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이면 숨 옆에 숨을 가지런히 두고 강을 하나 만들고 싶었지, 발원은 같지만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갈, 그 물에 단출한 점심과 서운한 오후와 유난히 말수가 많았던 저녁을 띄우고, 단번에 끊긴 것 같았던 날들은 사실 단번에 끊긴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흘리고, 바람 잘 날은 있어도 바람이 없던 날은 없었다는 뒤늦음 같은 것도 함께 보내고,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하는 글씨를 작게 적어두고, 사람의 기대 같은 것으로, 풀죽은 미움 같은 것으로,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앉아서, 마음 높이 거짓을 생각하면서.
박준
● 1983년 서울 출생
●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 2012년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발표.
● 2013년 신동엽문학상 수상
● 2017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 2019년 편운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수상신동아 202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