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성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적절한 시기에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다. 성적인 문제는 오롯이 그 문제 하나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호소하는 성 관련 문제 중 하나가 ‘성욕 감퇴’다. 성적인 욕망이 없다는 건 어쩌면 식욕이 없는 것과 같다. 입맛이 없어 곡기를 끊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 안 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곡기가 아닌 성관계를 끊으면 남녀관계는 어떻게 될까.
성욕 감퇴 주원인은 스트레스
인간에게는 호르몬이라는 매우 중요한 물질이 있다. 호르몬은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분비돼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해준다. 음식을 먹어 혈당이 올라가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돼 혈당을 낮춘다. 너무 많이 먹는다 싶으면 렙틴이 분비돼 뇌에 그만 먹으라고 명령을 내린다. 또 임신 준비 기간에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돼 성욕을 증가시키고, 밤이 되면 멜라토닌이 분비돼 잠을 이루도록 한다. 여성의 경우 아이를 출산하면 프로락틴이 분비돼 수유를 가능하게 만든다.우리 몸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위기 호르몬’ 혹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코르티솔은 혈당을 올리고 그 혈당은 에너지원으로 쓰여 근육을 움직이게 만든다. 맥박은 빨라지고 혈압은 올라가며 눈동자가 커지면서 땀도 난다.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몸이 알아서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프레그네놀론 스틸(Pregnenolone steal)’이라는 현상이 일어나 코르티솔의 농도가 높아지고 남성호르몬이나 여성호르몬 수치는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성욕이 줄어들고 배란도 잘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식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 경우 대사에 관여하는 갑상샘 호르몬에도 변화가 생긴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대사 기능이 빨라져 갑상샘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는 것이다. 즉 우리 몸에 위기(스트레스)가 찾아오면, 가장 먼저 코르티솔이 분비되고 그다음으로 갑상샘 호르몬이, 그리고 마지막에 에스트로겐·테스토스테론 등의 성호르몬이 분비된다.
만약 성욕이 떨어졌다면, 스트레스로 인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면 처리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성욕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고, 생식은 그다음이다.
배우자가 성욕 감퇴 증상을 보일 때도 마찬가지다.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원망하기에 앞서 아내 혹은 남편에게 최근 어떤 큰 고민거리가 생긴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자책하거나 상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성욕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한다.
‘파레토법칙(Pareto principle)’이라는 게 있다. 20%의 변화가 80%의 결과를 이끈다고 해 ‘20대 80 법칙’으로도 불린다. 우리 신체도 마찬가지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호르몬(20%)만 교정해도 80%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인간에게 자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성피로나 비만, 불임, 생리불순, 성욕장애, 생리전증후군, 우울증, 두통 등의 증상을 겪고 있다면 호르몬 교정을 통해 증상을 개선 혹은 완화해보자.
여러 개의 호르몬에 한꺼번에 이상이 생기면 호르몬의 중요도에 따라 치료가 이뤄진다. 만약 성과 관련된 문제라고 치면 부신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위기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제일 먼저 보충해줘야 한다. 그다음으로 갑상샘 호르몬. 그리고 마지막에 여성호르몬 혹은 남성호르몬을 보충한다. 거듭 말하지만 생식이나 배란보다 중요한 것이 대사, 위기에 대한 방어다.
생활습관부터 개선하라!
성욕 감퇴는 주로 코르티솔 밸런스가 깨졌을 때 일어난다. 코르티솔 수치가 높거나(초기 스트레스) 낮거나(만성 스트레스)다. 더불어 갑상샘 기능이 떨어지고 프로게스테론·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으며 안드로겐은 높을 때가 많다. 따라서 호르몬 치료는 호르몬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 충실히 따르는 생활 태도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출하는 것이 기본이다. 낮에는 햇볕을 쐬면서 산책을 즐기고(세로토닌 분비), 밤에는 10시 이전에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잠을 청한다(멜라토닌, 성장호르몬 분비). 식사는 인스턴트식품 대신 국내산 채소와 육·어류를 골고루 섭취하고, 숨 쉴 때도 산소가 폐의 바닥까지 잘 전달되도록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땀이 나고 숨이 찰 정도로 격렬하게 운동하고, 걸을 때는 아스팔트보다 폭신폭신한 흙 위를 걷는 게 좋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며 소통하는 것 또한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미 신은 인간에게 우리 몸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안겨줬다. 다만 우리가 그걸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혼자 해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전문가를 찾아가 보자.
박혜성
● 전남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경기도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행복한 성 이사장
● 저서 :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랑의 기술’ ‘굿바이 섹스리스’
● 팟캐스트 ‘고수들의 성 아카데미’ ‘박혜성의 행복한 성’ ‘이색기저섹끼’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