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전세의 기원] 한국 고유 주택임대 문화…세상에 나쁜 전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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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08-04 18: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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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 인천, 원산 지역서 시작

    • 1980년대부터 지금의 형태 갖춰

    • 1989년 임대기간 2년 연장…전셋값 폭등, 세입자 17명 자살

    • 오명과 달리 전세는 한국에서 집 마련 징검다리 기능

    • 외국은 정부 임대주택과 완화된 주택담보대출이 전세 역할

    • 전세 없애도 집값 하락 보장 없어

    전세 매물이 줄어 텅 빈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알림 게시판. [동아DB]

    전세 매물이 줄어 텅 빈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알림 게시판. [동아DB]

    100년 넘게 이어져 온 한국의 전세 제도가 존폐 기로에 섰다. 7월31일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이제 집주인은 섣불리 전세를 놓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세입자의 처지에서도 저금리가 장기화되는 구조 속에선 전세 물량이 줄고 월세 물량이 늘면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보고 있다. 전세가 사라져야 다른 나라처럼 월세 위주의 “정상적 주택 시장이 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반대 분석을 내놨다. 우선 그들은 전세제도에 대해 “현실적으로 목돈 없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한국 고유의 주거문화”라는 데 동의한다. 또한 “딱히 ‘전세’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모기지론이 해외에도 많다”고 주장한다.

    전세는 일제 강점기 잔재가 아니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맺는 모습. [동아DB]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맺는 모습. [동아DB]

    이처럼 오명을 뒤집어 쓴 ‘전세’는 과연 어떻게 한국 주택 시장에만 유독 자리를 잡게 됐을까. 전세는 근대화 이전부터 한반도에 자리 잡은 일종의 주거문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만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전세가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시작됐다고 적시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전당(典當)제도가 조선시대 가사전당(家舍典當)을 거쳐 전세로 발전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제도는 지금의 주택담보대출에 더 가깝다. 

    학계에선 조선 말기 강화도조약 이후를 전세 제도의 시작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한 부산, 인천, 원산 지역에 일본인 거류지가 조성되고 농촌 인구가 급속하게 이동하면서 도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게 그 배경. 

    최초의 전세는 일종의 사금융 형태였다. 부산과 인천, 원산 지역의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집값이 치솟았다. 돈을 빌리지 않고서는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목돈이 없던 서민들은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일부 집주인들은 예비 세입자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세입자는 주택 가격의 일부를 빌려주는 대신 그 집에 집세를 내지 않고 살게 됐다. 전세제도를 일제의 잔재로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화도조약이라는 배경 탓이었다. 전세와 일제 강점기는 공교롭게도 그 시발점이 강화도조약으로 겹친다. 



    당시에도 전세계약은 공증을 받았다. 박신영 한국토지주택공사(당시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이 2000년 발표한 ‘주택전세제도의 기원과 전세시장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말기(강화도조약 이후)에는 전세계약 문서를 관문서인 ‘가계(家栔)’에 기록했다. 조선 말기의 전세는 세입자가 채권자이므로 전세도 자유롭게 양도가 가능했다. 집주인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집을 팔지도 못했다.

    일제 강점기 거치며 무너진 세입자 권리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전세 세입자의 권리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민사령’을 기점으로 전세금을 임대료로 보기 시작했다. 조선민사령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게 적용되는 민사사항을 규정한 법률이다. 이때부터 임대인에게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조선민사령에 따르면 전세권을 양도하려면 세입자가 집 주인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세입자의 권리는 1943년 6월 23일 조선고등법원 판례로 한 번 더 무너졌다. 집주인이 전세 계약이 끝나지 않더라도 집을 팔 수 있게 됐다. 새 주인과 다시 전세 계약을 맺지 않는다면 세입자는 그대로 쫓겨나게 됐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세입자의 권리가 크게 약화된 것도 전세가 일제의 잔재라는 오해를 낳은 또 하나의 원인이 됐다. 이후 미군정기인 1949년 민법이 제정되며 집주인이 집을 팔아 전세 계약 중 세입자가 쫓겨나는 일은 없게 됐다. 이후 1958년 민법 개정으로 6개월의 최소임대기간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지금의 전세 제도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긴 뒤부터다. 세입자 보호를 위해 최소임대기간을 1년으로 뒀다. 이후 1989년 2년으로 연장했다. 올 7월 31일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됨으로써 임대 기간은 최소 4년으로 연장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세입자가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추가로 2년의 계약 연장을 보장한다. 임대료 상승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안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상한을 정하게 된다.

    1989년 임대기간 2년 연장…전셋값 폭등, 세입자 17명 자살

    전세제도에 손을 대면 단기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임차인이었다. 정부 규제가 시행된 이후에는 임대 계약 변경이나 전셋값 인상이 어려워진다. 일부 임대인들은 규제 직전에 전셋값을 올린다.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최소 임대기간이 2년으로 늘자, 전셋값이 큰 폭으로 올랐다. 법이 시행된 1990년에는 전셋값을 낼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입자만 17명이었다. 

    같은 해 4월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다가구 주택’ 규모와 세대수 상한을 완화했다. 서울이나 도심지 골목 사이사이 들어선 크고 작은 다가구 주택은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사후약방문을 택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이틀 후인 8월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도권에 13만2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용민 강남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있을 때마다 전셋값은 항상 큰 폭으로 올랐다. 세입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저렴한 임대주택을 법 개정 이전에 준비해야 했다. 이 같은 안전장치가 없다면 당장 높아진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는 갈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여당 일부 의원들은 전세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 위주로 주택 시장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8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나쁜 현상이 아니고 매우 정상”이라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은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월세 전환은 어쩔 수 없다. 지속해왔던 현상”이라고 발언했다. 이들은 미국, 일본 등 해외 시장에는 전세가 없다는 점을 짚는다. 한국의 전근대적 상황 때문에 생긴 ‘전세’라는 제도를 이제 천천히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세는 한국만의 것…외국은 임대주택, 주택담보대출

    전세는 한국적 상황에서 그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전세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민들이 집을 사기 전 거치는 중간단계의 역할을 해왔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가 나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전세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보통 목돈을 모아 전셋집을 구하고, 자본금을 차차 늘려가며 집을 산다”라고 말했다. 

    전세를 없애고 월세를 늘리면 외려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은 커진다. 일례로 강북구 번동주공4단지 아파트 전용면적 44㎡의 전세 시세는 약 1억4000만 원. 월세는 보증금 1000만 원에 매달 60만 원을 내야 한다. 1000만 원을 들고 전셋집을 구한다면 1억 3000만 원을 은행에 빌려야 한다. 현재 시중 은행의 평균 전세대출 금리는 2.5%. 매달 27만 원만 내면 된다. 

    외국에는 한국의 전세와 똑같은 제도는 없다. 남미 볼리비아에 비슷한 제도인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가 있지만 세부내용이 다르다. 세입자도 집주인처럼 재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전세 계약도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계약 내용도 다르다. 안티크레티코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갚지 못하면 주택 소유권은 세입자에게 자동 이전된다. 게다가 전체 주거 형태 중 안티크레티코는 3.5%로 소수에 불과하다. 

    전세 대신 외국에는 정부 지원 임대주택과 주택담보대출 제도가 있다. 정부지원 임대주택은 일종의 정부 저소득층 지원책이다. 민간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4~8년간 빌릴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는 정부지원 임대주택을 이용하는 가구의 비율이 각각 32%, 24%를 차지한다. 

    주택담보대출은 외국에도 있는 제도이지만 집값 대비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상한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현행법상 한국은 50%이지만 외국의 경우는 집값의 20~30% 금액만으로도 집을 살 수 있는 구조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집값의 100%를 빌릴 수 있다. 미국은 80%, 싱가포르는 집값의 75%를 빌릴 수 있다. 한국보다 LTV 상한선이 낮은 국가는 중국의 일부 지역뿐으로, 베이징, 광저우, 선전, 선양이 LTV 상한선을 30~35%로 제한한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주택담보대출 상품도 있다. 일본주택금융기관(Japan Housing Finance agency-JHF)은 ‘FLAT35’라는 장기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운영한다. 35년간 고정금리로 집값의 최대 80%까지 빌려준다. 100%까지도 빌릴 수는 있지만 금리가 더 오른다. 소득요건에 대한 제한도 없어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전세 줄어도 집값 안 떨어진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정치권 일각에선 전세제도 자체가 집값을 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준금리 0.50%의 저금리 시대에 전셋값으로 거둘 수 있는 이자 수익은 월세에 비해 적은 데 비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 목돈이 없는 집주인들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심교언 교수는 이에 대해 “집값 안정을 위해 전세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위험한 시각이다. 전세가 줄어들어도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월세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 기업에서 부동산 투자를 늘릴 공산이 높다. 그간은 주택 임대 시장이 전세 위주라, 기업형 월세가 생산성이 없었지만 전세가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국 수요는 크게 줄지 않으니 주택가격이 떨어질 것이라 낙관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용민 교수는 “2012~13년 주택 가격이 떨어졌을 때처럼 시장에 주택을 싼 값에 내놓는 사람이 늘며 자가 주택의 비율이 늘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주택담보대출도 막힌 상황이다. 각종 규제로 임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전세나 저렴한 월세 임대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것이 집값 안정이나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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