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살‧시신 훼손 사건’ 긴급회의 불참…‘침묵 모드’
“국가 보위, 국민 생명 지키는 헌법 의무 다했나” 정치권 질타
北美회담 취소‧남북정상회담 직후 긴급회의 소집
“화장(火葬), ‘월북’ 운운…정부 ‘북한 눈치 보기’ 탓”
“‘김정은 비위를 맞추는 심야회의만 주재’ 비판 성찰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3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년 제1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사건 다음 날인 23일 오전 1시부터 한 시간 반가량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는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참여했다. 긴급 대책회의가 진행되던 시간(23일 오전 1시 26분부터 16분간) 문 대통령은 사전 녹화된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이튿날(24일) 열린 NSC 전체회의도 서훈 안보실장이 주재했고, 25일 제72회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도 문 대통령은 피살 사건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해 8월 한·미 연합군사연습 당시 북한이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쏘았을 때도 당시 정의용 안보실장이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주재했고, 비슷한 시기 4차례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은 북한과 협력 및 지원을 논의할 때는 심야 대책회의를 열지만 북한을 자극하거나 북한이 불편해하는 이슈에 대해선 침묵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심야회의를 주재했는데, 주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회의였다.
2018년 3월 6일 열린 심야회의는 대북 특사단으로 방북한 당시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특사 일행이 도착한 직후 청와대에서 열렸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장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문 대통령은 방북 결과를 공유하고 후속 조치 등을 논의했다. 이후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은 내외 떠나자 심야회의 소집
판문점 정상회담 당일인 오후 9시 30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를 환송한 문 대통령은 청와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 심야 긴급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오후 11시경 시작된 심야회의는 ‘판문점 선언’으로 펼쳐질 일정과 향후 한미 및 북‧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비핵화 로드맵 등에 대해 참모들과 논의하는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28일 오후 10시 45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가 끝난 뒤 재차 참모회의를 소집해 북‧미 정상회담 현안을 점검했다. 5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2주일 뒤인 5월 24일 문 대통령은 다시 긴급 심야 회의를 소집했다. 백악관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공개하며 회담 취소를 알리자 이례적으로 이날 오후 11시 반 대통령 관저에서 NSC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며 정상회담 재개 의지를 천명했다.
당시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북핵 폐기와 관련해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잇달아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김 위원장)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의 핵 능력은 매우 강력해서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를 기도한다”며 회담 취소로 맞대응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던 올해 6월 14일 새벽 열린 NSC 긴급 화상 회의는 당시 정의용 안보실장이 주재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적 행동을 경고한 담화를 발표한 지 약 3시간 뒤에 열린 대책회의였다. 북한은 이틀 뒤 사무소를 폭파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17년 11월 29일 새벽 긴급 NSC 전체회의를 소집해 북한에 대해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일삼고 있는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필요시 우리의 독자적 대북 제재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날 오후 11시 42분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소집된 회의였다.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인 지난해 5월 4일 오전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직후 청와대 반응은 달랐다. 최초 “북측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던 합참은 미사일을 ‘발사체’로 정정했고, 당시 정의용 안보실장은 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지 않고 정부 안보라인 간 긴급회의를 개최하는 방식을 취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참석한 회의를 통해 ‘강력 규탄’ 대신 ‘우려 표명’이라는 ‘로우키(low key)’ 대응이 결정됐다.
백승주 국민대 정치대학원 석좌교수는 “해수부 공무원 사살 및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이 마치 예를 갖춘 장례절차인 화장(火葬)을 했다고 하고, ‘월북’ 운운하는 것은 정부의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 탓”이라며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 비위를 맞추는 심야회의만 주재한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성찰해보고,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북한의 만행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수강 편집장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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