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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인플루언서 ‘초식마녀’ 박지혜

“비거니즘은 美食의 새 장 여는 일”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비건 인플루언서 ‘초식마녀’ 박지혜

  • ● 짧은 생 살다 죽는 동물 떠올리면…
    ● 식습관 바꾸면서 환경까지 고려하게 돼
    ● 당장 결심 어렵다면 실천하기 쉬운 것부터
    ● 비거니즘은 제한이 아니라 확장
[오홍석 기자]

[오홍석 기자]

국군이 올해부터 채식주의자 병사에게 육류를 배제한 식단을 제공하기로 했다. 뷰티·패션 업계에도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vegan)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계에서도 채식 선언을 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노경은이 대표적이다. 기업들도 앞다퉈 비건 소비자를 잡고자 맞춤 상품을 출시한다. 2019년 한국채식연합(KVU) 추산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 명에 달한다. 2008년에 비해 10배 늘어난 수치다. 이제 비건은 유별난 식성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이 아니다.
 
비거니즘(veganism)은 동물 착취와 학대를 최소화하려는 삶의 방식이다. 비건은 비거니즘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다. 식습관뿐만 아니라 의복, 화장품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서 동물성 재료를 피하려 노력한다. 우유를 마시는 것이 살생은 아니지만 동물 학대 논란을 고려해 두유로 대체한다. 각종 과자와 라면을 튀기는 데 쓰이는 팜유도 오랑우탄 서식지를 해친다는 이유로 사용을 자제한다. 사람들이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 △동물권을 위해 △환경보호를 위해 등 다양하다.

맛있는 채식생활

‘비건 인플루언서’ 박지혜 씨가
만든 채식 요리.

‘비건 인플루언서’ 박지혜 씨가 만든 채식 요리.

‘초식마녀’ 박지혜 씨는 비건 커뮤니티에서 알아주는 인플루언서(influencer)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독자들과 소통한다. 가끔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 때는 비건이 아닌 시청자의 참여도 적극 독려한다. SNS에는 비건 생활을 담은 만화와 영상, 레시피(조리법)를 주로 올린다. 최근 비건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져 구독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맛있는 채식생활’을 콘셉트로 한 레시피 영상은 따라 하기가 쉬워 특히 인기가 많다. 일상생활과 레시피를 담은 만화를 엮어 ‘오늘 조금 더 비건’이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기 힘들지는 않나. 

“한국 사회가 비건이 살기에 더 수월한 곳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비건이 된 후 ‘도미니언(Dominio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동물들이 짧은 생을 산 후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보면서 엄살을 부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갇혀 살다 도축되는 동물에 비하면 내가 일상생활에서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 

‘도미니언’은 2018년 공개된 공장식 축산업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다. 몰래카메라와 드론을 통해 축사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아냈다. 2020년 ‘조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이자 비건으로 알려진 호아킨 피닉스와 약혼녀 루니 마라가 함께 내레이션을 해 화제를 모았다. 

- 흔히 비건은 샐러드만 먹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평소에 뭘 먹는지 궁금하다. 

“샐러드는 잘 안 먹는다. 익히지 않은 차가운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건 요리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일상에서 먹는 요리 대부분을 비건 방식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탕, 전골, 국 같은 뜨끈한 국물 요리를 좋아한다. 특히 들깨미역국에 두부를 넣어 먹을 때 행복하다. 비빔국수나 비빔밥 위에 구운 채소를 가득 올려 간장과 들기름으로 양념하면 재료가 잘 어우러져 채소의 맛이 살아난다.”




비건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

채식주의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채식 위주 식단을 유지하며 육식을 점차 줄여나가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 육식은 하지 않지만 어패류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 유제품은 먹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등이 있다. 박씨는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이다. 

- 어느 날 갑자기 비건이 됐는지, 조금씩 육식을 줄였는지 궁금하다. 

“채식은 학원에서 진도 나가듯 단계별로 식습관을 바꾸는 게 아니다. 개인의 선호(選好)와 환경에 따라 결정하는 선택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식탁에 오르는 동물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그렇지만 비건이 될 자신은 없어서 도축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는 늘 죄책감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를 보고 내 돈으로 고기를 사 먹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지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러시(Cowspiracy)’와 ‘왓더 헬스(What the Health)’를 보고 비건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날부터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카우스피러시’(2014)는 축산업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한 다큐멘터리다. 환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리오나도 디캐프리오가 제작에 참여했다. 카우스피러시는 소를 뜻하는 ‘cow’와 음모론을 뜻하는 ‘conspiracy’의 합성어다. ‘왓더 헬스’는 한국에서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이라는 제목으로 2017년 공개됐다. 축산업계와 의료업계가 가공육의 해로움을 축소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두 작품 모두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환경운동가인 킵 앤더슨과 키건 쿤이 제작했다. 

- 비건이 되면서 삶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 

“비건의 핵심 키워드는 ‘연결’이다. 비건이 되면서 내가 선택한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직간접적으로 지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 비건이 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식탁 밖으로까지 나아갔다.”


세상을 바꾸는 선택

박지혜 씨는 유튜브와 SNS에 비건의 일상을 담은 영상과 만화를 올린다.

박지혜 씨는 유튜브와 SNS에 비건의 일상을 담은 영상과 만화를 올린다.

- 답변이 철학적으로 들린다. 

“누구나 사는 게 팍팍하지 않은가.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재를 축소하게 된다. 우주의 먼지처럼 말이다. 그러다 ‘나 오늘 너무 힘들었으니까 힐링을 위한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거에는 무심했지만 비건이 되면서 그 치킨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자연과 동물의 희생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개인의 작은 선택이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 

- 식습관을 넘어 생활에서도 비거니즘을 실천하나. 

“먹는 것, 입는 것, 바르는 것 모두 동물성이 들어간 제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비건이 되기 전부터 옷은 빈티지(구제)를 좋아했다. 빈티지를 고집하는 이유는 패스트패션이 환경에 끼치는 피해가 엄청나서다. 환경을 지키고 싶다면 이미 생산된 상품을 다시 소비하는 빈티지를 추천한다.” 

패스트패션은 의류를 빠른 주기로 대량생산해 저가에 판매한다. SPA라고도 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국제 협의체 IPCC에 따르면 의류 생산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연간 물 1조5000억t 사용, 화학약품 배출, 미세 플라스틱 양산 등의 문제도 지적된다. 

-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일은 모두 품이 많이 든다. 직장도 다녀 바쁠 텐데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만화가가 되고 싶었기에 일상을 담은 만화를 그려왔다. 비건이 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비건으로 사는 내 일상을 그리게 됐다. 먹는 걸 좋아하는 터라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자마자 많은 레시피가 떠올랐다. 내가 요리한 레시피를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또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레시피를 공유하기 위해서도 그렸다. 그렇게 열심히 그리다 보니 어느새 분량이 쌓여 책도 내게 됐다.” 

- 비거니즘은 혼자 실천하면 그만인 것 아닌가. 가치를 알리거나 권하는 일로 자칫 미움을 살 수도 있다. 온라인에는 비거니즘에 대한 악플도 적지 않다. 굳이 비거니즘을 널리 알리려는 이유가 있나. 

“비거니즘이 미움을 받는 이유는 피해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인 데 있는 것 같다. ‘네 일도 아닌데 왜 나한테 참견이냐’는 식의 비난이다.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동물이 죽어가는 긴급한 상황인데 욕먹기 싫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사람이 나서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만화를 그릴 수 있고 서툴지만 영상 편집도 할 수 있으니 그것부터 시작했다. ‘초식마녀’라는 이름도 중세시대 마녀사냥에서 따왔다. 비난을 감수할 각오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美食의 새로운 장

- 한국에서도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 관심이 커졌음을 체감하는지 궁금하다. 

“비건을 시작한 지 2년이 됐다. 그 2년 사이에도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비거니즘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비건 시장이 확실히 커졌다. 비건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올리기 시작한 후 평범한 일상 만화를 그릴 때보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훨씬 더 빨리 늘었다. 코로나19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육식으로 인한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환경보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비거니즘으로 옮겨오는 것 같다.” 

- 비거니즘이 추구하는 가치에는 동감하지만 막상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비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쉬운 일부터 실천해 나가면 된다. 비거니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좋겠다. 식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면 입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 마라크림떡볶이 레시피 영상이 인기가 많았다. 마라크림떡볶이 말고도 전에 없던 새로운 레시피를 많이 선보이던데 영감은 어디서 얻나. 

“내 요리 스타일은 ‘냉장고를 부탁해’ 느낌이다. 즉흥적으로 집에 있는 식재료를 보고 어떻게 조합해야 맛있을지 고민한다. 장을 볼 때도 철마다 바뀌는 채소에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만의 방법 아닌가. 

“나는 내가 요리를 못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자꾸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 마지막으로 비건에 대한 편견 하나만 깨달라. 

“비건이 제한적이고, 금욕적이고, 참는다는 편견이 있다. 비건들도 맛있는 걸 먹으면서 즐겁게 산다. 나도 비건이 되기 전에는 닭, 소, 돼지를 돌림노래처럼 번갈아 가면서 먹었다. 비건이 되면서 제철 채소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비건이 아니었으면 먹지 않았을 식재료도 사 먹는다. 미식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비거니즘은 제한이 아니라 확장이다. 더불어 비거니즘을 실천한다고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다. 영양실조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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