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지방이 하부기관? 신권위주의 반드시 깬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맡은 조충훈 전남 순천시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11-20 16: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지방-중앙 간 국가개조 위한 ‘경주 선언문’ 채택
    • 2016년 총선은 지방자치 바로 세울 골든타임
    •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는 ‘풀뿌리 지방자치’ 걸림돌
    • ‘재정’ ‘행정’ ‘정치’의 지방분권, 국가 어젠다로
    “지방이 하부기관? 신권위주의 반드시 깬다”
    조충훈(61) 전남 순천시장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8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민선 6기 제1차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이하 협의회) 공동회장단 회의에서 협의회 대표회장으로 선임된 조 시장은 민선 3·5기 순천시장을 지냈고, 올해 6·4지방선거에서 6기 시장에 또다시 당선됐다. 전남권 기초자치단체장 중에서 협의회 대표회장이 나온 건 처음. 이를 두고 국내 최초의 국제정원축제인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부쩍 높아진 순천시 위상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조 시장은 11월 6~7일 경북 경주에서 개최된 민선 6기 1차년도 협의회 전국총회에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예산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되면서 지자체 재정구조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더 이상 부담할 수 없다”며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른바 ‘복지 디폴트(지급불능)’ 문제가 핫이슈로 떠오른 것. 그러나 노인 기초연금과 0~5세 영유아 무상보육은 지방의 열악한 현실을 대변하는 단면일 뿐이다. 그 이면엔 1995년 민선자치제 도입 이후 20년째인 지금까지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중앙집권적 사고와 행태의 반복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시장이 ‘직격탄’을 날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9월 3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226명의 공동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협의 없이 지자체에 과중한 복지비용을 전가한다며 강력히 성토한 바 있다. 이어 9월 29일 순천만국제습지센터에서 연 민선 6기 1차년도 제2차 협의회 공동회장단 회의, 10월 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역언론인클럽과 가진 지방자치 발전 방향에 대한 간담회 등 광폭 행보를 통해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외쳐왔다. 그런 그를 대표회장 취임 90일을 맞은 11월 10일, 순천시청에서 만났다.

    ▼ 협의회 전국총회는 지방의 공동 현안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기초단체장들 분위기는 어땠나.

    “지방이 하부기관? 신권위주의 반드시 깬다”
    “중앙정부에 대한 서운함으로 격앙됐다. 다들 소명의식을 갖고 책임행정을 펼치는데도 지금과 같은 신권위주의 상황에선 지방 발전을 책임져야 할 시장·군수·구청장이 국회와 중앙정부가 만든 법령의 범위 내에서 만들어진 지침을 그저 집행하는 하부기관에 불과하다고 자조하며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려면 지방-중앙 간 재정·행정·정치 3개 부문에서 국가개조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해 ‘경주 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의 골자는 지방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해선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게 헌법적 권위를 부여하고 실질적인 행정 및 재정 권한을 달라는 것이다. 앞으로 선언문 내용을 하나씩 실천함으로써 명실 공히 민선 시대에 걸맞은 기초단체 위상을 재정립하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지역주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2016년 총선 때까지가 지방자치를 바로 세울 골든타임이라 생각한다. 기초단체 처지를 누누이 밝혀도 중앙정부가 외면하니 이젠 지방자치를 공약하지 않는 국회의원 후보는 뽑지 말자고 국민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경주 선언문은 입법권의 합리적 분점(分占), 생활경찰권, 국가사무 비용 전액 국비 부담, 지방소비세 확대, 광역-기초단체 간 세목 조정, 지방교육재정 연계·통합, 자치조직권 보장, 차등분권제도 실시, 기관 구성의 다양화 등의 내용을 담았다. 특히 개헌이 논의될 경우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배제, 국가사무 국비 의무부담, 지방정부 형태·조직, 중앙-지방 협력회의 설치 등을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쓸 돈 줄고 쓸 곳 늘어 파산 위기

    ▼ 9월 3일에도 과중한 복지비 부담으로 지방정부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며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을 촉구했는데.

    “날로 심각해지는 지방재정 고갈 상황을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정부에 처음으로 ‘호소’한 것이다. 주된 배경은 ‘복지=국가사무’라는 데 있다. 특히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은 국민 최저생활보장을 위한 보편적 복지다. 따라서 그 비용은 100%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럼에도 중앙정부 예산이 부족해 결국 지방정부도 분담해야 한다면, 그걸 어떻게 할지 사전에 지자체와 협의했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논의의 장(場)은 없었고 일방적 지시 하달만 있었다.

    복지 확대에 대해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지자체도 주민 행복과 안전을 위해 일반 복지업무는 물론 주민편의시설 확충 등 ‘창조복지’까지 기꺼이 추진하고 싶다. 하지만 이젠 그럴 여력이 없다. 그래서 국가가 부담할 복지비용을 지자체가 이대로 계속 부담하다간 복지 디폴트가 불가피하다는 엄중한 현실을 알리려 했다. 12월엔 서울의 몇몇 자치구가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 것이니, 이런 현실을 중앙정부가 알고 관련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한 거다.

    협의회의 바람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비정상적 재정구조를 명확히 파악하고 국가적 복지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기초연금 전액을 국비 지원하거나 평균 국고보조율을 90%(현행 74%) 이상으로 높이고, 영유아 보육사업 국고보조율도 5% 추가 인상해 서울 40%(현행 35%), 지방 70%(현행 65%)까지 올려달라는 것이다. 지방소비세율도 현행 11%에서 16%로 즉시 인상하고 단계적으론 20%까지 확대하라는 거다. 취약한 지방재정을 확충하려면 그렇게 지방재정 구조부터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자치가 발전한다.”

    “장관이 업무 파악도 못하나…”

    ▼ ‘호소’와 ‘주장’에 대한 중앙정부 반응은.

    “9월 3일 호소문 발표에 대해 30분 만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이 브리핑으로 즉시 화답한 것엔 감사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한심스러웠다. 지난해 말의 지방소비세율 인상, 보육료 및 양육수당의 국고보조율 인상 등으로 지방재정 여력이 호전됐으므로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관련 지급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세출 구조조정, 광역시·도의 조정교부금 조기 지원 등 재원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했는데, 그런 주문은 안일한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소비세율을 기존 5%에서 6%포인트 더 올려준 것으로 지방에 줄 건 다 줬다고 한다. 그런데 지방소비세율 인상은 국가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방세인 취득세를 영구 인하한 데 따라 지방세가 줄어드니 그걸 보전하는 차원에서 시행한 것이다. 즉 복지비 부담이 늘었다고 지방소비세율을 올려준 게 아니다. 그런데도 그걸 복지에 사용하라는 게 말이 되나. 장관들이 그렇게 업무 파악도 못하나. 한 술 더 떠, 중앙정부가 단계적으로 지방교부세 비율을 높이고 그만큼 무상보육 지원도 늘리고 있으니 지방정부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는 것 아닌가, 호화 청사 등 방만한 재정 운용 실태를 조사하겠다고도 했다. 지자체가 허튼 데 돈 쓰면서 떼쓴다고 보는 거다. 그러한 신권위주의 틀을 깨야 한다.”

    ▼ 일부 지자체가 호화 청사를 짓는 등 낭비성 예산을 집행하고, 각종 전시성 사업으로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 여론이 있는 건 사실 아닌가.

    “과거 몇몇 지자체가 그런 질타를 받았다. 그 돈을 복지 쪽에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왔다.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현재 226개 시·군·구 중 호화 청사라 할 수 있는 곳은 10%도 안 될 거다. 예전 일부 수도권 도시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개발 붐이 한창일 때 지방 세수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자 정신없는 지자체장 몇몇이 ‘우리도 이 기회에 집(청사) 크게 짓자’며 오판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방만한 재정 운용 또한 민선자치제 시행 초기 일부 지자체장이 낭비성 축제를 연다거나 무리하게 전시성 공약사업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선 6기 현재 방만한 재정 운용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랬다간 시민 질책이 쇄도하고 당장 자신의 정치생활이 막말로 ‘훅’간다. 요즘은 지자체장이 저마다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알뜰한 경영을 하려고 노력한다.”

    순천시 장명로에 자리한 순천시 청사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40년도 더 된 나지막하고 자그마한 건물 몇 동이 드문드문 이어져 시쳇말로 좀 ‘없어’ 보인다.

    ▼ 기초연금·무상보육 시행으로 복지비 부담이 얼마나 늘었나.

    “국가 전체 사회복지비용이 2008년 22조 원이었는데, 올해는 40조 원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복지정책 확대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지방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이 5.2%에 불과한데, 복지예산 증가율은 12.6%다. 7월부터 시행된 기초연금으로 올해 반년 동안 7000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고, 내년부터는 연간 1조5000억 원을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무상보육 전면 확대로 올해 지자체가 부담하는 보육비도 2조4000억 원이나 된다. 순천시만 해도 2012년 185억 원이던 복지비가 올해 247억 원으로 33.5% 늘었다. 그나마 시·군 사정은 좀 낫다. 특별시·광역시의 상당수 자치구에선 노인이나 영유아 복지 수요가 집중돼 복지비 부담이 총 예산의 50%를 넘을 정도다. 광주 북구는 내년도 총 예산의 71%를 복지비가 차지해 직원들 봉급조차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기초단체는 ‘택배회사’

    ▼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협의 없이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을 결정, 시행했다고 하는데, 과거 중앙정부의 정책 시행과 관련해 양자가 협의한 전례가 있나.

    “없다. 그래서 문제다. 대통령 공약사업이고 전국적으로 파급효과가 큰 국가사업이면, 중앙정부가 지방과 협의해 상호 이해와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함에도 일방통행적 제도 시행으로 지방에 복지재원 부담을 강제해 재정이 압박을 받게 했다. 이를 해소한답시고 중앙이 지방의 세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건 중앙의 무분별한 포퓰리즘적 복지확대 정책을 지방에 강요하는 것이다. 지방도 중앙 못지않게 나라와 국민의 번영과 안녕을 바란다. 그러니 주요 정책을 시행할 땐 더욱 지방과 중앙이 서로 예측 가능하게끔 협의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 시절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보편적 복지 같은 포괄적 의미의 국가사업은 국가가 다 보전한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아직도 관선시대처럼 공문만 보내 이러저러한 걸 시행할 테니 대상자를 선정해 돈을 지급하라고 지시만 한다. 근데 그 업무는 누가 하나. 지자체가 월급 주는 공무원들이 한다. 그러니 지자체는 택배회사다. 택배 물량을 잔뜩 늘려놓고 택배비는 더 못 줄망정 되레 물건값까지 얹어주라는 격이다.

    “지방이 하부기관? 신권위주의 반드시 깬다”

    11월 6일 경주에서 열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총회.



    지방 재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과 시행에선 반드시 지방-중앙 간 협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법적 장치로서 지방 4대 협의체(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구·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참여하는 ‘중앙-지방 간 협력회의’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복지비 해결 등 지방자치 발전 방안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중앙-지방 간 협의에 의해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이 이양되는 경우엔 그에 상응하는 재정 이양도 반드시 수반되도록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

    ▼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중앙정부에 바라는 대책은.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 비과세 감면정책, 취득세 영구인하 등으로 지방 세입 여건은 악화일로에 있다. 그런데도 민선자치제 도입 후 20년째인 지금도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은 8대 2로 고착됐다. 오랜 사회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유지되는 지자체 수입원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다.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을 6대 4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지방재정구조부터 개혁해야 한다.

    지자체 재정자립도를 보자. 시의 경우 2005년 40.6%이던 게 올해 31.4%로 내려섰고, 군은 16.5%에서 11.4%로, 자치구는 44.3%에서 27.2%로 곤두박질쳤다. 226개 시·군·구 중 125개(54.4%)가 지방세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중앙정부와 정치권에선 표를 의식한 선심성 복지확대 정책을 남발하고, 정작 지자체장들이 지방분권을 얘기하면 어린애 떼쓰는 것쯤으로 치부한다. 중앙 관료들의 마인드는 아직도 중앙집권적이다. 지방자치를 국가발전의 한 축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국가 어젠다에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내용이 없는 거다.”

    가뜩이나 까랑까랑한 조 시장의 목소리가 자꾸 커진다. 표정에도 답답한 속내가 확 묻어난다. 어쩌면 그에게 한국 지방자치 현실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무대인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날이면 날마다 안개가 자욱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담뱃값 인상에 끼어드는 세력

    ▼ 담뱃값 인상 추진은 어떻게 보나.

    “2000원이 오르면 담배소비세가 861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세인 개별소비세가 신설돼 끼어들고, 광역단체도 소방목적세(개별소비세를 소방목적세로 전환)로 끼어든다. 광역단체의 소방목적세 신설은 그들의 고유 사무에 대한 재원 부담을 기초단체에 떠넘기는 것으로, 국세인 개별소비세 신설과 다름없는 행태다. 담뱃세는 기본적으로 시·군의 고유세다. 그런데 2000원 올리자면서 중앙정부와 광역단체가 함께 그 일부를 슬며시 뽑아먹으려고 한다. 2000원 올려도 금연인구가 늘고 담배 소비가 줄면 실질적인 세수증대 효과가 크지 않을 텐데도.

    이게 우리 지방자치의 현주소다. 비록 중앙정부가 남북관계, 세월호 참사, 정부개혁 등 산적한 과제를 안고는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가 경영의 중요한 한 축인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지방과 협의해야 한다. 요즘 개헌을 해야 하느니 마느니 말이 많은데, 추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지방자치 분야를 소홀히 한다면 지방자치가 무너지는 재앙이 올 것이라고 본다. 다행히 이번 총회 때 박 대통령이 서면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냈는데, 눈물나게 고맙더라. 지방자치 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뜻도 기초단체장들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기초선거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어떤가.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다. 정당 공천을 매개로 중앙정치가 지방을 지배하고, 현재의 지역할거 구도하에서 정당 기호를 통해 주민 의사를 왜곡한다. 일각에선 공천에 따른 각종 비리와 잡음, 고비용 선거구조가 여전히 지방 행정의 발목을 잡는다. 기초선거에 대한 정당의 관여는 지방의 문제를 지방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전국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게 한다. 이러니 지방자치 위기론까지 대두된다.

    나는 무소속이다. 그래서 편하다. 협의회 대표회장 활동에서도 운신의 폭이 넓다. 정책적 판단을 할 때 정치권 눈치 안 봐도 된다. 단, 시민 눈치는 본다. ‘풀뿌리 지방자치’가 정착되려면 지방이 중앙정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를 위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 협의회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민의 높은 찬성여론에 호응해 국회의원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6건이나 발의했고,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자들이 ‘정당공천 폐지 공약’으로 국민과 약속하지 않았나.”

    “지방이 하부기관? 신권위주의 반드시 깬다”

    생태수도 순천의 비전을 설명하는 조충훈 시장.



    ▼ 협의회 대표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복지 디폴트보다 더 큰 문제는 지방자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다. 향후 협의회 활동은 경주 선언문 내용을 중심으로 한 대(對)정부 대응이다. 단기적으론 9월 3일의 호소문에 대한 후속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다. 지방세 및 담뱃값 인상에 따른 지방세 확충 대응, 중앙정부의 규제개혁 방안과 관련해 지자체가 임의로 규제를 철폐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상위법 규정의 개정 등을 건의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론 정당공천제 폐지 대선공약의 이행, 현재 논의되는 자치단체 긴급재정관리(파산)제도에 대한 대응, 지방분권형 개헌 등을 계획한다. 긴급재정관리제도가 참 웃기는 건데, 제도 도입 이전에 지방 자주재원 확충과 지자체 복지비 분담 원칙 등 전제조건이 선결되지 않으면 지방자치권을 심각히 제약하게 된다. 때문에 정치적 악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디폴트 지정권을 광역단체가 아닌 중앙정부가 행사해야 한다.”

    ‘제1호 국가정원’ 희망

    ▼ 진정한 지방자치란 어떤 것일까.

    “어디까지나 지역 고유의 장점을 살리고 각각의 특성에 맞게 지역민과 함께하는 행정을 펼치는 것이다. 중앙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정책에 휘둘려선 안 된다. 예컨대 순천에선 경제도 복지도 순천답게 해야 한다. 그런데 순천만정원이 생겨도 전담할 과(課) 하나 신설할 행정적 권한조차 없다. 안전행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명색이 내가 시장인 관할지역에서도 이런데 지방재정의 경우는 오죽하겠나.”

    ▼ 시장으로서 지자체 경영에 방점을 찍은 부분은.

    “‘시대정신’이라고 하질 않나. 20세기는 산업화 시대였지만, 21세기는 삶의 질이 중시되는 시대다. 순천은 자연과 생태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정원박람회를 열었고 164억 원의 현금 수익을 올렸다. 단순한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사후관리까지 제대로 함으로써 순천만정원이 대한민국 정원 문화의 발상지가 되게끔 했다. 아울러 정원 산업이라는 새 블루오션을 창출해 지역 및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인구 28만 명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정원박람회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전남대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도시마케팅 성과 도시발전계획’에 따르면, 관람객 440만 명을 유치해 1조3887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 1997억 원의 소득유발 효과, 5720억 원의 부가가치 효과, 1만3054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창출했다.

    ▼ ‘정원의 도시 순천 마스터플랜’도 마련한다던데.

    “거의 마무리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정원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새로운 문화다. 많고 많은 법률 중 ‘정원’이란 단어가 들어간 법률 하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관련법이 바뀐다. 거기에 국가정원 지정 내용이 들어간다. 생태정원인 순천만정원을 새롭게 정비해 4월 20일 개장했는데, 조만간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받아 대한민국 대표 정원으로 발돋움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당적(黨籍)은 ‘순천’?

    ▼ 조 시장에게 순천은 나고 자란 고향 이상의 ‘그 무엇’인가.

    “생활의 전부다. 누구나 부모에 의해 고향이 결정되지만, 난 순천에서 개인사업과 청년운동을 했고, 시장까지 하고 있으니 단순히 고향을 넘어 인생의 모든 것 아니겠나.”

    사실 ‘지방자치’라는 진중한 주제를 들고 ‘대한민국 생태수도’를 자처하는 순천을 찾고 싶진 않았다. 갈대 무수히 일렁이는 순천만과 그곳의 상징인 흑두루미를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쫓기는 마감 일정은 서둘러 서울행을 택하게 했다.

    ‘도시가 아닙니다. 정원입니다! 순천!’ 인터뷰를 마치고 순천시 청사를 나서는데, 순천의 100년 비전 슬로건이 눈길을 잡아챈다. 문득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친다. 어쩌면 무소속인 조 시장의 진짜 당적(黨籍)은 ‘순천’이 아닐까, 협의회 대표회장으로서 그의 당적 또한 ‘풀뿌리’가 아닐까 하는.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