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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평등’ 구호, 혼란에 빠진 ‘탈서열화’ 교육 현장

[2020 대한민국 新주류 대해부⑥] 17명 교육감 중 14명 진보, 10명 전교조 출신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요란한 ‘평등’ 구호, 혼란에 빠진 ‘탈서열화’ 교육 현장

  • ● 특목중·고 폐지, 평준화 드라이브 후폭풍
    ● 탈서열화 강조에 “기초학력 평둔화(平鈍化)” 비판도
    ● 중학교는 ‘무시험’, 대입 때는 ‘정시 확대’ 엇박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지난해 11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사고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지난해 11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사고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서울 대원·영훈국제중학교는 7월 30일 각각 홈페이지에 내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을 공고했다.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2021학년도 입학전형이 변경·취소될 수 있다’는 단서를 붙인 상태다. 2009년부터 국제중으로 운영해 온 두 학교가 내년에도 지위를 유지한 채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시교육청은 6월 10일 대원·영훈국제중에 대한 국제중 지정을 취소했다. 설립 취지였던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활동’이 미흡다는 이유에서다. 7월 20일 교육부가 서울시 결정에 동의하면서 두 학교는 내년 일반중 전환을 앞두게 됐다. 원칙대로 하면 10월로 예정했던 2021학년도 신입생 원서 접수를 안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대원·영훈국제중이 교육 당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시작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이들 학교는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존 계획을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두 국제중만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등 서울 8개 고교도 자사고 지위 유지를 목표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1심 결과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소송이 언제쯤 마무리될지 예상하기 힘들다. 8월 10일 추가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받은 서울 휘문고 역시 행정소송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교육감 59% 전교조 출신

2018년 6월 13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뒤 
환하게 웃는 조희연 교육감. 이 선거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곳 교육을 진보 교육감이 총괄하게 됐다. [뉴스1]

2018년 6월 13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뒤 환하게 웃는 조희연 교육감. 이 선거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곳 교육을 진보 교육감이 총괄하게 됐다. [뉴스1]

2018년 6월 전국 17개 시·도에서 동시에 진행된 교육감 선거 당시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 후보들은 공동으로 ‘특권학교 폐지’ 공약을 냈다. 이들은 국제중, 자사고 등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불평등을 심화해 교육의 공공성을 해친다고 봤다. 반면 ‘보수’를 표방한 교육감 후보들은 ‘학교운영 자율화’ ‘교육과정 특성화’ ‘교육 수요자의 학교선택권 보장’ 등의 가치를 감안할 때 특목중·고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맞섰다. 이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대거 당선되며 교육정책의 무게중심이 ‘자유’보다 ‘평등’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6→13→14.’ 



최근 치러진 세 번의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한 진보 교육감 수다. 2010년 최초로 전국 동시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을 때, 당선자 다수는 ‘보수’ 진영 인사였다. 그러나 4년 후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13명 당선되며 판이 바뀌었다. 다시 4년 후 진행된 2018년 선거에서 진보 당선자 수가 한 명 더 늘어, 지금은 17개 시·도 가운데 14곳(82.3%) 교육정책을 진보 교육감이 총괄한다.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신 교육감 수도 꾸준히 늘었다. 2010년 첫 선거 때는 전교조 강원지부장을 지낸 민병희 강원교육감과 광주지부장 출신 장휘국 광주교육감 등 2명만 전교조 경력을 갖고 있었다. 2014년 선거를 통해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8명(47%)으로 급증했고, 지금은 10명(59%)에 달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진보 교육감의 운신 폭은 크게 넓어졌다. 박근혜 정부 임기 때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 교육청이 갈등을 빚는 일이 적잖았다. 2014년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관내 6개 고교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자 교육부가 이 처분을 ‘직권취소’한 게 한 사례다. 서울시교육청은 즉각 법원에 ‘교육부 직권취소 처분 무효’를 구하는 소를 냈다. 약 4년간 이어진 다툼은 2018년 7월 대법원이 교육부 손을 들어주며 마무리됐다. 당시 판결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새로운 교육제도는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시행되고 있는 교육제도 변경은 국가의 교육시책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더욱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공교육의 정상화와 자사고의 바람직한 운영’이라는 공익은 자사고 지정을 유지한 채로 그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2019년 서울시교육청이 다시 관내 8개 고교를 대상으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내렸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교육부가 바로 동의해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개별 자사고가 행정소송을 내자 정부는 관련법규 개정을 통해 자사고의 존립 근거 자체를 없애버렸다. 

과거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91조의3엔 이런 규정이 있었다. ‘교육감은 학교 또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 이를 바탕 삼아 자사고 지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2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이 규정 삭제가 의결됐다. 같은 날 외고 설립의 근거 조항인 동법 제90조 제1항 제6호 또한 삭제가 결정됐다. 시행 시기는 2025년 3월 1일로 정해졌다. 법적으로 보면 이날 이후 자사고와 외고가 모두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김철경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서울 대광고 교장)은 “시행령 조항 삭제만으로 자사고 전체를 한꺼번에 없애는 건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수치”라며 강력 비판했다. 수도권 지역 자사고를 중심으로 한 25개교는 5월 말, 학교의 설립 근거를 강제로 없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공동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강원외고 등 전국 16개 사립 외고도 이후 별도로 헌법소원을 냈다.

시행령 개정으로 특권학교 폐지 완성?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 소속 교장들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반고 일괄 전환 추진에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 소속 교장들이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중구 이화외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반고 일괄 전환 추진에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서는 공교육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시행령 개정만으로 밀어붙이는 게 정당하냐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진보 교육 세력이 ‘평준화’를 강조하며 교육계를 뒤흔드는 사이, 한국 학생 학력은 ‘평둔화(平鈍化·수준이 공평하게 낮아지는 것)’되고 있다”며 “이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교육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 따르면 수학 과목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중학생 11.1%, 고등학생 10.4%에 달했다. 100점 만점에 20점 미만 점수를 받은 학생이 중·고교 모두 10% 이상이라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도 한국 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읽기’ 영역의 경우 2015년 13.6%로 2009년(5.8%)에 비해 두 배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8.1%에서 15.4%로, ‘과학’ 또한 6.3%에서 14.4%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진보 교육감들이 서열화 교육 탈피를 목표로 각종 시험을 폐지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 대부분이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중학교 1학년도 1년 내내 시험을 치르지 않는 게 보통이다. 정부는 2017년 전국 중·고교생 대상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일부 학교만 보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정작 대입에서는 수능 점수 위주의 정시 비중을 늘려 ‘엇박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동아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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