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신평의 ‘풀피리’⑤

로스쿨은 조국 같은 진보귀족이 설계…무능‧탐욕의 상징

로스쿨이 뿌리는 재앙

  • 신평 변호사·㈔공정세상연구소 이사장 lawshin@naver.com

    입력2020-09-1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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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 실력 저하 근간에 로스쿨

    • 교수 편의만 맞춘 ‘얼치기 교육’

    • 자식들 위한 사악한 의도 반영

    • 로스쿨 안 나와도 변호사시험 치를 수 있어야

    *19대 대선 당시 신평 변호사(64·사법연수원 13기)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서 ‘공익제보 지원위원회’ 위원장과 ‘민주통합포럼’ 상임위원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여권을 향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지식인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11월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출입구. 필자는 “한국 로스쿨은 조국 교수와 같은 진보귀족들이 설계했다”고 일갈했다. [뉴스1]

    2019년 11월 1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출입구. 필자는 “한국 로스쿨은 조국 교수와 같은 진보귀족들이 설계했다”고 일갈했다. [뉴스1]

    의사 파업이 의대 졸업생들의 국시 거부라는 불씨를 남기긴 했어도 다행히 봉합됐다. 격렬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파업에 반대하는 쪽은 의사 파업이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의사 쪽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어쩌면 이번 파업은 의사들이 제몫을 더 챙기려는 목적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작용한 결과라는 짐작이 들었다. 이 문제는 내 전공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의사 파업을 놓고 맹렬히 의사들을 비난하는 사람 중 일부는 ‘로스쿨 제도를 만드니 지금 얼마나 변호사 접근성이 좋아졌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자의 동기 역시 자기 밥그릇을 늘리려는 것’이라고 몰아붙인다. 

    로스쿨 도입 후의 현실이 그와 같은 사람의 주장과 같지 않다는 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는 로스쿨 교수 시절 법원 고위직을 지낸 선배 변호사가 “요즘 법원이 이상해졌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나는 한국의 로스쿨 제도에 강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드디어 그 폐해가 일선 현장에서 발생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다만 내가 직접적인 이해를 가진 사안이 아니니 무심히 흘렸다.

    들쑥날쑥 로스쿨 교과과정…얼치기 교육

    1~8회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 합격률. [동아DB]

    1~8회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로스쿨 합격률. [동아DB]

    로스쿨 교수를 명예퇴직하고 2018년 하반기 변호사 개업을 했다. 소일거리 삼아 사건을 조금씩 처리하다보니 그 선배의 말이 무섭게 다가왔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입증책임의 문제를 판사 중 일부가 너무나 가볍게 넘어간다는 점이 문제였다. 



    영미법계 국가의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례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법계 국가의 재판에서는 입증책임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그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재판에서 지는 것이다. 각 나라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제도를 형성해왔으니 함부로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스템이다. 

    대륙법계 국가의 입증책임은 현실의 사실을 관념적으로 나눈다. 원고가 입증해야 하는 요건사실, 피고가 입증해야 하는 항변사실, 나아가 원고의 재항변, 피고의 재재항변사실 등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로스쿨 교과과정은 거의 순전히 로스쿨 교수의 편의에 맞춰져 있다. 들쑥날쑥해 일정한 방향성을 결여하고, 때로는 로스쿨 학생들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다. 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교과과정을 차례로 이수해야 제대로 된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에 관해 어떤 지침도 주지 않는다. 오직 로스쿨 교수들이 나열하는 일방적인 수강 과목만 제시된다. 학생들은 리스크(risk)를 모두 떠안은 채 과목을 스스로 정한다. 

    나는 한국 로스쿨 제도의 교과과정을 비판한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이라는 책에서 이 점을 많이 거론했다. 일본의 로스쿨은 학생들이 밟아나갈 ‘표준교과과정’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안심하고 이를 따르기만 하면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을 쌓아나갈 수 있다. 독일에서는 수강과목을 심지어 법률로 정해놓기까지 한다. 

    교과과정이 뒤죽박죽인 한국의 로스쿨에서는 입증책임에 관한 교육을 거의 포기했다. 각 과목마다 판례를 제시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한 마디로 말해 얼치기 교육이다.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부모나 조부모를 둔 로스쿨생이라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괜찮은 로펌에 취직해 실무과정을 거쳐 좋은 법조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판결문 썼는지

    이런 로스쿨을 졸업한 판사들이 쫙 법원에 깔리며 자연히 입증책임의 문제는 그 중요성이 간과된다. 판결문을 읽어보면 과연 이 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와 같은 서술 구조의 판결문을 태연히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데 로스쿨 교육 탓에 관련 대법원 판례는 부지런히 판결문에 삽입한다. 때로는 그 사건과 상관없는 판례를 아무 부끄러움 없이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삽입하기도 한다. 얼굴이 어쩌면 이렇게 두꺼울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판국에도 일부 판사는 정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한다. 판사 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역할을 맡아 올바르게 재판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어느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준비서면을 낼 때마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석명준비명령을 낸다. 명령 안에는 관련 판례까지 거시(擧示)한다. 이렇게 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판사를 해본 입장에서 잘 안다. 판사들의 고귀한 노력에 의해 현재 간신히 우리 법원이 지탱되는 형국이다. 

    거기에다 무시로 닥치는 거친 여론의 압력, 이에 편승한 정치인들이 내뱉는 얄팍하고 험한 말들이 판사들의 사기를 죽인다. ‘이런 욕먹고 내가 왜 아등바등 재판에 전념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에 젖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법원은 그렇다 치고 검찰도 사건처리 과정에서 로스쿨이 뿌리는 재앙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만난 일본의 신참 판사와 중견 판‧검사들은 하나같이 “로스쿨을 나온 사람들이 기존 판‧검사와 비교해 능력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제도더라도 일본과 한국의 로스쿨은 큰 차이를 보인다. 전반적으로 고사(枯死) 과정에 있는 우리 법학계를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그 재앙의 정도와 범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두드러질 테고, 궁극에는 국가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다.

    조국 교수와 재앙의 검은 비

    한국 로스쿨은 조국 교수와 같은 진보귀족들이 설계했다. 설계 과정에서 본인들과 본인 자식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사악한 의도를 제도에 반영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 로스쿨은 그들의 무능과 탐욕, 이기심의 상징으로 남았다. 진보귀족들이 만들긴 했으나, 보수건 진보건 로스쿨을 중심으로 합일돼 한국 사회 최대의 기득권세력이 형성됐다. 이들이 로스쿨의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 앞에서 완강하게 버틴다. 

    로스쿨이 뿌리는 재앙의 검은 비는 우리 사회에 방사능 낙진처럼 달라붙어 잘못된 재판과 수사에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그 피해는 엄청나다. 현재뿐 아니라 국가의 장래에도 검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이다. 정책 당국은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 기득권 세력의 모질고 질긴 이기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헝클어진 로스쿨 제도의 개선을 진지한 자세로 모색하기를 바란다. 실현되지도 않는 허황한 설립 취지만을 여전히 내세우며, 비참한 현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일본처럼 ‘표준교과과정제’를 실시해 교과과정을 충실히 하라. 이것만 실시해도 로스쿨의 면목을 일신한다. 이는 등록금의 대폭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면 경제적 중‧하위 계층에서 법조 직역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치솟을 것이다. 

    법조인으로 출발하는 선상에서 ‘부모나 할아버지 찬스’를 배제하고 최대한 동일한 출발선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몇 군데만 고쳐도 한국의 로스쿨을 나름 괜찮은 제도로 바꿀 수 있다.

    기득권 유지하려는 조악한 이기심

    하나 더 중요한 개선 포인트가 있다. 로스쿨과 관계없이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작은 문호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사다리를 설치하고, 사회에 건전한 활력을 조성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이런 제도를 두는 이유에 관해 한 번 고찰해보자. 일본 법무성이 관련 제도를 존치시키는 이유도 생각해보자. 로스쿨에 관계된 이들이 개혁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국제적인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 전체의 이해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는 조악(粗惡)한 이기심의 과도한 분출이 심히 뻔뻔스럽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공익을 위해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게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기득권 세력이나 로스쿨 교수 집단보다는 로스쿨 학생의 입장이 우선돼야 한다. 나아가 국민 전체의 견해가 중시되는 로스쿨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 뒤 우리에게 맞는 법조인 양성 제도를 연구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온갖 재앙의 근원인 지금의 로스쿨 제도를 글자 한 획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벌써 밤을 털어야 하는 시기가 됐다. 밤털이를 하는 필자의 모습. [신평 제공]

    벌써 밤을 털어야 하는 시기가 됐다. 밤털이를 하는 필자의 모습. [신평 제공]

    가족들과 함께하는 밤털이. [신평 제공]

    가족들과 함께하는 밤털이. [신평 제공]


    ● 1956년 출생
    ● 서울대 법학과 졸업
    ● 제23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제13기
    ● 인천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방법원 판사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 역임
    ● 저서: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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