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징계? ‘구국의 강철대오’ 멘털리티
조국통일·혁명 등 추상에 집착하면 위험한 결과 낳아
민주화를 대학생 피땀으로 일궈? 민중 배제 논리
박정희에서 김일성으로 고개만 싹 돌린 주사파
과도한 도덕적 정당성과 확신이 386 발목 잡아
‘5·18 왜곡처벌’ 법안? 유럽에선 극우가 내는 법안
임종석, 진짜 혁명가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수령론’에 젖은 386, 일상 민주화 가능할지…
[조영철 기자]
소장인 임지현(61·사학과) 교수는 손때 묻은 몇 권의 책을 쥔 채 기자를 맞았다. 그와 386세대에 관해 얘기해 보고 싶었다. 이 세대가 권력층 곳곳에 똬리를 튼 후 그 주제는 마치 벌레처럼 꿈틀꿈틀 기자의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역사가의 혜안을 빌리기로 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다 보면 아스라이 해답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386세대 안에서도 ‘헤게모니’를 쥔 쪽은 NL(민족해방)계열이다. 임 교수는 민족주의의 맹점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였다. 20세기 끄트머리에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를 집필해 지식 사회에 지진 같은 논쟁을 일으켰다. 21세기 초입에 ‘우리 안의 파시즘’을 공저했다는 사실도 언급해 둬야겠다.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전체주의’ 같은 거북살스러운 낱말이 들러붙기 시작한 마당이다. 일찍이 ‘이념의 진보성과 생활의 보수성’을 화두로 삼아온 임 교수가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조국 백서’와 클리셰
인터뷰는 계획에 없던 소재로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전날인 8월 5일. 조국백서추진위원회가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이하 ‘조국 백서’)을 출간했다. 이야깃거리로 삼을 게 있을까 싶어 살펴보니 33쪽에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임 교수에게 있는 그대로 읽어줬다.“예로부터 지배 세력 내의 개혁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 존재 자체에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중략) 어느 시대에나 ‘반개혁 세력’은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문제 삼아 개혁 세력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했다.”
- ‘조국 백서’ 필자들이 역사를 끌어들였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등 혁명가들도 부르주아 계층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 해석처럼 읽히더군요.
“마치 클리셰(cliché·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처럼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나는 회의적이에요. 난 사실 강남좌파라는 말에도 회의적이에요. 지식인의 포지션은 카를 만하임이 얘기했듯 그가 서 있는 계급적·물질적 기반이 아니라, 그가 어느 편에 서기로 했느냐에 따라 결정돼요. 만약 조국 씨가 ‘나는 기득권층 편에 서겠고 기득권층이 누려왔던 삶의 방식을 추구하겠다’라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자신을 늘 억압받는 자, 없는 자들의 편이라고 해놓고 실제 삶의 방식은 그들(억압받는 자들)을 배제하는 사람들의 방식과 같았잖아요.”
- 강남좌파라는 말에는 왜 회의적인가요.
“재벌 아들은 좌파가 될 수 없나요? 노동자는 전부 좌파인가요? 강남좌파라는 용어 자체가 속류(俗流) 마르크시즘이에요. 그 사람의 물질적 기반이나 계급적 이해로 (문제를) 환원해 버리니까요.”
- 조 전 장관이 강남좌파건 아니건 본인이 위치 지었던 것과는 상충하는 행위를 보여 문제라는 뜻이네요.
“혁명가건 정치인이건 성인군자가 아닌 세속적 인간이에요. 말과 행동이 100% 일치하지는 않겠죠. 문제는 그 일탈에 대해 취하는 자세입니다. ‘자식 키우는 사람으로서 잘못했다’ 정도의 얘기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없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마치 반(反)개혁 세력의 음모인 것처럼 몰고 갔잖아요.”
- 조 전 장관은 ‘조국 백서’를 발송받은 이후 페이스북에 “서초동의 촛불을 생각하며 지금부터 읽겠다”고 적었습니다.
“나는 서초동 집회에 나가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서초동의 촛불과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은 다르지 않나요? 그런 식으로 촛불을 전유(專有)하는 거죠.”
그는 서강대 77학번이다. 소싯적에는 삐라도 적잖게 뿌렸다. “386세대에 비하면 아마추어였다”고 겸양을 보였지만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곤란하다. 운동권 ‘언더서클’에서 활동하다 무기정학까지 당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가계도(家系圖)는 범상치 않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임원근(1899~1963) 선생이 그의 조부다. 임 선생은 박헌영·김단야와 함께 조선공산당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 때문에 그의 집에도 정보과 형사들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연좌제의 공포가 청춘의 삶을 휘감았던 거다. 얘기는 다시 386 세대로 돌아간다.
볼셰비키와 ‘포위된 요새’
- 조 전 장관 등 386세대에게는 자신들이 ‘포위된 요새’에 있다는 인식이 있는 듯합니다.“‘포위된 요새’ 신드롬은 러시아혁명 직후 볼셰비키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인식이에요. 자기네가 사회주의혁명에 성공했는데 제국주의 열강이 러시아를 포위해 혁명을 질식시키려 하니 살아남으려면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였어요. ‘진영론’이 그렇게 나온 겁니다. 볼셰비키 혁명 초기에 언론이 누리던 자유는 ‘포위된 요새’를 살린다는 이유로 제한됐어요.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당이 우위를 점했습니다. 당이 명령하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사적 이해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주의가 만들어진 심리적 기반이 ‘포위된 요새’ 신드롬이에요.”
- 지금 한국 사회에서 보고 있는 풍경 같습니다.
“볼셰비키는 포위됐다고도 얘기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사람(386세대)들은 국회 다수파이자 청와대 권력까지 잡고 있어요. 그런데도 ‘포위된 요새’라고 생각하면 무능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포위됐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죠.”
그의 머릿속에서 볼셰비키와 386세대는 작지 않은 크기의 교집합을 형성한다. 그의 설명을 더 듣다 보면 기시감(既視感)마저 든다.
“볼셰비키는 합법 정당이 아니니 지하에서 활동했어요. 5공 시절 학생운동이나 좌파운동도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죠. 지하운동한 사람들은 최대주의(maximalism)의 정서를 갖고 있어요. 레닌이 1부터 100까지 이야기했으면 1부터 100까지 모두 레닌을 따라야 ‘레닌주의자’라는 겁니다.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가령 ‘나는 노무현에 한 표 던졌던 사람이지만 행정수도 이전이 중앙 집중을 해소하는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반동이 되는 겁니다. 386세대가 19~20세 때부터 운동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정서가 몸에 배어 있으면 협상이나 타협을 비겁한 일로 생각합니다. 1부터 100까지 내가 옳다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스스로가 너무 정의로운 거예요.”
- 본인들이 설정한 ‘정의’가 따로 있다는 인식인가요.
“1990년대 소련이 무너진 뒤 폴란드에 가서 노동자들을 만나 물었더니 ‘사회주의는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가 노동자·농민을 억압하는 체제’라고 정의하더군요. 내가 무서워하는 건 이 친구들(386세대)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계속 보이면 현실 사회주의가 그랬듯 사람들이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아파트값이 올라 서민들이 아파트를 살 수 없게 된다’라고 인식하지 않겠어요? ‘좌파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든다’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훗날 더 창의적이면서 더 인간적인 얼굴을 한 좌파의 기획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겠죠.”
금태섭? 너 왜 우리 결정 안 따라?
임지현 교수 뒤에 있는 사진들은 독일 사진작가 한스 벤첼이 1930년대 독일 동부에서 찍은 ‘집시’의 모습이다. 이후 ‘집시’는 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다. [조영철 기자]
“로자 룩셈부르크가 레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글이 있어요. 중앙집중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었죠. 볼셰비키는 로자의 주장이 러시아혁명을 질식시키려는 ‘부르주아 적’들을 도와줄 뿐이라고 했어요. 실제로는 68혁명 이후 서유럽에서 민주적 좌파라는 새로운 대안그룹이 나타날 때 로자의 주장이 이론적 자산이 됐죠.”
-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민주당의 금태섭 전 의원 징계 논란이 떠오릅니다. 당내에서 쓴소리하는 사람의 존재가 장기적으로는 민주당에 자산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금 전 의원 징계 조치에서 보다시피 말도 안 되는 짓을 자꾸 하고 있잖아요. 실은 금 전 의원 같은 사람이 장기적으로 민주적 좌파의 예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죠. 그런 대안적 가능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굉장히 우려스럽죠.”
- 역사에서 보면 권력 내부에서 대안적 목소리를 쳐냈을 때 몰락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자기 구덩이를 파는 거죠.”
그는 “전대협 간부 수련회 하는 거 보니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 완전히 군대 유격대 훈련 같았다”고 일갈했다.
- 슬로건이 ‘구국의 강철대오’였지요.
“정치는 강철대오가 되면 안 돼요. 내 생각이 맞나 틀렸나 끊임없이 검증하고 타협도 하는 게 정치잖아요. 386세대의 멘털리티는 아직도 구국의 강철대오죠. ‘금태섭? 너 왜 우리가 위에서 결정한 걸 안 따라?’ 이런 식이죠. 그들이 속했던 운동권 조직이 비공개 조직이어서 그래요. 공개 조직 같았으면 감사도 있었을 테고, 시스템에 의해 문제가 걸러졌을 거예요. 하지만 지하조직이니 예컨대 누구한테 돈 줬는지도 이야기하면 안 됐잖아요.”
- 수개월 전 ‘정의연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문제의식이네요.
“이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20대부터 10~15년을 비공개 조직에서 활동하며 몸에 밴 문화입니다. 공개 조직에 나온다 한들 떨쳐버리기 어렵죠. 내 친구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갑근세(갑종근로소득세)를 냈던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 말합니다. 월급쟁이가 돼보거나, 일상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죠.”
- 이른바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다못해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해 본 것도 아니죠. 배우자는 했지만 본인들은 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돈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모릅니다. 회비 납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걸 얼마나 엄격히 관리해야 하는지 훈련받을 기회가 없던 겁니다.”
- 거슬러 올라가면 반독재 민주화운동 시절 도피하는 사람에게 돈 대주는 경우가 있었지요. 민주화 이후에도 그와 같은 행동이 미담으로 회자됐고요.
“엄밀히 따지면 탈세잖아요. 정치범이 있으면 원로들이 돈 몇 천만 원씩 주곤 했지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경우만 해도 그런 일이 꽤 있었죠.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386세대)이 일상생활에서 돈 벌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정책에도 감이 없다는 겁니다.”
이인영과 立身揚名
386세대는 민주화 세대를 자처한다. 이 낱말에는 또렷한 ‘구별 짓기’ 욕망이 엿보인다. 자신들은 가치와 당위를 좇아 헌신해 살았다는 선민의식이 이들의 감수성을 지배한다. 지금은 국무위원이 된 이인영(56) 통일부 장관은 “우리의 정치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꾀하거나, 권력과 명예를 개인화하기 위해서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386 기득권론이 회자된다’는 질문을 던졌을 때다.(‘신동아’ 2019년 12월호 참조)- 이 장관은 입신양명을 꾀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떤 선민의식이 느껴집니다만.
“386세대의 진정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68혁명 때 나온 유명한 격언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였습니다. 무엇이 정의냐를 따지고 분석하는 힘이 약할 때 조국통일이나 혁명 같은 추상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이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차라리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문제가 크지 않았을 거예요.”
- 어떤 면에서요.
“개인이 입신양명한다고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요.”
-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덜 든다?
“그렇죠. 그런데 정의로운 길이라면서 추상적이고 거의 종교적 믿음 같은 것을 추구하니까 부동산 문제가 빚어지고 남북 문제도 파탄 났지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만든 정책이 비정규직을 (노동시장 밖으로) 몰아냈어요. 강사법이 강사를 보호하고 있지 않잖아요. 의도는 선했겠지만 진짜 지옥으로 가는 길을 포장하고 있는 거예요.”
최근 난데없이 사상검증 논란이 빚어졌다. 7월 2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이인영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리에서다. 이날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아직도 주체사상 신봉자냐 아니냐. 이를 밝히는 것이 무엇이 어렵나”라고 물었다. 이 후보자는 “우리나라에서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건 북한과 남쪽의 독재정권 시절뿐이었다”라고 반박했다.
기자가 주목한 건 논란에 덧붙이는 여권 인사들의 발언이었다. 그 안에 비할 데 없는 도덕적 우월감이 짙은 자국처럼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청문회 자리에 있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 후보자와 같이 독재 시절 수많은 청년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김부겸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인영이 없었다면 태영호가 국회에 설 수 있었을까?”라고 썼다. 윤 의원과 김 전 의원의 발언을 전하며 임 교수와 대화를 이어갔다.
- 물론 사상검증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만….
“하지 말아야죠.”
- 그럼에도 여권 인사들의 발언에서는 역사적 자부심마저 느껴집니다.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이 땀 흘린 대가로 민주화의 물적 기반이 만들어졌어요. 그들의 발언은 전형적으로 민중을 배제해 버리는 논리입니다. 또 태영호라는 사람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탈북자잖아요. 일종의 난민입니다. ‘너는 와서 우리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얘기 아닌가요? 마치 한국의 우파가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왔을 때 ‘왜 쟤네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주장한 멘털리티와 어떻게 다를까요?”
-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문정복 민주당 의원은 태 의원을 두고 “변절자의 발악으로 보였다”고까지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위험한 인식이에요. 그런 멘털리티가 있으니 금태섭 씨도 변절자라고 보는 겁니다. 모든 독재는 적과 아군을 나누는 데서 시작합니다.”
다수가 결정해 소수 죽여도 민주주의인가
그는 삐딱한 사람이다. 기자의 인상 비평이 아니라 임 교수 본인의 자기규정이다. 심지어는 자신을 “삐딱한 것에 대해서도 삐딱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삐딱함은 정의와 민주를 하나의 ‘레테르’로 독점한 그룹을 꼬집기에 제격이다.- 최근 민주당은 ‘다수결의 논리’를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앞세우는 모습입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평범한 독일 사람 다수가 찬성했어요. 물론 죽이는 데까지 찬성하진 않았지만 반유대주의 조치를 조금씩 인정하고 모른 척했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죽이기로 결정하면 민주주의니까 옳은 건가요?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할 때, 그 결정이 다수에 의해 이뤄졌어요. 그걸 민주주의라고 박수 쳐야 하나요? 미국에서도 백인 이주민 공동체가 민주적일수록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가장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다수가 결정했다는 것이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아무 주저 없이 선주민을 학살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임 교수가 요새 주목하는 현상이 ‘청와대 국민청원’이다. 그의 우려다.
“모든 걸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5000만 명 중에 20만 명이 사인하면 그것이 국민의 뜻이 돼버리는 상황이에요. 어떤 문제를 정해진 법적·행정적 절차에 의해 해결하는 게 아니라 국민 청원으로 해결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죠.”
기실 386세대와 대화하다 보면 시곗바늘이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갈 때가 많다. 자신이 대학 시절 어느 그룹에 속했다느니, 어떤 논쟁을 펼쳤었다느니 등 나름의 일화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여의도 386’뿐 아니라 ‘생활 386’이라 불리는 1960년대생 상당수에게서 엿보이는 습성이다.
- 386세대는 대학 졸업 후 30년이 지나서도 NL이니, PD니 말하며 계보를 따지더군요.
“그건 이데올로기와 아무 상관없어요. 갓 고등학교 졸업해 NL과 PD에 대해 얼마나 알았겠어요. 노선의 차이는 굳은 신념에서 비롯하기보다 고향 선배, 학교 선배 등 우연에 의해 생겨납니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에요. 폴란드 혁명사를 연구하며 노동자들의 수기를 읽어보니 ‘우리 고향 선배가’라는 말이 나와요.(웃음) 문제는 이 사람들(386세대)이 나이가 들어가는데 여전히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 거지. 이념·혁명·도덕적 정당성의 문제라기보다는 패밀리즘(familism)이죠.”
- 앞 세대가 지역으로 뭉쳤다면 그들은….
“패밀리로 뭉친 거지. 이념으로 뭉친 집단처럼 보이나 실은 어릴 때 만들어진 운동 패밀리의 끈끈한 의리로 뭉친 그룹이죠.”
- 다른 데서 “박정희 정권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이들이 민족주의자로 길러졌다가 대학 때 김일성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표현했던데요.
“나는 NL 주체사상파를 한 번도 좌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내셔널리스트들이죠. 1968~1969년 즈음부터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지고 국사 과목이 강화되는 등 민족문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어요.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생겼죠. 박정희 프로젝트입니다. 즉 386세대는 중·고등학교 때 민족주의적인 교육을 받았죠. 그런데 대학 들어와서 보니 박정희는 만주국 장교이고 김일성은 일본군과 싸웠잖아요.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김일성에 두는 겁니다. 사유 방식이 나이브하잖아요. 민족주의의 에피스테메(episteme·인식체계)는 둔 채 고개만 싹 돌려 김일성주의자가 됐죠. 박정희식 국민 훈육의 흔적이 1980년대에 주사파로 나타났지요.”
왜 임종석은 부끄러움이 없나
2018년 12월 31일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관련 현안으로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 여당이 5·18에 대한 왜곡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놨습니다.
“그럼 앞으로 모든 역사적 판단은 판사들이 하는 거지. 메모리 로(memory laws)는 유럽에서는 극우파들이 만드는 법이에요. 좌파라고 하는 민주당이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 극우 세력이 만드는 법을 들여와서 모델이라고….”
- 386세대의 눈에 비친 민중은 어떤 존재일까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민중이 민중이지(웃음). ‘민중은 이래야 한다’고 설정해 놓고 만약 그들이 통합당에 표를 던지면 민중이 아닌 게 되는 거죠.”
- 386세대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요.
“민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양심을 갖춘 집단이 등장한 건 한국 사회가 앞서가는 하나의 징표였겠지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너무나 큰 도덕적 정당성과 자기 확신을 갖게 됐어요. 이것이 현실정치에서 자기 발목을 잡았어요. 임종석 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할 때 국회에 나와 ‘우리가 운동할 때 의원님은 뭐 하셨느냐’라고 하는 그 당당함이 위험한 거죠.”
그가 꺼낸 일화는 이런 것이다. 2017년 11월 6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임 당시 비서실장은 청와대 참모 상당수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전희경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의원님이 거론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의원님이 말씀하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답했다.
- 임 전 실장은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말했죠.
“임종석 씨가 통합당 의원과 비교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당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먼저 죽은 친구나 공장에서 산재로 죽어가는 동시대 사람들,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 비해 정말로 하나도 부끄럽지 않나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부끄러움이 가지는 해방적 역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거예요. 진짜 혁명가이자 좌파라면 오히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렇다면 지금 정의하고 있는 좌파는 무엇인가요.
“소수자의 편에 선다는 게 중요해요. 좌파가 다수가 됐을 때는 우파가 좌파죠.”
-우파가 소수자니까요?
“그렇죠. ‘한번 좌파는 영원한 좌파’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세상이 끊임없이 바뀌는 과정에서 늘 소수자에 대해 고민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좌파입니다. 또 지금까지는 제도적·정치적 민주주의만 강조해 왔는데 일상의 민주화가 중요합니다. 386세대의 풍토에는 운동의 효율성을 위해 나온 ‘수령론’이 있잖아요.”
크렘린궁의 레스토랑
- 서로를 의장님이라고 불렀죠.“동급생끼리도 학생회장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학생회장은 서비스하는 사람이지만 ‘님’이 되는 순간 두목이 됩니다. 민주당의 386세대는 그런 문화에 젖어서 큰 친구들인데 스스로를 민주화할 수 있을까요? 안 될 겁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건 쉽습니다. 도리어 일상에 뿌리박힌 문화를 바꾸려면 더 많은 노력과 성찰이 필요해요. 그것은 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당당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할 수는 없습니다. 조국 씨에게 가장 아쉬운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직후 레온 트로츠키가 크렘린궁의 한 레스토랑에서 레닌과 식사를 했다. 트로츠키는 ‘이런 곳에서 웨이터에게 서빙받으며 밥 먹으려고 혁명한 게 아닌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임 교수는 이를 두고 “불현 듯 자신이 너무 권력화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라 설명했다. 386세대가 트로츠키의 성찰을 되새겨 볼 시점이다. 성찰 없는 혁명은 맹목(盲目)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