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신분은 입주민, 마음은 프로 목표는 전용구장 우승”

사회인야구단 네이보스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11-19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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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사(야구사랑) 드림필드.’ 한 사회인야구단의 전용 구장 이름이다.
    • 그런데 이 야구장이 좀 수상하다. 창단 3년, 사회인야구 리그 참여 2년 만에 ‘꿈의 구장’을 직접 만들어낸 평균 나이 43세의 못 말리는 야구광 집단 ‘네이보스’ 이야기.
    “신분은 입주민, 마음은 프로 목표는 전용구장 우승”

    사회인야구단 ‘네이보스’ 팀원들.

    이른 아침까지 내리던 가을비가 물러나고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하는 찬바람이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던 11월 2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설문동 우리인재원 주차장은 일요일임에도 때 아닌 자동차 행렬로 붐볐다. 차량 트렁크에서 가방이며 배트를 꺼내 둘러메곤 삼삼오오 어디론가 향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뒤따라 도착한 곳은 사회인야구단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

    앞선 팀들의 경기가 종반으로 치닫는 가운데 오전 11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경기를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은 야구장 펜스 밖에서 둘씩 짝지어 캐치볼을 하며 몸을 풀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등 준비운동에 여념이 없었다. 그중 한 팀이 ‘일산자이-네이보스(NEIBOS), 이하 네이보스).’ 이웃사람들(Neighbors)이라는 뜻을 지닌 네이보스는 말 그대로 고양시 식사동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인야구단(유니폼에 적힌 ‘NEIBOS’는 팀 명칭의 스펠링을 그대로 다 쓸 경우 너무 길기 때문에 축약해 썼다고 한다). 팀원 31명의 평균 나이는 43세. ‘아파트 입주민’ 혹은 ‘평균 나이 40대’로 구성된 팀은 사회인야구단 전체를 통틀어도 희귀한 존재다.

    자녀에게 야구를 가르치기에도 벅찰 나이의 남정네 여럿이 휴일도 잊은 채 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일전을 벼르는 모습을 보자 ‘도대체 야구가 뭐기에?’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팀 내 두 번째 연장자인 하영준(51) 단장은 “40~50대 중년 남성에게 야구는 놀이문화”라며 웃었다. 장기언(45) 감독은 “야구는 남자들에게 미지의 세계이자 동경의 대상”이라고 화답했다. 대한민국 중년남성의 영원한 로망인 요트 항해, 창공을 나는 파일럿에 야구가 더해진 모양이다.

    야구에 미친 ‘이웃 사람들’

    구석구석 흩어져 몸을 풀거나 장비를 챙기는 팀원들을 찾아다니며 얘기를 나누느라 경기를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 야구장 한쪽에 마련된 네이보스 더그아웃으로 들어서자 그라운드 못지않은 열기로 후끈하다.



    “오늘 왜 이래? 장 이사….” 1회 말 공격에서 1번 타자로 나선 장경수(42) 씨가 첫 타석에서 삼진아웃을 당하자 팀원들의 걱정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초반부터 승기를 잡아 앞서가던 네이보스는 4회 초 상대 팀에 역전을 당했다. 5회 말 다시 공격 기회가 오자 팀 막내이자 유일한 미혼인 원영창(30) 씨로 투수를 전격 교체했다. 투구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선 그는 “점수를 한 점도 안 줬다. 오늘 마운드는 막내인 제가 마무리하겠다”며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리그에 소속된 사회인야구단 경기는 ‘9회 말까지’가 아닌, ‘2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을 두고 진행된다. 그 때문에 보통 4~5회에서 경기가 끝나지만 이날은 드물게 7회까지 이어졌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투수 김동준(45) 씨가 “2점차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타자들은 상대 투수를 최대한 괴롭혀라”고 소리쳤지만 이날 경기는 8대 4로 네이보스가 역전패당하면서 막을 내렸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도, 중년의 나이도 잊은 채 2시간 동안 치고 달리고 소리치며 그라운드를 누빈, 못 말리는 야구광들. 이들이 뭉치게 된 건 신축 아파트단지 입주가 한창이던 2010년 9월. 입주자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웃을 찾습니다. 딱 10명만 넘기면 야구팀을 만들어봅시다’라는 공지가 뜨면서부터다. 글을 올린 이는 김재윤(42) 씨. 창단 멤버였던 그는 현재 아파트 동대표를 맡는 등 개인적인 일로 바빠 야구단에 참석하지 못한다.

    시작은 미미했다. 야구단 모집 소식을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변형철(44) 씨는 “낯선 곳으로 이사 오니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해서 운동할 게 뭐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아내한테 등 떠밀려 입단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평소 야구장에 가본 적도 없고 가끔 TV 중계만 보는 정도였다. 기껏해야 어린 시절 동네친구들과 놀이 삼아 야구를 했던 게 전부였다.

    하영준 단장은 “첫 모임에 9명이 참석했는데 몰골이 참 볼만했다.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은 사람, 야구화 대신 축구화 신은 사람, 장비랍시고 비닐 글러브를 챙겨온 사람…. 한두 명 빼곤 수준이 의심스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릴 때 동네 야구 하던 추억으로 막연히 ‘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 이들이 오직 열정만으로 뭉치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래서 실내야구장에 모여 공을 주고받는 기초부터 시작했다. 그나마 좀 나은 친구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가르치는 식이었다”고 했다.

    오합지졸에다 부상자 속출

    하지만 아파트단지 내에 야구팀이 생겼다는 소문이 나면서 곧 선수 출신 2명이 새로 들어왔다. 김학진(42), 강재민(40) 씨다. 대학야구 선수 출신인 김씨는 “초창기 팀원들한테 투수와 수비수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땐 유니폼도 없고 야구 룰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기본 룰 외에 ‘피처 보크’나 ‘견제사’ 같은, 경기 중 발생하는 자세한 룰을 몰랐다”고 했다. 프로야구 투수 출신인 강씨는 어깨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은퇴 후 아예 야구를 놓았던 그는 네이보스팀 창단과 함께 투수코치가 돼 팀원을 가르친다.

    김씨는 현재 우리인재원 야구장의 ‘우리리그’에서 ‘주말리그’ 감독을 맡고 있다. ‘평일(야간)리그’ 감독은 장기언 씨다. 네이보스는 팀 규모가 31명으로 늘면서 선수를 두 팀으로 나눠 주말리그를 소화한다. 주말리그에 참가하는 사회인야구단은 각 팀의 실력 차에 따라 ‘슈퍼루키’ 또는 ‘루키’ 팀에 소속되는데 네이보스는 양팀 선수의 실력 차가 모호하다. 그 탓에 양 팀원이 서로 “우리 팀 실력이 더 낫다”고 옥신각신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날 경기가 끝난 후 점심식사를 겸한 뒤풀이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승강이가 벌어지자 하영준 단장이 “도토리 키 재기”라며 소란(?)을 평정했다. 주말리그에서 뛰는 31명의 팀원 중 정예 멤버 13명은 평일리그에서 활약한다.

    창단 첫해 네이보스는 리그에서 뛸 엄두를 못 내고 팀원을 둘로 나눠 자체 청백전을 벌이며 연습에 몰두했다. 말이 좋아 야구단이지 무늬만 ‘선수’인 오합지졸 남자들이 모여 의욕만 앞세우다보니 몸이 안 따라줘 크고 작은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연습 때마다 입이 찢어지고 코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지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동계훈련 때 내야수를 맡아 내야땅볼을 잡으려던 이규남(42) 씨는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 오른 공에 맞아 코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했다. 이씨는 “코가 세 배 크기로 부어올라 두 달 동안 외출조차 못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지금은 외야만 맡는다. 외야수로 뜬공을 잡다 코를 다친 유동철(42) 선수는 이후 포수만 맡는다. 부상으로 입은 트라우마는 좀처럼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장기언 감독도 팀 창단 초기 왼쪽다리 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는 “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날짜까지 잡았지만 1년 동안 야구를 못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수술을 취소하고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았다”고 했다.

    이규남 씨는 한술 더 떴다. “야구하다 자꾸 다치니까 처음엔 아내가 잔소리를 했다. 코뼈를 다친 뒤론 아예 야구를 못하게 말렸다. 야구를 못하고 쉬는 두 달 동안 집에서 봉사(?)를 많이 했다. 청소하고 설거지에 빨래까지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신분은 입주민, 마음은 프로 목표는 전용구장 우승”

    타석에 나선 ‘네이보스’ 선수.

    야구 개인과외

    짧게는 한두 달, 길면 1년을 가기도 하는 후유증과 현업에 지장을 주는 부상을 감수하면서 6개월간 연습에 매진한 네이보스는 이듬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사회인야구 리그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2012년 3월 5일 첫 시합에서 투수로 뛴 장경수 씨는 “당시 정확한 점수 차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이겼다. 뒤풀이 자리에서 술잔을 잡는데 팔이 덜덜 떨려 왼손으로 잡고 건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공식 리그 첫 시합에서 따낸 승리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9명으로 시작한 네이보스는 불과 3년여 만에 팀원이 3배 이상 불었다. 이들의 직업도 방송프로덕션 회사, 안경프랜차이즈, 무역회사, 건설업체, 해외운송업체 대표 등 사업가를 비롯해 음식점 사장, 건설 분야 설계사, 은행원, 자동차 세일즈맨, 인테리어 회사 임원, 변리사, 의사, 약사, 카페 사장, 편의점주, 카메라맨, 증권사 직원, 보험사 지점장 등으로 다양해졌다.

    하는 일은 제각기 다르지만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만큼은 “대한민국 사회인야구단 중 최고”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이 한결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열혈맨’이 변형철 씨다. 변씨는 창단 초기 2~3개월에 걸쳐 주 2회, 매번 2시간씩 실내야구장을 찾아 개인 레슨을 받았다.

    “막상 야구를 시작하자 나이가 있어선지 몸이 제대로 안 따라줬다. 내가 그렇게 운동을 못할 줄 몰랐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래서 레슨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야구는 팀플레이라서 무조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못하면 다른 팀원한테 민폐를 끼치게 된다. 레슨 받기 시작한 뒤 5게임 만에 첫 홈런을 쳤고 3타점을 올렸다. 그때부터 야구가 재미있어졌다.”

    그는 한때 20~30개의 배트를 갖고 다니다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지금은 8개만 갖고 있다. “타율이 떨어지면 배트가 문제인가 싶어 자꾸 바꾸다보니 점점 개수가 늘었다”고 했다.

    올해 초 입단한 서승원(43) 씨도 개인 레슨을 받는다. “야구는 한 경기에서 뛸 수 있는 선수가 9명이다. 무조건 그 안에 들어야 원하는 만큼 그라운드를 뛸 수 있으니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레슨을 받게 된다”고 했다.

    전용 구장을 갖다!

    창단 초기 팀원들은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 ‘우애’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최고 명문 야구동호회를 만들자, 둘째 아파트단지 내 리틀 야구단을 만들자, 셋째 전용 실내연습장을 갖자는 거였다. 하영준 단장은 “처음부터 온 가족이 즐기면서 다 같이 참여하는 야구팀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자면 아이들이 연습할 장소도 필요한데 그게 없어서 아직 리틀 야구단 창단 목표를 못 이뤘다”고 했다. 마지막 목표는 8월에 달성했다. 인조잔디에 조명까지 갖춘 번듯한 전용 야외 구장을 갖게 된 것.

    사회인야구단이면 어느 팀이든 그들만의 전용 구장을 꿈꾼다. 일부 학교나 사설 야외 야구장을 대여하려면 2시간 기준 10만~30만 원이 들 뿐 아니라 그마저 경쟁이 치열해 마땅한 곳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 더욱이 시설 좋은 야구장은 대개 자체 리그를 운영하기 때문에 리그가 시작되면 일정이 빡빡해 구장 대여가 어렵다.

    현재 전국의 사회인야구단은 2500여 팀으로 추산된다. 그에 반해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야구장 수는 349개에 불과하다. 그중 프로야구 전용 구장 등 사회인야구단이 사용할 수 없는 곳을 제외하면 남는 야구장 수는 더 줄어든다. 야구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보니 마음껏 야구를 하고 싶어도 사회인야구단은 어느 팀 할 것 없이 장소 대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네이보스 팀원에게도 원할 때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야외구장은 절실한 꿈일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로 실내연습장을 마련하려고 장기언 감독을 비롯해 이규남, 장경수, 차동헌, 변형철 씨 등 5명이 의기투합했고 여러 곳을 물색한 끝에 아파트단지 가까운 곳에서 빈 창고를 찾아냈다. 실내연습장으로 주로 창고를 사용하는데 마침 적당한 곳을 발견했던 것. 5명은 그 사실을 팀원들에게 알리고 각자 100만 원씩 갹출하려 했지만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흐지부지됐고 실내연습장 마련의 꿈은 물 건너가는 듯했다. 하지만 5인방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매년 초 열리는 리그에서 경기를 뛰려면 한 해 전 9~12월에 서둘러서 리그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 시설 좋은 야구장은 일찍 마감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설이 열악한 곳에서 리그를 뛸 수밖에 없다. 그런 야구장 중엔 인조잔디가 안 깔린 곳이 많다. 맨땅에서 야구를 하면 지면이 고르지 못한 데다 돌 등이 있어 공의 바운드가 불규칙해져 부상당할 위험이 훨씬 커진다. 잔디가 깔린 전용 야구장이 그래서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규남 씨의 설명이다. 장기언 감독은 “네이보스 이전에 2009년부터 사회인야구단 소속 선수로 뛰었다. 방송프로덕션 회사를 경영하면서 아리랑TV와 손잡고 외주제작을 했는데 그곳에 야구팀이 생겨 들어가게 됐다. 오랫동안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야구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내연습장 마련 계획이 무산되고 얼마 뒤 동갑인 차동헌이 다시 불을 지펴 아예 야외구장을 설립하는 걸로 뜻을 모으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고 했다.

    ‘눈높이’ 맞춘 화장실

    지난해 9월, 변형철 씨를 제외한 4명이 갹출한 야구장 설립 초기 자금이 통장에 모이자 부동산컨설팅업체와 계약을 맺고 적당한 땅을 찾아달라고 맡겼다. 그런데 업체가 계속 “부지를 찾고 있다”며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참다못한 4명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아파트단지 부근 적당한 국유지를 고양시 내에서 찾아냈지만 계약 직전 무산됐다. 야구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방자치단체 인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 고양시에서 시작된 부지 물색은 남양주→파주→김포→수원→안산으로 반경을 점점 넓혀가며 4개월을 끌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양주시 화도읍 천마산 기슭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고, 지난 8월 2만6446㎡(약 8000평)의 부지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용 구장 ‘야사(야구사랑)드림필드’를 개장했다.

    그에 앞서 부지 찾기에 점점 지쳐가던 4인방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을 들고 온 사람은 차동헌 씨였다. 차씨는 “우연찮게 지인이 소개해준 부지가 구(舊) ‘천마구장’이었는데 인조잔디도 없는 맨땅에다 조명시설도 없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고 했다.

    차씨의 얘기를 들은 세 사람은 혹시 누가 채갈세라 일손마저 놓은 채 득달같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거다!’ 환호를 올리고 곧바로 인수 작업에 착수했지만 완공까지는 부지 물색보다 더한 첩첩산중 고난의 행군이었다. 우선 책과 인터넷을 뒤져 야구장 규격과 시설을 공부하고 설계와 디자인이 전문인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간이 설계도까지 만들었지만 야구장 공사에 온전히 시간을 쏟기란 쉽지 않았다. 각자 사업과 직장 일로 바빠 개인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공사 초기엔 매일같이 4인방이 모여 현장에서 공사 진행 과정을 지켜봤지만 갈수록 힘들어졌고, 업자들도 대화 창구가 여럿이다보니 헷갈려했다. 결국 장기언 감독이 현장을 관리·감독하고 업자들과 공사 진행을 조율하기로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의 숨통이 트였다.

    “신분은 입주민, 마음은 프로 목표는 전용구장 우승”

    ‘네이보스’의 전용 구장 개장식.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사는 땡볕이 내리쬐는 7~8월까지 이어졌고 장기언 감독은 하루 혹은 이틀 걸러 한 번씩 회사와 현장을 오가며 땀을 쏟았다. 그 결과 구장엔 녹색의 인조잔디가 깔렸고 선수를 위한 더그아웃, 야간경기를 위한 조명탑이 들어섰다.

    특히 공들인 곳은 화장실이다.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야구장을 찾아 오랜 시간 경기를 즐기면서 나들이 기분을 내려면 무엇보다 쾌적한 화장실이 필수였기 때문. 팀원들이 입을 모아 “잘 꾸며진 공원화장실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화장실을 놓고 장기언 감독은 “좋긴 하지만 ‘좀 심했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공사 잔금을 치렀는데 화장실 설치비용이 원래 예산보다 많이 들었다. 4명 모두 바쁘고 시간이 없다보니 발품을 팔아 공사비를 아끼는 등 알뜰하게 못 챙긴 부분이 있다. 그래서 야구장 마련 비용이 예상보다 훨씬 커졌다”고 했다.

    4인방이 n분의 1로 나눠 ‘야사드림필드’에 투자한 총사업비는 8억5000만 원. 처음과 달리 갈수록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 각자 계획한 돈의 1.5배씩을 더 투자했지만 비용을 둘러싼 고민과 갈등은 전혀 없었다.

    리그 운영 위한 회사도 설립

    반면 “하마터면 전용 구장이 날아갈 뻔”한 심각한 의견 충돌은 공사 과정에서 빚어졌다. 본격 공사에 들어가기 전 시설 좋고 훌륭하다고 소문난 야구장들을 답사하면서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바람에 제각기 욕심이 생긴 데다 취향과 생각이 서로 달라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것. 투자자 4명 중 3명이 사업가여서 다른 사람 지시를 받거나 의견을 따르는데 익숙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장기언 감독의 말이다.

    “집으로 치면 외관 설계를 어떻게 하고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지, 자재는 어떤 걸 쓰고 어디에 얼마만큼 비용을 들일지 등에 대해 서로 의견이 대립되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각자 일을 하면서 야구장에 매달리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불필요한 충돌을 불렀다. 하지만 팀 창단 때부터 워낙 친하고 의기투합이 잘되던 친구들이라 조금씩 양보하면서 무사히 넘어갔다.”

    팀원 모두 한마음으로 기다리던 전용구장 개장식을 며칠 앞두고 4인방은 따로 모여 조명탑 점등식을 치렀다. ‘언제 공사를 끝내서 멀쩡한 모습을 만드나’ 싶어 까마득했던 마음은 점등식을 앞두고 설렘으로 바뀌었다. 수십 개 전구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자 그동안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드디어 꿈을 이뤘다’는 벅찬 감동이 4인방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화장품 선물로 잔소리 차단

    현재 ‘야사드림필드’에선 44개 사회인야구단이 뛰는 ‘야사드림리그’가 펼쳐진다. 8월초 개장과 함께 하반기 리그를 시작한 탓에 ‘세미 리그’ 형식이 됐지만 내년 상반기 정식 출범하는 리그를 위해 사회인야구단을 모집 중이다. 리그 운영을 위해 ㈜야사코리아를 세운 4인방은 이규남 씨를 대표로 모두 이사로 등재됐다. 팀원들이 언제든 치고 달릴 수 있는 야구장을 원했다면 투자자 4인방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야구장”이라며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창단 초기 팀원 대부분은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야구를 핑계로 주말에 혼자 집을 빠져나가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집 근처에서 술자리를 벌였기 때문. 그런 불만과 잔소리를 일시에 잠재운 건 창단 첫해 연말 모임이 계기가 됐다. 팀원들을 비롯해 50여 명의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하영준 단장이 자비를 털어 아내들을 위한 ‘깜짝 선물’로 화장품을 준비했던 것. 해마다 송년모임에서 타율 1위, 홈런왕 등 자체 시상식을 위해 제작하는 트로피와 부상 마련 비용도 하 단장이 책임져왔다. 12월 초 있을 모임을 앞두고 팀원들이 “올해는 제발 참아달라”고 말리는 중이지만 하 단장은 “트로피에 내 이름이 들어가니 내가 돈을 내는 게 당연하다. 유일한 낙이니 말리지 말라”고 못 박았다.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 어떤 직함을 가졌든 일단 네이보스에 오면 ‘형’ ‘동생’ 혹은 ‘원숭이’ ‘따닥이’ ‘스프린터’ ‘오버맨’ ‘화이팅맨’ 같은 별명으로 불린다. 팀원들은 한목소리로 “아파트를 중심으로 동네 주민이 모이다보니 공동체의 끈끈함과 한 공간에 사는 듯한 친밀감을 느낀다. 승패를 떠나 부상 없이 오랫동안 함께 즐겁게 야구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했다. 그들의 바람은 또 있다. 아직까지 리그 우승 트로피가 단 하나도 없는 네이보스가 내년 상반기 전용 구장에서 펼쳐질 ‘야사드림리그’로 소속을 옮겨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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