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중피종은 폐를 둘러싼 흉막이나 내장을 감싼 복막에 생기는 암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유일한 원인은 석면 노출이다. 석면은 내화(耐火)재, 단열재, 건축자재 등으로 20세기 초부터 널리 사용됐다. 석면의 미세먼지를 계속 들이마실 경우 10~50년 뒤 악성중피종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1960년대에 밝혀냈다.
20대 때부터 줄곧 배우 활동을 해온 스티브 매퀸이 건축업 종사자 등이 주로 걸리는 석면암에 걸린 데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매퀸은 10대 후반 해병대에 들어가 몇 년간 군함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 그는 이때 뜨거운 난방 배관을 감싼 석면포를 비롯해 석면이 곳곳에 노출된 기관실에서 근무했다.
매퀸은 스피드광이었다. 주변에서 프로 카레이서가 되라고 권유할 정도로 그의 자동차 운전 실력은 뛰어났다. 1960~70년대 카레이서들은 경주 도중 충돌 등으로 차량에 화재가 생겨 몸에 불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해 석면복을 입었다. 국제자동차경주대회에 자주 참가한 매퀸도 당연히 석면복을 입었다.
매퀸은 출연한 영화에서 죽음 대부분 앞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는, 강인한 역을 멋지게 소화해낸 인물이다. 사실 어렵게 살아온 그의 삶 자체가 불굴의 인간 승리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석면 앞에서는 한낱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10월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석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미국에서는 학교 석면 문제 때문에 석면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미국은 학교 등 공공건물을 비롯한 대형 건물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내화재로 석면 건축자재, 즉 석면 천장재나 벽재를 다량 사용했다. 이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낡고 훼손돼 석면 면지가 실내 공기 중에 날릴 위험성이 커지자 1980년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미국 사회는 1986년 석면위험긴급대응법(Asbestos Hazard Emergency Response Act·AHERA)을 만들어 학교 석면 조사와 해체·제거, 그리고 이를 위한 각종 규제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교 석면에 대한 안전관리는 아직 초보 수준이다. 교육부와 각 지방교육청, 그리고 일선 학교장과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한다. 관련 예산도 무상급식 등 다른 곳에 집중하느라 학교 석면 문제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다. 따라서 교육 행정 당국과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바로 알고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
먼저 학부모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석면이 있는지, 있으면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현재 학교 석면 관리를 보면 2012년 4월부터 시행한 석면안전관리법에 따라 모든 학교는 2015년 4월까지 석면 조사를 끝내도록 돼 있다. 2000년 이전에 지은 학교에 대해서는 올해 4월 이미 석면 조사가 끝났다. 따라서 어느 학부모든 관심만 있으면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석면 조사를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석면 조사 결과 석면 자재 훼손 상태 등에 따라 석면 위해등급을 높음, 중간, 낮음 3단계로 나누도록 돼 있다. 1등급인 높음은 당장 석면자재를 해체·제거해야 하고, 중간은 석면 자재가 일부 깨지거나 구멍이 나는 등 훼손된 상태로 석면 먼지가 공기 중으로 날리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정부가 제때 관련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선 교육청과 학교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학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천장 또는 화장실 벽, 그리고 일부 학교의 경우 슬레이트 지붕 등의 석면 자재를 학생들이 함부로 훼손하지 않도록 평소 잘 교육하고 관리해야 한다. 청소년기는 혈기왕성한 시기여서 공 따위를 차고 집어던지거나 발로 벽을 차는 등 석면을 훼손하거나 훼손된 석면을 건드려 석면가루가 공기 중에 날리게 하는,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
석면이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에서 문제를 일으킬 위험성은 낮은 편이지만 학교와 학원, 어린이집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학교는 현재 석면 관련법상 안전관리 대상이지만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과 어린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놀이방 등은 대부분 일반 상가건물에 있거나 소규모여서 석면 안전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
실제로 시민단체인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가 3년 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내 유명 학원이 밀집한 상가 건물들을 조사한 결과 천장 텍스 등 석면을 사용한 곳이 많았으며, 이곳 중 상당수가 석면 자재가 깨지고 구멍이 나 있는데도 몇 년째 계속 방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곳에서 만약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냉난방 공사나 조명공사, 고속망 설치, 건물 리모델링, 개보수를 위해 석면제품을 자르거나 구멍을 낼 경우 실내는 석면 먼지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잘 모르는 수강생들은 매일 죽음의 석면가루를 들이마시게 된다.
두 눈 부릅뜨고 석면을 대하지 않으면 석면은 ‘침묵의 살인자’가 돼 당신과 자녀들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당장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