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남자들도 손잡고 보는 극한의 공포 ‘컨저링 유니버스’

[황승경의 Into the Arte⑪]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0-08-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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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한여름 밤에는 공포영화가 제격이다. 공포영화를 보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인 교감신경이 반응해 피부 온도가 내려간다. 열 손실을 적게 하려고 피부 혈관이 수축되니 닭살이 돋고 오들오들한 떨림을 감지한다. 또한 공포영화로 ‘일상의 응어리’인 잔여 긴장(residual tension)이 이완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공포는 천연 진통제라고도 불리는 아드레날린을 촉진시켜 생활 속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적절하게 풀어주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장 가기가 꺼려진다면 안방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건 어떨까. 긴 여름 영화 한 편으로 부족하다면 시간 날 때마다 7편을 골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는 자사가 지적재산권을 가진 150여 캐릭터를 각기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시켰다. 생뚱맞게도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등장해 복선을 깔거나 ‘깜짝 출연’하는 식이다. 영화사가 의도한 대로 관객 머릿속에는 다른 영화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처럼 뭉쳐서 함께 악의 무리에 맞서기도 하고, 다른 영화에선 혼자서 지구를 지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거대한 영화 속 세계 ‘시네마틱 유니버스(Cinematic Universe)’가 형성된다. 마블 스튜디오의 유니버스처럼 방대하지는 않지만 호러 영화에도 이른바 ‘컨저링 유니버스’가 있다. 

    2008년 워너 브라더스에 인수된 ‘뉴 라인 시네마’는 그동안 ‘닌자 거북이’(1990) ‘반지의 제왕 3부작’(2001~2003)과 같은 과거 명성을 되살릴 판타지 소재를 찾던 중 26세의 젊은 나이에 공포영화 ‘쏘우’(2004)를 흥행시킨 신예 감독 제임스 완(42)을 주목했다. 그에게 메가폰을 넘겼을 때 그는 35세였다. 예상대로 그가 만든 공포영화 ‘컨저링’은 흥행에 성공했고, 워너 브라더스는 이후 제작된 각기 다른 공포영화가 연계되는 설정으로 하나의 큰 유니버스를 가공했다. 교집합이 생기니 하나의 스토리 연장선상에서 영화가 이어진다.

    ‘미다스의 손’ 제임스 완 감독

    [New Line Cinema]

    [New Line Cinema]

    그동안 공포영화 시장은 끔찍한 장면으로 ‘불편한 공포’를 즐기는 마니아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제임스 완 감독은 새로운 각도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참혹한 잔인함은 덜어내고 가족애와 휴머니티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래서 관객은 더욱 불안하다. 편안한 공포영화 속에서 뭔가 반전이 생길 거 같다. 이후 제임스 완 감독은 ‘컨저링 유니버스’ 영화에 감독이나 제작을 맡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공포영화 왕국을 만들었다. 그의 공포영화는 남자들도 손을 잡고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싹함을 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포영화에는 저주, 요술, 영혼 접촉 등의 마력을 부리는 악령들이 등장한다. 악령을 내치려고 퇴마(退魔) 의식을 한다. 가톨릭에서는 초자연적 신성력을 가진 성직자들이 엑소시스트(퇴마사)로 활동하는 걸 조심스럽게 허가했다. 그래서 유독 공포영화에서 목사님이나 스님보다 신부님이 종종 퇴마사로 등장한다. 



    ‘컨저링 유니버스’는 컨저링1(2013)-애나벨(2014)-컨저링2(2016)-애나벨:인형주인(2017)-더 넌(2018)-요로나의 저주(2019)-애나벨:집으로(2019) 등 총 7편이다. 그 중심에는 제목처럼 컨저링1·2가 있다(9월 11일 개봉 예정이던 ‘컨저링3’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개봉 일정을 2021년 6월 4일로 연기했다). 뒤 이은 작품들은 ‘컨저링1’ 영화의 배경 시점인 1971년을 기준으로 ‘프리퀄’(전작보다 과거 시점을 다루는 후속작)로 움직이는데, 모든 영화의 배경 시점은 1863~1977년 사이다. 장소 또한 루마니아의 으슥한 산골, 미국 전역, 영국 런던 주택가 등 동서를 횡단한다. 


    [New Line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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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저링1·2’는 실존 인물인 워런 부부(에드, 로레인)가 해결하는 귀신 붙은 집의 실제 퇴마 사건을 다룬다. 이 부부는 초자연 현상과 악마를 연구하는 전문가다. 퇴마사는 아니지만 부인인 로레인이 영매(靈媒)로 등장한다. 영매는 무당이나 박수처럼 귀신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보통 영매는 자신의 심령 현상을 남들이 연구하는 걸 원치 않는다. 반면 이 부부는 과학적으로 악령의 존재를 증명하고 귀신으로부터 고통받는 희생자들을 지켜준다.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부부는 악령이 깃든 매개체를 자신들의 지하실에 보관하는데, 이곳이 바로 ‘컨저링 유니버스’를 연결해 주는 통로다. ‘컨저링2’에 언급된 수녀 모습을 한 악령 ‘발락’은 루마니아 수녀원을 배경으로 ‘더 넌’(2018)에서 다시 등장한다.

    禍神: 인형 ‘애나벨’과 수녀 ‘발락’

    [New Line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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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 ‘애나벨’과 수녀 형상의 ‘발락’은 ‘컨저링 유니버스’의 대표적인 화신(禍神·재앙을 주는 신)이다. 천진무구한 인형과 정결한 수녀님은 도통 악마와 연관되지 않은 거 같다. 그래서 보는 이들의 살갗은 더욱 오그라든다. 

    감독은 무서운 장면 없이도 방심한 관객의 허를 노린다. ‘컨저링1’의 워런 부부 지하실에 목각인형 애나벨이 스치듯 잠깐 등장하는데, 이를 모티프로 다음 해에는 인형에 관한 이야기가 개봉됐다. 컨저링 시리즈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인데 반해, 애나벨 시리즈는 한 인형의 저주로 연결됐다. 악령이 깃든 인형의 저주는 워런 부부가 겪은 실화다. 사탄의 인형 ‘처키’가 연상된다. 실제 워런 부부 집 지하실에는 애나벨 인형이 굳게 밀봉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형은 오묘하고 덩치가 큰 목각인형이지만 실제는 귀엽고 평범한 봉제 인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애나벨’(2014)을 만든 제임스 완은 전후 사건을 엮어 창작한 후속작을 연달아 제작했다. 


    [New Line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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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경 시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애나벨 시리즈에서 애나벨은 1943년에 처음 등장한다. 부모는 갑작스레 사망한 딸을 볼 수만 있다면 어떤 존재라도 받아들이겠다며 악마의 빙의를 허락한다. 사탄 인형의 마수를 느낀 부모는 신부님의 도움으로 겨우 악마 인형을 옷장에 가둔다. 하지만 12년 후 고아원 화재로 부모의 집으로 온 위탁 아동이 그만 악령이 잠든 옷장을 열고 만다. 천신만고 끝에 인형에 옮겨 붙은 사탄의 혼령은 내쳐지지만, 정작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행방불명된 아이는 천진한 미소로 다른 집으로 입양된다는 게 본편이 아닌 속편 ‘애나벨:인형주인’(2017) 이야기다. 

    처음 개봉된 ‘애나벨1’은 속편의 12년 후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인형에서 나온 악령은 아이의 몸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를 통해 인형을 가진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악령은 다시 인형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를 인형으로부터 지키려는 엄마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파괴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지만 인형은 또다시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본편이다. 3편 ‘요로나의 저주, 애나벨 : 집으로’(2019)는 이후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 워런 부부가 밀봉해 보관한 인형에 관한 이야기다. 1972년, 누군가 애나벨이 갇힌 지하실 진열장 문을 열자 밖으로 나온 애나벨은 지하실에 잠든 모든 악령을 깨워 광란의 밤을 지휘한다. 악령들이 벌이는 광란의 밤을 보는 안방극장 관객은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는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전문사, 성균관대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문화와 사회’(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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