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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 14기 동기들 “추미애, ‘무(無)법부 장관’ 조롱받을 줄이야…”

동기들이 말하는 추미애·주호영·홍준표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연수원 14기 동기들 “추미애, ‘무(無)법부 장관’ 조롱받을 줄이야…”

  • ● “秋 정치하리라 생각 못 해…영·호남 커플 순애보”
    ● “秋 초임 때도 윗선과 자주 충돌, 애주가”
    ● “朱 과묵한 불자(佛子)인데 정계 진출해 놀라”
    ● “朱 ‘소수파’ 영남대 출신 한계 극복한 근성”
    ● “洪 주변 늘 북적…다변·달변이라 정치할 줄 알았다”
    ● “洪 거짓말탐지기도 마음 못 읽어낸 ‘강심장’”
    ● “1980년대 ‘부채감’이 정치 투신 원동력”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청사. 14기 입학 당시 사법연수원으로 쓰였다.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청사. 14기 입학 당시 사법연수원으로 쓰였다. [뉴스1]

“연수원 시절 추미애는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였다. 당시 드물던 여성 연수원생이라 함부로 말 붙이기도 쑥스러웠다. 정치권 여장부로 이름을 날릴지 꿈에도 몰랐다.”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A 변호사

“동기 상당수는 서울대 출신이었다. 주호영은 소수파라고 할 수 있는 영남대 출신으로 나이도 어렸다.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고 묵묵히 근성을 발휘했다. 조용한 불자(佛子) 같았는데 정계로 진출해 놀랐다.”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B 변호사

“14기 2반이었던 사법연수생 홍준표의 자리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다. 말을 재미나게 잘해서 주변 동기생들을 많이 웃기곤 했다. 다변·달변이라 정치에 나설 줄 알았다.”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C 변호사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법조인들은 정계에 진출한 동기를 두고 다양한 인물평을 쏟아냈다. 이들은 “정계 진출 후 동기들의 행보에 대해 쉽사리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동기 중 재능 있고 개성 뚜렷한 사람이 참 많다”고 했다. 

14기 310명은 1983년 연수원에 입학해 2년간 강의·실무(법원·검찰·변호사 사무실 등) 교육을 거쳐 이듬해 12월 수료했다. 사법시험 24회(1982) 합격자(307명)가 주축이다. 개인 사정으로 입학을 미룬 22회(1980)·23회(1981) 합격자도 소수 있다. 바로 전 기수 13기(273명)의 주축인 사법시험 23회(316명)부터 합격자 숫자가 300명을 넘어섰다. 14기는 1971년 연수원 개원 이래 첫 ‘정원 300명 시대’를 열었다.

법조계 ‘금배지 공장’ 연수원 14기

14기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이기택 대법관과 권순일 전 대법관, 이석태 헌법재판관과 강원일·안창호 전 재판관이 대표적인 14기 출신 법조인이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검찰총장을 2명(채동욱·김진태 전 총장) 배출한 기수이기도 하다. 

법조계에서 14기는 ‘금배지 공장’이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전·현직 국회의원 14명을 배출하는 등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현재 정가의 중심인물인 추미애(63) 법무부 장관과 주호영(61) 국민의힘 원내대표, 홍준표(67) 무소속 의원이 14기 동기로 세 사람 다 5선 의원을 지냈다. 추 장관과 홍 의원은 연수원에서 같은 2반(연수원생 40~50명으로 구성돼 함께 수업·실습함)이었다. 신기남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4선)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전 미래통합당 의원, 홍일표 전 통합당 의원도 14기다. 신동아가 사법연수원 14기 출신 법조인들에게 ‘연수원생’ 추미애·주호영·홍준표의 인물평을 물었다.


1 “연수원생 추미애는 고요·진중한 사람”
추미애 법무부 장관.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 [뉴스1]

동기들은 연수원 시절 추미애 장관의 성격이 “차분하고 진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14기 출신 A 변호사는 “오늘날 세평과 정반대로 연수원생 추미애는 오히려 내향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조용했다”며 “정치인 추미애를 두고 지지자는 카리스마 있는 ‘추다르크’라고 치켜세우더라. 반면 법무부 장관으로서 독선적 이미지 탓에 ‘무(無)법부 장관’ 같은 조롱도 받지 않느냐. 평이 극과 극으로 갈려 동기로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14기 B 변호사도 “연수원 때 추 장관은 고요하고 진중한 사람이었다. 정치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좋게 말하면 강단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우악스럽기까지 했던 법무부 장관으로서 행보와 비교하면 정반대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추 장관은 연수원을 수료하고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인천·전주지법, 광주고법 판사를 지냈다. 판사 시절부터 자기주장이 강한 ‘추다르크’의 면모를 보였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검찰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전환시대의 논리’(이영희) 등 ‘불온서적’을 압수한다며 각 법원에 전국 대형 서점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추미애 당시 춘천지법 판사만 유일하게 영장을 기각했다. 

연수원 13기 출신 D 변호사는 판사 시절 추 장관에 대해 “초임 판사 때도 고집이 강해 윗선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안다. 다만 동료 판사들과 술 한잔하며 곧잘 어울리는 애주가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광주고법 판사로 근무하던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DJ·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표)의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대구 출신(1958년 경북 달성군 출생, 대구 경북여고 졸업) 법조인으로서 이례적으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회의에 합류한 것.


“秋 ‘無법부 장관’ 조롱받아 안타까워”

추 장관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최초의 판사 출신 여성 국회의원’ ‘헌정 사상 첫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 ‘TK 출신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더불어민주당) 당수’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의 시작이었다. 

동기들이 떠올린 추 장관의 또 다른 이미지는 ‘대구의 딸, 호남의 며느리’다. 생전 DJ는 추 장관을 두고 “호남 출신인 내가 대구 며느리를 뒀다”고 평한 바 있다. 추 장관은 실제로 ‘호남의 며느리’다. 1985년 전북 정읍 출신인 서성환 변호사(사시 27회·연수원 17기)와 결혼했다. 서 변호사와 추 장관은 한양대 법대 동기로 7년 열애 끝에 성혼했다. 영·호남 갈등으로 양가의 반대가 거셌지만 두 사람의 강한 의지로 돌파했다는 후문. 

추 장관은 연수원 시절에도 서 변호사와 교제 중이었다. 서 변호사는 추 장관보다 3년 늦은 198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연수원 17기를 수료했다. 추 장관과 연수원 같은 반(2반)이었던 검찰 출신 C 변호사는 추미애·서성환 커플에 대해 “영·호남 커플인데다가 사법시험 공부가 힘들었을 텐데도 꿋꿋이 결혼에 골인했다. ‘순애보(殉愛譜)’ 같은 사랑이 인상적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공교롭게도 서 변호사의 고교(서울 경복고) 후배가 연수원 14기로 우리와 같은 반이었다. 추 장관은 홍일점이었다. 서 변호사는 다른 연수원생들이 연인에게 눈독 들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겠나. 후배에게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당부했다는 소문이 있었다(웃음). 물론 추 장관은 서 변호사 외에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2 “과묵·음전한 불자 주호영”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동아DB]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동아DB]

주호영 원내대표와 연수원 같은 반(1반)이었던 B 변호사는 “당시 (주 원내대표는) 과묵하고 음전한 성격이었다. 불교 계통 학교(대구 능인고)를 나와서 연수원 때도 불교 동아리(반야회·법조계 불자 모임 ‘다르마 법우회’ 전신)에서 열심히 활동한 것으로 안다. 그런 조용한 불자(佛子)가 정치에 투신해 놀랐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시 연수원은 서울대 출신 일색이었다. 그다음으로 세가 강한 것이 고려대였다. 나머지 대학 출신은 숫자도 적었고 눈에도 잘 안 띄었다. 주 원내대표는 그중에서도 소수파라고 할 수 있는 영남대 출신이다. 나이도 어린 축이었다(연수원 입학 당시 22세). 그럼에도 주눅 들지 않고 묵묵히 근성을 발휘해 판사의 길을 걸었다.” 

연수원 동기 사이에서도 출신 고교·대학이 어딘지가 중요했다. A 변호사는 “연수원 동기란 것은 사실 소속감이 느슨하다. 고향이 어디고, 어느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왔는지가 더 중요했다. 출신 고교·대학교가 같으면 별도 모임을 꾸려 자주 만났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1960년 경북 울진군 출생으로, 중학교 시절 대구로 이사해 능인고·영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연수원 수료 후 육군 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치고 1988년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다. 2002년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관 생활을 마칠 때까지 한 차례(1999~2000년 수원지법 성남지원)를 빼고 대구·경북(대구고법·대구지법 영덕·상주지원 등)에서만 근무한 향판(鄕判)이었다.

“朱, 공부·정치 위기 모두 불심으로 돌파”

주 원내대표는 2004년 제17대 총선 때 정계에 입문(한나라당 입당), 대구 수성을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내리 4선을 했다. 2009~2010년 이명박 정부 초대 특임장관을 지냈다. 제21대 총선 때는 대구 수성갑에 전략 공천돼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꺾었다. 지난해부터 제1야당 원내대표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동기들의 설명처럼 주 원내대표는 여의도에서 소문난 불교 신자다. 법명은 ‘자우(慈宇)’다. 20대 국회에서 정각회(국회 내 불교 신자 의원 모임)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15일 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 표결을 강행하자 원내대표직 사의를 표하고 칩거했다. 6월 16~24일, 충북 보은군 법주사·경북 울진군 불영사·강원 고성군 화암사 등 전국의 고찰을 찾았다. 아흐레 동안 사찰 순례를 마치고 6월 25일 국회로 복귀, 윈내대표로 재신임됐다. 

B 변호사는 “주 원내대표의 보수 성향은 TK(대구·경북)이라는 지역 연고보다 불교 신앙의 색채가 강한 것 같다. 지난해 절에 칩거한 것도 쇼(show)라고 보긴 어렵다. 공부든 정치든 위기를 불심으로 돌파하는 성격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3 “홍준표는 시끌벅적 재밌는 사람”
홍준표 무소속 의원. [뉴스1]

홍준표 무소속 의원. [뉴스1]

홍준표 의원의 연수원 생활은 어땠을까. “재밌는 사람” “정치할 줄 알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홍 의원과 같은 반이었던 C 변호사는 “홍준표의 자리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다. 말을 재미나게 잘해서 사람이 많이 모였다”며 “주변 동기생들을 많이 웃기곤 했다. 다변인 동시에 달변이었고 활달한 성격이라 정치에 나설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홍 의원은 강심장이었다”며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연수원 시절 홍 의원과 함께 검찰로 실습을 나갔다. 지금이야 각 청에 거짓말탐지기가 있지만 당시엔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만 보유하고 있었다. 지검 관계자가 거짓말 탐지 대상이 돼볼 사람이 있냐고 묻자 연수원생 홍준표가 자청했다. 탐지기 작동 원리는 이랬다. 탐지 대상이 속으로 1부터 5까지 숫자 중 한 가지를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한 숫자가 1이냐, 2냐…’ 하는 식으로 묻고 모두 ‘아니다’라고 답하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답변 한 번은 심박이 빨라져서 탐지기가 작동한다. 그런데 홍 의원은 몇 번을 답해도 탐지기가 작동하지 않아 다들 신기해했다. 그만큼 강심장이고 태연한 성격이다.” 

홍 의원은 1954년 경남 창녕군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속에서 대구 영남고를 거쳐 고려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고학 끝에 사법시험 24회에 합격했다. ‘강심장’ 연수원생 홍준표는 1985년 검사로서 첫 임지 청주지검으로 발령받았다. 1987년 대구지검 울산지청(현 울산지검)을 거쳐 이듬해 서울지검 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 특수부에 부임했다. 이 때부터 ‘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당시 그가 맡은 대표적 사건이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 강탈 사건’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형 전기환 씨(2019년 별세)가 1983년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을 강탈하고 5년 동안 시장 공금을 유용한 사건이다. 1988년 12월 당시 홍준표 검사는 전기환 씨를 구속 기소하는 등 활약했으나 곧 벽에 부딪혔다. 사건에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측근도 연루되자 윗선에서 사건을 덮으라는 압력이 내려온 것. 결국 그는 광주지검 강력부로 좌천됐다.


“洪, 같은 검사가 봐도 귀감인 수사”

홍 의원은 강력부 검사로서 조폭 수사에 나섰다. 마침 1990년 노태우 정권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1992년 광주·전남지역 조직폭력배 ‘국제 PJ파’ 수사를 지휘해 조직원 수십여 명을 구속했다. 이듬해 그는 서울지검 강력부로 다시 자리를 옮겨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했다. 당시 도박용 기계 ‘빠칭코(슬롯머신)’ 운영을 둘러싼 이권에 조폭은 물론 노태우 정권 실세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과 검찰 수뇌부가 연루됐다. 홍 의원은 박 전 장관과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 등을 구속 기소했다. 검사 홍준표의 활약상은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프가 됐다.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는 계기가 됐다. 

동기들은 홍 의원의 검사 시절 활약을 높이 평가했다. 검사 출신 C 변호사는 “검사 홍준표를 두고 수사가 거칠다는 평도 있었다. 달리 말하면 수사의 맥을 잘 짚어 과감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의 수사는 같은 검사가 봐도 분명 귀감으로 삼을 만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검사는 서민 범죄를 다룬다. ‘나쁜 놈을 때려잡아서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작정한 검사가 얼마나 있겠나. 검사 홍준표는 노량진시장 이권을 챙긴 전기환 씨를 잡아넣었다. 강력부에서 조폭도 소탕했다. 멋있고 화려해 보여도 권력층과 폭력배와 각을 세우니 늘 불안하지 않았겠나. 그걸 극복하고 일에 충실한 것만도 높이 평가한다.” 

권력을 겨눈 수사로 홍 의원은 검찰에서 모난 돌이 됐다. 윗선의 압박으로 점차 검사 생활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는 1996년 제15대 총선(송파 갑)에 신한국당 소속으로 당선돼 정계에 데뷔했다. 당시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은 물론 김영삼 대통령까지 나서 홍 전 의원의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상남도지사(2012~2017)와 5선(15·16·17·18·21대) 의원, 19대 대선 후보를 지낸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연수원 14기가 정계에 대거 진출한 까닭은 무엇일까. B 변호사는 “우리 동기들이 유별나기보다 주변 상황이 정계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한 듯 하다. 1990~2000년대 정치권이 법조인을 대거 영입했다”며 “14기가 연수원 수료 후 법조인으로 자리 잡은 때였다. 야심만 있으면 국회의원직에 도전하기 수월한 조건이었다”고 풀이했다. 

C 변호사는 14기가 가진 ‘부채감’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14기는 주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대학생이었다. 젊은 시절 군사정권의 폭압을 겪었는데 젊은 나이에 왜 울분이 없겠느냐”며 “연수원 시절과 판·검사로서 사회에 진출했을 때도 시대적 격변을 목도했다. 1980년대의 격동 속 공부만 했다는 부채감이 있었다. 동기들이 정계에 투신한 것도 이런 부채감이 한몫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동기 ‘뒷담화’ 싫지만…‘법무부 장관’ 추미애 0점”

사법연수원 14기들은 추미애·주호영·홍준표의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동기를 ‘뒷담화’하는 것처럼 비칠까 함부로 평가하기가 조심스럽다”는 것. 다만 A 변호사는 “법무장관 추미애에 대해선 법조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가 정치인 추미애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같은 법조인으로서 법무부 장관 추미애를 평하자면 0점이다. 개혁은 구태를 바로잡는 것 아닌가. 검찰총장을 괴롭히는 것이 왜 개혁인가. 추 장관이 다른 사람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지만 한마디 하고 싶다. 정치도 할 만큼 했다. 장관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다하지 않았나. 이제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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