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라이프 노 리미츠 外

  • 담당·최호열 기자

    입력2014-11-19 14: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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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라이프 노 리미츠

    김명준 지음, 동아일보사, 288쪽, 1만4800원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약속은 지켜야 했다. 2년 전 일이다. 내가 칠순이 되는 해였고 자식들이 책을 출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니까 칠순 잔치를 책 출판으로 대신해주겠다는 말이었다. 명분도 뚜렷했다. 나는 큰아이가 네 살, 둘째가 두 살일 때인 197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딸 하나와 아들을 더 낳았기에 아이들은 한국말이 서툴다.

    별난 아버지의 별났던 도전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버지의 성장과정은 어떠했는지 자신들도 궁금하고 사위들도 궁금해한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아이들, 그러니까 내 손자들에게도 할아버지가 이런 사람이란 걸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 기특한 제안이라면 나뿐 아니라 한국의 할아버지들은 물러설 곳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덜렁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산을 오르는 것보다 글 쓰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한발 한발 산 오르듯 한자 한자 써가기 시작했다.



    쓰기 시작한 지 2년째 됐을 때 겨우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인생 2막을 고산 등반으로 시작한 별난 성과에 주위의 격려가 큰 힘이 돼준 건 사실이다. 글을 다듬던 중 지인이 신동아 논픽션에 응모해보라고 부추겼다. 일부를 다듬어 ‘나의 에베레스트’라는 제목으로 응모했고 그것이 우수작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고맙게도 동아일보사에서 내 원고를 추가해 이 책을 발간해줬다. 많은 산악계 선후배와 동문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속담대로 정말 기쁘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 이제 가만히 나의 책을 쓰다듬어본다. 7대륙 최고봉 최고령 등정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때도 사실 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한 일이었다.

    대개가 그러하듯 나이 50대에 들어서자 삶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접어든 듯한 공허감이 밀려왔다. 세상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같고, 이제 늙어갈 일만 남은 것 같은 상실감에 싸여 있을 때 고산 등반은 내게 구원과 같은 영감을 주었다. 꿈이 생긴 것이다. 고산 등반의 꿈은 내리막길에 접어든 나를 다시 오르막길로 인도했다.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든 고산 등반에서 더러 마주했던 죽음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던 몰입과 남·북극을 포함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그 여정에서 내가 만난 건 젊은 시절보다 더 푸른 청춘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등반기라기보다는 인생 후반기를 더 푸르게 살기 위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자 한 올드보이의 탐험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저 열심히 오르고 뛰었을 뿐인데 세상이 보내준 격려는 내 인생에 큰 힘이 돼줬다. “나는 아직도 실패할 수 있는 꿈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표지 문구가 나에게 또 하나의 좌표가 될 것이다. 이제 나의 꿈은 세계 50개 독립봉을 모두 오르는 것이다. 만나야 할 새로운 세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김명준 | 전 새한은행 이사장 |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 유선경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인생의 어느 순간에 누구나 간절히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 속 코너인 ‘그가 말했다’는 이렇게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에 대한 말 한마디라는 콘셉트로 오랫동안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조지 버나드 쇼, 칼릴 지브란, 니체와 같은 명사들의 말 한마디뿐 아니라 고은 시인의 시, 뮤지컬 ‘헤드윅’, 영화 ‘시네마 천국’과 같은 작품 속 한마디까지 방송작가 유선경은 이들의 말을 모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말, 어감이 예쁜 말만 풀어놓지 않는다. 실패는 실패대로 상처는 상처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방송에서 다하지 못한 내용과 명화를 덧붙여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극대화했다. 동아일보사, 320쪽, 1만2800원

    왕경 | 손정미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삼국 중 가장 소국이었던 신라가 어떻게 중국과 겨루던 고구려와 백제를 이기고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비결이 공동체의 목표,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기심을 누르고 공동체의 목표와 조화를 이룬 데 있었다고 설정하고 소설로 그려냈다. 또한 우리가 뿌리로 생각하는 단군조선이란 무엇이며, 신라 화랑의 영적 무사적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있다. 삼국통일 직전 왕경(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옛말)에서 삼국의 젊은이 세 사람이 운명처럼 만난다. 계림(신라)의 화랑인 김유와 신분을 숨긴 채 왕경에서 장사를 하는 백제 소녀 정, 고구려 귀족 출신이지만 전장에서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노비가 된 진수. 김유는 당나라 황제를 호위하는 숙위로 뽑혀 견당사로 떠난다. 정과 진수도 그 길에 동행하는데…. 샘터, 324쪽, 1만4000원

    호모도미난스 | 장강명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남의 정신을 조종할 능력이 있는 인간종 ‘호모도미난스’가 있다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조종 능력을 가진 여주인공 ‘천슈란’이 여죄수에게 스스로 눈알을 뽑게 하고 다른 죄수의 아들을 목 졸라 죽이도록 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스로를 중국 신화 속 ‘흰원숭이’라 부르는 호모도미난스들은 힘의 위험성을 경계해 힘을 억누르려 하거나 사회에 기여하는 데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는 등 서로 입장이 달라 자신들끼리도 대결한다. 작가는 각 인물을 통해 압도적인 힘과 권력을 가졌을 때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는지 여러 유형으로 보여준다. 액션영화 같은 서사, 복수와 상실, 권력과 이상사회의 모습 등이 밀도 있게 펼쳐진다. 소설의 넓은 무대도 이채롭다. 이야기와 인물은 중국과 라오스, 일본, 한국을 종횡무진 오간다. 은행나무, 340쪽, 1만3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전원책의 신군주론

    전원책 지음, 중앙북스, 416쪽, 1만8500원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오랫동안 정치를 비평하면서 내린 결론은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역대 문민정부는 전부 실패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하는 고민으로 이 책을 썼다. 그러니까 내가 목격한 ‘정치에 대한 몇 가지의 진실’을 적은 것이다. 그 진실은 정치학 교과서에는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자신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투표소에서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뿐이다. 우리는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정치를 감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맹신이다. 강단에서 논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우리는 기껏 정당의 보스가 자의적으로 제시한 후보에게 투표할 뿐이다. 우리 대표들은 절대 우리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달 외엔 어떤 관심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 민주주의는 허구다.

    우리 정치는 왜 여전히 삼류인가. 잘못된 정치가 판치고 민주주의가 왜곡되면 국가는 타락한다. 패거리 정치가 가장 큰 이유다. 민주적 기본 질서 중 하나인 복수정당제도는 ‘이념과 정책으로 뭉친 정당’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 정당은 하나같이 보스 중심으로 뭉쳤다. 말하자면 조직폭력배 조직과 흡사한 구조다. 이러니 여야가 보수 진보로 나뉘어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새누리당은 보수주의적 정책을 내놓지 않으며 야당 또한 진보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러니 이념에 기반을 둔 정책으로 토론할 일이 없다. 정략적 대결만 있을 뿐이다.

    우리 정치판이 이념 경쟁을 시작한 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다. 그 뒤에도 대충 한나라당 계보를 보수 우파로, 민주당 계보를 진보 좌파로 여겼다. 터무니없는 분류다. 건국 이후 여든 야든 이념에 기반을 둔 정당은 없었다. 민주공화당과 대척점에 있었던 신민당도 ‘보수 야당’이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에서 갈라서면서 ‘진보’를 외쳤지만 그들이 실패한 것도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념의 대중화를 이루지 못했다. 정치인부터 이념을 모르니 중도를 외치고, 정책을 모르니 모든 걸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해괴한 말을 습관처럼 늘어놓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논의가 우리 정치판의 수준을 올리는 데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비평 수준이 올라야 정치 수준이 오른다. 지난 대선 때 어느 평론가도 후보의 정책과 이념을 평가하지 않았다. 후보단일화니 연대니 하는 정치공학적 예측만 흘러넘쳤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가 다 보편적 복지를 수용했는데도 다들 보수, 진보의 대결로 평가했다. 더 큰 문제는 어느 언론도 후보들의 정책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민주주의의 성숙을 방해한다.

    선한 정치를 하려면 정치를 감시하는 언론과 시민이 정확한 눈을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적 스타에 맹종하고 지역적 편 가르기에 휩쓸린다면 민주주의는 자라지 못한다.

    전원책 | 변호사 |

    에디톨로지 | 김정운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에디톨로지(editology)’는 영어사전에 등재된 단어가 아니다. ‘편집’이란 뜻의 에디트(edit)와 ‘학문’을 의미하는 접미사 올로지(-ology)를 합친 신조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편집학’ 정도에 해당한다. 문화심리학자인 저자는 ‘창조는 편집’이라고 단언한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적당히 편집하는 게 바로 창조의 지름길이라고 역설한다. 미래 한국을 이끌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아니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별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지식을 생산해내는 ‘편집력’이라고 강조한다. 편집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본 지식, 문화, 공간, 인간의 마음 등 다양한 사례를 속도감 있고 쉬운 문장으로 보여준다. 21세기북스, 388쪽, 1만8000원

    미래는 어떻게 변해가는가 | 박영숙, 숀 함슨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2014년 현재부터 2130년까지의 변화상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지구온난화와 석유 고갈, 우주 개발, 인류 수명 연장 등이 이뤄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책에 따르면 3년 뒤인 2017년 잃어버린 기억을 복구하는 뇌 임플란트 기술이 개발되며,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백신이 시판된다. 2020년에는 생각만으로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2060년엔 냉동인간을 살려내는 기술이 개발되고, 2065년에는 투명 옷이 등장할 것이라 말한다. 대표 저자인 박영숙 씨는 유엔 산하 글로벌 미래연구 싱크탱크인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한국지부 (사)유엔미래포럼 대표로 오랫동안 ‘유엔미래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예상되는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는 독자 몫이다. 교보문고, 344쪽, 1만6000원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 | 최태원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년간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지원하면서 겪은 일들을 소개했다. 사회적 기업이 필요한 이유와 현재 처한 상황, 지속가능한 사회문제 해결 방안으로서 사회적 기업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살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센티브 제도, 즉 SPC(Social Progress Credit)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여기서 더 나아가 이기적 동기에 기초를 둔 인센티브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타적인 사람들이 사회의 버팀목 구실을 할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을 배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있는 집, 232쪽, 1만 원

    번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마시멜로, 462쪽, 1만3800원

    라이프 노 리미츠 外
    번역 의뢰를 받은 직후 독일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전 세계에 있는 이 책의 번역자들을 독일로 초대해서 일주일가량 함께 지내며 저자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내용이었다. 항공권만 본인이 마련하면 숙식은 물론 공항 픽업까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 독일을 다녀온 직후였고 갈 상황이 안 되어서 참석할 수 없다는 답을 보냈다. 소설책에서 저자에게 물어볼 게 얼마나 많겠다고 독일로 부르는지 의아했다.

    번역을 시작하면서 먼저 오디오북을 들어봤다. 미리 들으면 읽는 것보다 이해가 빠르고 머릿속에 내용이 들어 있어서 번역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CD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우의 목소리는 생전의 히틀러 목소리 그대로였다. 현대 독일어가 아닌 그 당시 베를린 사투리까지 똑같이 구사해서 히틀러가 살아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독일이 발칵 뒤집힐 만했다. 거북해서 CD 대신 책을 펼쳤다. 저자가 전 세계의 번역자를 왜 불렀는지 이해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아 돌아온 히틀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정도를 상상했던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66년 만에 베를린에서 깨어난 히틀러는 현 시대를 완벽히 자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의 이데올로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그를 ‘히틀러를 연기하는 사람’ 쯤으로 생각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극단적인 히틀러 연기를 풍자로 받아들여서 그의 연설에 더 열광한다. 마침내 TV에도 출연하게 되고 일약 스타가 된 히틀러는 미디어란 도구가 선동에 얼마나 좋은 무기인지 깨닫게 되고 군중심리를 이용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려 하지만, 역으로 현대인은 나치를 비꼬는 정치 개그에 그를 이용하려 한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지 모를,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채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1년에 나타난 히틀러는 독일의 정치, 사회, 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려면 인종청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터키인과 유대인에 대한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풍자라는 이름에 가려진 그의 이야기를 듣자면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작가는 더도 덜도 아닌 완벽한 히틀러의 눈으로 써내려간다. 그러기에 이데올로기와 이념뿐 아니라 히틀러가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세상에 나와 느꼈을 감정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TV리모컨이 뭔지 몰라 이것저것 눌러보고 스스로 터득하는 모습이나 길거리에서 개의 배설물을 봉투에 넣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대목에선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다.

    히틀러의 관점으로 보는 정신세계와 나머지 사람들의 그것은 너무 다른데도 작가는 두 그룹을 엮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작가의 놀랄 만한 상상력에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독일인에겐 기막힌 블랙코미디이지만 다른 언어로는 ‘전혀’ 우습지 않을 수도 있는 벽을 넘어야 하는 숙제는 번역자의 몫이니 말이다.

    송경은 | 번역자 |

    동이 한국사 | 이기훈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명덕외고 중국어 교사인 저자는 중국 북경어언대학교에서 한자와 한국 문명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동북아 고대사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중국 정사인 24사의 동이전(東夷傳)을 번역하고 한국 측 사서와 비교해 한국 고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분석했다. 중원문명의 창시자인 동이(東夷)와 한국의 관계, 한반도 왜의 실체, 백제의 중원 점령 배경 등 한국 고대사의 많은 미스터리를 실증 자료와 논리를 토대로 명쾌하게 풀어냈다. 저자는 한국사를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심의 ‘국가사’가 아닌 한국인의 근간이자, 고대 중원문명의 창시국인 상나라(은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예족과 맥족이 만들어간 역사, 곧 ‘동이 역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새롭게 해석해냈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고대사를 만날 수 있다. 책미래, 432쪽, 1만8000원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 남정호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담았다. 반 총장이 서구 언론들의 편견과 공세를 어떻게 헤쳐나가며 유엔 조직에 안착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전한다. ‘기름장어(slippery eel)’란 별칭을 ‘테플론 외교관(Teflon Diplomat)’으로 바꿔 현지 기자들의 정서를 파고드는 등 영민한 대처가 눈길을 끈다. 외국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반 총장이 펼친 조용한 외교의 실상, 그리고 2011년 6월 연임하며 성공적인 안착에 이르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뉴욕특파원을 지낸 저자는 “미움보다 나쁜 게 무관심인데, 고군분투하는 반 총장의 활약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안타까웠다”며 “반 총장은 조용한 외교를 통해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그 뒤엔 원칙만은 지키는 단호함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김영사, 396쪽, 1만6000원

    슈퍼서바이버 | 데이비드 펠드먼·리 대니얼 크라비츠 지음, 이은경 옮김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좌절과 상처를 딛고 시련을 지렛대 삼아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세운 슈퍼서바이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시련에 맞서 행복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안내한다. 백혈병을 이겨내고 올림픽 금메달을 딴 수영 선수, 보트로 대서양을 횡단한 맹인,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인공 발을 달고 스턴트맨이 된 남자, 종족학살의 비극을 딛고 인권운동가가 된 여성, 자신의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함께 달려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말기 암 환자, 9·11 테러로 친구를 잃고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은 CEO 등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이런 사례와 함께 외상 후 성장에 관한 최신 연구 내용을 풍부하게 소개하며, 시련과 성장 사이의 놀라운 관계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 읽는 수요일, 240쪽, 1만30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동방명장 고선지(총 3권)

    김정호 지음, 미르, 각권 320쪽 내외, 각권 1만3000원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역사소설 3부작 ‘동방명장 고선지’는 한마디로 고선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작가 김정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생전에 고선지가 활약했던 중국 서부를 수년간 답사하면서 ‘구당서’와 ‘신당서’‘자치통감’‘책부원구’ 등 수백 편에 달하는 중국 사서(史書)와 참고자료를 토대로 150여 명의 역사 속 인물을 지면 위로 불러냈다. 고선지의 일대기는 이들과 함께 화려하게 펼쳐진다.

    고선지는 당나라(현종) 시기에 활약했던 맹장으로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과도 같은 존재다. 고구려 유민 출신이자 고구려 왕족의 후손인 그는 서역 원정에서 군사적 전략가로서 용맹함과 그 기개를 떨쳤을 뿐만 아니라, 서구 세계의 기술과 동서 문화교류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유명하다. 대당제국에서 최고위직까지 오르며 역사를 주름잡았던 그를 두고 영국의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은 ‘고선지 장군의 원정은 한니발과 나폴레옹의 업적을 뛰어넘었다’고 칭송했다.

    소설에서는 신동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갖춘 고선지의 소년 시절부터 장군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삶과 활약상을 보여준다. 또한 필자는 당시 주변국들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 당시의 외모, 풍습, 지리적 여건, 복장, 병기 등 다양한 자료를 책 속에 녹여 생생하게 표현하자니 마치 천산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고선지의 업적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6000m가 넘는 설산과 파미르를 넘어 원정에 나선 그는 4시간 만에 토번의 군사 요새인 연운보를 함락하고 동로마,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무려 72개국의 항복을 받아냈다. 탈라스 전쟁 당시 동맹군인 갈라록족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적의 5분의 1 병력으로 아랍 연합군으로 구성된 15만 대군을 압도했는가 하면, 안사지란 때 칼 한 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신병 5만을 거느리고 동관에서 안록산 최정예 선봉부대를 격파했다. 하지만 감군인 환관 변령성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생을 마쳐야 했다. 그는 후세에도 세계적인 명장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특히 당 현종 이융기, 양귀비, 고역사, 이임보, 안록산, 이백, 두보, 혜초 스님, 김교각 스님 등 인물들과의 관계를 생생하게 표현해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화제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방대한 스케일로 박진감 넘치는 전쟁 장면 역시 대형 스크린에서 보는 듯한 웅장함에 사로잡히게 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마무리하던 2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하고 말았다. 나는 남편(저자)이 생전 “몇 십억 원을 줘도 바꿀 수 없다”고 한 이 작품만큼은 꼭 출간하고 싶어 1인출판사를 차렸다.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고선지와 같은 인물을 되새기면서 불굴의 의지와 민족혼을 이어받아 그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남편의 바람이 이뤄지길 염원한다.

    김수안 | 도서출판 미르 대표 |

    의사들, 죽음을 말하다 | 김건열·정현채·유은실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존엄사에 관한 연구를 해온 원로 의학자 김건열 전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죽음학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유은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의 대담집. 우리 시대 진정한 웰다잉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수십 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간 된 도리이고,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이라면서 “하지만 현실에서는 허겁지겁 죽음을 당하고, 병원에서는 존엄을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을 맞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기 때문에 안타까웠다”고 술회했다. △연명치료와 완화의료, 안락사와 존엄사 등 의료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죽음 △근사체험 등 죽음의 순간 △의식의 체외이탈과 윤회 등 사후세계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의 삶의 변화 등이 담겨 있다. 북성재, 288쪽, 1만4500원

    왜 내 월급은 통장을 스쳐가는 걸까? | 이천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월급날의 기쁨도 잠시, 기다렸다는 듯 카드 결제 대금 등 각종 명목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그렇게 월급은 정거장 지나가듯 통장을 스쳐갈 뿐이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월급을 붙잡을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당신이 돈이 없는 이유는 마음 탓”이라고 말한다. 돈에 작동하는 심리를 알아야 잘못된 소비 행동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회사 앞 국수전골 가게에서 메뉴를 주문하면 종업원은 “만두 사리 추가할까요?”라고 묻는다. 그 말에 국수전골 속 만두를 떠올린다. 맛있는 상상은 주문 추가로 연결된다. 이처럼 저자는 ‘디드로 효과’ ‘닻 내리기 효과’‘마시멜로 효과’‘밴드왜건 효과’ 등 다양한 소비 심리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 것인지를 조언한다. 또한 연금, 저축, 펀드, 보험 등 금융상품의 기초를 설명하고, 각각의 투자 전략 및 활용법을 들려준다. 지식너머, 320쪽, 1만3500원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 김난희 지음

    라이프 노 리미츠 外
    라틴아메리카 하면 흔히 ‘불안한 치안’‘열정’‘음악과 춤’을 떠올린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는 그 넓은 대륙만큼이나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마야와 잉카 문명 등 고대 문명이 빛났던 땅이며 파블로 네루다와 이사벨 아옌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빅토르 하라,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시와 소설, 노래를 무기 삼아 영혼의 파괴에 맞선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또한 극지방부터 사막과 원시림까지 문명을 압도하는 대자연을 품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랜 식민 지배와 독재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다. 고단한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며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기보다는 가진 것을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이곳 사람들을 만나며 저자는 여행의 본질과 의의에 대해 되묻는다. 문학동네, 400쪽, 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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