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스포츠 경기의 공격수와 수비수로 비유할 수 있다. 새롭고 창의적인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스타’라면, ‘가디언’은 주어진 일을 빈틈없이 잘 수행하는 사람이다.
- 이들의 조화 여부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성과의 지속성이 좌우된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스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임스 배런 교수는 구성원들의 성과 분포 패턴에 따라 업무의 유형을 정의한 바 있다. 배런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업무 수행 결과가 좋지 않아도 조직에 큰 영향이 없는 반면 성과가 좋을 때 회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이를 ‘스타 업무(Star Job)’라 한다. 반대로, 성과가 좋을 때는 그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성과가 나쁠 때 조직에 커다란 재앙이 될 수도 있다면 ‘가디언 업무(Guardian Job)’에 해당한다.
스타는 조직의 공격수다. 확률은 높지 않아도 스타의 성공은 사업의 향방을 바꾸고 조직 전체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장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출시했거나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고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면 스타의 성공 덕분이다. 스타의 또 다른 특징은 개인 성과가 나쁘다고 해서 당장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히거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간은 좋은 성과 한 번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스타는 축구로 치면 최전방의 스트라이커와 같다. 결정적인 순간 골네트를 가르는 시원한 슈팅으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에서 스타의 존재감은 빛난다. 비록 몇 번이고 찬스를 놓치는 실수를 했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팀 승리가 날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도 스타의 성과와 유사한 특성을 보여준다.
잘나가는 기업을 보면 어김없이 그 안에 스타가 있다. 스마트폰 혁명을 몰고 온 애플에는 아름답고 우아한 제품을 설계한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비롯한 천재 엔지니어들이 있었고, 인터넷 서점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세계 최고의 온라인 상거래 업체로 성장한 아마존닷컴에는 전자책 ‘킨들’을 개발한 제이슨 머코스키가 있었다. 이들 모두 소위 ‘만루홈런’을 때려내기까지 무수한 삼진을 당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스타 업무와 달리 가디언 업무는 ‘잘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다. 해야 할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도 성과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아무리 잘해도 평균 수준 성과와 크게 차별화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이고 복잡한 관계로 이루어진 가운데 많이 발생하는 가디언 업무의 특성상 한 번의 실패가 조직에 치명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 회사를 방문한 VIP 의전 실수 하나가 행사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회계 처리나 품질 검수와 같이 제도와 시스템, 규정을 다루는 업무가 여기에 해당한다.
실패하지 않는 게 성과
가디언에게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성과다. 이런 점은 축구의 수비수가 지닌 특성과 매우 비슷하다. 골을 넣어야 하는 공격수와 달리 수비수에겐 실점을 막는 임무가 있다. 이기는 경기는 끝까지 리드를 지키고, 지는 경기라면 추가 실점을 막아야 역전의 발판이 마련된다. 다양한 협력 수비로 적의 예봉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열 번을 잘해도 단 한 번의 실수가 더 크게 드러난다는 점은 가디언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구글의 혁신적인 사업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드러나지 않은 가디언의 노력이 있었다. 회사의 시스템 인프라를 유례없는 속도로 혁신하고 확장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한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 빌 코프란이 구글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가디언이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의 하야그리바 라오 교수는 201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기업가적 기질을 지니고 위기관리(risk taking)에 능해야 하는 스타의 기능과, 치밀하면서도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한 가디언의 기능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잘라 말했다.
스타와 가디언 두 기능을 모두 잘할 수 있는 인재는 현실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억지로 둘을 다 잘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무리다. 라오 교수에 따르면, 두 가지를 다 강요하면 대개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에 집중하거나, 둘 다 평균 수준에 머무는 결과로 귀결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더 중요한 것보다는 자신에게 더 쉽고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쪽을 고르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한 미식축구팀에서 정확한 패스 전달이 핵심 임무인 쿼터백과, 가로채기 당하는 횟수를 최소화하는 조건으로 연봉 계약을 맺었다. 팀은 다음 시즌 그가 가로채기 당하는 횟수도 줄이고 패스 성공률도 높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가로채기 당한 횟수는 매우 적었지만 정작 더 중요한 패스 성공률 또한 매우 저조했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확한 패스 전달과 가로채기를 당하지 않는 것 중 더 쉽고 컨트롤이 가능한 것은 후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되도록 공을 던지지 않는 쪽을 택했고, 던진다 해도 아주 안전해 보이는 경우에만 던졌다. 또 짧은 패스만 함으로써 가로채기 당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었다.
스타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에 비해 가디언은 주어진 일을 정해진 방식대로 빈틈없이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는 상황을 변화시켜서 갈채를 받지만, 가디언은 실수 없이 상황을 유지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입증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창출하는 스타에 비해 가디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직의 기본을 다지는 구실을 한다.
과감한 베팅 vs 비용 효율성
이와 같은 차이점 때문에 스타와 가디언에게는 요구되는 역량이나 동기부여 방식이 서로 다르다. 스타에게는 골을 넣는 공격수처럼 순간의 상황 변화에 따라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플레이가 요구된다. 반면 수비수 가디언에게는 미리 약속한 움직임과 협력으로 실수를 줄이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안정된 플레이가 중요하다. 스타에겐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이, 가디언에겐 최대한의 리스크 회피가 요구되는 것이다.
조직에서 필요한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일도 스타인지 혹은 가디언인지에 따라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업은 채용에 앞서 원하는 인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좋은 스펙과 커리어를 가진 인재만을 좇는다면 스타-가디언의 엇박자가 발생하기 쉽다.
서구 기업처럼 직무기술서나 직무명세서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 기업들에는 보다 세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로 지식의 생산이나 신사업 발굴, 혁신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할 인재가 필요하면 스타를 뽑아야 하고, 절차가 명확하고 계획과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업무를 맡길 계획이라면 가디언이 적합하다는 배런 교수의 지적도 참고할 만하다.
스타가 필요하다면 여러 명의 ‘좋은’ 인재보다 단 한 명이라도 ‘최고’의 인재를 확보했느냐가 채용 성공의 척도다. 확실한 홈런 타자 한 명이 좋은 타자 여러 명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꼭 필요한 스타라는 판단이 선다면 적은 비용을 아끼려다 대어를 놓치지 않도록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당장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더라도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경쟁사 대비 확실히 차별되는 소구 포인트로 협상에서 유연함을 발휘하는게 스타 채용의 성공 방식이다.
반면 가디언의 경우 개인의 능력에 따른 성과의 편차가 크지 않기에 과감한 베팅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크지 않다. 오히려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었다면 태도나 인성과 같은 조직 적합도를 기준으로 선발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가디언은 비용 측면의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타의 동기 부여는 열망을 자극하는 ‘영감’이 핵심이다. 영감은 자율적인 업무 분위기와 방식, 성과에 대해 확실한 인정과 격려, 그리고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보상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홈런도 쳐본 선수가 더 잘 치듯 한번 뛰어난 성과를 낸 스타는 계속해서 비슷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직무에 대한 보람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의 경우 뛰어난 성과를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실패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의 실패 관리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저 그런 보통 성과를 실패로 취급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미 있는 도전이 실패한 경우 지나치게 가혹한 책임과 질책을 면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스타에게 ‘평범한 성공은 성공이 아니고, 의미 있는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게 할 필요가 있다.
가디언이 일을 하도록 만드는 핵심 수단은 ‘책임감’이다. 가디언에게도 금전적 보상은 중요하지만 실수 없는 일 처리를 통해 조직의 안정성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긍지가 더 중요한 동기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가디언의 성과 평가에서는 ‘좋음’과 ‘탁월함’의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낫다.
가디언의 저성과에 대해서는 용납할 만한 수준과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다. 먼저 용납할 만한 수준이라면 굳이 차별적인 저평가나 낮은 보상으로 사기를 저하시킬 필요가 없다. 성과를 약간 더 올리기 위해 공연한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항공사에서 조종사에 대해 비행 횟수에 따라 지나치게 엄격한 평가를 한다면 조금 더 좋은 평가를 받으려 궂은 날씨에도 이륙을 강행하는 무리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냉혹하게 평가해야 무모함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직장 내 다양한 조직원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받는 드라마 ‘미생’.
결국은 리더에 달렸다
대표적인 기업 내 공격수로 꼽히는 애플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예컨대 생산은 주어진 설계대로 잘 만들기만 하면 되는 가디언 업무로 여겨졌지만, 도요타의 생산담당자들은 생산혁신시스템을 통해 생산도 새로운 혁신이 더 중요한 스타 업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업무 조정은 개별 업무 하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범위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업무의 상호의존 정도와 업무 수행 방식에 따라 협업과 소통의 요건도 달라진다. 가령 가디언의 경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개인 능력의 합보다 팀 전체의 능력이 더 낫다는 믿음이 잘 공유되는 편이다. 따라서 구성원 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협력하는 축구나 농구에서의 팀플레이 방식이 어울린다.
반면 업무 수행의 개별적 성향이 강한 스타는 개인의 능력으로 팀 전체의 성과를 좌우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억지로 지식의 공유와 희생을 강조하다가는 하향평준화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스타의 팀플레이는 개인의 능력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궁 단체전이나 야구에서처럼 선수 간 물리적인 협력과 상호작용보다는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최선의 플레이를 통해 팀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서로의 능력을 신뢰하는 분위기와 자신감을 고취하는 방식의 팀플레이가 적합하다 할 수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린다 힐 교수는 2014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공동 기고한 ‘집단 천재성: 혁신 리딩의 기술과 실제’라는 글을 통해 “혁신의 성공은 개개인이 가진 천재성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동시에 그 조각들을 한데 묶어 집단천재성으로 만드는 데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한 경기의 승리에는 탁월한 공격수와 확실한 수비수가 중요하지만, 장기 레이스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유능한 감독이 더 필요한 법이다. 기업의 성공과 지속적인 발전도 결국 스타와 가디언으로 구분되는 인재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는지에 달렸다.
스타와 가디언의 조화는 양극단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힐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직에는 다양한 양극단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예컨대 개인과 집단, 지지와 반대, 실험과 학습 유도 대비 성과 중시, 유연함과 체계성, 인내심과 절박함, 바텀업과 톱다운 등이 그것이다. 혁신에 성공하려면 이러한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정을 거듭하는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양극단을 살펴보면 대개 한쪽은 스타의 성향을, 반대쪽은 가디언의 성향을 지녔다. 따라서 힐 교수가 말한 혁신 리더의 성공도 결국 공격수와 수비수, 스타와 가디언의 조화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통해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내며 한편으로는 지나친 부침 없이 꾸준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은, 스타와 가디언의 조화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