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 발전
아마티아 센(84)의 역작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2001)’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위한 경제학이다. 그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인간 안보(Human Security)’를 주창한다. 안보는 무력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총체적 여건을 갖추는 데 있다는 것이다.아홉 살 때 인도 벵골 기근을 목도한 게 기아와 빈곤, 불평등 탐구에 천착한 계기다. 기근, 식량난 연구가 그를 거장으로 일떠세웠다. 아사(餓死)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다.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하는 국가에서는 나라 경제가 피폐하더라도 흉년이나 재해 시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입증해냈다.
1990년대 북한 대기근도 예외가 아니다. 식량 공급 감소분을 평등하게 분배했거나 원조 식량을 올바르게 나눴거나 경제적 약자에게 식량을 살 능력을 제공했다면 사정은 달랐다. 북한 같은 독재 체제에선 식량 위기 때도 정권 안보를 최우선 목적으로 자원이 배분된다. 권력을 쥔 이들이 기근을 막지 못한 것에 책임질 이유도 없다.
‘자유로서의 발전’의 요지는 경제의 발전과 자유의 확산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센의 시각에서 발전은 부자유를 제거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적대적이기보다는 서로를 강화한다. 자유언론이 존재하는 복수정당제 국가는 자유로서의 발전을 촉진한다.
“불황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업자와 같이 그것을 감당하기 힘든 사람에게만 가중된다면, 그러한 경기침체는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수백만 명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자유로서의 발전’ 242쪽)는 센의 지적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통해 불평등을 지양해야 하는 까닭이다.
#갈 데 없는 돈 ‘건설’로 몰려
북한 경제가 식량난을 극복하고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뉴욕타임스는 5월 1일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1%에서 5% 사이로 추정된다”며 “이는 제재를 받지 않고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와 비견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연평균 10%가량 성장했다는 일각의 분석도 있다. 유엔 제재에도 경제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북 압박 공조 탓에 북한 경제는 또다시 시련을 맞을지도 모른다.북한의 경제성장은 중국으로의 무연탄 등 지하자원 수출과 파견 노동자로부터의 외화 유입, 내수 시장 확대에 따른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초반에는 급상승한 지하자원 가격에 힘입어 북한으로선 로또 같은 돈을 벌었다. 장마당으로 상징되는 시장화는 내수 경제를 돌게 했다.
북·중 무역에는 킥백(kickback·리베이트)이 오간다. 북한이 중국 기업에 국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무연탄을 팔고 중국 기업은 시세 차액 중 일부를 킥백으로 북한 당국에 준다. 킥백은 보통 매출의 7%다. 2016년 북·중 무역액이 7조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킥백으로만 북한 당국이 매년 수천억 원을 확보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 잘될 때 북한에 지급되는 돈이 한해 500억 원 수준이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중동 아프리카에 10만 명 넘는 노동자를 파견했다. 이들로부터 확보하는 외화도 개성공단(북한 근로자 5만 명)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매년 연간 1억 달러(1134억 원)가량을 받은 것보다 많다. 북한으로의 외화 유입 탓에 5·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중단이 북한에 준 타격은 크지 않다. 지하자원 값이 상승해 무연탄 수출 등으로 로또 같은 외화를 벌 때 경협 중단을 레버리지로 사용한 꼴이다. 개성공단의 협상 레버리지로서의 구실도 약화했다.
북한 당국은 이렇게 들어온 외화를 허투루 썼다. 돈이 갈 곳이 없어 건설로 몰렸다.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거리에 잔디를 깔았다. 모던(modern)한 나라가 되려면 도시의 겉모습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북한 당국이 “전쟁 분분초초 다툰다”는 성명을 낸 날 평양에서는 “생땅 안 보이게 심으라”는 김정은 지시에 따라 ‘잔디 심기’ 전투가 벌어졌다. 물놀이장과 스키장도 김정은 시대의 창조물로 일떠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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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 된 ‘공화국의 확고한 의지’
김정은은 4월 13일 김일성 105회 생일(15일)을 앞두고 북한을 찾은 외신기자들 앞에 등장했다. 북한 당국이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기자들을 여명거리로 안내했다. 김정은은 내각 총리 박봉주와 함께 나타났다. 박봉주는 “여명거리는 핵폭탄 100개 이상의 위력을 가졌다”고 했다. 북한 언론은 여명거리는 “상상 이상 희한한 별천지”라면서 준공식 이후 한 달 넘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북한이 신동아 기사에 반박하면서 공개한 성명을 통해 ‘응당한 속도’라고 천명한 것과 다르게 지난해 말까지 여명거리 주거단지를 완공하지 못했다. 4월 18일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나 아직도 공사 중인 블록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북한이 시장경제로 체제 이행을 하고 한국과의 경제통합을 거쳐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다고 가정하면 북한 지역은 연 13%씩 성장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김정은 집권 후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부산 해운대, 뉴욕 맨해튼을 닮은 형태로 치솟는다. 평양은 초고층 아파트를 주체사상탑이나 김일성 동상 같은 상징물로 여긴다. 전시성 건축물에 외화를 쓰고는 기고만장한 것이 미국과 중국의 압박 공조 국면에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원산·통천·금강산 일대에 관광벨트를 구축해 연 1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원산-금강산 개발 총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공화국의 확고한 의지”로 입안된 마식령, 통천공항, 석왕사 등 6곳의 동시다발 개발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80억 달러 외자 유치는 불가능하다. 중국인에게 금강산은 매력이 별로 없다. 투자나 수요가 한국에서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동아의 지적 그대로다.
김정은은 언론 플레이 달인이다. 북한 언론에 실린 김정은 외부 행사 사진을 두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 힘 있는 사람(고위관료나 군지휘관)을 질타·지시하는 모습과 낮은 곳에 있는 이를 품에 안는 장면이 그것이다. 해군 지휘관들을 수영복만 입힌 채 세워놓고 훈계하면서 10㎞ 바다수영을 시키는 영상을 연출하는가 하면 힘없는 이들을 끌어안는 인자한 수령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보낸다.
북한 인민을 상대로 한 ‘언플’도 중요하겠으나 정책을 입안하거나 수정할 때 한국 전문가의 견해가 담긴 언론 기사를 참조하는 것도 고민해봤으면 한다. 신동아도 그간 북한의 경제 정책, 발전 전략과 관련한 기사를 꾸준히 써왔다. 기사 내용에 대한 질의는 글을 작성한 기자의 e메일로 하면 된다. 반론을 꼭 북한 매체에 실을 필요도 없다. 이 칼럼에 대한 반론은 carrot@donga.com으로 보내면 된다.
아마티아 센이 기근 연구에서 증명한 대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했다면 인민이 대규모로 굶어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유언론이 아사도 막는다. 북한 당국이 안보나 정치가 아닌 적어도 경제 정책에 대한 한국 언론의 비판을 ‘구린내나는 나발통’의 ‘모략망발질’로만 여기지 않는 날은 언제쯤 올까. 북한 정책실무자가 언제쯤 한국 학자 논문을 자유롭게 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