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포 못 쏘는 군함, 잠수 못하는 잠수함 방산 비리에 무너지는 명품 무기 신화

구멍 뚫린 한국군 무기체계

  • 양욱 |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입력2014-11-20 10:4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강물에 침수된 K-21 장갑차
    • 복합적 문제덩어리 K11 복합소총
    • 국산화가 능사는 아니다
    • 청렴성과 전문성 조화만이 살길
    포 못 쏘는 군함, 잠수 못하는 잠수함 방산 비리에 무너지는 명품 무기 신화

    K11 복합소총은‘자석만 대도 발사되는 총’이라는 비난을 받았다(오른쪽). K-9 자주포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국민의 성원을 받았지만, 절반이 작전불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명품무기’라는 명성에 금이 갔다(아래 큰 사진).

    2008년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건군 60주년을 맞아 10대 명품무기를 선정했다. 제대로 된 전차가 한 대도 없어 6·25 전쟁 때 국토를 유린당한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적인 ‘명품무기’의 생산자가 됐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환호했다. 게다가 이런 명품무기들이 단지 국내에서 숫자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수출되어 외화벌이의 수단이 되고 ‘신성장동력’이 된다는 사실에 국민의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2008년 ADD가 선정했다는 명품무기를 보자. K-9 자주포를 비롯해, K-2 전차, K-21 장갑차, K11 복합소총 등 모두 최근 문제를 일으킨 무기다. K-9 자주포는 2010년 11월 26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배치된 6문 가운데 3문이 불발 또는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른바 명품무기라는 것이 실전에서 이토록 가동률이 낮을 수 있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K-9 자주포는 북한군에 비해 현저히 열세인 포병전력을 극복하려 개발한 자주포로, 최대 40km의 사정거리와 기동성을 자랑한다. 특히 견인포와는 달리 사격 후 곧바로 이동이 가능해 적의 반격에 당하지 않으면서 계속 포격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컴퓨터 사격통제장치나 GPS 관성항법장치 등으로 적의 좌표를 찾고 조준하느라 고생할 필요 없이 즉시 사격할 수 있다. 북한의 방사포나 장사정포 공격이 있으면 즉각 반격에 나서는 핵심 무기가 바로 K-9인 것이다.

    하지만 연평도 사태는 ‘서울 불바다’의 수단인 북한의 170mm 장사정포나 240mm 방사포에 대응하는 전력의 핵심 무기가 실전에서 전혀 위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명품무기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사라지게 됐다.

    도하 능력 자랑하다 침수



    K-9보다 먼저 문제가 된 명품무기체계가 있다. 바로 K-21 장갑차다. 장갑차는 전장의 택시인 병력수송차량과 실제 전투도 같이할 수 있는 보병전투차량으로 나뉜다. K-21은 대한민국 국군이 도입한 최신형 장갑차이자 최초의 보병전투차량이다.

    최초의 국산 주력 장갑차 K-200은 주된 무장이 12.7mm 기관총이라 실제 전투에 투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병력수송 장갑차 노릇을 했다. 그러나 K-21은 40mm 기관포를 장착해 적의 헬기에 대항하고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해 전차와도 교전하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제시했다. 1991년 걸프전에서도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가 이라크군 T-72 전차와 교전하면서 대전차 미사일로 격파한 사례가 있다. 무엇보다도 K-21은 공병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강을 건널 수 있는 자력 도하(渡河)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자랑할 만했다.

    그러나 K-21의 자랑거리이던 도하 능력은 최대의 약점이 되고야 말았다. 2010년 도하훈련 중 두 차례 침수 사고가 발생했으며, 특히 7월 침수 때는 부사관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사고가 발생한 시기는 전력화를 결정한 이후, 즉 이젠 실전배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양산을 시작한 이후라서 더욱 큰 문제가 됐다.

    방위사업청은 이듬해 부랴부랴 개선된 부력판과 파도막이 등 부품까지 언론에 공개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주장했다. 사고 이후 부품을 개선하고 총 4회에 걸친 입증시험 끝에 2011년 5월부터 전력화 일정을 재개했다는 것이다.

    포 못 쏘는 군함, 잠수 못하는 잠수함 방산 비리에 무너지는 명품 무기 신화

    K-21 장갑차는 침수 문제로 일선 부대에서 도하를 꺼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미군이 개발 중단한 무기

    그러나 최근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K-21 장갑차의 파도막이 가운데 51개가 파손됐다. K-21은 애초에 도하 능력을 중점에 두다보니, 중량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개발됐다. 결국 개선했다는 신형 파도막이도 무게를 줄이려 섬유복합 재료로 만들어 금속보다 충격에 약했다. 게다가 K-200 장갑차의 파도막이와는 달리 K-21은 파도막이가 하부에 고정돼 파손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K-21로 도하훈련을 하는 것을 일선 부대에서 꺼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게다가 이렇게 무리한 전력화로 엉터리 무기가 배치됐는데도 육군이든 방사청이든 어느 쪽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모든 군인의 기본 화기인 소총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세계 최초의 복합소총으로 2008년 공개한 K11 복합소총이 대표적이다. 개발사업을 주도한 ADD가 야심 차게 공개하면서 ‘IT와 소총의 만남’이니 ‘꿈의 소총’이니 하는 찬사가 신문과 방송에 넘쳐났다. K11 복합소총이란 쉽게 말해 미래형 스마트탄을 발사하는 유탄발사기와 우리 육군이 사용하는 K2 소총을 결합한 것이다. 즉 참호 뒤나 건물 안에 숨어 있는 적군은 공중에서 폭발하는 20mm 스마트탄을 발사해 제거하고, 노출된 적군은 5.56mm 소총탄으로 조준사격한다. 마치 영화 ‘에일리언 2’에 나오는 초특급 성능의 미래형 총기를 드디어 한국이 생산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복합소총을 개발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OICW(다목적 개인화기)라는 복합소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 이르러 미군은 XM29와 같은 총기를 내놓기도 했지만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을 중지했다. 미군은 소총과 공중폭발탄을 결합한 무거운 무기를 쓰는 대신, 공중폭발탄만을 떼어내 XM25 유탄발사기로 만들고 2010년부터 아프간 전선에 투입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방침과 반대방향으로 세계 최초의 복합소총을 실전배치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는 실전배치 이후였다. 2011년 10월 K11의 신관이 폭발해 사수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격발도 하지 않았는데 약실 안에서 공중폭발탄이 터진 것이다. 전자기파의 간섭에 의해 빚어진 이런 문제점은 신형 탄환을 생산함으로써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해 3월에도 K11 탄환이 약실 안에서 폭발해 대대장을 포함한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구형 탄환을 사용한 탓에 생긴 문제로 총기 자체의 결함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11 복합소총은 복합조준경을 포함해 무게가 K2소총의 2배(8㎏) 이상이라 휴대성이 떨어지는 데다 조준경 등의 고장이 잦고 개인이 수리하기가 불가능해 일선 부대에서 외면받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분대당 2정 보급을 목표로 전력화가 진행 중이다. 육군이 구상하는 미래 전장에서 분대 규모를 10명에서 8명으로 개편할 때 핵심적인 무기체계가 K11 복합소총이기 때문이다.

    힘 달리는 K-2 전차

    K11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이 K-2 전차다. K-1 전차의 후계 기종인 K-2 흑표전차는 차세대 주력 전차로 2003년부터 개발이 시작돼 2008년 종료됐다. 개발 완료 당시 K-2 전차는 세계 어떤 전차보다 높은 성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로 K-2는 서구의 최신예 전차인 르클레르(프랑스)나 레오파드2A6(독일) 또는 M1A2 에이브럼스(미국)에 비해 손색없는 3.5세대 전차로 개발됐다.

    하지만 막상 양산에 돌입하려 하자 파워팩이 발목을 잡았다. 파워팩이란 엔진과 변속기의 한 세트를 일컫는 말로 전차를 움직이게 하는 심장과 같은 존재다. 당시 방사청은 ‘개발 완료’라고 언론에 발표는 했지만 1500마력을 내는 K-2용 파워팩은 아직 국산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굳이 국산화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K-2 전차는 애초 국산 파워팩을 장착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산 파워팩을 장착한 K-2 전차가 2009년 멈춰 선 것을 계기로, 그 성능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자 개발 일정이 계속 늦춰졌다. 이에 따라 전차의 실전 배치가 요원해졌다. 즉 장착할 엔진이 없어서 전차가 생산되지 못했던 것이다. 군에서는 3차례나 배치 일정을 연기한 후 1차 생산분 100대는 독일산 파워팩을, 이후 생산분부터는 국산 파워팩을 적용하기로 하고 양산에 돌입했다. 지난 9월 6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산 K-2 파워팩이 드디어 개발, 완료됐다.

    포 못 쏘는 군함, 잠수 못하는 잠수함 방산 비리에 무너지는 명품 무기 신화

    K-2 전차는 국내 업체의 기술력을 감안하지 않고 1500마력 엔진을 국산화하려다 실패했다(왼쪽). 윤영하급 미사일고속함은 고속주행 시 똑바로 달리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최근 NLL 교전에서 주포와 기관포에서 모두 불발탄이 발생하면서 전투불능 상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성과물이었다. 군에서는 8초 안에 시속 32㎞ 속도를 내는 성능을 요구했는데, 국산 파워팩은 8.7초대를 기록했다. 0.7초 초과한 것이다. 그러자 개발업체는 요구 성능이 과도하다며 합참에 성능을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외제 파워팩을 장착한 초도분 100대는 빠른 기동이 가능하지만, 이후 생산되는 국산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국산을 도입하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진다. 일단 전차 가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엔진가격이 문제다. 외제 파워팩은 16억 원 정도지만 국산은 이보다 5억 원가량 싸다. 100대를 생산하면 500억 원의 예산이 절감된다. 운용상 정비나 수출의 경우를 생각해도 국산화가 유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성능이 떨어진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의 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사업에서 업체가 못한다고 떼를 쓰면 그대로 따라갈 수도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또한 국내 기술 수준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국산화를 시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가를 지키는 데보다는 해당 업체를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모순에 직면하게 됐다.

    해군 무기체계도 허점이 많다.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윤영하급 고속함부터 그렇다. 윤영하급은 제2차 연평해전의 전사자이자 영웅인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해군 수상함을 격파하기 위한 우리 해군의 차기 주력함정이다. 만재 570t급의 작은 군함이지만, 1000t급 이상에만 장착한다는 76mm 함포에 더해 근접전투용 40mm 기관포를 장착할 뿐만 아니라 국산 대함미사일인 해성까지 갖췄다. 게다가 윤영하급은 워터제트 추진 방식으로 최고 40노트의 빠른 속도로 기동할 수 있다. 북한 함정들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빠른 속도다.

    망신당한 윤영하급 고속함

    문제는 바로 그 추진 방식이었다. 2번함부터 몇 척이 똑바로 전진하지 않고 갈지(之)자로 주행했다. 문제의 원인은 제트 추진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 추진축에 마모가 생기는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윤영하급의 실전배치는 계속 지연됐다. 결국 실전배치 연기와 결함 탓에 척당 400억~500억 원으로 예상됐던 가격은 800억~900억 원으로 2배나 올랐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가격이 아니었다. 추진기 문제를 해결하고 실전배치된 함정이 지난 10월 서해 NLL(북방한계선) 교전에서 전투불능 상태가 됐다. 10월 7일 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을 격퇴하던 중 주포인 76mm는 14발 발사 후 불발탄이 걸렸고, 40mm 기관포도 29발을 쏜 후 같은 고장을 일으켰다. 주포와 부포 모두 사격이 불가능해지자, 참수리고속정 편대의 지원을 받았다. 76mm 포의 불발탄에 대한 조치는 5분, 40mm 포는 10분이 걸렸다. 북한 해군 경비정을 원거리에서 보다 손쉽게 제압하고 참수리 고속정을 보호하라고 만든 윤영하급이 함포탄이 발사되지 않아 되레 참수리급의 도움을 받게 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북한이 70여 척의 잠수함 전력을 갖추는 동안 우리는 1200t 장보고급 9척을 마련했고 추가로 1800t 손원일급(214급) 9척을 도입한다. 2020년대에는 3000t급 신형 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손원일급은 현재 우리 해군 잠수함의 주력이다. 손원일급은 최신예 공기불요시스템(AIP)을 장착해 최대 18일 동안 잠수가 가능한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AIP의 핵심인 연료전지가 해군이 인수하기 전에는 93차례, 인수한 후에는 102차례나 이상을 일으킨 것이다. 해군은 손원일급을 진수한 지 6년 만인 지난해, 연료전지의 냉각체계상 문제를 찾아내 올 상반기에 수리를 마쳤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간 신형 잠수함이 불완전한 상태로 작전에 임했다는 얘기다.

    한편 세월호 참사 때 출동하지 못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구조함 통영함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약 2억 원 가치의 구형 소나를 자그마치 41억 원에 구매해 장착했다. 애초 통영함이 멀티빔 소나를 장착해 넓은 지역을 수색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면 세월호 수색작업 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당자들의 대담한 비리로 실전에 투입할 수 없는 상태였고, 해군은 성능이 나오지 않은 이 함정의 인수를 거부했다.

    이처럼 새롭게 개발하는 무기마다 성능이 부실한 까닭이 뭘까. 먼저 전문성의 부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무기체계를 개발해 실전배치하기까지는 보통 10여 년의 시간이 걸린다. 매우 길어 보이지만 개발하는 쪽에서는 짧디짧은 시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인 군이 스스로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국내외 업체의 기술 수준이 그에 걸맞은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포 못 쏘는 군함, 잠수 못하는 잠수함 방산 비리에 무너지는 명품 무기 신화

    해군의 주력 잠수함인 손원일급은 핵심 장비인 연료전지가 100차례 넘게 고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뭐가 필요한지 정하는 소요제기 과정에서부터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전장에서 무기를 사용하는 실무자는 기술을 모르고, 기술을 아는 국방 관련 연구기관의 박사는 실무를 모르니 밑그림부터 삐걱댄다.

    힘들게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해도 일이 결코 쉽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에 걸맞은 기술 수준을 갖춘 국내외 제작업체를 찾아내야 하는데, 그 수가 결코 많지 않다. 일감이 많지 않은 탓이다. 특히 장기간의 개발 업무를 감당할 만한 규모와 예산을 갖춘 방산 대기업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최근에는 업체 간 상생을 강조하다보니 이런 방산 대기업조차 살아남기 위해 허덕이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런 기업을 감독해 일하게 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가 큰 문제다. 예전에는 이러한 감독 업무를 군인이 담당했다. 그러나 군에서 사업을 통제하다보니, 상명하복에 충실한 군의 특성상 이른바 ‘군피아(군대+마피아)’라고 하는 전현직 고위급 장교들이 하급자에게 비리를 지시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취약점이 있었다. 고위급 군피아의 방산 비리에 취약한 구조였던 셈이다. 1990년대 초 역대 최대 규모의 율곡사업 비리가 터진 배경에는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1993년 감사원은 118건의 방산사업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전직 군 고위급 인사 6명을 고발하고 현직 장성 8명을 포함한 53명의 징계를 요청했다. 이후에도 린다 김 사건 등 대형 방산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1일 방위사업청이 출범했다. 군의 통제를 받지 않는 외청을 만들어 민간인이 운용해야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가정이 출범 배경이었다. 기획재정부 산하 조달청은 일반 공무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사들이는 게 주 업무다. 국방 분야에서는 방사청이 그 임무를 맡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이 방위사업청의 인원 구성이었다. 처음 만들어지는 조직이다보니 전문성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결국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는 군에서 파견한 인력이 담당해야 했다.

    청렴성과 전문성의 모순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감독 업무를 현장에서 하기보다 문서로 하려는 풍토가 생겨났다. 담당 공무원이 직접 공장에 나가서 감독을 하면 업체와 담당자 간에 유착관계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다. 청렴성이 지상가치가 된 방사청에서는 한 사람이 특정 업무를 2년 이상 할 수 없는 규정을 만들어 순환보직제를 운용했다. 일반적인 공무 기관에서라면 이해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방산 업무는 워낙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2~3년을 근무해도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최소한 5년은 한 업무를 맡아야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한 예로 과거 해군 조함단에서 선박을 건조할 때는 담당자가 직접 조선소에 나가서 도면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업체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신이나 동료들이 직접 타고 나갈 배이니 열심히 감독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이런 업무가 방사청으로 넘어간 이후 풍토가 달라졌다. 담당 공무원들이 업체와의 접촉을 줄여야 청렴성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해 현장에 나가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장에 나갔다가 자칫 밥 한 끼, 커피 한 잔이라도 제공받을 경우 ‘접대’로 오해받을까 우려한다.

    이렇게 청렴성만을 강조하다보니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나 효율성은 떨어지게 됐다. 통영함 사건에서 실무 책임자가 업체에 매수당해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를 제지할 만큼 사업 내용을 잘 아는 전문가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방사청은 정부기관 최초로 임기 2년의 옴부즈맨 3인을 임명해 청렴성을 강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대학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으로 구성될 옴부즈맨 역시 무기체계의 도입에 관한 전문성은 없기 때문에 절차상의 투명성만을 보장할 것으로 보인다. 청렴성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방사청과 그 산하 공무원들을 점점 전문성이 없는 집단으로 만드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려 방사청이 노력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군 출신 인원을 줄이고 그 자리를 민간인으로 채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을 두고 방산업계를 잘 아는 누군가는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방위사업청은 부패하기엔 전문성이 없고, 군인들은 좋은 무기를 획득하기엔 선배님 말씀을 너무 잘 따른다.”

    방사청이 사는 길

    이렇듯 한심해 보이는 대한민국 무기체계와 방산업계의 ‘현실’에 많은 국민이 실망할 만하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국감에서 지적하고 언론에서 부각한 문제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해결됐다. K-2 전차의 경우 속도가 덜 나온다면 능동방어시스템(APS)처럼 방어능력을 높이는 시스템을 채용하면 된다. K11 소총은 구형 탄환만 교체한다면 문제없이 발사된다. “자석만 대도 총알이 나간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무책임한 발언에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며 속상한 심정을 호소한다.

    사실 대한민국이 개발한 무기체계는 해외의 완성품을 사오거나 베낀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완벽할 수 없고 사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고쳐나가야만 한다. 원래 무기체계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개량과 개선을 끊임없이 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미군이 사용하던 M16 소총은 1960년대 초 처음 배치됐을 때 잦은 고장으로 ‘스캔들 아니냐’는 비난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후 반세기 동안 미군은 M16을 여러 세대에 걸쳐 개량해 현재는 M16A4와 M4A1이라는 M16의 4세대 모델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이미 검증을 완료하고 실전배치를 선언한 무기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증이 끝나지도 않은 무기를 놓고 ‘대한민국 최초‘ ‘세계 최초’ ‘명품무기’라는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면서 세금 낭비를 정당화하려는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여전히 실무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비리를 저지를 여지가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 부족이나 비리의 근원은 역시 전문성의 부족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진행한다면 섣불리 실전배치를 선언하지도 않을뿐더러, 적절한 제도와 결합할 경우 전문가들의 상호 견제로 투명성도 유지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문제는 대체로 부실이 비리로 바뀐 것이었다.

    관건은 방사청이 군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거나 사다주는 임무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다. 이는 군피아를 척결한다며 방사청 내부의 군인들을 내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문성은 부족해도 세금을 잘 쓰는 데 관심이 많은 공무원들과 소속 군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지만 전문성은 뛰어난 군인들을 조화롭게 활용한다면, 방사청도 분명히 선순환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