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내용으로 이를 두고 소위 ‘조세법률주의(租稅法律主義)’라고 한다. 이 문구가 언뜻 보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세법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을 때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세법률주의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러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대왕정시대에서는 국왕의 말 한마디로 세금부과가 가능했지만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러 조세법률주의가 구체화됐고, 그 체제 아래에서는 국민의 동의 없는 조세부과는 절대 불가능하게 됐다. 요즘으로 말하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는 국민에게 조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무에 들어가면 법률보다는 유권해석이 주로 적용된다. 세법은 그야말로 기본적인 내용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무에서 미묘한 사안이 발생하면 관련 규정을 기초로 한 유권해석에 의해 처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세법을 제정할 때 복잡다단한 경제현상을 세법에 일일이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세법의 해석적용과 관련해 세무당국의 유권해석(‘예규’라고 한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이 유권해석들이 ‘국민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조세법률주의를 구현함에 있어서 얼마나 관련 규정을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해석한 것이냐는 점이다. 실무적으로도 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조세를 두고 다툼이 있을 때 조세법률주의에 내재한 엄격해석의 원칙(嚴格解釋原則)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엄격해석의 원칙은 관련 규정을 함부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쏟아져 나오는 유권해석들에 대한 검증은 해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특히 조세 다툼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과연 유권해석들이 엄격해석의 원칙을 얼마나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한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세법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거나 혹은 ‘세법은 복잡한 것’이라는 막연한 우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도조차 꺼리고 유권해석을 막연히 좇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태도는 재고(再考)해 볼 여지가 많다. 더욱이 유권해석이 이치에 맞지 않고, 상식에 벗어난다면 엄격해석의 원칙 준수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세법은 (물론 다른 법률도 그러할 터이지만) 기본적으로 상식에 기초해 있다. 즉, 세법을 제정하는 이들은 상식선을 벗어나서 세법을 제정하지는 않는다(물론 세법은 국가정책이 반영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반영함에 있어서도 상식선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유권해석이라고 하더라도 상식선에서 볼 때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몰이식의 행태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다수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옳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유권해석이 세법의 규정을 거스른다고 큰소리를 내는 주장 중에는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세금은 항상 부메랑이 되어 언제 어느 시기에 나에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세법을 다룰 때는 법률에 그 부과의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관련 규정에 대한 해석은 엄격해석의 원칙이 준수되었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정의를 내세운 어설픈 여론몰이는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세금과 관련해서는 지금 당장만을 보아선 안 되고 그로 인해 야기될 또 다른 문제점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조세법률주의를 근거로 하지 않은 그릇된 사례가 일반화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 부당한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제2항소법원 러니드 핸드 판사가 남긴 명언에는 조세법률주의의 핵심적 가치가 잘 담겨 있다.
“그 누구도 법률에서 규정한 액수보다 많은 세금을 납부해야 할 애국적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