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탑텐·스파오·무탠다드…‘명동 철수’ 유니클로 겨눈 토종의 칼날

[유통 인사이드] 후끈 달아오른 SPA 전쟁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1-01-30 09: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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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업날 20억 매출’ 점포, 1월 31일 폐점

    • 불매운동에 코로나19까지 겹악재

    • 韓 철수설에 “계획 없다” 강조

    • 매출 오른 토종 SPA 탑텐·스파오

    • 무신사, MZ세대 등에 업고 고속성장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중구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에 매장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이곳은 1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중구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에 매장 폐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이곳은 1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2020년까지 300개의 매장을 열고, 매출 3조 원을 달성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한국 시장에 자리 잡겠습니다.” 

    지난 2011년 11월 일본 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가 서울 명동에 아시아 최대 규모 매장을 열었다. 명동중앙점이다. 4개 층, 약 3729.1㎡(약 1128평)에 달하는 규모다. 유니클로는 이를 기념해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의욕에 찬 목표를 내놨다. 10년 안에 매출 3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개장 첫날 20억 원

    한국 유니클로는 지난 2004년 한국의 롯데쇼핑과 일본의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운영사) 그룹이 공동 투자해 만들었다. 합작회사의 이름은 FRL코리아다. 롯데쇼핑이 49%, 패스트리테일링이 5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수장이던 안성수 FRL코리아 사장은 2011년 11월 10일 “한국 SPA(제품을 자체 생산해 유통까지 일괄적으로 하는 브랜드) 시장의 외형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2011년 당시 FRL코리아의 연 매출은 3300억 원가량이었다. 10년 뒤 이루겠다는 매출 3조 원은 10배에 달하는 목표였다. 터무니없는 목표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FRL코리아의 매출 신장률은 매년 약 60%에 달했기 때문이다. 목표대로 매장을 300개까지 늘릴 경우 충분히 달성 가능하리라는 분위기였다. 

    유니클로는 국내에 SPA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린 업체로 평가받는다. SPA는 생산과 유통을 일괄적으로 하는 브랜드다. ‘유통 수수료’ 등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제품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유니클로는 이에 더해 제품 종류도 다양하고 질도 좋다는 평가에 힘입어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유니클로 매장에는 유행을 좇는 제품보다 기본적인 아이템이 많은 편이다.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고민할 필요 없이 청바지나 티셔츠, 양말, 속옷 등 원하는 품목을 찾아 쇼핑 바구니에 뭉텅이로 담았다. 마치 대형마트 매장과 비슷한 분위기다. 

    유니클로의 인기는 명동중앙점 개장 첫날부터 입증됐다. 당일에만 20억 원의 매출을 올려 일본 본사에서도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일 매출 20억 원은 국내 단일 의류 매장 중 최초의 기록이다. 당시까지 최고 매출 기록을 보유한 매장은 개장 당일 4억6000만원을 기록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샤넬 매장이었다. 

    지금도 운영하는 이랜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의 경우 2009년 명동점 개장 첫달에 월 매출 20억 원을 기록하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와 비교하면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의 하루 매출 규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한국 유니클로는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지난 2019 회계연도(2018년 9월 1일~2019년 8월 31일)에는 총매출액 1조3781억 원을 기록하며 높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5년 연간 매출액 1조 원을 처음으로 돌파한 뒤 2조 원을 향해 돌진하는 분위기였다. 매장 수는 2011년 65개에서 2019년 187개로 늘었다. 300개 매장, 매출 3조 원이라는 당초 목표치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국내 대표 SPA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사드 지나가니 코로나19가 공습

    지난해 10월 21일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유니클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1일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유니클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지난 2019년 7월쯤 본격화한 한일 간 갈등으로 시작된 일본산 불매운동이 유니클로의 발목을 잡았다. 유니클로에 가지 않고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게 불매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당시 유니클로 매장은 순식간에 한산해졌다. 유니클로 매장에 고객이 전혀 없는 풍경 자체가 뉴스거리였다.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2011년 명동중앙점 개장 기념 간담회에 직접 참석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 국민들이 보내준 지원에 감사하다는 언급을 하며 친밀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유니클로가 일본 기업이라 거부감이 든다는 여론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10년 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란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한국 유니클로는 지난해 12월 2020 회계연도(2019년 9월~2020년 8월) 실적을 공시했다. 시기상 일본산 불매운동의 영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적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 유니클로의 연간 매출은 6297억 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54%가량 줄었다. 그간 지속해 성장하던 매출 규모가 7년 전인 2013년(6940억 원)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 영업손실 규모는 883억 원에 달했다. 2019 회계연도에는 영업이익이 1994억 원을 기록했지만 1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 유니클로는 비효율적인 매장을 조금씩 줄여가며 ‘버티기 모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187개이던 매장은 165개로 줄었다. 지난해 4월에는 FRL코리아 대표가 실수로 전 직원에게 인력 감축 계획이 담긴 e메일을 발송하면서 논란이 빚기도 했다. 인사 조직 임원에게 보내야 할 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실제 이 사건 이후에 공식적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절박한 분위기였다는 점을 가늠할 수 있다. 

    유니클로는 급기야 한국 유니클로의 상징과도 같았던 명동중앙점까지 1월 31일 폐쇄하기로 했다. 물론 일본산 불매운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관광객의 방문이 많은 명동중앙점이 직격탄을 맞았다. 

    명동은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크게 휘청인 바 있다. 이후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유명 패션 브랜드 점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다른 외국계 SPA 브랜드인 H&M도 1호점인 명동 눈스퀘어점 영업을 종료했고, 국내 멀티 편집숍 에이랜드 명동점도 폐업했다. 

    일각에서는 유니클로가 결국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니클로 측은 여전히 한국이 중요한 시장인 만큼 철수 계획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쟁력은 이미 검증된 만큼 ‘특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기회가 오리라는 판단이다.

    토종 SPA의 분전

    한국 유니클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일단 유니클로에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2020년 11월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때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다. 유니클로 매장 앞에 소비자들이 수백m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이다. 일본산 불매운동은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까지 무색하게 만든 것은 ‘유니클로 +J(플러스 제이) 컬렉션’이라는 제품군이었다. 이 컬렉션은 유니클로가 지난 2009년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 질 샌더와 협업해 내놓은 상품이다. 당시에도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명품 브랜드인 ‘질 샌더’ 디자인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사람들이 줄을 선 이유는 물론 플러스 제이라는 ‘킬러 콘텐츠’의 영향이 컸다. 일각에서는 일본산 불매운동이 무색해졌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색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논란이 일었다는 것 자체가 아직 일본산 불매운동이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유니클로는 경쟁력만 갖춘다면 매출이 서서히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한 줄기 희망을 얻었을 가능성은 있다. 

    코로나19가 올해 안에 잡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온라인 판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 유니클로의 주력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출이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 유니클로 매장도 어느 정도 활기를 찾을 테고, 이는 곧 매출 반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반면 유니클로에 불리한 변화도 있다. 유니클로가 주춤한 사이, 한국 SPA 브랜드들이 점차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 SPA 브랜드들의 매출은 유니클로와 반대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신성통상의 SPA 브랜드 ‘탑텐’은 지난 한 해 43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전년보다 28.7% 증가한 수치다. 이랜드그룹 브랜드 ‘스파오’의 경우 연 매출 3300억 원으로 3.8% 늘었다. 두 브랜드 매출(7600억 원)을 더한 규모가 유니클로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국산 SPA 브랜드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유니클로 경쟁사들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랜드 그룹은 지난해 말 패션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그간 이랜드의 6개 여성 브랜드를 전담하는 사업부를 독립 법인으로 만들어 매각하고, 이 돈으로 SPA 브랜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쓰겠다는 계획이다. 

    젊은 소비층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의류 판매 채널로 꼽히는 곳이 있다. 무신사라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무신사는 젊은 소비층의 인기를 바탕으로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신사의 연간 거래액은 지난 2019년 9000억 원가량에서 지난해 1조 4000억 원 정도로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무신사를 ‘패션 공룡’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무탠다드’의 역습

    특히 무신사가 판매하는 PB(자체 브랜드)인 ‘무신사 스탠다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무신사는 지난 2015년 무신사 스탠다드를 처음 선보이면서 ‘유니클로 대항마’를 자처한 바 있다. 앞서 언급했듯 유니클로의 장점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편하게 고를 수 있는 기본 아이템이 많다는 점이다. 무신사 스탠다드도 유사한 전략을 쓴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무탠다드’라는 대명사로 통한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무니클로’라는 용어가 주로 쓰였지만, 이제는 자체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탠다드’의 지난 2019년 매출액은 630억 원으로 전년보다 3.7배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은 아직 공식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1000억 원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무신사 전체 매출에서 ‘무탠다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16%에서 지난해 29% 수준으로 상승했다. ‘무탠다드’를 찾기 위해 무신사에 방문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블로그 등에서 유니클로와 무신사 스탠다드를 비교하는 포스팅을 쉽게 찾을 수 있다”라면서 “일본 불매운동으로 ‘유니클로보다 싼’ 대체 브랜드로 부상하며 새로운 기본 템의 성지로 등극했다”라고 분석했다. 

    결국 유니클로의 앞길에는 호재와 악재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한일관계가 개선돼 일본산 불매운동이 사라지고 코로나19 사태도 잦아든다면 부활을 노려볼 수 있겠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한국 SPA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의 매출이 반토막이 나긴 했지만, 여전히 토종 브랜드보다 매출에서 월등하게 앞서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유니클로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기 전에 국산 브랜드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갖추느냐가 향후 경쟁 구도 변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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