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적절한 불안이 안전을 지킨다!

TIP 재난불감증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입력2014-11-25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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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묘하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재난과 사고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과 함께 그러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것 같다는 비관적 예측이 공존한다.

    어떤 사람은 마치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꼭 벌어질까 싶어서 전전긍긍하거나 불안해하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 사람 내에서도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거나 시점이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은 누구의 말을 들으면 걱정이 태산이고, 또 다른 누구의 말을 들으면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재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기분이 좋거나 안정된 상태에서는 대개 긍정적 예측을 하고 반대로 기분이 좋지 않거나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부정적 예측을 하는 경향이 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들썩였고, 안전에 대한 강화와 원칙을 잘 지키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안전에 대해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이 선박 탑승을 기피하고, 각종 재난을 염려해 건물의 비상구를 확인하고, 차량 운전 시에도 더욱 조심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난폭 운전에다 재난 상황을 거의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태도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주의와 근심’을 갖는 태도가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나친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힌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에 대한 무관심과 불감증에 빠진 것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 사회가 일부러 노력해서라도 가져야 한다. 왜 그런가. 불안은 인간의 기본 감정임과 동시에 안전과 발전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만일 불안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전혀 잘못이 없다. 혹시 잘못이라 할지라도 걸리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만일 걸리더라도 잘 빠져나가면 된다. 그런데 나에게는 분명히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타인을 의식하는 마음과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생기면 안 되는데’라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나쁜 짓을 하면 내 마음이 불편해’라는 보편적 양심이 결여돼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안전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면 그야말로 치명적인 사고가 예상될 수밖에 없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도 별로 불안하지 않다. ‘내가 누구인데 나쁜 일이 생겨? 그런 일은 생각하기조차 싫다’라는 생각으로 무장한 사람이다.

    한편 비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과도한 불안이나 결여된 불안의 양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열에 하나, 백에 하나니까 나는 아니야’의 비합리는 안전 불감으로 가고, ‘안전사고가 매일 벌어지니 나도 분명하게 당할 것이야’의 비합리는 안전 공포로 간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반대로 불안에 휩싸인 학생은 오히려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걱정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서 시험을 망친다. ‘이번에 성적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따위의 걱정을 하는 학생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성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걱정하라! 정부와 안전 관련 종사자와 운전자는 걱정할지어다. 한편으론 안심하라! 시민은 안전함을 믿고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자. 그러나 주의하고 지켜나가자, 최소한의 안전수칙과 각종 생활규칙을. 차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안전벨트를 매고 엘리베이터 탑승 정원을 넘어서면 타지 말자. 적절한 불안, 근심, 걱정이 나를 포함한 우리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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