대가 안 된다’는 의미다. 반면 여당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누리꾼들은 “180석 성능이 확실하구만”이라며 자조적 반응을 보였다. 

여권 인사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랐을 때 온라인 공간에서는 ‘더듬다커진당’ ‘더듬어n번당’ ‘더불어만진당’ 같은 드립도 유행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정치 드립 생산과 공유가 쉬워지면서 온라인 공간의 독특한 놀이문화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 중심까지 소재로 사용하는 등 성역이 없다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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