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여권 싱가포르式 부동산 해법…“국유지 80%, 비교대상 못돼”

주택 자가 소유율 91% 싱가포르 대안 될 수 있나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20-08-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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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토 80% 국유지…한국과 조건·배경 달라

    • 양도·증여세 없고, 주택담보대출 최고 비율 집값 90%

    • 토지공개념 바탕으로 주택전매금지-주택환매제도 운영

    • 공공주택은 주택개발청에만 되팔 수 있어

    • 민간주택엔 정부 간섭 없어…주거 이동 사다리 열어놔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이 공급하는 
공공주택 조감도.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이 공급하는 공공주택 조감도.

    2018년 싱가포르 통계청 발표 자료 기준 싱가포르 시민권자의 주택 자가 소유 비율은 91%다. 주택 보급률(104.2%)은 100%를 넘었으나 자가 보유율은 55.9%인 한국과 대조적이다. 주지할 점은 싱가포르 자가 주택 소유자의 80%가 공공주택(Public Housing)에 거주한다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싱가포르 공공주택은 ‘매각할 수 있는’ 99년 기한의 ‘영구 임대주택’이다.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주택만 분양한다.

    국민 80%가 공공주택 거주

    싱가포르 국민 80%가 거주하는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는 1960년 설립된 주택개발청(Housing & Development Board·HDB)이다. 주택개발청은 싱가포르 정부와 장기 토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주택을 건설해 수요자에게 공급한다. 

    부동산 디벨로퍼인 조철민 차밍시티 대표는 “싱가포르 주택 정책의 목표는 모든 국민에게 안정된 주거생활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주택 자가 소유 정책을 펼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어떻게 자가 보유율 90%를 넘었을까. 1965년 말레이연방(Federation Malaysia)으로부터 독립해 ‘공화국’이 된 싱가포르는 1966년 토지수용법을 제정·시행해 토지국유화를 본격 추진했다. 추진 당시 40% 선이던 싱가포르의 국유지 비율은 현재 80%에 달한다. 

    리콴유(李光耀·1923~2015) 초대 싱가포르 총리는 주택개발청 설립 후 강력한 공공주택 정책을 추진했다. ‘토지 공개념’에 근간을 둔 주택 정책과 주거 안정,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한 독창적 제도가 ‘주택전매금지-주택환매제도’다. 공공주택 입주자가 5년의 의무거주 기간이 지난 후 주택을 매각하려면 주택개발청에만 되팔 수 있다. 주택개발청은 시가로 집을 되사들여 입주 대기자에게 시가로 판다. 이는 공공주택 부문에서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를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주택개발청은 설립 초기인 1960년대에는 주로 서민층에게 ‘HDB아파트’로 불리는 주택을 공급했고, 1970년대 들어서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공공주택 사업을 확대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주거 복지를 위해 ‘맞춤형 정책’을 마련했다. 신혼부부를 비롯한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을 준다. 미취학 아동을 둔 가정이 부모가 거주하는 마을이나 부모가 거주하는 집 반경 2㎞ 이내 주택을 분양받고자 할 때에는 신규주택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한다.

    이관옥 싱가포르국립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싱가포르 주택 정책은 서민 주거 복지를 보장하고, 실수요 청년층의 주택 구매 기회를 확충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센토사(Sentosa)섬, 오차드(Orchard)로드 등으로 대표되는 부유층 거주 지역의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외곽지역(뉴타운)에 저렴한 공공주택을 공급해 안정된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주지할 부분은 뉴타운 지역이 부유층이 거주하는 민간주택 집중 지역에 비해 주거 환경이 떨어지지 않도록 녹지, 편의시설과 지하철 등 대중교통 확충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평생 두 번 공공주택 분양 기회

    싱가포르 국민은 평생 두 번까지만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은 신축 공공주택이 지어지기에 기회 평등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중앙연금기금(Central Provident Fund·CPF)을 주택 정책에 활용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중앙연금기금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성격의 연기금이다. 한국과 다른 점은 가입자가 의료·교육·주택 구입 등 생애 주기에 맞춰 연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중앙연금기금은 근로자가 급여의 20%를 납부하고 고용주는 근로자 급여의 16%를 납부한다.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 9%(근로자와 고용주가 각각 급여의 4.5% 부담)보다 부담률이 훨씬 높다. 중앙연금기금은 일반계정·특별계정·의료계정으로 구성돼 있다. 그중 일반계정은 가입자가 의료·교육·주택구입과 관련해 활용할 수 있다. 

    주택을 구입할 때 중앙연금기금에 납부한 돈을 선수금 형태로 이용할 수 있다. 집값 대비 주택담보대출 최고 비율은 집값의 90%다. 대출받은 돈은 25년간 2%대의 금리가 붙어 연금에서 자동으로 납부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해서는 추가보조금(Additional CPF Housing Grant·AHG)도 지급한다. 연기금을 활용하고 정부 재정까지 투입해 자가 보유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공공주택 90%가 중대형 아파트

    싱가포르의 민간주택 경관.

    싱가포르의 민간주택 경관.

    싱가포르 주택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공공주택의 품질이 높고 형태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공공 임대 아파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17~21평형대가 주를 이루는 좁은 주택 면적과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 품질 때문이다. 싱가포르 공공주택은 23평형, 33평형, 41평형, 56평형 등 다양한 평형을 보유하고 있으며 방 4~5칸을 갖춘 중대형 아파트가 전체의 90%를 점한다. 그 결과 공공주택에 대한 소유자의 불만이 적으며 편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주택 시장은 기본적으로 ‘이중 시장’ 구조다. 하나는 정부보조금으로 지어진 공공주택 시장, 다른 하나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민간주택 시장이다. 민간주택 시장은 단독주택과 집합주택(콘도미니엄)으로 나뉜다. 공공주택과 민간주택 시장의 비율은 9:1 정도다. 

    고소득층의 공공주택 거주는 원천 봉쇄된다. 공공주택은 월평균소득이 6000싱가포르달러(518만 원) 미만인 계층만 입주할 수 있다. 월평균 소득 8000싱가포르달러(690만 원) 이상의 고소득층과 중앙연금기금 가입 대상이 아닌 사람은 공공주택 공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고소득자는 민간주택 시장에서 주택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샌드위치 계층(서민층과 부유층 사이의 중간 계층’의 수요를 위한 이그제큐티브 콘도미니엄(Executive Condominium·EC)도 존재한다. 

    싱가포르는 대다수 사람에게 공공주택을 보급해 주택 문제를 해결한 후 다음 단계로 구매력이 높은 수요층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건설했다. 정부는 민간 사업자가 토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국유지를 매각했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와 콘도미니엄 등 민간주택 공급이 늘어났다. 민간주택 건설 및 분양에는 분양가 규제 등 정부의 시장 간섭이 기본적으로 없다.(식니후앗, ‘싱가포르의 기적 : 도시 국가는 어떻게 아시아 부동산의 중심이 되었는가·2019’ 참조)

    양도·증여세 없어

    ‘공공성’에 방점을 찍은 주택 정책에 기반해 싱가포르의 절대 다수 국민은 ‘내 집 마련’ 걱정에서 해방됐다. 싱가포르 사례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문재인 정부 주택정책 당국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주택정책은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줄까. 

    하성규 한국주택관리원 원장은 “강력한 토지수용법 적용으로 주택 투기와 가(假)수요를 차단하고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을 골간으로 한 싱가포르 주택 정책의 전반적인 조건과 배경은 한국과 상이하다”고 전제한 후 “주거 빈곤층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고, 배분적 형평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만하다”고 밝혔다. 

    이관옥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정부의 직접 공급을 통해 자가 소유 비율을 높이고 서민층의 주거 안정을 꾀한 것이 싱가포르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며 한국에 주는 주요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싱가포르를 다주택자 취득세율 중과의 벤치마킹 사례로 든 점은 잘못”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싱가포르가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자 다주택자와 외국인에게 추가 취득세를 책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양도세·증여세가 존재하지 않는다. 취득 후 3년 이내에 주택을 매도하면 ‘단기 매도세’를 부과하지만 정책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 2017년 세율을 인하했다. 한국은 취득세뿐 아니라 양도세도 강화해 주택을 사고팔지도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싱가포르는 공공주택의 경우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대출 규제까지 강화해 집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보유세까지 올려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세금 부담을 전가하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간 취득세율에 차등을 두는 싱가포르 모델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8월 4일 국회를 통과해 8월 11일 시행된 지방세법 개정안에 따라 현행 1~4%인 취득세율이 최고 12%로 인상됐다. 1주택자는 현행대로 1~3%를 유지하지만 2주택자의 경우 8%, 3주택자 이상은 12%로 지금보다 4배가량 인상됐다. 조정대상지역 안에 있는 공시가격 3억 원 이상의 주택을 증여하면 증여취득세율이 현재 3.5%에서 12%로 올라간다. 

    싱가포르는 다주택 여부와 무관하게 3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 때 집값이 얼마가 올랐더라도 양도세를 내지 않는다. 게다가 증여세도 없다. 여권의 싱가포르 모델 언급은 필요한 것만 빼서 쓴 아전인수였던 셈이다. 다만 투기를 막기 위한 제도로 단기매도세가 있다. 집을 산 지 1년 안에 매도하면 집값의 12%, 1년 이상 2년 이내면 8%, 2년 이상 3년 이내면 4%를 세금으로 낸다. 

    이관옥 교수는 한국의 정책 당국자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싱가포르는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겠다는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도시계획과 연계해 장기적 주택정책을 수립한다. 소득·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도 커진다. 싱가포르는 ‘주거 이동 사다리’를 열어두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국민에게 자산 증식과 주거 상향 이동 기회가 있다는 확신을 주고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당장 일부 청년층에게 임대주택 일부를 공급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제도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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