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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규정 어겼으니 잃은 돈 내놔라”
“고객 자기책임 더 크다”(대법원)

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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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에서 4000억 날린 ‘회장님’들

강원랜드에서 3년 반 동안 360억 원가량을 잃은 정덕 씨의 게임 기록 중 일부. 이름 바로 옆이 승패. 그 옆은 게임시간이다. 2005년 4월 14일 정씨는 14시간 33분 게임을 해 24억여 원을 잃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8월 21일 정씨는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8년간의 소송이 물거품이 됐다. 믿을 수 없었다. 대법원은 1심과 2심이 인정한 강원랜드의 책임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강원랜드의 불법행위보다 도박행위자의 자기책임이 더 크다는 이유였다.

한 달 뒤인 9월 25일, 이와 비슷한 2건에 대해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다. 이번엔 1승 1패였다. 비슷한 사건인데 대법원의 판단은 갈렸다. 이들 3건의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법원의 견해를 정리하면 이렇다.

“강원랜드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한 (주)강원랜드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자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충분치 않다. 대리 베팅은 불법이지만, 고객도 불법임을 알고 했기 때문에 고객의 자기책임이 더 크다. 본인이나 가족이 출입제한을 요청했을 때 일정 기간 상담치료 등을 받도록 해야 하는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강원랜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사람 대부분은 재벌 규모의 재산을 가졌던 ‘회장님’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길게는 7~8년, 짧게는 3~4년 사이에 전 재산을 잃었다. 게임 기록에는 이들이 매번 얼마를 잃고 땄는지,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는지가 나와 있다. 같이 게임을 한 사람들의 기록도 있어 진짜 고객이 누구이고 병정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병정들의 게임 승패는 대부분 0으로 처리돼 있다(그림 참조).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랜드는 회원영업장 고객의 게임 상황을 날짜별로 기록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14시간에 25억 날려



강원랜드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했던 정씨의 자료를 보자. 자료에 따르면 정씨는 한 달에 보통 열흘가량 강원랜드에서 게임을 했다. 16~17시간씩 쉬지 않고 게임을 한 날도 허다하다. 14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25억 원을 잃기도 했고(2005년 4월), 2시간 만에 15억 원 넘는 돈을 따기도 했다(2006년 8월). 게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 금액이 대체로 커졌다. 하룻밤에 10억 원 넘게 잃은 날만 16일이나 된다.

정씨의 뒤를 이어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충청지역에서 건설·부동산 사업을 하던 이모 씨. 강원랜드에서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은 이씨는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지인은 “자살 직전 이씨가 소송에서 질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한때 빌딩 여러 채를 소유했던 이씨는 목숨을 끊을 당시 재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 소송에 나선 사업가 김모 씨는 2003년부터 약 4년간 180여 회 강원랜드를 출입했고 200억 원 넘게 잃었다. 본인과 가족이 4번이나 출입제한을 요청했는데, 강원랜드는 관련 규정을 어기고 다시 출입을 허용해 피해를 키웠다. 김씨 역시 병정을 이용해 대리 베팅을 했다. 2011년 5월 고등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08년 11월 소송을 제기한 사업가 박모 씨는 현재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중 도박 금액이 가장 큰 경우다. 2004년부터 4년간 70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박씨는 1심에서 (강원랜드가) 피해 금액의 15%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린다. 2심 재판부는 “대리 베팅은 불법이지만 원고 또한 이를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강원랜드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병정을 몰랐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 한때 연매출 5000억 원 정도의 대기업을 일군 인물이다. 그의 회사는 비(非)서울권 건설업체 중 5~6위 규모에 이른 적도 있다. 계열사도 여러 개였다. 박씨는 2002년 검찰의 공적자금비리 수사 때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공적자금비리 수사팀에 청탁해 횡령 등 혐의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유명 사찰의 비구니에게 무려 9억 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박씨는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던 2010년경 경남 지역에 2조 원 규모의 대형 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씨 소송 당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직 강원랜드 직원은 강원랜드의 주장을 뒤집는 증언을 해 논란이 됐다. ‘병정의 존재를 몰랐다’는 강원랜드의 그간 주장이 이 증언으로 깨졌다. 이 증언은 이후 다른 재판에서도 중요한 증거로 쓰였다. 다음은 그의 법정 증언 중 일부.

“강원랜드 카지노에는 자기 돈으로는 게임을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남의 돈으로 대리 베팅만 해주는 병정이 상주한다. 병정을 동원한 대리 베팅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빈번해 고객은 물론이고 강원랜드 직원들도 병정의 존재나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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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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