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준중형 SUV 전기차로 6년 만에 ‘기지개’
14분기 연속 적자 속 전기차 개발
7000억 원 ‘제로섬 게임’ 전기차 시장 겨냥
‘영광의 30만 대’ 티볼리와 닮은 꼴
“당장 부활 어려워… 새 인수 주체 찾을 시간 확보”
쌍용자동차가 7월 20일 공개한 전기차 모델 ‘E100’ 티저 이미지. [쌍용자동차 제공]
7월 20일 쌍용차는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인 자사 첫 전기차 모델(프로젝트명 ‘E100’)의 티저(Teaser) 이미지를 공개했다. E100은 국내 시장에 출시되는 첫 준중형 SUV(Sport Utility Vehicle·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전기차 모델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현재 국내 전기차 시장은 소형차 모델 중심이다. 패밀리 카로 손색없는 국내 첫 준중형 SUV 전기차로 비교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난 속 쌍용차가 전기차 출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①심상찮은 ‘활력징후(Vital Sign)’
쌍용차의 ‘활력징후(Vital Sign)’가 심상찮다. 경영 관련 지표가 모두 위기를 가리킨다. 쌍용차는 1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1분기 후 올해 2분기까지 누적 영업 손실은 6271억 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손실만 따져도 2158억 원이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4% 급감했다. 코로나19에 따른 부품 수급 차질과 실적 부진 탓이다.쌍용차 1분기 감사보고서는 ‘감사 의견 거절’ 판정을 받았다. 회계감사를 맡은 삼정회계법인은 “쌍용차는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5898억 원 초과하는 등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능력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분기 보고서에 대한 ‘의견 거절’은 별도 제재 대상은 아니다. 다만 연 1회 내는 연간 결산 감사보고서가 ‘감사 의견 거절’ 판정을 받으면 상장폐지 사유다. 게다가 2010년 쌍용차를 인수한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은 올해 6월 지배권 포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내년 상반기 확실히 출시”
‘E100’ 티저 이미지와 유사한 쌍용자동차 ‘티볼리’. [쌍용자동차 제공]
쌍용차가 모처럼 발표한 신차 개발이 자금 부족으로 좌초할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쌍용차 측은 “의미 없는 우려다. 이미 대중에게 신차 출시를 알렸다. 예정된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준비가 확실히 됐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내년 상반기 출시를 예고했으니 개발은 사실상 완료됐다고 봐야 한다. 쌍용차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개발비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신차 출시 자체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②매출 45% 차지 ‘효자’ 티볼리
쌍용차가 야심차게 내놓을 전기차는 어떤 모습일까. 쌍용차 측은 E100 외형에 대해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상어 지느러미 디자인“이라고 설명했지만 ‘티볼리와 닮은 꼴’이라는 세평이 나온다.쌍용차는 티볼리로 소형 SUV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 2015년 한 해 쌍용차가 판매한 차량 9만9000여 대 중 45%(4만5000여 대)가 티볼리일 정도로 ‘히트’했다. 경쟁 차종이던 현대자동차 ‘코나’의 판매량을 오랫동안 압도했다. 그 덕분에 이듬해 쌍용차는 2010년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후 첫 흑자를 거뒀다. 2019년 6월 전 세계 누적 판매량 30만 대를 돌파, 최단 기간 쌍용차 최다 판매고를 기록했다. 티볼리 전에도 쌍용차는 ‘코란도’와 ‘무쏘’ 등 스테디셀러를 앞세운 SUV 명가였다. 티볼리를 연상케 하는 E100 외형에 쌍용차 마니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효자상품 ‘리뉴얼’이 나을 수도”
‘중흥의 상징’ 티볼리와 닮은 E100으로 출사표를 던졌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모델3’(7080대)이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43.3%)를 차지했다. 각각 2위와 3위인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4877대·29.8%)과 기아자동차 ‘니로 EV’(2309대·14.1%)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한국지엠 ‘볼트 EV’(1285대·7.9%)와 르노삼성 ‘SM3 Z.E.’(457대·2.8%)가 뒤를 이었다. ‘자동차계의 애플’ 테슬라 열풍 속에 자동차 메이커들이 시장을 나눠 가진 모양새다.이호근 교수는 “쌍용차가 전기차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상징성은 평가할 만하다. 다만 디자인이나 성능 면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내놓지 않는 이상 선두주자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어렵다”며 “경영 상황이 엄중하니만큼 단기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전기차보다 코란도·티볼리 등 효자상품 ‘리뉴얼’이 더 주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③8만4000여 대 둘러싼 ‘제로섬 게임’
국내 전기차 시장이 사실상 ‘제로섬(Zero Sum) 게임’ 국면인 점도 난관이다. 전기차 가격은 동종 내연기관 차량보다 50% 가량 높다. 2013년부터 정부는 ‘수도권 대기환경개선에 관한 특별법’ 등에 따라 민간 소비자가 전기차를 살 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올해 보조금 규모는 약 6900억 원(8만4000여 대)이다. 구매자는 자동차 업체에 본래 차량 가격과 보조금의 차액만 지불하면 된다. 이후 자동차 업체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외 10개사 28개 차종이 지급 대상이다(승용차 기준). 금액은 업체·차종마다 다르나 국고보조금 기준 1대에 최저 625만 원(재규어 랜드로버 ‘I-Pace’)에서 최대 820만 원(현대차 ‘코나 일렉트릭’, 한국GM ‘볼트 EV’ 등)이다. 여기에 지자체 따라 최저 450만 원(서울)에서 최대 1000만 원(경북)의 보조금이 추가 지급된다. 경북의 경우 보조금이 가장 많은 현대차의 2020년형 ‘코나 일렉트릭’을 출시가 4690만 원(기본 옵션 기준)보다 1820만 원 낮은 2870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쌍용차의 전기차, 경쟁력 의문”
익명을 원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전기차 시장은 정부가 정한 전체 ‘파이’에서 각 업체가 지분을 얼마나 가져갈지 경쟁하는 상황이다. 기업으로서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자 손해를 감수하고 판매하는 측면도 있다”며 다음과 같이 쌍용차의 전기차 도전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국내에서 2015년 즈음 전기차 기술이 태동했다. 벌써 5년 전이다. 1회 충전으로 400㎞ 주행이 가능한 모델이 즐비하다. 쌍용차가 어느 면에서 강점을 가진 전기차를 개발할지 아직 알 수 없다. 배터리 기술은 배터리 생산 업체에서 도입하더라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새로 개발하는 것은 자체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다. 후발 주자로서 쌍용차가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다양한 신기술 선보일 것”
경기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뉴스 1]
전기차 개발이 쌍용차의 경영난 타개에 도움이 될까.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쌍용차 경영 상황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 “그 점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다. 당장 예단은 어렵다”고 답했다. 고 본부장은 “기존 쌍용차의 주력 상품은 디젤 SUV였다. 최근 정부의 ‘한국형 뉴딜’에 따른 친환경 모빌리티 지원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쌍용차가 내년 전기차 출시로 당장 부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업 가치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모기업 마힌드라 그룹이 지배권 포기를 시사한 가운데 새 인수 주체를 찾을 시간을 벌 수 있다. 전기차 개발·판매에 따른 국가 지원도 기대할 만하다. 신용등급 유지나 추가 자금 마련에 필요한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