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호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꿈은 웅대하나 기반은 취약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입력2004-06-30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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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전에서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는 필수 전력
    • 한국전과 이라크전에서 입증된 헬기의 효과
    • 경부고속전철보다 시작 예산이 두 배나 많은 KMH
    • 싸지만 위험한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으로 추진
    • 입찰 홍수, 그러나 이를 검증할 기관은 태부족
    • 추력 1만5000파운드급 시장은 과연 만들어질 것인가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미국의 항공기 제작회사 ‘시코르스키(Sikorsky)’는 1930년대 말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헬리콥터(이하 헬기)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육군은 1942년 이 회사의 헬기를 처음 구입했으나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끝냈다. 2차대전은 헬기를 등장시켰지만 헬기의 유용성을 제대로 평가해보지 못하고 막을 내린 것이다.

    헬기는 1950년 6·25전쟁을 통해 비로소 정식 데뷔했다. 그해 늦여름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UN군은 북진을 거듭해 초겨울엔 한중(韓中) 국경선에 접근했다. 11월24일 UN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연말이 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며 훗날 ‘크리스마스 대공세’라는 별명을 얻은 ‘종전을 위한 총공격(End the War Offensive)’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원산에 상륙했던 미 해병대 1사단이 함경남도 내륙인 장진호 쪽으로 쳐들어갔다.

    이 시기 6·25전쟁에 막 참전한 중공군 30여만명은 야음을 이용해 산맥을 타고 남으로 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적 후방 깊숙한 곳으로 침투해 크게 둘러싸는 대포위 작전을 편 것이다. UN군은 중공군이 얼마나 내려왔는지도 모르고 북진을 거듭하다 완전히 말려들었다. 가장 처절하게 포위된 것이 개마고원 인근의 산악지대로 진격했던 미 해병대 1사단이었다.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계곡에 갇힌 미 해병대 1사단은 능선에서 쏘아대는 중공군의 총알 세례에 맥없이 쓰러졌다. 밤에는 영하 30℃까지 떨어지는 강추위에 병사들은 ‘동태’처럼 얼어붙었다. 결국 후퇴가 최선의 선택이 되었는데, 문제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대포위 전술로 퇴로 개척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안전지대에 있는 UN군은 중공군의 저지와 험악한 지형 때문에 구조대를 보내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헬기였다. 좁은 계곡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는 헬기를 이용해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미 해병대 1사단은 어렵게 어렵게 원산으로 철수해 나올 수 있었다. 훗날 미 해병대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장진호 후퇴작전을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으로 치장했는데, 이 공격의 최선봉에 선 것이 바로 헬기였다.



    그후 헬기는 6·25전쟁 내내 활발하게 활용되었다. 병력을 수송하거나 적진에 침투한 아군에게 보급품을 전달하거나, 적군의 동향을 추적하는 정찰 목적 등으로 널리 사용된 것이다. 1947년 9월18일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한 후 이렇다 할 항공세력이 없던 미 육군은 이후 헬기를 육군 항공의 주력으로 삼았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은 헬기 편대의 굉음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육군은 부상을 당해 정글에 고립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데려오기 위해, 그리고 정글 깊숙한 곳에 미군 병사를 투입하기 위해 헬기를 사용했다. 물론 베트콩을 찾는 정찰 임무에도 이용했다. 당시 미 육군은 벨(Bell)사가 제작한 헬기를 주로 이용했는데, 1962년 이 헬기를 ‘기동헬기 제1호’라는 뜻의 UH(Utility Helicopter)-1으로 명명했다.

    오래지 않아 미 육군은 UH-1을 공격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전투기처럼 기관총을 다는 것. 기관총과 탄약을 실으면 매우 무거워지므로 이 헬기에는 전투병이 타지 못하고 조종사와 부조종사만 탑승한다. 미 육군은 이 헬기를 공격헬기란 뜻으로 AH(Attack Helicopter)-1으로 명명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후 공격헬기는 적 병사를 잡는 무기에서 전차를 잡는 ‘탱크 킬러’로 발전하게 되었다.

    1963년 한국 육군은 처음으로 UH-1을 도입하고 이어 AH-1도 도입했다. UH-1과 AH-1은 현재도 한국 육군 항공의 기본 전력이다. 개발·생산된 지 40여년이 흘러 미국에서는 박물관에 가 버린 ‘구닥다리’를 한국 육군에서는 아직도 주력으로 할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군은 신규 헬기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현재 미 육군 사단은 7개 여단 체제로 조직돼 있다. 3개 전투여단에 포병여단·항공여단(헬기부대)·공병여단·사단지원여단(보급부대) 체제인 것이다. 헬기부대인 항공여단이 사단에 배속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육군이 겪은 가장 큰 조직 변화이다. 110∼122대의 헬기로 편성된 항공여단은 최선봉에서 사단 전투를 이끌어간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3월 발발한 이라크전쟁이다.

    싸울 목표 없애버린 아파치

    미군은 이라크군에 항공기와 미사일 전력을 퍼부어 ‘충격과 공포’를 준 후 3사단을 앞세워 지상전을 감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라크의 정예사단들이 나서서 미 3사단에 강력히 저항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3사단은 ‘거침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진격했다. 3사단은 불과 1주일 만에 서울-부산보다도 먼 600㎞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3사단은 어떻게 쾌속 진군을 거듭할 수 있었을까. 항공여단이 보유한 ‘아파치 롱보우’라는 별명의 AH-64D 공격헬기 때문이었다. 이 공격헬기는 전차와 장갑차 부대보다 앞서 날아가며 저항선을 구축하려는 이라크군 기동부대를 ‘작살’냈다.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이고 트럭까지 보이는 대로 파괴했으니, 전차와 장갑차로 편제된 전투여단이나 팔라딘 자주포를 앞세운 포병여단은 공격할 목표를 찾지 못하고 계속 전진해 1주일 새 600㎞를 진격하는 대기록을 세운 것.

    해군도 베트남전을 통해 헬기의 활용에 주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미 해군 함정은 적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가장 두려워했다. 따라서 적 잠수함을 찾아내 공격하는 대잠전(對潛戰)이 중요시됐는데, 대잠전을 펴려면 먼저 적 잠수함을 탐지해야 한다. 그러나 함정에 탑재된 잠수함 탐지 장비 소나로는 넓디넓은 수역을 탐지할 수가 없다. 이러한 한계는 헬기를 이용함으로써 간단히 극복되었다.

    함정에서 이륙한 헬기는 바닷 속으로 그냥 가라앉지 않도록 부이(buoy)와 연결시킨 소나를 바다 여러 군데에 떨어뜨리고 소나에서 나오는 신호를 기다린다. 이렇게 하면 바다 넓은 구역에 걸쳐 잠수함 탐지망이 구축되므로 아군 함정의 생존성은 현저히 높아진다. 반대로 적 잠수함은 탐지될 가능성이 높아져 그만큼 위험해진다.

    함정에서는 보급품이나 인원을 육지나 인접 함정으로 긴급히 옮겨야 할 때도 함정 자체를 움직이기보다는 헬기를 띄워 인원이나 물품을 옮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헬기는 바다에 부설된 기뢰를 찾아내거나 기뢰를 부설하는 데도 뛰어나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기뢰전과 소해전(掃海戰) 장비로 채택되었다. 미 해군은 해군에서 사용되는 헬기에 바다(Sea)를 뜻하는 S를 붙여 SH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었다.

    공군도 헬기를 활용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격추됐거나 사고로 추락한 공군기 조종사를 구출해 오는 탐색구조작전(SAR : Search And Rescue)이다.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를 태우고 나오려면 이착륙과 제 자리 비행이 가능한 헬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 헬기에는 사고 조종사를 끌어올리기 위한 인양기(Hoist)가 있다. 이 인양기 때문에 공군이 보유한 헬기는 HH로 시작되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고립된 조종사를 구해오는 부대를 ‘SAR 부대’라고 하는데 SAR는 육군의 특전사, 해군의 UDT 이상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는 특수부대다.

    국내 1000여대 시장 형성

    간단하게나마 헬기 전력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현대전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한국군의 헬기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

    개략적인 숫자만 살펴보면 육군 600여대, 해·공군 100여대로 도합 700여대의 헬기를 갖고 있다. 이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숫자로 한국군의 전력 순위가 세계 12위권인데 헬기 대수는 세계 7위이니, 상대적으로 강한 헬기 전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 한국은 산림청 헬기와 경찰청 헬기, 그리고 소방방재청 헬기 등을 갖고 있다. 또 언론사와 기업체 등 민간 기관에서도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군사용과 민간용을 더한 한국의 헬기 대수는 1000여대인데, 한국은 이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 업체에게 ‘상납’하고 있다. 국내에 헬기 제작업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을 되찾아올 수 없을까. 2000년을 전후한 시기 국방부에서는 헬기 시장을 국내 업체에게 돌리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헬기 국산화에 시동을 건 것이다. 이 사업이 바로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고 하는 KMH사업이다.

    헬기 국산화와 수출을 목표로 시작된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있을까. 복잡한 KMH사업 구조를 설명하면서 하나씩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항공업계에 떠도는 정설 중의 하나는 ‘새로 개발하는 항공기의 손익분기점은 300대’라는 것이다. 300대를 팔 수 있는 시장이 있다면 직접 개발하는 것이 낫고, 그 이하라면 수입이 경제적이라는 이야기이다. 한국은 1000여대의 시장이 형성돼 있으니 헬기 국산화에 도전해볼 만하다.

    2010년쯤이면 우리 군이 보유한 헬기 중 500여대가 작전수명을 다하게 된다. 때문에 국방부는 국산 헬기를 개발·생산해 이를 교체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여러 사람의 책상을 거치면서 2010년 직후 477대의 국산헬기를 개발해 우리 군에 보급한다는 구체안으로 변모하였다.

    그와 함께 국방부는 국산 헬기 기본모델을 개발한 후 기동형과 공격형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베트남전 때 미국 벨사가 UH-1 기동헬기를 토대로 AH-1 공격헬기를 발전시켰듯, 한국 또한 기동헬기를 개발한 후 그 동체를 이용해 공격헬기를 만든다는 안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세계 추세와는 상반된 것이다. 세계 주요국가들은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를 완전 별개로 발전시키고 있다.

    아무튼 한국은 ‘양수겹장’ 전략을 채택했는데, 공격과 기동에 모두 쓸 수 있는 한국형 헬기를 개발한다고 하여 이 사업은 ‘Korean Multi-role Helicopter (한국형 다목적 헬기)사업’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후 KMH는 생존과 성공을 위한 만만찮은 ‘오디세이’에 나서게 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KMH 오디세이(한국형 다목적헬기)’

    공격헬기의 걸작 미 보잉사의 아파치 롱보우(위)와 기동과 공격 겸용으로 개발되다 실패한 코만치 헬기.

    KMH사업이 발표되자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이 최첨단 헬기 개발에 도전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선진국은 저 멀리 앞서가는데 한 세대 뒤진 헬기를 국산화한다고 해서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되겠는가. 수출이 제대로 되겠는가. 좋은 헬기를 외국에서 사다 쓰는 것이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되고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는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았다.

    찬사보다는 비난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기에 막 이륙을 시작하던 KMH사업은 갑작스런 기류 변화를 만난 듯 크게 뒤뚱거렸다. 하지만 올해 초 대통령령에 따라 국방부에 ‘KMH개발사업단’이 결성됨으로써 일단 ‘이륙’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공격헬기 분야를 놓고 새로운 시비가 일어났다. 비판론자들이 ‘KMH 공격헬기는 미국의 AH-64D 공격헬기는 물론이고 독일·프랑스 합작 회사인 유로콥터의 공격헬기인 타이거, 러시아의 카모프 공격헬기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주변국의 전력 증강 때문이라도 한국은 곧 외국에서 고성능 공격헬기를 사와야 할 처지가 될 터이다. 그런데 왜 한 세대 뒤진 KMH 공격헬기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냐’며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이 지적은 KMH의 목표는 물론이고 한국 육군의 지향점을 묻는 질문과 연결된다. 이에 대해 이 사업에 관여하는 국방부의 고위 소식통은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았다.

    “미국 보잉사의 AH-64D 아파치 롱보우는 최고의 공격무기를 탑재한 ‘헤비급’ 공격헬기다. 독·불 합작회사인 유로콥터가 생산하는 타이거 등은 ‘미들급’ 공격헬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KMH 공격헬기는 웰터급이나 라이트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 러시아처럼 대형군을 지향하지 않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보충 설명했다.

    “미 육군은 최고의 공격헬기만 보유하는 ‘하이(high)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나 우리는 최고가와 함께 중저가도 함께 보유하는 ‘하이 로우 믹스(high-low mix) 전략’을 채택했다. 모기를 잡는 데 칼을 뽑아들(見蚊拔劍)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북한군이 보유한 소수의 첨단 전차는 선진국에서 수입한 대형 공격헬기로 부수고, 북한군이 다수 보유한 구식 전차는 KMH 공격헬기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세계에는 아파치나 타이거 같은 뛰어난 공격헬기를 사고 싶지만 ‘얇은 지갑’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우리는 중저가 KMH 공격헬기를 개발해 이들의 지갑을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군은 명품이 아닌 중저가품의 KMH 공격헬기를 30여년 활용해 본 후 여기서 축적된 기술로 미국이나 유럽제에 버금가는 명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제 날기 시작한 새끼 독수리에게 어미 독수리의 위용을 기대하지 말라.”

    이 관계자의 진심이 받아들여진다면 아직 모양도 나오지 않은 KMH 공격헬기의 성능에 대한 시비는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틈새시장을 노려라

    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KMH의 목표점에 대해 비유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공격과 기동을 막론하고 세계 주요 국가가 생산하는 헬기는 2만파운드 이상의 추력을 가지면서 대형화되고 있다. 같은 5인승 승용차라도 과거에는 엑셀을 탔다면 지금은 쏘나타를 타는 것과 같다. 그리고 추력 1만파운드 이하의 소형 헬기도 나름대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중형차 시장과 별도로 티코와 마티스 같은 경차 시장이 확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 보니 과거 주력시장이던 추력 1만2500파운드에서 1만7500파운드대 헬기 시장은 텅 비어버렸다.

    쏘나타류의 중형차와 티코류의 경차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 1500㏄대의 자동차시장이 줄었지만, 요즘 모닝을 비롯해 그 크기의 자동차시장이 새로 형성되고 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우리는 빈 시장을 파고 들겠다는 것이다. 경쟁자가 적은 니치 마킷(틈새시장)을 노려야 세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군은 태생적으로 미국군과 같은 대형군을 지향할 수 없다. 한국 육군이 보유한 국산 K-200 장갑차는 최근 선보인 미국의 경(輕)무장 신속배치군인 스트라이커 여단이 보유한 스트라이커 장갑차보다도 작고 느리며 화력도 떨어진다. 미국군에서는 경장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한국군은 중장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군은 세계를 상대하지만 한국 군은 한반도를 무대로 하므로 다른 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KMH도 가급적 작은 쪽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명품이냐 중저가품이냐의 논쟁도 종식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어 KMH의 국산화율 문제가 일어났다. 항공기를 100% 국산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비경제적이다. 소요량이 많은 일반 부품은 국내에서 개발해도 첨단 장비는 수십 년 동안 개발·생산해온 외국 업체의 것을 사오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다. 어떤 부품을 수입하고 어떤 부품을 국산화할 것인가.

    비용 대 효과 면에서 여러 방정식을 놓고 따져본 결과 국산화율 72%가 ‘최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국산화율 72%로 추력 1만5000파운드급 헬기를 개발하는 데는 2조~2조4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

    헬기 생산에는 국내 업체들이 대거 참여해야 하므로 오래 전부터 산업자원부는 KMH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KMH개발사업단은 국방부 장관 밑에 두지만 국방부와 산자부가 투톱이 돼 이끌어가는 국책사업이 되었다. 두 공격수는 역할을 분담했는데 주공격수인 국방부는 총 개발비의 65%, 부공격수인 산자부는 35%를 부담하기로 하였다.

    기본헬기는 쉽게 기동헬기로 개조될 수 있다. 사업단은 2010년을 기본헬기 개발 완료시점으로 잡고 대당 150억원의 가격으로 기동헬기 299대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2년여에 걸쳐 기본헬기를 공격헬기로 개조하는 작업을 벌인 후 2012년부터는 대당 200억원의 가격으로 공격헬기 178대를 생산하기로 하였다(기동헬기 299대+공격헬기 178대=477대).

    이로써 총 생산비는 8조45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됐는데 여기에 개발비 2조~2조4000억원을 더하면 10조450억~10조445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외화로 환산하면 무려 120억달러이다. 국방부가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내년도 국방예산이 21조4752억원이니, KMH사업비는 한해 국방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창군 이래 최대의 전력증강 사업이었다는 FX(차기전투기)사업비가 5조원(42억달러)이었는데 KMH사업은 그 두 배를 훌쩍 넘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도상(圖上) 가격이고 불변가격으로 작성된 것이라 개발과 생산이 이뤄질 때까지의 인플레를 고려하면 사업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경부고속전철(KTX)사업도 5조8462억원이면 된다고 해서 시작했으나 지난 4월1일 부분개통했을 때 2.2배로 늘어난 12조7377억여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완전 개통되는 2010년쯤이면 3.2배인 18조 4358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KMH사업은 이미 시작 단계에서 KTX 시작 예산의 두 배를 초과하고 있다. 이러니 KMH사업은 창군 이래 최대일뿐 아니라 단군 이래 최대의 전력증강사업이자 국책사업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사업단의 주역으로 참여한 국방부와 산자부는 행정기관이므로 헬기를 개발할 능력이 없다. 때문에 국방부는 항공기 개발 경험이 있는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끌어들였다. 산자부는 산하 연구기관 중에서 항공과 가장 가까운 항공우주연구원(KARI)을 개발단으로 불러들였다.

    이로써 KMH 개발사업단은 국방부와 산자부, ADD와 KARI가 참여하는 ‘한 지붕 네 가족’ 체제를 이뤘다. 여기에 또 한 가족이 추가됐다.

    항공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설계. 비행기는 비행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전투요원 10명의 무게를 지고 이륙해 비행할 수 있는 헬기 모양을 그린 후 남은 공간에 비행에 필요한 장비와 컴퓨터 레이더 그리고 무장을 집어넣는 식으로 설계를 한다.

    때문에 각 부품의 무게와 모양은 전체 설계를 그린 후 결정된다. 방위산업특별조치법에 따라 (주)한국우주항공(KAI)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제작회사로 지정됐으므로 KAI는 KMH의 전체 설계도 작성을 맡아야 한다.

    KAI가 설계도를 그리면 그에 따라 필요한 부품이 결정되는데 이 부품 중 72%는 국내에서 제작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품은 국내에서 제작된 적이 없으므로 ADD와 KARI 같은 연구기관에서 이를 개발해줘야 한다.

    사업단에서는 국내에서 개발해야 하는 핵심부품 34개를 선정해 그중 16개는 ADD, 18개는 KARI가 개발하도록 했다. 그렇다면 연구기관인 ADD와 KARI는 KAI 밑에 와야 하는데, 두 연구기관은 국방부, 산자부와 함께 사업단에 들어가 있다.

    KAI는 사실상의 상전인 ADD와 KARI를 ‘데리고’ 일해야 하는 체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업구조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KAI와 ADD, KARI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면 이 사업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KAI와 ADD, KARI 모두 헬기를 제작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기관은 기술을 보유한 외국 기업과 손잡아야 한다. 부품 제작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도 사정이 마찬가지이므로 관련분야 외국 기업과 손잡아야 한다.

    이로써 KMH사업은 도처에서 외국 기업과 손잡는 ‘제휴 풍년’ 사업이 되었다. 말만 국산 헬기지 사실은 외국 기술로 만든 모방 헬기를 제작하는 사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KMH사업은 사업단에서 부품별로 경쟁입찰을 통해 발주하므로 이 사업에는 수많은 입찰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입찰이 많다보면 능력이 달리는데 사업을 따내야 하는 기업이 나오기 마련이고 이 기업은 뇌물을 써서라도 사업을 따내려 할 것이다. 따라서 능력 없는 기업을 가려내는 검사기능이 강화돼야 하는데 이는 국방품질관리소(국품관)에서 맡아야 한다. 또 뇌물이 오고가는 비리는 기무사 보안처에서 추적해야 한다.

    그런 만큼 KMH사업에서 기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무사 요원들은 기무사측이 자인하고 방산업계에서는 코웃음 칠 정도로 실력이 부족하다. KMH사업 비리를 감시하려면 기무사 요원들은 암호와 같은 용어로 나열된 방산 용어와 계좌 추적 능력을 빠른 시간 내에 확보하여야 한다.

    이처럼 KMH사업은 국내에 축적된 경험이나 지식 없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국방부와 산자부가 이 사업을 프로그램 매니저 방식으로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매니저 방식과 반대되는 것이 턴키 방식인데, 턴키 방식을 이해하면 프로그램 매니저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FX사업은 보잉사가 2008년까지 40대의 F-15K를 제작해 한국 공군에게 납품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한국 공군은 F-15K가 약속한 성능을 발휘하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약속한 돈을 넘겨주고 F-15K와 이 비행기에 시동을 걸기 위해 꽂아야 하는 열쇠를 넘겨받는다.

    한국 공군은 보잉이 F-15K를 만들 때 어떤 회사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부품을 납품받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열쇠를 꽂아 돌렸을(Turn Key) 때 비행기가 이상 없이 약속한 성능을 발휘하면 ‘만사 OK’가 되는 방식을 턴키 방식이라고 한다.

    턴키 방식은 외국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라 국내에 떨어지는 게 별로 없다. 또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은 이와 반대로 진행된다. 이 방식은 비행기를 사는 쪽에서 부품 제작자와 최종 설계자를 선정하는 데까지 일일이 개입한다. 또 선정된 기업에 대해서는 어떤 재료로 만들라는 것까지 간섭한다.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려면 사업 추진자는 이 사업을 꿰뚫어보는 ‘빠꼼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와 산자부는 빠꼼이로서의 능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직간접으로 항공기 개발과 연관된 연구기관인 ADD와 KARI를 끌어들였는데 이로써 부품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기관을 전체 설계를 그려야 하는 KAI 위에 놓는 기형적 구조가 되었다.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은 턴키 방식보다 훨씬 싼 가격에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비행기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그 책임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져야 한다는 것이 약점이다.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은 턴키보다 고단수로 인정되는데, 헬기 개발 역사가 없는 한국은 첫 장부터 고단수 방법을 선택했다. 보잉이나 유로콥터 등 턴키 방식을 기대했던 외국 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이런 결정을 내심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

    ‘반면교사’ 코만치헬기 사업

    요즘 국방부 주변은 KMH와 관련된 각종 입찰설명회로 어수선하다. 설명회가 열리는 호텔은 어김없이 꽉 찰 정도로 업체의 관심이 높다. 그러나 정치권은 17대 국회를 구성하느라 정신이 없고 언론은 전문성이 떨어져 KMH사업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ADD는 그나마 기본훈련기 KT-1과 고등훈련기 T-50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KARI는 중국과 공동개발하기로 한 중형여객기 사업이 무산되면서 작은 경량 항공기를 제작해 보았을 뿐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

    KARI는 KSLV로 불리는 한국형 우주발사체(로켓)와 인공위성 개발에 전문성이 있는 연구기관이다. 그러나 산자부 쪽에서는 항공기에 전문성이 있는 기관이 없다 보니 이 사업에 KARI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KMH사업은 한국이 보유한 최고의 기관과 인재를 끌어 모았지만 그 능력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실력이 달리면 문제 해결이 더디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누구 책임인가’를 놓고 언쟁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그 꿈은 웅대하지만 살얼음 위에서 추진되는 것처럼 그 기반은 취약하기 그지없는 것이 KMH사업인 것이다.

    미국의 코만치헬기 사업은 KMH사업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코만치헬기는 보잉과 시코르스키가 공동으로 기동과 공격 양쪽으로 쓰일 수 있는 추력 7000파운드의 소형 헬기를 만든다는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 기동과 공격 양쪽으로 쓰이는 헬기는 실용성이 적다는 것을 알고 공격기로만 개발했다. 공격 기능이 중시되자 탑재 무장이 늘어나 목표 추력이 1만8000파운드로 높아졌다.

    이 시기 보잉이 대형 공격헬기인 AH-64D 아파치 롱보우를 내놓았다. 그 순간 미 육군의 관심은 ‘걸작 중의 걸작’인 아파치 롱보우에만 쏠렸다. 그보다 작은 공격헬기로 개발되던 코만치는 한순간에 찬밥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소형에서 중대형으로 설계변경까지 하느라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한 코만치사업은 정지되고 말았다. KMH사업이 제2의 코만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수요는 확실, 그러나…

    한국 육군에서 기동부대라 할 만한 것은 기계화보병사단(기보사)인데, 현재 기보사는 다섯 개뿐이다. 한국군 기보사에는 헬기부대가 없다. 때문에 육군은 5개 기보사에 항공여단을 배속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최고 전투부대인 사단에 항공여단을 두는 것이 전투력을 증강시키는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마 KMH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는 5개 기보사의 항공부대에 우선 배치될 것이다.

    해병대는 상륙 이후에는 육군처럼 지상전을 감행하므로 항공여단 창설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KMH는 해병대 항공여단에도 제공된다. 공군의 SAR전대 또한 조만간 HH 헬기류의 수명이 다하므로 KMH 공급을 원하고 있다. 생각외로 KMH를 원하는 부대는 많은 것이다.

    시장이 확실한 만큼 KMH사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단에 참여한 기관간에 호흡이 맞아야 하고, 외국기업과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 물론 10조원의 사업비 내에서 부정부패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고 성공시켜야 한다. KMH는 과연 성공적인 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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