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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한국 선박 ‘기획 나포’한 까닭

“경제협력 복원 승부수, 2016년 ‘봄날’로 돌아가자”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이란이 한국 선박 ‘기획 나포’한 까닭

  • ● GDP 마이너스 성장, 환율 6배 오른 이란 경제난
    ● 석유자금 70억 달러 동결한 ‘美 동맹’ 한국 찌른 이유
    ● 이란 관계자 “한국 은행들이 뉴욕(미국)을 겁낸다”
    ● 이란 관계자 “한국 로펌, 동결자금 회수 소송 거부했다”
    ● 2016년 韓-이란 정상회담, 양국 미래 내비게이션
    ● 이란은 특수한 나라, 비핵화·경협 확대로 나가야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 케미’ 호. [뉴시스]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된 ‘한국 케미’ 호. [뉴시스]

1월 4일 오후 한국 선박 ‘한국 케미(HANKUK CHEMI)’호가 페르시아만에서 나포되자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덴만에 자주 출몰하는 소말리아 해적이 아니라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선박을 나포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가셈 솔레이마니 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사망한 지 1주기가 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란 통치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의 최측근이자 2인자로 평가받던 솔레이마니는 2020년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란의 혁명수비대는 왜 솔레이마니 사령관 1주기에 맞춘 새해 벽두에 한국 선박을 나포했을까. 한국 선박 나포를 통해 이란이 얻는 전략적 이익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이란이 북한과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해 밀접한 협력 관계를 유지한 만큼 경색된 남북 및 북미 관계와 연관 짓는 시각도 나온다.


이란의 ‘종합 국익’ 고려한 혁명수비대

우선 이란 정부는 우리 선박을 나포하면서 “‘한국 케미’호가 반복적으로 해양 환경규제를 위반했고 이 문제는 사법 당국이 한국 선박 문제를 처리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란은 어떠한 증거물도 제시하지 못했다. ‘한국 케미’호 선주사도 이란이 주장하는 일체의 해양오염 행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란 측 주장대로 해양오염이 있었다면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 원인을 조사한 뒤 선원들을 풀어주고 필요한 조처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는 헬기와 고속정을 동원해 비무장한 한국 상선을 나포하는 장면을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 등을 통해 만방에 알렸다. 미리 선박을 나포할 ‘근거’를 확보하고 솔레이마니 사령관 추모일 직후 ‘기획 나포’에 나섰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여기에 이란의 전략적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번 선박 나포에 혁명수비대가 나선 점과 ‘반복적’으로 해양오염 행위를 했다는 주장, 그리고 이란과 한반도 관계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팔레비 왕조가 붕괴된 직후인 1979년 5월 5일 창설됐다. 이란 헌법에 따르면, 이란 정규군(병력 35만~55만 명 추정)은 이란 국경과 국내 질서를 유지한다. 반면 혁명수비대(병력 19만 명 추정)는 이란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 게 존립 목적이다. 이슬람 체제를 지키는 것은 외국 세력의 간섭을 막는 일과 더불어 군사적 또는 ‘탈선 행동’에 의한 쿠데타를 방지하는 일도 포함된다. 한국 선박을 나포한 혁명수비대는 흔히 생각하는 군대 수준을 넘어 막후에서 이란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조직이다. 

여기에 혁명수비대는 다양한 경제정책에도 관여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혁명수비대는 소비재부터 사치품인 스포츠카 수입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혁명수비대 일부 부대는 가스 개발이나 지하철·고속도로·댐 건설 등 주요 공사의 책임도 맡고 있다. 예컨대 2009년에는 78억 달러를 들여 국영 통신 기업을 인수했고, 세계 최대 가스전 개발 등 200억 달러 규모의 석유·가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국 선박을 정규군이 아닌 혁명수비대가 나포한 것 자체가 연안 경비, 국가 방어가 아니라 이란의 ‘종합 국익’을 고려한 활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란의 경제난 타개책

최종건(왼쪽) 외교부 1차관이 1월 10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과 회담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최종건(왼쪽) 외교부 1차관이 1월 10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과 회담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이러한 혁명수비대의 위상과 활동 범위를 고려하면 한국 선박 나포를 결심한 기저에는 경제적 이익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7월 영국 유조선을 불법 항해라는 이유로 나포해 65일간 억류하면서 EU의 대시리아 제재위반 혐의로 억류됐던 자국 유조선 석방과 교환한 ‘전력’도 있다. 

여기에 이번 사건으로 이란산 석유 수출대금 70억 달러(약 7조5600억 원)가 IBK기업은행 등 한국의 은행에 동결돼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나포 사흘 뒤 이란 일간지 에트마드는 한국의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 본사 사진을 싣고 ‘도둑맞은 이란인 지갑’이라는 제목으로 70억 달러 동결 사실을 보도했다. 이란 정부가 한국에 동결된 70억 달러를 사용하기 위해 선박을 나포해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은 2018년 초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제재 강화 이후 경제 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2018년 초와 비교해 환율은 6배 오르고, 물가는 약 100% 상승했으며 국민총생산(GDP)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2년 사이 6배나 오른 환율을 고려하면 미국의 제재와 한국 정부의 조치로 동결된 70억 달러에 대한 이란의 ‘갈증’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혁명수비대가 환경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을 ‘70억 달러’로 옮겨놓은 것도 이란으로서는 성과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의 경제난 해결을 위해 전략적 승부수를 던졌고, 이쯤 되면 어느 정도는 통했다고 볼 수 있다. 

1월 11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의 회동에서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가 “한국의 이란 자산(이란산 석유수출대금) 동결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자 큰 실수”라며 7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 자산의 즉시 동결을 해제하고 이자 지급도 요구했다는 점도 한국 선박 나포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1월 12일 필자와 만난 이란 정부 관계자 A씨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한국이 동참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70억 달러는 한국 어느 은행에 예치돼 있나. 

A씨: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에 예치돼 있다. 한국 은행들이 뉴욕(미국의 제재)을 겁내기 때문이다.” 

- 돈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A씨: “한국의 가장 유명한 로펌 두 곳과 의논했는데, 미국 눈치 때문인지 송사(訟事)를 맡으려고 하지 않더라.” 

- 최근 한국 정부 대표단이 이란에 도착해 수출대금 활용 방안을 이란 측과 논의했다. 이란은 동결 자금을 활용해 코로나19 예방 백신 구입뿐 아니라 10억 달러(1조839억 원)의 의료물자 구입에 사용하겠다고 요구했다. 

A씨: “그런 노력이 진행 중이다. 한국 선박 나포는 페르시아 바다, 이란 영해에서 쓰레기를 투척한 문제 때문에 나포된 것으로 알고 있다. 70억 달러 사용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란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만큼 실망도 컸다. 1962년 한국-이란 수교 이후 처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5월 이란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과 경제 분야 59건을 비롯해 총 6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역대 최대의 경제협력 어젠다에 합의했는데, 특히 371억 달러(약 42조 원)에 달하는 철도·공항·수자원 관리 등의 인프라 건설사업과 석유·가스·전력 등의 에너지 재건 사업, 보건·의료·문화·ICT 등 고부가가치 분야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42조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으로의 정권교체,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인한 국제정세 변화, 이란에 대한 국제 제재가 강화되는 대외 여건 속에 양국의 경제협력은 지지부진해졌고 이에 대한 이란의 불만이 누적된 것도 이번 사건 발단의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2016년 韓-이란 정상회담에 드러난 이란의 속내

2016년 5월 2일 이란 사드아바드궁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사전 환담을 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동아DB]

2016년 5월 2일 이란 사드아바드궁에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사전 환담을 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 [동아DB]

이란이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와 이란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재협상을 앞두고 미국 동맹국인 한국의 선박을 나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핵합의는 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독일, EU가 체결한 협정으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과 핵 활동을 중지하면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이 뼈대다. 

일각에서는 혁명수비대의 한국 선박 납치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협력 강화, 혹은 경색된 남·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로 활용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내 코가 석 자’인 이란이 굳이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무리수를 둘 이유는 적어 보인다. 

사실, 2016년 5월에 진행된 한국과 이란 정상회담 이전에는 북한과 이란은 공개적으로 핵 및 미사일 개발에 협력해 왔다. 1980년대 북한은 이란에 100여 기의 미사일을, 1990년대에는 미사일 개발 기술을 수출했고, 1998년 7월 발사한 이란의 ‘샤하브-3’ 미사일은 북한 노동미사일 기술을 제공받아 개발했다고 미국 당국이 밝히기도 했다. ‘이란 핵개발의 아버지’ 모센 파크리자데(1958~2020)는 2013년 2월 3차 북한 핵 실험 현장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7일에 이란 테헤란에서 파크리자데가 암살당한 사실은 이란-북한 핵협력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앞서 2016년 한국과 이란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핵무기 없는 세상’ 목표를 지지하면서 양국이 핵무기 개발이 안보를 증진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은 이란이 북한과의 협력 중단을 공개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선박 나포와 ‘북한 연관설’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예방 외교 실패한 문재인 외교의 방향

한국 선박 나포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뒷북 외교는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이미 ‘한국 케미’호 나포 이전에 이란이 ‘기획 나포’를 알 수 있는 조짐과 보고가 있었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다.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이란이 ‘생존 외교’에 매달릴 때 70억 달러 동결 문제 등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과 협력 없이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2016년 5월 한국과 이란 간 합의 내용은 양국 간 관계 설정에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양국 외교의 핵심은 비핵화와 경제협력 확대를 통한 공동 번영이다. 다행히 나포된 선박 선원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고,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이란과의 핵 합의 존중으로 복귀하려는 외교정책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이란을 재인식하면서 국제사회와 이란의 비핵화를 담대하게 중재하고 이란과의 경제협력 약속 이행에 신뢰를 보여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란은 우리와는 특수한 나라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란이 과거처럼 북한과의 핵협력을 강화할 수도, 한미관계에도 새로운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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