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만화책’이 ‘웹툰’으로 진화하듯이

  • 정해윤│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4-11-20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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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未生)’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웹툰(웹 카툰의 준말·인터넷으로 보는 만화) 미생은 2012년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작품이다. 당시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 묘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까지 누적 조회 수가 10억 건에 달하고 파생 효과도 만만치 않다. 요즘엔 케이블채널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높은 인기를 누린다. 출판시장으로도 열기가 전파돼 만화책이 100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 올해 최초의 밀리언셀러일 것이다.

    미생 붐은 한국 만화의 헤게모니가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넘어갔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화책 시장은 만화잡지가 붐을 이룬 1990년대가 호황이었다. 지금의 30~40대는 아마 이현세와 허영만이 그린 만화를 즐겨 봤을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만화책은 침체의 길로 접어든다. 도서대여점의 등장은 전통적인 ‘만화가게(대본소)’ 중심의 유통구조를 파괴했다. 출판만화가 바닥을 헤매던 2003년 웹툰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포털사이트 특정 코너에 무료로 만화를 띄워 네티즌이 보게 하는 모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만 시도된 이 실험은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만화 콘텐츠의 불씨를 살렸다. 위키피디아는 웹툰을 ‘한국이 상용화한 웹 기반 퍼블리싱(출판) 모델’로 정의한다.

    이현세·허영만→강풀·윤태호

    초창기 최고의 스타는 단연 강풀이었다. 2004년 순정만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후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파트’ ‘26년’ 같은 후속작이 계속 히트했다. 상당수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강풀에겐 ‘디지털 스토리텔러’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심승현의 ‘파페포포’ 역시 초기 웹툰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2003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파페포포 시리즈는 일본, 중국, 동남아에 수출돼 누적 판매량이 300만 부나 됐다.



    이런 성공은 기성 만화가들을 웹툰 시장으로 유인했다. 강풀의 경우 만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어 그림 실력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반면 이후에 등장한 윤태호, 이충호 등은 출판만화에서 엄격한 문하생 생활을 거친 뒤 웹툰으로 넘어왔다. 이들은 출판만화의 장점을 웹툰에 결합해 가장 진화한 작품을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4월 영국도서전에서 윤태호 작가의 팬 미팅 행사가 있었는데 해외 팬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것도 웹툰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웹툰은 스마트폰 덕에 날개를 하나 더 달았다. 2013년 조사에 따르면 PC로 웹툰을 접하는 비율과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접하는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2013년 작가 Hun의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영화로 만들어져 7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웹툰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시대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로 부각됐다. 최근엔 웹툰 ‘닥터 프로스트’가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웹툰은 종이 매체에서 온라인 매체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첫 모델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선 종이신문인 ‘뉴욕타임스’가 온라인 뉴스 유료화에 성공하고, 전자책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웹툰의 성공은 이런 미국 사례와 비견될 수 있다.

    종이 매체에 시사점 제시?

    한국의 웹툰은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꿨다. ‘종이를 넘겨가며 보는 장르’에서 ‘스크롤을 내려가며 보는 장르’로 바뀐 것이다. 지금도 해외의 웹툰은 종이 만화를 스캔해 올리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한국의 웹툰은 지면의 제약에서 벗어나 배경음악과 플래시 효과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줌인·줌아웃·페이드인·페이드아웃 같은 입체 효과까지 제공한다.

    또 하나 웹툰의 성공에서 주목할 점은 포털사이트와의 관계 설정이다. 포털사이트는 언론사 같은 콘텐츠 생산자들에겐 포식자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웹툰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포털사이트는 웹툰 작가에게 일정한 고료를 지불하고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중간자 노릇을 한다. 물론 안정적인 고료를 지급받는 작가는 아직 소수지만 적어도 갑과 을의 일방적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만화가들이 이룩한 혁신은 종이 매체에도 시사점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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