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일 고급 인력 양성을 목표로 1997년 설립된 한국산업기술대학교(총장 이재훈)는 졸업생 10명 중 7명 이상이 취업에 성공하는 ‘취업사관학교’로 명성을 얻고 있다. 국가산업단지 안에 자리한 산업기술대는 산업 현장이 곧 캠퍼스이고, 대학이 곧 산업체 연구개발실 기능을 하는 명실상부한 ‘산학협력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행사장에 들어서자 요란한 음악에 맞춰 상하좌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레이싱 스포츠 시뮬레이터 ‘탑 드리프트’가 눈에 들어왔다. 대형 스크린과 시뮬레이터가 함께 움직이도록 구성된 ‘탑 드리프트’에선 게임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가상현실을 흥미진진하게 실감할 수 있다.
‘작품’이자 ‘제품’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만든 ‘3D 모션 시뮬레이터’는 사용자가 정형화한 틀에 맞춰야 했던 기존의 자동차 시뮬레이션 게임의 단점을 극복한 작품. 핸들과 페달, 좌석까지 사용자의 신체 사이즈에 맞출 수 있도록 조정 기능을 갖춰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자동차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팔다리 길이는 한국 여성 평균 수준이고, 복부 둘레는 40대 중년 남성 평균을 웃도는 기자가 시뮬레이터에 앉자 기계공학과 학생이 페달은 의자 쪽으로 조금 당기고 핸들은 배 높이보다 조금 높여 자동차 게임을 하는 데 최적화한 자세를 만들어줬다. 이처럼 자세 보정 기능을 잘 갖춘 덕분에 신체 사이즈가 일반인 평균을 벗어난 사람도 불편 없이 ‘3D 모션 시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디자인학부 학생이 디자인 감각까지 더한 ‘3D 모션 시뮬레이터’는 비단 게임기뿐 아니라 일반 승용차 운전석에 적용해도 가장 편하고 안정된 자세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컴퓨터공학부 학생들이 만든 ‘스마트폰을 이용한 운전자 졸음방지 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개발된 이 시스템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운전자의 얼굴을 인식해 평소보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경보음이 울리도록 했다. 기존의 졸음운전 방지 시스템은 별도의 장비를 구입해 설치해야 했지만, 이 시스템은 스마트폰 앱만 내려받아 실행하면 된다.
‘산업기술대전’에 전시된 제품들은 산기대 학생들이 만든 졸업 작품들이다. 그런데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당장 해당 분야에 ‘제품’으로 출시해도 될 만한 시장성을 갖춘 시제품 성격이 강했다.
산기대 관계자는 “기술대전에 출품한 졸업생의 작품을 모티프로 삼아 기업이 실제로 사업화하기도 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학생을 기업에서 채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졸업 작품 전시로 시작한 기술대전이 해를 거듭하면서 창업과 취업박람회로 성격과 의미가 확장된 셈이다.
학교 이름에 ‘산업’과 ‘기술’이 함께 들어가 있을 만큼 산학협동의 본보기 구실을 해온 산기대는 산업기술대전에서 보듯 당장에라도 산업화가 가능한 실용기술 교육에 주력한다. 그 덕분일까.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2014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산기대의 취업률은 73.1%로 수도권 4년제 대학 가운데 가장 높았다. 최근 5년간(2010~2014년) 평균 취업률은 75.1%에 달한다.
기술대전에 출품된 3D 모션 시뮬레이터.
산기대가 이렇듯 월등한 취업률을 기록한 비결은 캠퍼스 내 수십 개의 ‘하우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기대 캠퍼스엔 18층 높이의 산학협력 복합건물 ‘기술혁신파크(TIP)’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곳에 60개의 ‘엔지니어링하우스(EH)’가 있다. EH는 교수와 기업 연구원들이 함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동 연구 공간. 현재 98명의 산기대 교수가 172개 기업에서 온 192명의 연구원과 함께 60개의 EH를 운영하고 있다. EH에서 다루는 분야는 IT, 전통산업, 생명화학 및 신소재 등 매우 다양하다.
그중 한 곳인 디자인융합 EH는 홍성수 교수의 지도 아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부생은 물론 대학원생까지 함께하고 있다. ‘로봇 디자인 이노베이션 스튜디오(Rodis)’를 표방하는 이곳은 교육 현장이자 기업의 연구소, 나아가 또 하나의 디자인 회사 같은 복합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디자인한 멸균기는 이미 상용화가 이뤄졌고, 노인들의 보행을 돕는 로봇 제품도 곧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홍성수 교수는 “실제적인 설계를 내포한 디자인이 디자인융합 EH의 장점”이라며 “별도의 판금이나 절삭 과정 없이 곧바로 금형을 제작해 제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융합형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학융합형 EH는 학생들이 주도하는 청년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EH에 있는 ‘청년창업플래닛’에는 학생들 중심으로 창업한 3개 스타트업 회사가 입주해 있다. 또한 EH는 3D 프린터를 활용해 시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시제품 제작 센터’도 갖췄다. 산기대 EH는 이처럼 실무 실습을 통한 교육, 기업 연구개발(R·D), 창업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산학융복합형 창조경제의 산실 구실을 하고 있다.
EH가 모여 있는 기술혁신파크는 1600여 명이 기거할 수 있는 기숙사를 비롯해 푸드코트, 카페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춰놓고 24시간 개방한다. 학부생도 정규 수업시간 외에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데, 현재 EH에 참여하는 학부생은 500명이 넘는다.
산기대 관계자는 “교수와 기업이 함께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학부생까지 참여할 수 있는 EH는 24시간 현장밀착형 학습공간”이라며 “이와 같은 독특한 산학협력 프로그램 덕분에 재교육이 필요 없는 실무형 기술인재 육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H에 참여한 학부생은 1석 4조의 혜택을 누린다. 연구인건비를 받아 학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현장교수로 활동하는 기업 연구원으로부터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기능을 현장 맞춤교육을 통해 전수받을 수 있다. 연구원으로 능력을 인정받으면 곧장 취업의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2012년부터는 EH에서 학점을 취득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산기대는 EH에서 이뤄지는 교육이 산학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2012년 1학기부터 EH에서 이뤄지는 수업을 정규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2012~2013년 2년 동안 EH에 개설된 56개 교과를 1563명의 학부생이 수강했다.
EH는 기업에도 1석 2조의 효과를 안겨준다. 부족한 연구개발(R·D) 역량을 높일 수 있고, 기술력을 갖춘 인재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 최근에는 정부 기관과 지자체는 물론, 타 대학에서까지 산기대의 EH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령 전북새만금융합본부는 산기대 EH 전담교수의 자문을 거쳐 새만금엔지니어링센터(SEC)를 만드는 등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조성은 티원엔지니어링 대표가 ‘폐열 회수형 공기조화기’를 설명하고 있다.
가족회사 제도
산학협력을 통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건학이념으로 삼은 산기대는 대학이 보유한 실험·실습장비 등을 기업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유기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이른바 ‘가족회사’ 제도다. 산기대와 가족회사 협약을 맺은 기업은 대학이 보유한 실험·실습장비를 활용하고 기술교류는 물론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한다.
가족회사 제도는 산학협력의 패러다임을 대학 중심에서 수요자인 기업 중심으로 바꿨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001년 출범 당시 273개 기업으로 시작한 ‘가족회사’는 현재 4000여 개사로 늘어 전국 최다 가족회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산기대가 처음 도입한 ‘가족회사’ 제도가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로 정착하자 정부는 산기대를 산학협력중심대학의 롤모델로 삼아 산기대가 만든 가족회사 매뉴얼 책자를 전국 대학에 보급했다. 산기대 교수진은 다른 대학을 방문해 이 제도를 확산시키는 ‘가족회사 전도사’ 노릇을 자임했다.
개교 이래 줄곧 산학협력의 롤모델로 인정받은 산기대는 지금까지의 산학협력 성과를 기반으로 삼아 ‘산학융합’으로 한 단계 진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의 산학협력이 대학과 산업체 간 기술교류를 통한 차별화 교육에 무게중심을 뒀다면, 이제는 취업과 상품화, 국제교류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산학융합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것.
지난 2월 취임한 이재훈 산기대 총장은 “우리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중소기업이 기술혁신형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산기대가 기술혁신을 주도할 인재를 전략적으로 양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총장은 “강소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는 산업의 융합화 추세에 발맞춰 과제 중심의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독일의 도제식 교육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강소(强小)기업형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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