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끝없는 먹토·씹뱉·폭토…‘163㎝·38㎏ 목표’ 프로아나族

[사바나] “마른 인간, 힙하고 퇴폐미 넘쳐”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9-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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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다리 “아름답다” “존예”

    • 맹목적 ‘마른 몸매’ 추종

    • 한 뼘 남짓한 허리와 배 “굶기가 인생 목표”

    • 극단적 마른 몸 부추기는 SNS 게시물

    • 거식증 초기 치료 가능

    ‘h 163, cw 47, gw 38. 굶어 죽어도 ‘개말라 인간’ 되고 싶은 성인. 같이 독하게 조이실 분을 구합니다.’ 

    20대 여성 임혜영(가명) 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앞의 기호 같은 말을 풀어보면 h는 키(height), cw는 현재 체중(current weight), gw는 목표 체중(goal weight)의 줄임말이다. ‘개말라(또는 뼈말라)가 되자’는 말은 ‘마른 체형이 되자’, ‘같이 조이자’는 말은 ‘같이 체중을 감량하자’는 의미다.

    “굶기가 내 인생 목표”

    [GettyImage]

    [GettyImage]

    현재 임씨 키와 몸무게는 각각 163㎝, 47㎏. 체질량지수(BMI)가 17.69다. BMI는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한국 여성은 18.5 이상 23 미만이면 정상 범주에 속한다. 이보다 낮으면 저체중, 높으면 과체중으로 분류한다. 

    임씨는 저체중에 해당하지만 더 마른 몸을 가지고 싶다. 그래서 목표 체중인 38㎏에 도달할 때까지 하루에 두유 2잔, 바나나 1개만 섭취할 생각이다. ‘사람이 이것만 먹고 사는 게 가능한가’ 의아하겠지만, 임씨는 1년 전 이보다 더 혹독한 식단도 경험한 참이었다. 당시에는 꿀을 타서 달게 만든 물과 뻥튀기만 먹으며 살았다. 불과 한 달 만에 6㎏ 가까이 체중이 줄었다. 그때 처음 체중이 50㎏대에서 40㎏대로 진입했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말라야 예쁘다”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10대 때부터 ‘날씬하다’ ‘몸매 좋다’ 얘길 자주 들었다. 어느 순간 몸무게가 조금만 늘어도 막 불안해졌다. 그때 ‘나는 절대 살찌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게 기억난다. 굶으면 스트레스가 없으니 오히려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어야 할 때가 있다. 요새는 예전처럼 불안해하지 않는다. 음식이 소화되기 전 입안으로 손가락 넣어서 모조리 게워내면 체중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쾌감이 컸다. 한 달 동안 ‘먹토(먹고 토하는 것)’ 했더니 어느 순간 손가락을 넣지 않고도 음식을 모조리 게워낼 수 있었다. 요새는 ‘인생의 목표가 굶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최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선망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퍼지고 있다. 마른 몸을 아름다움으로 치켜세우는 표현인 ‘개말라’나 ‘뼈말라’가 유행어가 됐을 정도다. 이런 현상은 ‘프로아나(pro-ana)’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프로아나는 거식증(anorexia)의 식습관을 지지(pro)하는 행위를 뜻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프로아나 하는 사람을 프로아나족(族), 프로아나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계정을 프로아나계라고 한다. 거식증 환자들은 음식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병적 증상을 보이는데, 프로아나족은 이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며 체중 감량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낸다. 달리 말하면 식욕은 있는데 체중 증가에 극심한 공포심을 가지는 것이다. 식이요법이라는 뜻의 다이어트와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다리 “아름답다” “존예”

    프로아나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올린 게시물.

    프로아나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올린 게시물.

    프로아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특히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트위터에는 인기 아이돌 멤버나 모델의 식단 사진을 올리며 “마른 몸을 갖기 위해 오늘은 이것만 먹는다”고 인증하는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인기 걸그룹 한 멤버의 식단이 특히 자주 올라온다. 요거트·꿀·치아시드·바나나(1개)·블루베리로 구성했다. 전체 칼로리가 300cal 채 안 된다. 

    일명 ‘프로아나 트친(트위터 친구)’ 구인 게시물도 하루에만 수십 건이 올라온다. 프로아나족은 체중을 감량하기 전 글을 통해 자신의 심경과 몸 상태를 밝히는데, 체중을 감량하며 서로 동기부여가 돼줄 상대를 찾는다. 이런 게시물엔 어김없이 ‘#개말라’ 또는 ‘#섭식장애(식사장애)’라는 해시태그가 붙는다. 이는 마른 몸이나 뼈가 보이는 몸, 거식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열망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게시물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프로아나족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마른 몸을 찍은 사진이다.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흉부, 한 뼘 남짓한 허리와 배 사진이 온라인상에 떠돈다. 젓가락처럼 앙상하게 뼈만 남은 다리를 찍은 사진에는 “아름답다” “존예(매우 예쁘다란 뜻)” 등 마른 몸을 부러워하는 댓글이 무수하게 달린다. 반감을 보이는 댓글은 수십 개 중 한두 개에 불과하다. 트위터상에 떠도는 프로아나 관련 정보를 리트윗(특정 트위터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하는 누리꾼도 적지 않다. 

    프로아나족은 SNS를 통해 서로 공개적으로 ‘개말라 인간 되는 방법’을 공유한다. 음식물을 입안에서만 씹다가 삼키지 않는 씹뱉, 먹토, 음식물 제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변비약·관장·이뇨제 등의 정보를 제공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마를 수 있는지 궁리한다. 자신을 10대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이 트위터에 “부모님과 같이 식사할 때 대처법을 알려달라”는 게시글을 올리자 “음식을 아주 작게 잘라서 여러 번 나눠 먹어라” “식사자리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챙겨줘야 최대한 음식을 적게 먹을 수 있다” 등 답변 수십 개가 달렸다. 중·고교생이 단식하는 방법을 물은 또 다른 질문에는 “아침에 수면제를 먹고 등교하면 점심시간에 배고파도 그냥 자게 된다. 친구들이 급식 먹자고 깨워도 졸려서 저절로 식사를 건너뛰게 된다”며 구체적 내용을 알려주는 답글이 달렸다. 개학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체중을 줄이는 방법을 문의하자 “일주일 동안 제로 콜라와 물만 먹고 살면 개말라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이 달렸다. 


    맹목적 ‘개말라 인간’ 추종

    프로아나족 사이에서는 체중 감량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증상을 ‘영광의 상처’처럼 여긴다. 10대 여학생이라고 밝힌 한 프로아나족은 체중이 44㎏에서 36㎏로 줄어든 뒤 생긴 몸의 변화에 대해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늘 몸에 기운이 없다. 앉았다 일어설 때 어지럼증을 느낀다. 20~30분 정도 걸으면 허리가 아프고 피로감이 몰려온다. 아침에 머리를 감으면 한 움큼씩 빠진다. 매달 초에 하던 생리가 8개월째 멈췄다. 영양 부족으로 치아가 흔들리고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음식을 먹거나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리면서 토하고 싶다. 사람들이 음식 먹는 모습을 보면 ‘왜 먹지?’ ‘먹는 게 좋은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며칠씩 굶는 와중에도 수시로 현기증을 느끼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오늘 하루 먹은 음식이라고는 식빵 한 조각, 커피 한 잔뿐인데, 뭔가 많이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음식이 입에서 당긴다. 며칠간 미친 듯 폭식하고 나면 뒤늦게 후회가 밀려온다. 다시 조이기를 시작한다.’ 

    누리꾼들은 이 게시물에 “어지럼증을 느낀다니 정말 부럽다” “나도 정신병과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 이왕 죽는다면 개말라 인간으로 죽고 싶다” 등의 댓글을 달며 글쓴이의 상태를 부러워한다. 섭식장애는 주로 신경성 식욕 부진증(거식증), 신경성 폭식증을 동반한다. 전자는 체중 조절을 위해 지나치게 식사량을 조절하는 동안 완전하게 식욕을 잃게 되는 신경성 질환이다. 후자는 통제력을 잃고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질환이다. 

    프로아나족들은 프로아나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원해 프로아나족이 됐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아니므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겐 “훈계질하지 마라”며 프로아나족을 옹호하는 데 열을 올린다.

    초등생부터 20대까지 확산

    프로아나 유행은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오프라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프로아나족이 2008년 즈음 인터넷 접근성이 향상되면서 조직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털사이트에 개설한 비공개 카페나 커뮤니티를 통해 회원을 받으며 추종자를 늘려왔다는 게 김율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프로아나 확산 배경은 복합적이다. 사회적으로 날씬함을 무의식적으로 강조하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했고, 가냘픈 몸매를 가진 인기 아이돌이 등장하면서 10, 20대 사이에서도 ‘스키니 몸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미디어다. 특히 마른 사람을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으로, 통통한 사람을 게으른 사람으로 묘사하는 방송의 영향이 컸다.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한 활발한 교류도 프로아나 확산을 부추겼다. 이에 따라 프로아나가 다이어트의 한 방법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SNS에서 프로아나 게시물이 인기를 얻으면서 경각심 없이 받아들이는 10, 20대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아나의 특성상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성별은 단연 여성이다. 과거만 해도 프로아나족 핵심 연령층은 20대 성인이었다. 그러다 1~2년 전부터는 중·고교생 등 10대 청소년이 가세했다. 심지어 이제 막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한테까지 프로아나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 

    송윤주 연세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0년부터 섭식장애 환자를 치료하며 프로아나 풍조에 대해 연구해 온 인물이다. 송 원장은 “최근 10년 동안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프로아나족의 활동 무대가 온라인 비공개 커뮤니티에서 SNS(트위터)로 이동한 것이고, 둘째는 프로아나족의 저연령화 현상 심화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프로아나 컨셉질’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여긴다. ‘컨셉질’이란 온라인상에서 특이한 콘셉트를 잡고 노는 문화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컨셉질을 해야 조회수는 물론 댓글 및 ‘좋아요’, 팔로어 숫자가 올라가는 등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즉 최근 트위터에서 급증하는 일부 프로아나 계정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중학생 성세영(가명) 양도 그런 경우다. 성양은 “사람들은 정상 체중이 건강하고 보기에도 예쁘다고들 하지만, 정작 예쁘다는 칭찬을 듣는 건 정상 체중보다 더 마른 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 마른 몸 부추기는 SNS 게시물

    마른 몸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극단적인 마른 몸을 부추기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른 몸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극단적인 마른 몸을 부추기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에는 프로아나를 이상하게 여겼지만, 트위터에서 주목받은 프로아나족이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얻는 걸 접한 후 개말라 인간이 힙(hip·개성 있고 세련된)하고 퇴폐미(병약하면서도 아름답고 관능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 넘친다고 느끼게 됐다. 지금도 예쁜 외모를 가져야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쁜 외모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은 아이돌처럼 마른 몸을 갖는 것이다.” 

    홍현주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프로아나족의 잘못된 인식을 탓하기 전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잘못은 없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0대와 20대는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활기차게 성장해야 할 시기인데, 어른들이 만든 대중문화와 미디어, SNS의 잘못된 문화에 현혹돼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같다. 프로아나족은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마른 몸이 예쁘다’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강요받는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몸매를 자신과 비교하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마른 몸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극단적인 마른 몸을 부추기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트위터에서 관련 태그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 

    섭식장애는 프로아나족의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섭식장애 질환 진료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4년 7261명이던 섭식장애 환자 수가 2018년 8316명으로 늘었다. 5년간 1055명(18.8%)이 증가한 것이다. 성별로는 여성 환자가 압도적이다. 같은 기간 섭식장애의 성별 인원을 살펴보면 여성(3만1471명)이 남성(6998명)보다 4배 이상 많다.

    거식증은 초기 치료 가능

    섭식장애가 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신체 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청소년기에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강박장애, 자기비하, 우울감 등 심리적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 

    섭식장애의 대표적 증상은 거식증이다. 거식증이 심해지면 영양이 결핍돼 빈혈은 물론 탈모, 피부 노화, 손발톱 갈라짐과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 여성은 월경불순과 무월경,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다. 가정은 물론 학교, 회사,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다이어트라고 판단해 거식증을 앓는 프로아나족을 방치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거식증을 앓는 이들한테서는 어떤 특징이 나타날까. 대표적 행동 양상으로 엄격한 다이어트 또는 굶기·절식(식사량이 과도하게 적음)을 꼽을 수 있다. 저체중임에도 체중 증가에 극도의 두려움을 드러내거나 음식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공포심을 보이기도 한다. 단기간 체중이 감소하고, 그로 인한 신체적 변화를 숨기기 위해 옷을 몇 겹씩 입기도 한다(더 자세한 내용은 <표> 참조). 

    다행인 것은 거식증이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조기에 치료하면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청소년기는 신체 회복력이 좋기에 거식증 발병 이전의 수준까지 회복이 가능하다. 허찬희 마음편한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거식증은 복합적 치료가 필요하다. 프로아나족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프로아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고,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식단 거부 수준이 어떤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 내분비내과 치료는 물론 심리치료까지 병행하므로 치료기간이 최소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자녀가 거식증 치료를 거부할 때는 부모가 먼저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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