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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대통령은 어디 가고 ‘양념’ 대통령만 남았나

[봉달호 편의점 칼럼]

  • 봉달호 편의점주 runtokorea@gmail.com

‘통합’ 대통령은 어디 가고 ‘양념’ 대통령만 남았나

  • 문자폭탄을 보내 사생활과 업무를 마비시키고, 우르르 몰려들어 비방 댓글을 올리고, 상스럽게 18원 후원금을 줄줄이 보낸다. 열성적 지지자들이 보이는 이 같은 태도 정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홍위병이었소!”라고 떳떳이 말하는 중국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잡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한때는 나라의 주인이자 역사의 주역인 것 같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창궐하지만 결국 우상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대깨문’이라고 일컫는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대깨문’이라고 일컫는다. [뉴시스]

한낱 장사치에 불과한 사람이 정치·사회 문제에 글을 쓰는 일은 삼가야 했다. 원체 소양이 부족할뿐더러 장사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이나 카페를 한다면야 “그 필자가 운영하는 가게”라며 찾아오는 손님이나 있으련만, 편의점은 그럴만한 대상도 아니다. 

‘신동아’에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 물론 과분한 격려의 말씀이 많았지만, 평생 겪어보지 못한 비난과 공격 역시 경험했다. 어쨌든 공론의 장에 나온 이상 그 정도는 각오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웬만한 일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밤길 조심하라”는 e메일 정도는 그러려니 했으되,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 본사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저 사람 저렇게 내버려 둘 거냐’ ‘본사가 입장을 밝혀라’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잠시 정신이 아뜩해졌다. 

문득 사건이 하나 떠오른다. 편의점 운영 초기에 겪은 일이다. 창고에 있는데 “사장 나와!” 하는 고함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손님이 직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 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원래 잘 웃는 직원이긴 했다.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정말 비웃는 마음으로 그랬는지, 자기 딴에는 친절히 웃는다는 것이 오해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점주로서 최대한 정중히 사과했고 직원도 잘못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어진 손님의 반응.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그 직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당장 자르라는 엄포로 들렸다. 나는 올해 편의점 운영 9년 차를 맞는다. 시간을 통해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다면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나친 조치를 요구한다. 그것을 자신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급기야 당장 해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에게는 감정을 보상받는 ‘해고’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밥줄이 끊어지는 일이고, 어느 가족의 운명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다. 점포로서도 소중한 직원을 잃는 일이다. 그런 심리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견해와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의 회사에까지 투서해 ‘자르라’ 엄포를 놓았다든지, 그 사람 강연 취소하라, 연재 중단하라고 항의했다는 사례를 들을 때마다 “이 사람 빨리 조치하라”던 손님의 결기 어린 표정이 떠오른다. 아참, 그리하여 펜을 꺾는다면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오해할까 봐, 나는 오히려 집필을 멈추지 못하고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다른 피해자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이악스럽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묘사한 포스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중국 문화대혁명을 묘사한 포스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우리 국어사전에도 등재돼 있지만 북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이악스럽다’는 표현이 있다. 억척스러운 사람, 지나치게 아득바득 덤벼드는 사람을 두고 ‘이악스럽다’ 말한다. 최근 수년간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이악스러운 집단을 꼽으라면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집단 아닐까 싶다. 이른바 박사모와 대깨문이다. 



뭐든 진득하게 탐닉하는 인내가 모자란 나로서는 대상이 무엇이든 그렇게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자신의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생계와 전혀 관계없는 일에 몰입하는 행위 자체가 존경스럽고 의아하기까지 하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연예인을 따르는 일이라면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 탐닉하는 거니까. 그런데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대체로 공격성을 표출한다. 노래, 영화와 달리 축구나 정치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니 그런다고 이해하려 해도, 정도가 지나친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갖는 것이다. 그런다고 무슨 ‘자리’ 하나 내주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다고 우리 삶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내가 너무 수구 반동적이거나, 이해타산적이거나,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진보에 대한 낙관이 부족하거나, 견문이 짧은 사람이라 그러는 걸까? 물론 그럴 것이다. 어느새 내가 상당한 회의주의자가 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1989년 학생운동을 시작해 북한 체제와 사상을 신봉한 적이 있고, 1996~1997년 무렵 그것과 결별했다. 어울리지 않게 묵직한 표현이라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전향’이라는 것을 했다. 전향을 하고 내가 한동안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있다면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일본의 전공투(全共鬪) 운동이다. 둘 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걸쳐 일어난 사건으로,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두들겨 패고, 집단 살육을 하고, 군중 앞에 조리돌림하고, 찢고 불사르고 뒤집어엎고, 심지어 비행기 납치까지 하는 등 정말 ‘이악스럽기’ 그지없는 운동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악스럽게 만들었을까. 내내 그것이 가슴 아픈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이악스러움의 탐구 대상이 지금 내가 사는 현실로 옮겨오게 됐으니 이는 기뻐할 일일까 슬퍼할 일일까.


아시타비(我是他非)

1966년 마오쩌둥이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1966년 마오쩌둥이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전향하고 8년 정도 중국에 산 적이 있다. 사업차 간 것이지만 체류 기간 관심을 가진 것도 문화대혁명(문혁)이었다. 중국인 스스로 나라를 뒤흔든 ‘10년 동란(動亂)’이라고 말하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휩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는데, 그 연대를 산 중국인에게 “당신은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넌지시 캐물으면, 대체로 정색하고 입을 다문다. 말하고 싶지 않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되돌아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기억이며, 특히 외국인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우리 집 청소를 해주던 아줌마가 계셨다. 1940년대 태생으로 전형적인 문혁 세대다. 장씨 성을 가져 장제(張姊)라고 불렀는데 이분이 나보다 키가 컸다. 그 연배에 여자 키로는 꽤 큰 키라서 내가 “농구선수를 하셔도 되겠습니다”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더니 정말 옛날에 농구선수였다는 것이다. 성(省) 대표선수까지 했다는데, 나중에 제법 친해졌을 때에야 자기가 왜 농구를 그만뒀는지 사연을 말했다. 간단했다.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만주국 시절 대륙에 왔다가 중국인과 결혼해 정착한 여성이었다. 그런 이유로, 출신 성분이 불량하고 외국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조리돌림당하고 농구단에서 쫓겨나 산골벽지에 수년간 숨어 살았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문혁만 생각하면 잃어버린 청춘이 억울하고 화가 치민다고 그는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것일까. 역사엔 그런 일이 많고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빨갱이’라는 낙인이다. 1960~70년대 중국에서 누군가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를 따르는 사람)로 몰려 박해를 당하던 시절,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빨갱이로 찍히면 패가망신하는 역사를 겪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양측에서는 “저쪽이 우리보다 더 했다”거나 “그래도 우리는 저쪽보다 낫다”면서 서로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렇게 경중을 겨루며 자신의 ‘독재’를 합리화한다. 한국의 ‘교수신문’이 작금의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말로 고른 바대로 아시타비(我是他非) ―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치적 상대편을 박해하거나 린치를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그런 DNA만큼은 똑같이 유전한다. 권력만 바뀔 뿐, 행태는 윤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의 홍위병은 한국의 서북청년단으로, 어제의 박사모는 오늘의 대깨문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날 ‘기-승-전-반공’은 오늘날 ‘기-승-전-적폐청산’으로 깃발만 달리해 나부끼는 중이고, 이쪽의 대깨문 ‘총수’는 저쪽으로 갔다면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됐을지 모르며, 문혁의 조반파(造反派)들이 “내일은 저 집을 털자”고 좌표 찍어 몰려다녔던 것은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 공간에서 21세기형 ‘좌표’로 재현된다. 어느 쪽이냐 어느 시대냐 어떤 사상이냐 가릴 것 없이 본질은 그렇게 미싱처럼 “잘도 도네, 돌―아가네.”(노찾사 ‘사계’ 가사)

괴물에 맞서는 괴물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적 이악스러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본성은 순수한 사람들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학생운동을 시작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처단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 아버지는 분명 자산계급이고, 혁명이 성공하면 반드시 처단해야 할 대상인데, 나는 내 아버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됐다. 돌아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그것을 고민했다. 역시 우스운 일이다. 그 이론을 만든 사람조차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마구 만들었을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히려 심각하고 진지하게 결단을 각오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순수했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순진했던 것이고, 솔직히 무지했던 것이다. 세상사 많은 일이 그렇다. 스승보다 결연한 것이 오히려 제자들이다. 제자의 그런 순수와 무지를 스승이 악용하는 경우도 흔하다. 

정치 사회적인 이악스러움의 근원에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숨어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주변 사람에게는 굉장히 친절했고 폴포트가 다정한 선생님이었던 것처럼, 알고 보면 그들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어찌 그리 잔혹하게 행동했을까 살펴보면, 그들은 정치적 상대편을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무형의 ‘담론’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돈키호테가 달려든 라만차의 풍차처럼, 사람이 아니라 그냥 괴물로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괴물에 맞서는 괴물’로 변신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 간단한’ 일

이런 관점은 지지자들에게도 그대로 유전된다. 자기편에 대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애틋함을 표하는 사람이 상대편에 대해서는 사람으로조차 대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정치적 이단자는 설득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저 처단과 절멸, 청산, 척결의 대상일 뿐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요컨대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개념과 다른 것이고, 그러한 불일치에 대해 하등 이상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이제 1년 남짓 남았다. 지난 4년을 되돌아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경제를 망쳤다거나 집값 폭등이나 자영업자 말살, 청년실업, 헌법 무시, 법치와 민주주의 파괴, 삼권분립 위협, 그런 것보다 근원적 실책은 ‘통합’ 문제 아닐까 싶다. 경제나 제도 질서야 나중에 바로잡을 수 있다지만 한번 깨어진 마음은 여간 다시 잇기 어렵다. 물론 통합이라고 해 모든 국민이 일심단결 하나 되는 그런 통합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최소한, 으르렁거리며 서로 죽기 살기로 좌표 찍고 싸워대는, 이런 지긋지긋한 감정 소모만큼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특별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이유는, 문 대통령 스스로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감동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고,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숙제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며, 다른 국정 과제와 다르게 대통령이 결심하면 상당히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인데 그걸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립 내각을 구성한다든지, 탕평 인사를 한다든지, 정치적 반대파와 야당까지 포용하는 자세를 취한다든지, 거창하게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최소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보이는 거친 태도 정도는 제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 것일까?

홍위병

문화대혁명시절 홍위병들은 
중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GettyImages]

문화대혁명시절 홍위병들은 중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GettyImages]

다시 문혁으로 돌아와, 중국 문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있지만, 권력투쟁의 관계 속에 살피자면 역시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문혁이 일어나기 전, 중국에는 대약진 운동이 있었다. “15년 안에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기괴한 구호를 앞세운 이 운동은 철강 생산량을 극대화한답시고 조잡한 고로(高爐)를 만들어 집집마다 수저와 젓가락까지 긁어모아 녹여 없애고, 대동사회를 만든답시고 인민공사라는 것을 구성해 집집마다 부엌을 없애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도록 했으며, 참새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마오쩌둥이 “저 새는 해롭다”고 하니까 전 대륙에 참새 씨를 말려버려 오히려 해충이 창궐해 대기근에 시달리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남긴 역사상 최악의 정치 실험이었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최소 2000만, 최다 4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마오쩌둥은 히틀러와 스탈린을 제치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단시간에 죽인 사람’으로 기록에 올랐다. 문혁은 그런 대약진운동의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 있던 마오쩌둥이 다시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지지자들을 동원한, 일종의 친위 쿠데타다. 불쌍한 것은 그런 흉포한 권력의 앞잡이가 돼, ‘문화대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 희대의 난장에 동원된 어린 홍위병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홍위병도 역사의 피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홍위병의 패악질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이 정치적 이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이는 공격적 행태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문자폭탄을 보내 사생활과 업무를 마비시키고, 우르르 몰려들어 비방 댓글을 올리고, 상스럽게 18원 후원금을 줄줄이 보내는 일을 ‘양념’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때는 후보 시절이니 지지자들의 협조가 간절해 그랬다고 하자.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냥 딱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 ― “나를 봐서 그러지 말라”고 지지자들에게 준엄하게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 그 간단한 일을 대통령은 하지 않고 있다. 대체 왜일까?


앞잡이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가 코로나 시국에 전시회를 열고 영세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지원금까지 받은 사실이 최근 입방아에 올랐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그런 과정에 보여준 준용 씨의 태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항간의 비난에 준용 씨가 소셜미디어에 발표한 입장문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 뒤로 올린 다른 글에도 “―했음”이라는 종결 어미로 이어지는, 짜증 난다는 투의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준용 씨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 좀 감정적일 수 있고, 지난 수년간 세인의 지나친 관심을 받고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개 서민조차 공론의 장으로 나온 이상 어느 정도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감수한다. 하물며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야!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일종의 소수자, 피해자, 수호자 의식이다. 아직도 자신이 부당하게 핍박받고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고가 느껴진다. 겸손이나 성찰 같은 것은 그리 느껴지지 않고, 그러면 ‘밀린다’는 게임의 법칙으로만 세상을 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한 치기가 느껴진다. 세상 모든 것을 적아(敵我)로 구분하고 정치로 환원한다. 이것은 준용 씨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집단에게서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은 홍위병의 힘에 스스로 놀랐다. 원래 적당히 권력을 회복하는 도구 정도로 사용하려 했는데 홍위병이 대륙을 뒤흔들고, 한 몇 개월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급기야 자금성까지 불 지르려 할 정도로 패악질을 일삼고, 총 들고 죽창 들고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등 도저히 제어가 되지 않자 결국 군대를 동원해서야 겨우 홍위병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홍위병은 모두 지방으로 하방(下放)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홍위병이었소!”라고 떳떳이 말하는 중국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앞잡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한때는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자 역사의 주역인 것 같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창궐하지만 결국 스스로 우상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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