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8일자 이 기사는 청와대 내부 문서를 근거로 정윤회 씨와 ‘십상시’로 불리는 비선(秘線)실세 그룹이 국정을 농단한다고 보도했다. 정국이 발칵 뒤집혔고 신문, 방송, 인터넷이 이 뉴스로 도배됐다.
검찰 수사 결과와 모순
그러나 이 기사의 한국기자상 수상은 검찰 수사 결과와 모순된다. 검찰은 1월 5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윤회 문건 내용이 모두 허위이고 문건 유출이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과 조응천 전 비서관의 자작극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이 기사에 상을 안긴 것은 이런 수사 결과를 전적으로 불신한다는 의미다. 보통 기사상을 받는 특종이란 ‘진실을 알려 세상을 바꾼 기사’를 의미한다. 검찰 쪽 시각에서 보면 허위 내용을 전한 기사가 특종일 순 없다.
언론은 ‘제4부’로 통하고 한국기자협회는 한국 기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검찰은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다. 신뢰받아야 할 언론과 검찰이 정윤회 문건 기사를 두고 도저히 타협 불가능한 방식으로 대립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라에 엄청난 풍파를 몰고 온 점만 고려할 때 해당 기사는 수상작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내용의 진실성 문제로 들어가면 평가는 좀 엇갈린다. ‘이달의 기자상’ 심사평도 심사위원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고 소개한다. 내부적으로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또한 “세계일보가 문건 확보 후 첫 보도까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추가 취재 및 사실 확인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밝혀 기사의 완성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기자상으로 뽑은 것은 기사의 품질 자체보다 본연의 기자정신을 더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과 검찰 간 모순이 벌어진 데엔 정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기사에 대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문건은 청와대에서 작성해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문건이었다. 그러니 대통령이 이를 ‘찌라시’로 평가절하한 것은 자기모순으로 비쳤다.
박 대통령은 소위 문고리 3인방 비서관에 대해서도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도대체 말이 되느냐.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감싸 안았다. 이 말을 할 당시 해당 비서관들은 이미 세계일보 기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상태였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렇게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일방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듯한 말을 했다. 사실상의 수사지침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았다.
여론은 냉소했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과반은 비선 실세 의혹을 사실로 믿었고 검찰 수사 결과를 불신했다. 정윤회 문건 기사에 상을 준 기자들의 결정은 이러한 국민 정서를 어느 정도 반영한 행위로 보인다.
대통령이 자초한 일
가장 큰 패자는 박 대통령일 것이다. ‘콘크리트처럼 견고하다’던 지지율은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대통령이 ‘찌라시’라 칭한 게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니, 대통령을 향한 ‘역대급 블랙코미디’라 할 만하다. 검찰도 ‘과연 인사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 권력형 의혹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가’라는 해묵은 의구심을 샀다.
그러나 언론도 이 상황을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다. 언론의 신뢰도는 과연 정권이나 검찰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언론계 일각은 정부를 비판만 하면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은 변해야 한다. 다시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권력에 맞서 펜대를 꺾지 않는 정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치열한 사실 확인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