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콰이아가 안 갚은 300억, 협력업체 빚 폭탄으로
- 피해업체 “국민은행이 할인해주니 괜찮은 줄 알았다”
- 외담대는 안 갚고, 전자어음은 갚고?!
- 상환청구권 못 없애는 이유? 은행이 게으른 탓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에스콰이아 본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우리 깔창을 납품받은 회사 하나가 이번 일로 야반도주하면서 물건값 대신 구두 500켤레를 보내왔어요. 자재업체 등에 10억 원 정도 대금 치를 게 있는데 이번 일로 돈줄이 막히자 도망간 거죠.”
‘이번 일’이란 에스콰이아(법인명 EFC)가 만기 도래한 외상매출채권을 갚지 않아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본 사태를 말한다.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이하 외담대)은 구매기업(대기업)과 판매기업(하도급업체) 간 대금 결제수단으로 흔히 쓰이는 것 중 하나다(2013년 말 현재 외담대 규모는 잔액 기준 12조 원). 구매기업이 발행한 외상매출채권을 담보로 판매기업이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만기일에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는 금융상품이다. 구매기업은 납품대금을 통상 6개월 후에 결제하면 되고 판매기업은 외상매출채권을 즉각 할인해 현금화할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금융상품처럼 보인다(오른쪽 그림 참조).
그런데 문제는 은행이 옵션으로 내거는 상환청구권에 있다. 만기일에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판매기업이 대신 갚아야 한다. 지난 3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에스콰이아는 5월 초부터 만기가 돌아온 외담대를 갚지 않았다. 현재까지 파악된 미결제로 인한 피해금액은 4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에 걸쳐 300억 원이 넘고 피해업체는 160여 곳이다. 업체당 적게는 몇 천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 넘는 피해를 보았다.
은행의 상환 청구에 응하지 않으면 피해업체들은 금융전산망에 연체기업으로 등록돼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 한마디로 ‘돈줄’이 죄다 막힌다. 기존 대출 조기 상환 요청이 들어오고 신규 대출이 막힌다. 그래서 상당수 에스콰이아 협력업체는 폐업이나 휴업 신고를 한 상태다. 에스콰이아에 남성구두 완제품을 납품하다 피해를 본 한 업체 대표는 “심지어 법인카드까지 중지돼 영업차량 기름값이나 외근직원 식사비도 현금을 써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2008년 신성건설 부도를 계기로 이 같은 외담대 허점이 드러나자 건설업계에서는 상환청구권 제도 개선과 보완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건설 분야 종사자들은 상환청구권의 존재와 위험을 인지하게 됐다. 그러나 제조업계에선 외담대를 여전히 ‘어음과 유사한데 인터넷뱅킹으로 편리하게 현금화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 정황이 이번 에스콰이아 사태를 계기로 확인됐다. 박씨는 “2011년 말 에스콰이아가 외담대로 결제수단을 바꾸자 다들 마우스 클릭만으로 어음을 할인받을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며 “외담대란 말도 일이 터진 후에야 알았다”고 털어놨다.
“어쨌든 약관에 동의했으니…”
2012년 3월 신한은행 성수동 지점을 찾아갔다. 준비해간 서류를 제출하는 등 절차가 간단해 10분 만에 끝났다. 이게 대출이라는 것도, 상환청구권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지 못했다. 바로 아래층 하나은행 성수동 지점으로 가서 거의 동일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경기도 광주 공장으로 돌아오니 낮 12시도 채 되지 않았다.
-에스콰이아 외담대 피해업체 ○○제화
계약상의 중요 사항임에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인가, 이용자의 부주의인가. 외담대 상환청구권을 둘러싼 논란은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동양그룹 회사채·CP(기업어음) 등의 금융 사건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하다. 협력업체 대부분은 위 업체처럼 은행이나 에스콰이아로부터 상환청구권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외담대는 인터넷뱅킹 상품”이라며 “인터넷으로 가입하는 대부분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팝업창으로 뜨는 (상환청구권 내용이 포함된) 약관에 체크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고객이 약관에 동의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에스콰이아 외담대 피해업체들을 대리해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진행 중인 도태우 변호사는 “외담대는 파생금융상품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은행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며 “인터넷상으로 약관 동의 절차를 구했다는 것은 요식적 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상자기사 참조).
협력업체들은 상환청구권의 존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자금 사정이 악화일로를 걷는 에스콰이아와 계속 외담대로 거래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은 3월 에스콰이아의 워크아웃이 개시된 이후에도 외담대를 발행하고 할인해줬다. 신규 외담대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은행은 ‘에스콰이아 사정이 나빠진다’는 신호를 감지했다. 2013년 4분기 에스콰이아의 주채권은행인 국민은행은 에스콰이아 신용도를 BB+에서 BB-로 낮춰 평가하고 외담대 할인율을 7.38%에서 9.10%로 1.72%포인트 인상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일단 외담대가 개설되면 연체가 발생할 때까지 외담대 거래를 중단하지 않는다”며 “워크아웃 중이라고 할인해주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 외담대가 휴지조각이 되는 게 아니냐. 협력업체 편의를 봐주기 위해 할인을 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업체들은 은행이 주장하는 ‘시혜’가 오히려 족쇄가 됐다고 토로한다. 6억5000만 원가량의 외담대 피해를 본 장윤수 제일제화 대표는 “외담대 할인이 안 됐다면 에스콰이아로부터 전자어음이나 현금을 받거나 아예 물건을 납품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채권은행인 국민은행이 외담대 할인을 계속 해줘서 ‘워크아웃 중이라도 사정이 괜찮은가보다’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에스콰이아는 채권단과의 합의에 실패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최근 법원에 제출된 회계법인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에스콰이아 존속 가치는 511억 원으로 청산가치 645억 원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체 직전에도 신규 거래
연체 전에는 외담대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구매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은행과 협력업체 둘 다 피해를 보게 만든다. 에스콰이아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남 김해에 있는 (주)세이프웨이는 신발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에스콰이아는 지난 2월 김해에 내려가 이 회사에 첫 거래를 제안했다. 남성구두 3000족을 납품하면 외담대로 6600만 원을 결제하겠다고 한 것. 김해익 관리팀장은 “우리 회사가 10여 년간 신발을 만들면서 외담대를 받아본 적이 없어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자 에스콰이아 직원들이 ‘외담대나 어음이나 비슷하다. 현찰과 거의 같다’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그래도 에스콰이아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하는 생각에 발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3월 말에 물건을 납품하고 전자어음을 받았다. 그런데 신한은행도, 심지어 우리의 주거래은행인 부산은행도 에스콰이아는 위험해서 할인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자 에스콰이아가 국민은행 외담대는 바로 할인할 수 있다며 외담대로 바꿔줬다. 그렇게 어렵사리 외담대 할인을 받아 자재 값 등을 치렀다.”(김 팀장)
물론 에스콰이아는 9월 초 만기가 돌아온 이 회사 외담대를 갚지 않았다. 김 팀장은 “외담대의 허점을 이용해 우리 회사를 등쳐먹으려고 김해까지 내려온 것”이라며 화를 삭이지 못했다.
협력업체들은 외담대가 아니라 전자어음을 받았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에스콰이아는 외담대를 갚지 않으면서 전자어음은 계속 갚았다. 외담대를 연체해도 구매기업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지만, 전자어음을 연체하면 거래정지 처분 등의 불이익을 받기 때문으로 보인다. 장윤수 대표는 “외담대가 이토록 협력업체에 불리하다는 걸 알았다면 전자어음을 받거나, 아니면 아예 에스콰이아와 거래를 끊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콰이아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4월 말 협력업체들은 에스콰이아로부터 “5월부터는 외담대 할인이 안 되니, 할인받을 게 있으면 얼른 할인받아라”는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에스콰이아가 5월부터 외담대를 갚지 않을 계획이니까 미리 귀띔을 해준 듯하다”며 “그래서 사나흘 사이에 다들 서둘러 할인을 받았고, 그게 지금 폭탄이 돼 돌아온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협력업체들은 신용불량자 처지에 놓였고, 은행으로서는 손실액이 더욱 커지게 됐다. 이와 관련한 ‘신동아’의 질의에 대해 에스콰이아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수년째 해결책 안 나와
상환청구권은 외담대를 취급하는 은행의 ‘위험 회피’(risk hedge) 수단으로 반드시 필요한 걸까. 그리고 구매기업이 아닌 판매기업이 상환 의무를 갖는 것은 합당한 걸까.
국토교통부는 상환청구권을 없애달라는 건설업계의 지난한 요청을 받아들여 6월 ‘비소구(非遡求) 외담대’를 도입했다. 대한주택보증이 관리하는 선분양 주택사업장에 한해 향후 들어올 중도금 등 자금의 규모 내에서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업체에 상환청구권이 없는 외담대를 발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현재 발행되는 전체 외담대 중 상환청구권이 있는 외담대 비율은 60% 정도다. 나머지는 구매기업의 신용을 믿고 상환청구권 없이 발행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환청구권이 있는 외담대 비중을 줄여가야 하지만, 그랬다가 자칫 은행이 외담대 취급을 기피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부 악용 사례는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별문제 없이 잘 사용한다”고 했다. 2008년 신성건설 부도를 계기로 외담대가 처음 수면으로 드러났을 때 금융당국의 태도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여신을 담당하는 한 시중은행 간부는 “은행은 각 기업의 리스크 측정이 어렵기 때문에 상환청구권을 없앨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개별 기업 내부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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