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대답은 ‘그렇다’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AS) 부품 책임공급자로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단종된 차량의 부품을 향후 8년간 책임지고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내구연한은 이보다 훨씬 길어졌다. 법적 기준만 충족시켜서야 소비자 신뢰를 살 수 없는 법.
현대모비스는 단산된 지 10년이 지난 차량 부품도 다수 재고로 보유했다. 심지어 24년 전인 1990년 단산된 포니의 일부 부품도 보관 중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AS 부품을 합리적 가격에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브랜드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라며 “단종 차량의 AS 부품을 처음 출시할 때 책정한 가격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공급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현재 양산 차종 78개와 단산 차종 118개 등 196개 차종의 부품을 공급한다. 부품 품목 수는 무려 201만여 개로 이 중 단산 차종의 부품 품목이 약 70%에 달한다. 단산 10년이 지난 ‘고령차’ 재고 부품은 450여억 원 규모로 전체 보유 재고의 13%를 차지한다.
수익보다는 ‘품질과 안정’
하지만 부피가 크고 쉽게 녹스는 패널(외부 철판) 등 큰 부품은 창고에 보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차체 부품은 장기간 보유하는 것보다 고객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것이 낫다. 이런 필요에 의해 설립된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현대파텍스(Hyundai Partecs)다. 파텍스는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내는 첨단기술’을 의미하는 ‘Automotive Parts Technology System’의 약자.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현대모비스가 초기 자본금 400억 원의 56%, 31%, 13%를 각각 분담해 설립했다. 현대파텍스는 현대·기아차의 위탁가공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제품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룹 내에 단산 부품 생산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둔 것은 단산 부품을 아웃소싱하는 유럽 및 미국의 완성차 브랜드보다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고령차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제때 신속하게 부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된 모델이어도 새로 제작하는 부품은 신차와 똑같은 강판을 사용하고, 최종 테스트도 신차와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김진원 현대파텍스 경영지원실장은 “우리의 존재 이유는 수익보다는 고품질의 부품을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파텍스의 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룹 전체에서 보더라도 현대파텍스가 단산 모델의 금형(金型)을 통합적으로 보관하기 때문에 효율적 관리가 가능할 뿐 아니라 현대·기아차는 신차 개발 및 양산차 생산에 더욱 전념할 수 있다. 과거 프레스공장(패널 생산), 차체업체(조립), 도·포장업체 등 여러 곳을 거쳐 생산하던 패널 부품을 현대파텍스 한 곳에서 일괄 생산하므로 물류비도 절감된다. 고객 만족과 그룹의 성장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다.
현대파텍스의 주요 생산품목은 후드, 루프, 테일게이트, 펜더, 도어, 사이드 등. 이를 위해 총 4841개의 금형(현대차 2926개, 기아차 1915개)을 보유하고 있다. 단종이 결정되면 해당 금형이 현대파텍스로 이관된다. 최근에는 구형 제네시스와 구형 카니발 금형이 들어왔다고 한다. 김 실장은 “보유 금형 중 가장 오래된 차종은 1992년 단종된 각그랜저”라며 “아무리 인기 없는 모델이라도 최소 15년이 지난 후 금형 폐기 여부를 논의한다”고 밝혔다.
해외 현지 전략 차종의 금형도 단종 후 현대파텍스로 이관된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 시장의 주력 차종으로 슬로바키아 현지공장에서 생산하던 준중형 세단 ‘씨드’다. 금형이 갈수록 많아지자 현대파텍스는 4500평 규모의 금형보관장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현대파텍스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연속 컨베이어 방식의 일관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