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친정 FC서울 복귀…3년 6개월 계약
“지난번엔 갈등 있었지만 이번엔 팀이 날 원해”
K리그가 키워낸 유럽파들의 릴레이 귀환
월드클래스 영입 어려운 K리그에 최적의 대안
울산 이청용 효과 톡톡…‘쌍용더비’ 관심 집중
FC서울로 돌아온 기성용이 7월 22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성 스포츠동아 기자]
서울은 7월 19일 기성용과 입단에 합의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RCD 마요르카와의 계약을 조기에 해지하고 돌아온 기성용이 자가격리를 마친 지 열흘 만이었다. 메디컬 테스트를 마치고 3년 6개월 장기 계약에 사인한 기성용은 7월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에 나섰다. 그는 “갈등과 앙금도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번엔 팀이 진심으로 나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극적인 복귀의 변을 밝혔다.
기성용은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직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K리그 복귀를 결심했다. 자신을 뉴캐슬로 영입했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중국 무대로 떠난 뒤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배우 한혜진), 딸과 함께 생활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2009년 말 스코틀랜드 명문 클럽 셀틱으로 이적하며 유럽 무대로 뛰어든 지 11년 만에 K리그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 까닭이다.
“섭섭함 있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
우선 기성용은 뉴캐슬과의 잔여 계약을 정리하면서 K리그 우선협상 대상이던 서울에 지난 1월 가장 먼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서울에 실망해 전북 입단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는 당시 “코치진과 상의한 뒤 (서울 측에서) 계약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 왔다”고 밝혔다.기성용 측은 서울의 입장을 우선협상 포기로 해석하고 전북과 협상을 시작했다. ‘기성용은 당연히 서울로 돌아온다’고 믿던 서울 팬들의 비판 여론이 들끓자 상황이 변했다. 그는 2009년 유럽 진출 당시 서울과 ‘국내 복귀 시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수용한 바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금을 지불해야 했다. 서울은 “계약 포기 의사가 아니다”라고 입장을 바꾸며 전북 입단 시 20억 원이 넘는 위약금을 내놔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성용과 전북 간 협상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태였지만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자 그마저 원점이 됐다.
결국 기성용은 마요르카와 단기 계약을 맺으며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출국 인터뷰에서 기성용은 단호한 어조로 서울 구단과 자신의 이적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최용수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에 불만을 표시했다. 또 K리그 복귀 가능성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의 사라졌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다시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던 기성용의 K리그 복귀가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연봉은 서울 구단 내 국내 선수 최고 수준(7억~8억 원 추정)으로 알려졌다. 물론 기성용은 K리그 복귀를 타진하며 연봉에 연연하지 않았다. 뉴캐슬 시절 수령하던 연봉 30억 원을 이미 포기하고 온 만큼 자신을 필요로 하는 적극적 태도와 명분을 더 원했다. 서울 구단이 그런 기성용의 상황을 악용해 최초 4억 원 수준의 연봉을 제시한 푸대접도 협상 결렬의 원인이었다. 더불어 ‘올 테면 받아주겠다’로 시작해 ‘코치진이 원하지 않는다’까지 치달은 극단적 메시지는 선수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갑질’에 가까운 태도로 기성용의 K리그 복귀를 막았다는 인식을 준 서울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 팬들조차 시즌권 불매 운동을 전개할 정도였다. 설상가상 5월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 FC서울은 관중석에 선수복을 입힌 마네킹을 앉혔다가 ‘리얼돌’ 논란에 휩싸였다. 하위권을 맴돈 성적은 안 그래도 화난 팬심에 불을 붙이고 기름을 부었다.
그 사이 기성용의 입장도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페인에서 고립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커졌다. 발목 부상을 입었는데도 스페인 의료 시스템이 마비돼 치료가 지지부진하자 K리그 복귀를 재고하게 됐다. 귀국 후 자가격리를 마친 그는 서울 구단과 두 차례 만남과 조정 끝에 입단에 협의했다.
서울은 5개월 전과는 다른 성의를 보였다. 강명원 단장이 직접 나서 협상을 주도했고, 30대 선수에게는 파격적인 3년 6개월의 장기 계약으로 마음을 돌리려 노력했다. 선수가 입은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아물었다. 기성용은 입단 기자회견에서 “다들 아시겠지만 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돌아오는 과정은 아쉬웠지만, 지금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팬들도 많이 답답하셨을 텐데, 경기장에서 책임감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11년 만의 복귀에 대한 각오를 덧붙였다.
‘스타 기근’ K리그로 돌아오는 유럽파
울산의 이청용이 4월 9일 울산 동구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에 있는 연습 구장에서 축구화 끈을 질끈 묶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이에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이 모두 20대 초반에 유럽으로 차례차례 진출했다. 최근에도 이재성, 권창훈, 김민재, 황인범, 나상호 등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젊은 선수들이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올라서려는 시점에 해외로 나갔다.
물론 일본 J리그도 자국 신예들의 유럽 진출 도전을 막진 못한다. 대신 그 공백을 외부 영입으로 대체한다. 1990년대 초반 지코, 둥가, 베베토(이상 브라질),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독일), 미카엘 라우드럽(덴마크) 등의 월드스타를 데려와 흥행 분위기를 조성했던 J리그는 최근 다시 유럽과 남미의 스타를 데려오고 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비야, 페르난도 토레스(이상 스페인), 루카스 포돌스키(독일), 토마스 베르마엘렌(벨기에) 등이 거액의 연봉을 택하며 차례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이니에스타의 경우 연봉만 K리그 상위권 구단의 1년 예산에 준하는 30억 엔(약 300억 원)을 받지만 그런 투자와 영입이 만든 긍정적 영향은 인상적이었다. 2019년 J리그는 사상 최초로 경기당 평균 관중 2만 명을 돌파했다. 1부 리그만 총 관중 634만 명을 기록했다. K리그의 4배에 달한다. 이런 기념비적인 시즌을 만든 1등 공신은 포돌스키, 이니에스타, 비야, 베르마엘렌을 차례로 영입한 비셀 고베였다. 모기업 라쿠텐의 과감한 지원 덕에 고베의 홈 경기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도 관중수가 급증했다.
중국도 헐크, 오스카, 파울리뉴(이상 브라질), 마루앙 펠리이니, 무사 뎀벨레(벨기에), 스테판 엘 샤라위, 그라지아노 펠레(이상 이탈리아),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오스트리아) 등 최근까지 유럽 빅 클럽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이 리그 전체의 이미지와 상품성을 이끌고 있다.
이런 성공 모델은 K리그에 그림의 떡이다. 최근 전북은 브라질 명문 구단 코린치안스 출신 스트라이커 구스타보를 K리그 역대 최고 이적료인 30억 원에 영입했다. 연봉 등을 고려하면 K리그가 외국인 선수 영입에 투자할 수 있는 상한선은 50억 원 정도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월드클래스 선수의 영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K리그가 끌어올 수 있는 현실적인 월드클래스는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한 국가대표팀 주축들이다. 과거 차범근과 박지성·이영표, 최근의 손흥민 등 유럽에서도 A급으로 인정받은 선수들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차범근·박지성·이영표는 유럽 혹은 해외에서 은퇴를 택했다. 설기현·차두리·안정환·송종국·이천수 등은 K리그로 돌아왔지만, 이 중 꾸준히 활약해 리그 흥행을 이끈 선수는 차두리 정도다. 박지성의 경우 수원과 전북 등이 영입을 추진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전례는 손흥민이 훗날 K리그로 돌아와 은퇴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이청용(울산)과 기성용이 약 4개월의 격차를 두고 K리그에 재입성하며 전과 다른 분위기가 일고 있다. 현재 UAE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알가라파)도 K리그 복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은 차범근·허정무 등 유럽파 1세대, 박지성과 이영표로 대표되는 2세대를 잇는 3세대다.
최대 50억 원으로 월드클래스 영입 못해
유럽파 3세대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구축된 K리그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고 팀에 대한 애정이 확고한 팬들의 성원을 자양분 삼아 스타 등극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자신들이 몸담은 K리그와 소속팀에 대한 애착도 각별하다.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유럽 무대에서 인정받으면서도 늘 K리그를 ‘아픈 손가락’ 모양 안타까워하고 관심을 가졌다.이에 이들은 선수로서 기량이 아직 전성기에 있는 30대 초반에도 고향 무대로 돌아오려 한다. 은퇴 직전 마지막 팬서비스처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유럽 무대에서 발휘하던 기량을 K리그에서 펼치며 흥행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대선배인 차범근은 기성용과 이청용의 복귀 여부가 큰 화제이던 지난 2월 “나는 K리그에서 뛰지 못해 아쉬웠다. 두 선수가 돌아오면 한국 축구 발전과 팬들을 위해 좋은 일이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K리그를 누비는 차범근과 박지성’을 볼 수 없던 세대에게 기성용과 이청용을 다시 K리그에서 보는 것은 훌륭한 보상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기성용 본인도 K리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복귀 기자회견에서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9년 1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선수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사실도 고백한 그는 “K리그로 돌아오며 팬들의 기대가 큰 만큼, 거기 미치지 못하면 비판도 받게 된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긴 만큼 제2의 전성기를 확신하다”는 당찬 모습도 보였다.
지난 2월 울산 입단 당시 이청용도 “최고의 경기력을 선사할 수 있는 나이에 돌아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비슷한 얘기를 했다. 기성용은 서울 입단이 가시화하는 시점에 절친한 사이인 구자철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빨리 K리그로 돌아와”라고 댓글을 남겼다.
기성용 영입, 서울과 K리그 모두의 터닝포인트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으로 진행되던 프로축구 K리그가 유관중 경기로 전환했다. 8월 2일 경기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대구FC 간 경기에서 관중이 거리를 두고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스페인에서 입은 발목 부상 여파로 재활에 힘 쏟고 있는 그는 “(뉴캐슬 시절이던) 지난해 4월 리버풀과의 경기가 마지막 풀타임이었다. 경기를 위한 체력과 감각을 되찾는 데 시간은 조금 필요할 것 같다”며 복귀 시점을 밝히는 데는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상은 심하지 않고, 지금은 필드에서 뛰는 훈련을 소화 중이다. 8월에는 경기장에 설 수 있을 것이다”라며 최대한 빨리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기성용의 복귀는 K리그 전체에도 큰 호재다. 코로나19 탓에 무관중으로 진행됐던 K리그는 8월부터 유관중 체제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 각 경기장에는 전체 수용 인원의 10% 이내에서 관중 입장이 허용됐다. 이와 관련해 올해 K리그는 3개월 가까이 무관중으로 경기를 했음에도 흥행 곡선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안전하고 빠르게 리그를 진행한 덕에 해외 중계가 확대됐고, 국내 실시간 중계 접속자 수는 전년 대비 80% 넘게 증가했다.
코로나19가 낳은 ‘온라인 흥행 물결’은 오프라인으로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용·이청용 같은 유럽파의 복귀는 물 들어오자 노 젓는 분위기를 만드는 모양새다. 이동국·염기훈·이근호·박주영 등 기존에 K리그 흥행을 이끌던 베테랑들이 자연스럽게 돌아온 유럽파 3세대에게 바통을 넘길 수 있게 됐다.
유럽파 복귀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울산은 지난 시즌 눈앞에서 놓친 우승에 재도전하기 위해 이청용을 택했다. 최근 울산은 리그 4연패를 노리는 전북을 제치고 선두로 나섰다. 이청용은 특유의 테크닉과 축구 지능으로 울산을 더 빠르고 유연한 팀으로 이끌었다. 흥행 면에서도 이청용의 유니폼은 1차 주문이 매진됐고, 그를 앞세운 영상 콘텐츠는 큰 호응을 일으켰다.
‘기성용 효과’도 벌써 나타나고 있다. 기성용의 입단 소식이 알려진 후 하루 만에 그의 유니폼 판매량이 서울의 월평균 유니폼 판매량을 넘어섰다. 기성용의 등번호와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을 사기 위한 팬들의 주문이 쏟아졌다. 이청용과 기성용, 즉 ‘쌍용’이 펼치는 맞대결은 K리그의 새로운 라이벌전을 형성하는 모습이다. 오는 8월 30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리는 울산과 서울의 경기는 벌써부터 ‘쌍용더비’로 불리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올 연어
기성용이 서울 유니폼을 입으며 지난 반년을 떠들썩하게 한 연대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K리그가 얻은 시사점도 있다. 슈퍼스타와의 관계에서 구단이 무조건 우위를 점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매개로 엮인 종속적 갑을관계는 종말을 고했다. 선수와 팀이 리그의 발전을 이끄는 동반자가 될 때 발전적 동행이 가능해진다.기성용이 원한 건 돈이 아닌 존중과 명분이었다. 손흥민 역시 언젠가 K리그로 돌아올 수 있다. 언젠가 월드클래스로 떠오를 수 있는 또 다른 유럽파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들에게 존중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구단과 리그로 성장해 있을 때 고향으로 돌아올 연어를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