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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PD의 지구촌 현장

1000년 유물 도굴 ·약탈 서방국 장물로 전락

내전으로 유린되는 시리아 문화유산

  •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

1000년 유물 도굴 ·약탈 서방국 장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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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십자군전쟁 당시 이슬람 술탄 살라딘의 공격도 잘 버텨냈던 크락 데 슈발리에 성(城)은 건립 1000년 만인 지난 2012년 5월 시리아 정부군의 포격으로 성채 안쪽 일부가 파괴됐다. 이 성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주인공인 영국군 장교 토머스 로렌스가 “십자군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곳이다. 반군이 이 성으로 숨어들자 정부군은 바로 성을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주민은 “성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군과 반군 양쪽에 사정했으나 거부당했다. 이곳 주민 상당수는 성 주변에서 기념품도 팔고 안내도 해 먹고살았다. 하지만 전쟁 이후 우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성 주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자그마한 식당을 하는데 우리의 생계도 문제지만 1000년을 버틴 유적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 시대에 봐야 한다는 게 너무 슬퍼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시리아 유적의 대표 격인 팔미라의 사정은 더 기막히다. 팔미라 유적들 사이사이 정부군 탱크가 배치됐다. 로마 유물이 있는 지하에 참호를 파고 전투 태세를 갖췄다. 팔미라 기둥 뒤에서 총을 쏘고 엄호하며 반군과 전투를 벌였다. 아직 피해 규모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둥 곳곳에 총탄 자국이 나고 잘못하면 기둥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가전 잦아 피해 키워

한 시리아 고고학자는 정부군의 포격으로 텔셰이크하마드의 고대 아시리아 사원이 파괴됐고 십자군 요새였던 알마디크 성의 망루도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십자군이 쓰던 망루가 시리아 내전에서도 고스란히 망루로 쓰이다 파괴된다는 것이다.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는 알레포에선 우마야드 사원의 첨탑이 무너졌다.



양측은 이 사고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공방을 전투만큼이나 치열하게 벌였다. 시리아 정부의 국영 SANA통신은 알카에다와 연계한 ‘알누스라 전선’이 이 첨탑을 파손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정부 관광부의 한 관리는 “반군이 첨탑 안으로 들어가 주요 시설을 부수고 망루를 만들었다. 그들이 먼저 첨탑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반면 반군은 정부군 탱크의 포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투 중 정부군이 우리를 첨탑 쪽으로 몰았고 수세에 몰린 우리는 첨탑 안으로 피신한 것뿐이다. 이어 첨탑 주변에 정부군의 탱크가 모여들었고 포격을 시작했다. 첨탑이 무너진 것은 우리도 가슴 아프다. 우리 군인들 중에는 전쟁이 나기 전 이 사원에서 안내 일을 하던 사람도 있다. 그러니 어떻게 슬프지 않겠는가….”

어느 측의 말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1000년을 버텨온 첨탑이 파괴됐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유적 훼손이 심해진 것은 유독 시가전이 잦은 시리아 내전의 특징 때문이다.

일반 시민군으로 구성된 반군은 정부군에 비해 화력이 떨어진다. 반군은 정부군 탱크와 헬리콥터에 맞서기 위해 골목이 좁은 구시가에서 교전을 벌인다. 그러다보면 시가 한가운데 있는 유적지가 반군의 주요 거점이 된다. 정부군도 반군과 마찬가지로 구시가에서 가장 큰 사원이나 성채를 거점 삼아 반군에 대응한다. 이런 양측의 격전으로 시내 중심에 위치한 유적지가 남아나지 않게 된 것이다.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치열한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는 2세기쯤 형성된 고도(古都)다. 유서 깊은 이 도시에서 연일 벌어진 양측의 전투로 도시 곳곳이 파괴됐다. 시리아 최대 비잔티움 시대 가톨릭 유적인 성 시메온 성당은 군 훈련기지로 이용되면서 반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마야드 사원의 붕괴 소식도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우마야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200여 개 이슬람 사원 중 가장 크고 유명하다. 시리아뿐 아니라 아랍권을 통틀어서도 매우 크고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사원이 무너진 것은 시리아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시리아 남부 다라 지역에서는 7세기에 세워져 이슬람 역사상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적인 오마리 사원의 첨탑이 포격을 당해 부서졌다. 이 사원은 2011년 2월 시리아에서 민주화 시위가 촉발됐을 때 맨 처음 시위가 일어난 장소로도 유명하다. 그동안 반군의 주요 활동 거점이었다.

‘사람 형상’ 유물 골라 파괴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가 활개를 치기 시작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현재 IS가 수도로 정한 시리아 북부 라카는 고고학 발굴 지역으로, 여기에도 유서 깊은 유적이 산재한다. 1월 말 IS 대원들은 이곳을 수도로 정하자마자 6세기 비잔티움 시대의 모자이크 그림들을 모아놓고 폭탄을 터뜨려 모두 파괴했다. 이슬람교가 금지하는 사람 얼굴 형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2007년, 신화를 소재로 한 이 모자이크 그림들이 발굴될 당시, 고대 로마의 모자이크 제작 기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다 보존 상태도 매우 좋아 전 세계 고고학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라카에 박물관을 지어 모자이크 그림들을 보존하는 방법을 논의했고 지역 주민들은 관광지에서 새로운 일을 찾으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터키의 한 부호가 이곳을 방문해 구매 의사를 타진하고 돌아간 뒤, IS가 이 모자이크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IS는 샤슈 함단에서 로마 시대 공동묘역의 인물 조각상들과 알카토라 지역의 조각상도 폭탄으로 파괴했다. 이유는 같았다. 유물이 사람의 얼굴 모양이라는 것.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IS뿐 아니라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알누스라 전선 반군들도 인간 형상을 한 유물들을 조직적으로 파괴한다. 시리아 문화재 총괄책임자인 마문 알둘라림은 영국 ‘인디펜던트’지 인터뷰에서 “극단 이슬람 세력으로 인해 많은 유물이 위험에 처했다. 내전이 지속될 경우 초기 기독교 시대의 십자가 조각과 로마시대 조각상, 신화 속 신들을 소재로 한 비잔티움 시대 모자이크 그림들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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