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친문 표심 놓고 박영선·우상호 手싸움

[막 오른 경부大戰 ④]확장성이냐 86 주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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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01-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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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경선, 권리당원 투표 50% 반영키로

    • 野 경선, 100% 완전국민경선 유력

    • “지지층 결집해 정권견제론 맞설 것”

    • 우상호, 임종석 지지 확보·김진애와 연대

    • 박영선, ‘文 복심’ 윤건영에 기대

    세초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일제히 ‘야당의 4·7 재·보궐선거(재보선) 압승’을 가리켰다. 1월 8일 공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물은 결과 응답자의 52%는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답변은 37%로 집계됐다. 범위를 서울로 좁히면 58%(야당 승리) vs 34%(여당 승리)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야권은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단일화 줄다리기’를 펼치며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재보선 실시에 대한 책임 소재도 여당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빨간불이 켜질 법한 상황이지만 당내 분위기는 담담하다.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면 여론이 바뀔 것이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여당에는 믿는 구석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인 친문(親文)이다.

    ‘부자 몸 사리기’ 비판 감수하는 까닭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기획단 회의에서 
김민석 기획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기획단 회의에서 김민석 기획단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게임의 규칙’에도 친문 권리당원을 의식한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권리당원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에게 주어지는 자격이다. 1월 8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를 열고 ‘권리당원 투표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로 재보선 후보를 선출키로 한 경선 룰을 의결했다. ‘예비경선 당원 20%·여론조사 80%, 본경선 여론조사 100%’로 경선 룰을 정한 국민의힘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파격적인 외부 인사 영입 대신 기존 지지층이 선호하는 후보를 본선 무대에 세우겠다는 심산이다. 

    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획단장인 김민석 의원은 1월 5일 선거기획단 브리핑에서 “제3후보 등은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하거나 보고·접수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당내 기반이 없는 인사에 불리한 룰이 적용되면서 ‘김동연 등판론’은 힘을 잃게 됐다. 하지만 자칫 ‘부자 몸 사리기’로 비쳐 경선 흥행을 반감시킬 수 있다. 

    당에서 오래 활동한 대의원의 경우 현직 의원이나 당협위원장과 긴밀히 연계해 움직인다. 이에 대의원의 표는 대개 조직 선거의 무기로 활용된다. 반면 권리당원은 온라인 여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민주당 소속으로 호남 지역구에 총선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한 여권 인사의 설명이다. 



    “추미애 후보가 비문(非文) 이종걸 후보를 누르고 대표로 당선된 2016년 전당대회부터 당내 선거에서 권리당원의 입김이 상당히 강해졌다. 지난 총선 때는 권리당원 확보를 놓고 분위기가 과열됐다. 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팬층이 대거 권리당원으로 유입됐는데, 이들은 ‘조국 사태’나 ‘추-윤 갈등’처럼 세 대결 조짐을 보이는 이슈에 선명한 입장을 취한 인물을 선호한다. 권리당원 비중을 절반으로 한 건 지지층을 결집해 정권 견제론에 맞서겠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총선을 앞두고는 호남 지역 고위 공무원이 여당 후보가 되기 위해 권리당원을 불법 모집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치러진 8·29 민주당 전당대회는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도드라지게 작동한 선거였다.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3선의 이원욱 의원은 대의원 득표율에서 1위(17.39%)를 하고도 권리당원의 지지를 6.93%밖에 받지 못해 낙선했다. 반면 초선의 양향자 의원은 대의원 득표율(7.14%)에서 꼴찌였지만 권리당원 투표(15.56%)에서 2위를 기록해 최종 5위를 차지하면서 최고위원이 됐다. 이 의원은 중도 성향이자 정세균계로 꼽힌다. 양 의원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직접 영입한 인사다. ‘조국 사태’ 당시 조 전 장관을 적극 옹호한 재선의 김종민 의원은 권리당원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25.47%)를 받았다. 

    민주당은 2016년 이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하면서 선거 캠페인에 관한한 1급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민주당이 친문의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경선 룰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아 풀뿌리 조직과 지지층의 결집도가 강한 정당에 유리하다. 여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져 투표율은 더 떨어질 우려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야권이 강세라는 현재의 여론조사대로 선거 결과가 나오려면 투표율이 50%는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강하고 열혈 지지층이 많은 정당이 유리하다”고 했다. 또 “현재 당 지지율 추이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3~4%포인트 정도 앞서고 있을 뿐이다.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 즉 여권이 재보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안한 모래성’

    그의 말대로라면 현재의 야권 쏠림 현상은 금방 쓰러질 수 있는 ‘불안한 모래성’과 같다. 서울시의 풀뿌리 조직인 각 구청과 시·구의회는 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 지난 10년간 조금씩 늘어난 친여(親與) 성향 단체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서울시장 선거 투표율은 50%를 넘지 않을 테고, 서울 구청장과 지역구 의석 대부분을 차지한 민주당에 유리한 환경”이라며 “‘박원순 시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수혜를 본 시민단체들이 여당을 지원하는 조직 표 역할을 할 수 있어 강한 결집력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3자 대결을 하면 여당에 유리하지만 (야권 단일화로) 양자대결이 펼쳐지면 정권 견제론이 작동해 야권이 가까스로 이길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소통령’ 자리를 노리는 여당 후보가 친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은 박영선(61)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59) 의원 간 양자대결로 가닥이 잡혔다. 재선 박주민(48) 의원은 불출마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63) 법무장관은 서울시장보다는 대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초반 기세는 박 장관이 잡았다. SBS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31일과 올해 1월 1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801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 따르면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에 알맞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 박 장관이 18.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추미애 장관(7.7%), 우상호 의원(5.8%), 박주민 의원(5.1%), 김진애 열린민주당 원내대표(2.2%) 순으로 나타났다. ‘없다’는 응답은 55.2%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시아경제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1월 2~3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박 장관이 범여권 서울시장 후보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18.5%를 기록했다. 그 뒤를 박주민 의원(9.6%), 우상호 의원(8.5%), 김진애 원내대표(6.1%)가 이었다. 47.3%는 ‘없음/잘모름’이라고 답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임종석·김진애 vs 윤건영?

    박 장관의 경우 선두주자이긴 하나 여론조사에 거론되는 인물 중 친문과의 결합도가 가장 떨어지는 편이다. 기자 출신으로 4선 의원을 지낸 그는 정계 입문 초기 정동영계로 분류됐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안철수 대표가 이끌던 국민의당 합류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지난 대선 경선 때는 안희정(전 충남지사) 캠프의 의원멘토단장을 맡아 문재인 캠프와는 거리를 뒀다. 

    우 의원은 범친문 계열로 꼽히지만 중도·온건파 색채가 강한 편이다. 친문·비문의 틀보다는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운동권 그룹의 일원으로 움직였다. 2007년 대선 때는 손학규(전 바른미래당 대표)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공보단장으로 합류하면서 친문 진영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2017년 대선에서는 원내대표 신분이라 특정 경선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장관도 친문이 아니지만 우 의원도 진성 친문, 즉 성골이 아니다. (경선판이) 누구에게 딱히 유·불리하지 않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보는 배경이다. 

    총성이 울린 ‘친문 구애 레이스’에서는 우 의원이 먼저 치고 나갔다. 먼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지를 확보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임 전 실장은 1월 4일 페이스북에 “제게도 시장 출마를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제 마음 다 실어서 우상호 의원을 지지한다’고 말씀드린다”고 썼다. 우 의원과 임 전 실장이 속한 86그룹은 현 정권 들어 주류 중의 주류로 비상했다. 

    우 의원은 1월 12일에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진애 열린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각 당 최종 후보가 될 경우 후보 단일화를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그는 최근 각종 언론 인터뷰에 나와 “열린민주당과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성 친문 성향인 열린민주당에 러브콜을 보냄으로써 당내 친문 권리당원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현직 각료(閣僚)인 박 장관은 활동 공간이 넓지 않다. 원내대표를 지낸 중진이지만 오랫동안 친문과는 거리를 둬 당내 기반도 약하다. 단, 출마를 공식화하면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꼽히는 윤건영(52) 의원이 박 장관과 친문을 잇는 가교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 의원은 ‘성골 친문’으로 꼽힌다. 윤 의원의 지역구는 과거 박 장관의 지역구였던 서울 구로을이다. 박 장관이 불출마를 선언한 뒤 윤 의원이 구로을에 터를 잡자 여권 내에서는 “비문이 가고 친문이 왔다”는 말이 돌았다. 

    1월 15일에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여당 서울시장 경선 참여설이 불거졌다. 박 장관이 불출마를 결심하면 대안으로 김 전 부총리가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 경선판은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다만 박광온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부총리의 대전제는 박 장관이 출마하지 않으면 나온다는 것인데 박 장관이 안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주민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점은 변수다. 박 의원은 당내에서 친문 권리당원들의 지지가 가장 견고한 인사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8년 8·25 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율 27.04%를 기록해 2위 박광온 의원(16.46%)을 압도적 격차로 따돌린 바 있다. 친문 진영에서 박 의원에게 출마를 설득하면 막판에 전격적으로 등판할 수도 있다.

    “친문도 당선 가능성 볼 것”

    그러나 박 의원이 불출마를 공식 선언하면 친문 권리당원의 선택지에는 성골이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선에서 전략적 투표 성향이 짙어지게 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재보선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친문도 본선 승리 가능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아 투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문이 전략적 투표를 택하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확장성이 큰 박 장관에 유리한 판이 펼쳐질 전망이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당심은 민심을 따라가지 못한다. 당원들도 승리 가능성을 중심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 의원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박 장관의 경쟁력이 더 강해 보인다”고 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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