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치민주연합 여성 의원들은 ‘친노(親盧)보다 더 친노답다’고 한다. 같은 당 남성 의원들보다도 훨씬 기가 세다는 게 중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할 때의 여성 의원들과도 다르고, 현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과도 사뭇 다르며, 우리 사회 커리어 우먼들의 평균적 정서와도 상당히 동떨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이라는 하나의 집합체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새정연이라는 제2의 정당이 있고 그 안에 여러 여성 의원이 있다. 일단 실체가 있다. 또 이들 여성 의원 사이에서 공유되는 어떤 배타적 특성도 엿보인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이들 여성 의원은 이미 권력기관이 돼 있다. 야당이 반대하면 입법 기능이 정지되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여의도 정치에서 새정연의 권능은 다수 여당인 새누리당에 필적한다. 그런 새정연 내에서도 여성 의원들의 목소리는 의사결정에 지배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비친다.
“가장 시장(市場) 적대적”
현재 새정연 전체 의원은 130명. 이 중 여성 의원은 25명으로 19.2%를 차지한다. 새누리당은 전체 의원 158명 중 여성 의원이 20명(12.7%)에 그친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이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에 비해 당내에서의 양적 비중이 더 높다. 지역구 의원을 보더라도 새누리당 여성 의원은 6명인 반면 새정연 여성 의원은 그 두 배가 넘는 14명이다. 새정연 여성 의원은 ‘출신 성분’이나 ‘성향’에서도 새누리당 여성 의원과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
먼저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의 경우 대체로 ‘커리어 우먼’ 즉, ‘일하는 여성’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공부 잘하고 용모 단정한 명문대 여대생이 사회에서 출세해 국회의원이 된 경우다. 구체적으로 새누리당 여성 의원은 전문직 그룹과 경제인 그룹으로 나뉜다.
전문직 그룹으로는 나경원(판사), 정미경(검사), 박인숙(의사), 신의진(의사), 문정림(의사·교수), 민병주(과학자), 김현숙(교수), 민현주(교수), 신경림(교수) 등이 있다. ‘부자 정당’ 이미지를 강화하는 경제인 그룹으로는 윤명희(한국라이스텍 대표), 류지영(유아림 대표), 손인춘(인성내추럴 사장), 권은희(헤리트 대표) 등이 있다. 이념적 성향에서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은 뚜렷하게 중도보수 성향을 띤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새정연 여성 의원들은 ‘투쟁하는 여성’ 이미지를 가진 진보 일색이다. 새누리당 여성 의원들 중에 골수 운동권 출신은 찾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새정연 여성 의원들 중엔 광의의 운동권에 포함되지 않는 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은 대체로 과거에 어떤 분야에서든, 어떤 조직에서든, ‘운동’을 했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에 투신했거나, 아니면 권은희 의원처럼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시국사건에서 진보 편에 선 전력이 있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 중 가장 큰 세를 형성하는 부류는 여성운동(페미니즘) 그룹과 학생운동 그룹이다. 한명숙(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국무총리), 이미경(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상희(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남인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등은 여성운동 그룹에 해당한다. 이들 상당수는 김대중 정부 때 정치권에 입성했다.
연령대는 486(민주화 세대인 386이 40~50대 초반이 되면서 붙여진 말) 정치인보다 높지만 이력은 비슷하며 북한에 온건·유화적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이후 페미니스트들과 운동권 여성들이 야권 공천을 통해 국회에 진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 임수경, 서영교 등은 학생운동 그룹으로 꼽힌다. 김영주, 전순옥, 한정애 등은 노동운동을 했고 최민희(언론개혁국민행동 위원장) 등은 언론민주화운동을 했다.
전문가 그룹은 박영선(방송기자), 추미애(판사), 이언주(변호사), 진선미(변호사), 은수미(연구원) 정도이고 경제인 그룹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장하나 등은 청년 대표로 발탁된 경우다. 전문가 그룹과 영입 여성 의원도 운동권 출신 여성 의원 못지않게 이념적 선명성을 띤다.
친노, 외곬, 막말
정치권 평가에 따르면, 새정연 여성 의원은 대체로 친노 출신이거나 친노의 강성 노선에 동조적이다. 진보 중에서도 원리주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새정연 여성 의원은 페미니스트와 학생운동권의 ‘대박 조합’으로 대체로 외곬 성향”이라며 “같은 당 남성 의원보다 훨씬 드세고 투쟁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9월 자유경제원은 국회의원들의 ‘시장(市場) 친화도’를 조사해 순위를 발표했다. 시장 적대적 의원 톱 5는 장하나, 남인순, 최민희, 은수미, 임수경 순이었다. 모두 새정연 비례대표 여성 초선 의원이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새정연보다 왼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통합진보당과 정의당 소속 정치인보다도 더 시장 적대적인 성향인 것으로 조사됐다.
7·30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새정연 지지도는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에 더블스코어 차이로 뒤져 있다. 당의 주류이면서 강성 노선으로 알려진 친노 세력이 비판의 중심이다. ‘여성은 약자’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인지 새정연 여성 의원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여성 의원들이 강경파의 주축을 이룬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여성은 남성보다 대화와 타협에 능할 것 같은데 이들은 중요 현안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사실상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8월 박영선 당시 새정연 비대위원장이 여당과 몇 차례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을 때 당내 강경파는 이러한 합의안을 강하게 성토했다. 여기에 같은 여성 의원들이 적극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의원총회에서 한 여성 의원은 비공개로 “히틀러의 나치즘에 저항하듯 박근혜에 저항한다”고 했다. 이날 쏟아져나온 강경 발언 가운데 압권이었다.
박영선에 대해선 “남 어깃장만 놓다 리더가 된 뒤 인과응보를 겪은 셈”이라는 평이 나왔다. 박영선은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등원한 뒤 “이명박근혜”를 입에 달고 다닌 원조 여성 강경파였다. 그러다 7·30 재·보선 참패 후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변신’을 시도했다. 여당과 세월호법에 합의했고 또 이 합의를 지키려 노력했다. 이런 행동은 그 자체로 책임감 있는 자세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여당과의 이런 주고받기가 이내 당내 강경파와 여성 의원들에 의해 제지당하고만 것이다. 결국 박영선은 며칠 잠적하고 탈당설을 흘리다 복귀하면서 비대위원장 직을 마감했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은 대체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대화 상대라기보다는 적대적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이들에 대항해 자기 신념을 관철하는 데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수단으로 이들이 주로 동원하는 것은 수위를 넘나드는 공격적 언어다. 이 때문에 막말 논란이 자주 발생한다.
장하나는 청년비례대표로 등원한 가장 젊은(37세) 여성 의원이다. 그는 8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국가의 원수”라고 써서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엔 “대선 불복”을 선언했고 박 대통령을 향해 “보따리 싸라”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장 의원이 이렇게 튀는 것은 당연하다. 애초 오디션 프로그램 방식을 통해 선발된 이유가 ‘튄다’는 점이었는데 그가 이 점을 저버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마초화한 여성
은수미는 2013년 6월 새정연 의원총회에서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연쇄살인’에 비유했다. 이어 “개XX” 같은 막말을 쏟아냈다. 강경파 사이에서도 “어, 이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라는 반응이 나왔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은 간간이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5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진선미는 세월호 사고 직후 소방119 상황실과 목포해경 상황실 간 19차례 전화통화가 고위직 의전을 위한 것이었다고 폭로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가 증거로 제시한 녹취록은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소방방재청 원본 녹음파일에는 중앙에서 내려오는 이들이 구조팀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의 자료엔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은 “서영교, 임수경, 김현 같은 운동권 출신 여성 의원들의 언행에선 여전히 학생운동권의 잔영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들은 같은 당 페미니스트 출신 여성 의원들과도 구분되는데, 그것은 이들이 ‘마초화한 여성’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가끔 ‘선민의식’이나 ‘운동권 특유의 권위의식’이 느껴진다고 한다. 이들 역시 ‘거친 언사, 언어폭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동아일보와 검색시스템업체의 국회 회의록 전수조사에서 서영교는 ‘당신’ 같은 부적절한 발언을 가장 많이 한 의원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그는 “‘법무부 장관님, 당신이 생각하기에는요’처럼 ‘당신’의 앞뒤 문장에 높임말을 항상 붙였다”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임수경은 탈북 대학생에게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XX들아”라고 폭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운동권 출신은 아니지만 그 정서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진 추미애는 2001년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소설가 이문열을 가리켜 “가당치 않은 놈이”라고 했고 기자와 언쟁하면서 “X같은 OO일보”라는 욕설을 했다고 한다.
최근 김현의 폭언 논란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세월호 유족 대표들과의 술자리 후 50대 대리기사에게 “야, 너 거기 안 서”라고 폭언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 사건도 새정연 일부 여성 의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권위주의 운동권 문화에서 나왔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해석이다. 이들이 국회 안팎에서 자주 내뱉은 폭력적 언어들은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탄순이’ ‘노이사’
새정연 여성 의원들이 이념적 편향성을 자주 드러내는 것과 관련해, 일부 정치권 관계자들은 “그런 성향의 여성들만 공천해 당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암묵적으로 그런 식의 공천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특히 여성 초선 의원들 중에 강경파가 즐비한 것을 한명숙과 관련짓는 사람이 많다. 한명숙이 2012년 총선 당시 당 대표로 공천권을 거머쥔 동안 당에서는 ‘노이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친노, 이화여대, 486 운동권’을 일컫는 말로 거기에 속하지 못하면 공천은 물 건너간다는 의미로 통했다. 총선 초반 판세는 야당에 절대 유리했다. 한명숙은 다 이긴 듯 자신의 아바타들을 심기에 분주하다가 결코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패했다는 평을 들었다.
새정연은 김대중 총재가 관리하던 시절의 야당과는 전혀 다르다. 새정연의 실제적 뿌리는 열린우리당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정연 여성 의원들은 열린우리당 시절 만개했던 친노 문화의 적통 계승자라는 시각도 있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대승을 거뒀다. 이때 등원한 초선 의원 108명은 선배 의원들을 향해 “물어뜯겠다”고 할 만큼 막무가내였다. 이 총선에서 비례대표 홀수번호를 여성에게 부여하는 할당제가 처음 실시됐다. 이로 인해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 수가 크게 늘었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공짜 지갑’을 주운 열린우리당 의원을 흔히 ‘탄돌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탄순이’도 많았다.
이들 열린우리당 여성 의원이 당시 최대 계파인 친노계 성향임은 불문가지. 이들은 기세등등하게 열린우리당을 ‘페미니즘 정당’으로 만들었다. 열린우리당은 당시 ‘4대 개혁입법’이라고 칭한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법’ ‘언론관련법’을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반면 여성 의원들의 주도로 성매매특별법과 호주제 폐지 같은 여성계 숙원사업은 관철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친노 강성 여성 의원’ 전통이 열린우리당과 이를 계승한 현재의 새정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이 계파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가설은, 7·30 재·보선의 권은희 공천을 통해서도 지지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내부 폭로자에게 금배지를 주면 대외적으로 폭로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사후 대가성 의혹이 제기될 게 뻔했다. 그래도 새정연은 공천을 강행했다. 내부의 논리나 계파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광주의 딸’ 권은희는 새정연의 텃밭인 광주에서 당선됐지만 당은 공천을 둘러싼 내홍에 휩싸였고 결국 재·보선에서 대패했다.
여성성의 가치
막스 베버는 ‘정치를 위해 사는 정치인’과 ‘정치에 의해 사는 정치인’을 구분한다. 소신대로 정치하려면 정치를 때려치우더라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반대의 상황이면 대외적으로 어떤 명분을 표방하건 공천권자인 주류의 눈치를 봐야 하고 거기에 예속된다. 주류가 강경파면 자신도 계속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임계치를 넘으면 유권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이다. 새정연 여성 의원들이 여성성의 가치를 정치에 접목한다면 새정연에도, 우리 정치에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자신들도 정치판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