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는 자사가 지적재산권을 가진 150여 캐릭터를 각기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시켰다. 생뚱맞게도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등장해 복선을 깔거나 ‘깜짝 출연’하는 식이다. 영화사가 의도한 대로 관객 머릿속에는 다른 영화 주인공들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처럼 뭉쳐서 함께 악의 무리에 맞서기도 하고, 다른 영화에선 혼자서 지구를 지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거대한 영화 속 세계 ‘시네마틱 유니버스(Cinematic Universe)’가 형성된다. 마블 스튜디오의 유니버스처럼 방대하지는 않지만 호러 영화에도 이른바 ‘컨저링 유니버스’가 있다.
2008년 워너 브라더스에 인수된 ‘뉴 라인 시네마’는 그동안 ‘닌자 거북이’(1990) ‘반지의 제왕 3부작’(2001~2003)과 같은 과거 명성을 되살릴 판타지 소재를 찾던 중 26세의 젊은 나이에 공포영화 ‘쏘우’(2004)를 흥행시킨 신예 감독 제임스 완(42)을 주목했다. 그에게 메가폰을 넘겼을 때 그는 35세였다. 예상대로 그가 만든 공포영화 ‘컨저링’은 흥행에 성공했고, 워너 브라더스는 이후 제작된 각기 다른 공포영화가 연계되는 설정으로 하나의 큰 유니버스를 가공했다. 교집합이 생기니 하나의 스토리 연장선상에서 영화가 이어진다.
‘미다스의 손’ 제임스 완 감독
[New Line Cinema]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포영화에는 저주, 요술, 영혼 접촉 등의 마력을 부리는 악령들이 등장한다. 악령을 내치려고 퇴마(退魔) 의식을 한다. 가톨릭에서는 초자연적 신성력을 가진 성직자들이 엑소시스트(퇴마사)로 활동하는 걸 조심스럽게 허가했다. 그래서 유독 공포영화에서 목사님이나 스님보다 신부님이 종종 퇴마사로 등장한다.
‘컨저링 유니버스’는 컨저링1(2013)-애나벨(2014)-컨저링2(2016)-애나벨:인형주인(2017)-더 넌(2018)-요로나의 저주(2019)-애나벨:집으로(2019) 등 총 7편이다. 그 중심에는 제목처럼 컨저링1·2가 있다(9월 11일 개봉 예정이던 ‘컨저링3’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개봉 일정을 2021년 6월 4일로 연기했다). 뒤 이은 작품들은 ‘컨저링1’ 영화의 배경 시점인 1971년을 기준으로 ‘프리퀄’(전작보다 과거 시점을 다루는 후속작)로 움직이는데, 모든 영화의 배경 시점은 1863~1977년 사이다. 장소 또한 루마니아의 으슥한 산골, 미국 전역, 영국 런던 주택가 등 동서를 횡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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禍神: 인형 ‘애나벨’과 수녀 ‘발락’
[New Line Cinema]
감독은 무서운 장면 없이도 방심한 관객의 허를 노린다. ‘컨저링1’의 워런 부부 지하실에 목각인형 애나벨이 스치듯 잠깐 등장하는데, 이를 모티프로 다음 해에는 인형에 관한 이야기가 개봉됐다. 컨저링 시리즈는 각기 다른 에피소드인데 반해, 애나벨 시리즈는 한 인형의 저주로 연결됐다. 악령이 깃든 인형의 저주는 워런 부부가 겪은 실화다. 사탄의 인형 ‘처키’가 연상된다. 실제 워런 부부 집 지하실에는 애나벨 인형이 굳게 밀봉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형은 오묘하고 덩치가 큰 목각인형이지만 실제는 귀엽고 평범한 봉제 인형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애나벨’(2014)을 만든 제임스 완은 전후 사건을 엮어 창작한 후속작을 연달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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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봉된 ‘애나벨1’은 속편의 12년 후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 인형에서 나온 악령은 아이의 몸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성인이 된 아이를 통해 인형을 가진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악령은 다시 인형 속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를 인형으로부터 지키려는 엄마의 모성애가 눈물겹다. 파괴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지만 인형은 또다시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다. 여기까지가 본편이다. 3편 ‘요로나의 저주, 애나벨 : 집으로’(2019)는 이후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 워런 부부가 밀봉해 보관한 인형에 관한 이야기다. 1972년, 누군가 애나벨이 갇힌 지하실 진열장 문을 열자 밖으로 나온 애나벨은 지하실에 잠든 모든 악령을 깨워 광란의 밤을 지휘한다. 악령들이 벌이는 광란의 밤을 보는 안방극장 관객은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는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전문사, 성균관대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문화와 사회’(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