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건 승냥이와 여우”
북한은 자력갱생을 선서한 사람이 버글대는 곳, 국가가 돈을 주며 일 시키지 않고, 관료가 독립적으로 벌어서 살고, 정해진 돈을 상부에 입금하는 곳이다. 돈주, 당 간부의 엉겨 붙기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중국과 합법으로 무역하려면 당국으로부터 ‘와크’(대외무역거래허가증과 수출입 쿼터를 합친 개념으로 보인다)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무역성 등에 뇌물을 줘야 한다.
지방 보위부원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꼴꼴이(김정은)는 전 인민을 수탈하지만 우리는 일부만 수탈한다”면서 자위한다. ‘뉴턴의 제4법칙=고이면 움직인다’라는 새로운 등식도 등장했다. ‘뇌물을 고이면 움직인다는 것’이 자연법칙 반열에 오른 꼴. “간부는 직권으로 살고, 부유층은 비법 장사로 살고, 인민은 뼈를 깎아먹고 산다”는 것이다.
또 “군대는 ‘군’숙하게(앞뒤 가리지 않는다는 뜻) 떼먹고” “당은 ‘당’당하게 떼먹고”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떼먹고 “보안서는 ‘안’전하게 떼먹고” “행정기관은 ‘행’여나 남은 것을 떼먹고”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떼먹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백’주에 굶어 죽는다”는 한탄이 쏟아진다. “소대장은 ‘소’소하게, 중대장은 ‘중’간만, 대대장은 ‘대’량으로, 연대장은 ‘연’속해서, 사단장은 ‘사’정없이, 군단장은 ‘군’데군데에서 떼먹는다”는 식의 풍자가 허다하다. 부정을 저지를수록 승자가 돼 이익과 행복을 얻고 도덕을 지키면 패자가 돼 손해와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는 셈이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 직후 “생눈길을 헤쳐나가는 심정으로 일하자”고 호소했다. 지방 주민들은 “2000만 지방 동포가 200만 평양시민을 먹여 살린다” “평양 시민만 김정은의 공민”이라고 꼬집는다고 한다. “올해 죽지 않으면 내년에 후회한다” “가도가도 심산(深山)”이라면서 “오직 부데기만이 살길”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부데기’는 산림을 개간해 밭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가을도둑이 봄날의 애국자”란 은어는 추수철 도둑질을 해서라도 겨울에 굶지 않아야 이듬해 봄 협동농장에 출근한다는 뜻이다. 야간작업 때 허리춤에 벼, 옥수수 감춰 나오기, 비(非)농장원에게 식량 빼돌려놓기, 탈곡장으로 벼 운반할 때 절취하기, 다른 사람 부데기에서 농작물 훔치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군인이나 도시민이 농촌지역 식량과 가축을 절도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내 배짱은 장군님 배짱”은 군인이 도둑질하면서 쓰는 은어다.
농촌·산촌지역에선 고난의 행군 때 순한 이는 다 죽고 악질만 남았다는 뜻으로 “지금 살아남은 건 승냥이와 여우뿐”이라는 말로 세태를 풍자한다고 한다. 교화소를 ‘승냥이 양성소’라고도 한다. 교화소에서 더 악질이 돼 나온다는 뜻이다.
고위층은 3부(간부·어부·과부)?
평양시민은 농장원을 ‘농포’라고 폄훼한다. 농포는 ‘썩은 거름’이란 뜻. 농장원 자녀는 아버지 신분을 세습한다. 진학이 가능한 대학도 교원대학(2년) 농업전문학교(2년) 농업대학(6년)으로 한정돼 있다. 농장원이 웅덩이에 빠져 “농장원 살리시오”라고 외치자 지나가던 사람이 “당신은 사람이 아니오?”라고 물었더니 “사람이 아니라 농장원이요”라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농포는 무시의 대상이다.
멧돼지 탓에 농가가 피해 보는 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김정은 모심(보위) 사업’ 탓에 멧돼지 퇴치 목적으로도 총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북한 법은 자연보호를 이유로 산짐승 포획을 금지한다. 농장원들은 밤마다 교대로 호루라기, 삽, 가마솥뚜껑을 두들기며 멧돼지 접근을 차단한다. 농장원들 표현대로라면 “‘국가공훈합창단’이 밤마다 음악을 연주해 멧돼지를 내쫓는” 것이다.
어부는 농장원과 달리 부유층으로 여겨진다. “3부(간부, 어부, 과부)가 고위층”이라는 말은 2002년경부터 유행했다. “뇌물을 당당하게 먹는” 당 간부만큼은 아니지만 어부의 소득이 높다고 한다. 수산물 수출이 활발한 데다 부데기 경작을 겸업해서다. 과부를 첩으로 둔 어부 또한 많다고 한다. 돈 있는 남자들과 재혼하거나 당 간부의 첩이 돼 자유롭고 넉넉하게 생활하는 과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간부의 첩이 된 과부는 대학 진학 특혜, 부대 배치 알선 등으로도 돈을 번다고 한다.
평양과 지방 주요 도시의 삶은 당국이 창업 및 영리 활동을 묵인하면서 개선 추세라고 한다. 자생적 시장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공장을 세운 후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이도 나타났다. 소규모 유통업체를 세운 이, 운수업에 나선 이를 보는 게 어렵지 않다. 임노동자가 느는 것은 노동시장이 싹트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방증이다. 서비스업도 발달한다. 목욕탕, 식당 같은 업종에서는 중국의 친척한테 밑천을 제공받은 화교가 맹활약한다고 한다.
조선중앙은행이 상업은행 기능을 못 하다보니 기업소나 개인이 돈주에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공급받는다. 외화를 축적한 돈주가 자본시장을 형성한 꼴이다. 농업, 수산업 등 1차산업으로도 돈주의 자금이 흘러들어간다. 도시마다 ‘돈장’ ‘돈마당’이 형성됐다. 고리대금업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리대율은 대체로 월 10%(연 120%)라고 한다. 장마당 상인이 급전을 빌릴 때는 월 20~30%라고 한다. ‘노력 영웅’이라는 말이 ‘돈 잘 빌리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된다. 고리대를 통해 큰돈 번 사람은 ‘공화국 영웅’이다. 농촌에선 식량 고리대도 나타났다. 돈주에게 연 100~200%의 이자 지급 조건으로 식량을 차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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