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송가인·영탁·이찬원·김호중…두 남자가 손대면 ‘찐하게’ 히트!

[사바나] 트로트 작사·작곡 그룹 ‘알고 보니 혼수상태’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0-08-3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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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찐이야’ 녹음 두 번 만에 끝낸 영탁

    • ‘미스터트롯’ 최대 수혜자

    • ‘버프’ 받은 적 없는 개미 인생

    • 아이유 세션 팀과 콜라보한 이유

    • 아이들에게 음악 가르쳐주는 재단 설립 목표

    사바나 초원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작사·작곡 그룹 ‘알고 보니 혼수상태’ 멤버 김경범(왼쪽)과 김지환. 두 사람은 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게 최종 목표다. [홍태식 객원기자]

    작사·작곡 그룹 ‘알고 보니 혼수상태’ 멤버 김경범(왼쪽)과 김지환. 두 사람은 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게 최종 목표다. [홍태식 객원기자]

    “네 머릿속은 화수분 같아. 악상이 술술 흘러나와.”(김경범) 

    “타고나서 그래. 그나저나 잘 좀 봐. 여기서는 강하게 한 번 쳐주면 어떨까.”(김지환) 

    “가사가 서정적이니까 섬세하게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몰입하기에 좋지.”(김경범) 



    서울 논현동 한 음악 작업실 안에서는 매일 트로트 작곡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 작곡가 김경범(35)·김지환(32)은 머리를 맞댄 채 불현듯 떠오른 악상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리하고 있었다.

    ‘미스터트롯’ 최대 수혜자

    두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우연히 듣게 된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그는 “임영웅을 뛰어넘는 ‘미스터트롯’ 최대 수혜자가 있다”며 “그 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젊은 트로트는 탄생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팀’이 바로 이름도 독특한 작사·작곡 그룹 ‘알고 보니 혼수상태’다. 김경범·김지환으로 멤버가 이뤄졌다. 

    알고 보니 혼수상태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사·작곡 그룹이다. 2016년 팀을 결성한 이후 그들 손에서 탄생한 트로트만 500여 곡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가인이어라’ ‘서울의 달’(송가인), ‘약손’(정다경), ‘찐이야’(영탁), ‘시절인연’(이찬원), ‘고맙소’(김호중), ‘눈물비’(장동원) 등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방영 직후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몰이 중이다. 30대 청년 두 명이 요즘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를 만든 우리나라 대표 작곡가라니,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8월 5일 논현역 인근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상가 건물 지하 1층에 둥지를 튼 66㎡ 남짓한 소박한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송대관·태진아·장윤정·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등 유명 트로트 가수들의 앨범 200여 장이 오밀조밀 걸려 있다. 뿌연 유리창 너머 녹음실과 구석 뒷방에는 키보드와 기타, 마이크, 악보가 즐비했다. 바깥은 연일 계속된 장맛비로 땅에서 덥고 습한 기온이 올라와 온몸이 끈적거리는데, 작업실 안에서는 키보드에서 흘러나온 시원하고 경쾌한 멜로디가 자유자재 춤을 췄다. 

    김지환이 흰 종이에 쓱쓱 노래 가사를 적고는 음표를 대충 그려 넣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경범이 건반을 몇 번 두드리자 5분 만에 멜로디 몇 소절이 완성됐다. 음악은 본디 밤샘 고뇌의 결과물로 알았는데, ‘내가 지금 뭘 본 건가’ 눈이 번쩍 뜨였다.

    ‘버프’ 받은 적 없는 개미 인생

    “멜로디 어떤가요, 괜찮죠?” 

    김경범이 음악 작업을 마무리하며 물었다. 스스로도 꽤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저희가 작곡가상을 받았어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죠. 팀 결성 이후 둘이서 작곡가상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음악인 사이에서 우리 음악은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대요.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고 화끈하다고, 이렇게 중성적인 음악은 처음이라고들 한대요. ‘그동안 우리의 수고, 노력,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위로와 자신감을 얻었어요.” 

    차분한 말투에서 쉽사리 출렁이지 않는 물결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들떠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혼수상태는 8월 13일 음원 플랫폼 소리바다가 주최한 ‘2020 소리바다 어워즈’에서 작곡가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로 꼽힐 만큼 쉴 새 없이 달려왔기에 의미가 깊은 수상이었다. 줄곧 ‘한국 트로트계 샛별’로 불렸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대중이 기억하는 대표작이 없었다. 왕성한 작품 활동에 비해 히트곡이 나오지 않아서다. 그러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방영되면서 히트곡 여러 개가 최고 인기곡 반열에 오른 것이다. 

    마침내 오랜 꿈을 이룬 소감이 어떨까. 김경범은 “나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꽃을 피우는 날이 온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그걸 확인했다”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어느 날 갑자기 트로트를 작곡한 건 아니에요. 작곡팀 만들기 이전부터 드라마 OST, CF 음악, 발라드, 트로트 등 곡 작업을 계속 해왔어요. 올해 작곡가로 데뷔한 지 저는 16년차, 지환이는 13년차가 됐죠. 데뷔한 이래 각자 만든 노래까지 모두 합치면 한 900곡? 그 정도 될 거예요. ‘버프’를 받은 적 없는 개미 인생이죠. 물론 그 노력이 밑천이 돼 수많은 히트곡을 냈으니 엄청난 열매를 맺은 건 맞아요. 그래도 운이 정말 좋았던 거죠. 그래서 겸손해지려고 애를 써요.” 

    - 그렇게 갑자기 히트곡이 많아지면 삶에 어떤 변화가 있나요. 

    “일단은 어딜 가든 어른들이 엄청 좋아해 주세요. 부모님이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자주 영상통화가 걸려 와요. 지인 분께 인사드리라고요. 어른들 사이에서는 제가 최고 스타거든요.(웃음) 요새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 기회가 많아졌어요.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요. 제 고향이 대전인데,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곡가로 나왔죠. 부모님께 효도한 셈이니 행복한 마음이 크죠.”(김지환)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공동 작업 비결

    “최근 또 하나의 방송 출연을 결정했어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저희가 심사위원으로 출연해요. ‘미스터트롯’ 방영 당시 잠깐 출연한 적은 있었지만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려요. 요즘 트로트가 대세구나 싶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요.”(김경범) 

    - 그럼 예능 쪽에 도전할 생각도 있나요. 

    “그럼요. 저희는 음악이랑 예능을 하고 싶어요. 팀 이름이 왜 ‘혼수상태’겠어요.(웃음) 넘치는 끼와 흥을 음악 작업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요.”(김경범) 

    - ‘찐이야’ ‘고맙소’ 등으로 ‘빵’ 터지고 나서 수익도 많이 늘었겠죠. 

    “계좌로 들어오는 저작권료 액수가 매달 달라요. 요새는 코로나19 여파로 행사나 공개방송이 많이 줄었어요. 노래방, 유흥업소도 영업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쪽에서 나오는 저작권료가 엄청 줄었죠. 대신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음원 스트리밍에서 나오는 저작권료가 많이 늘었어요. 그래도 제 나이 또래가 벌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벌었죠. 대기업 임원의 연봉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김지환) 

    - 아까 보니 작사·작곡 실력이 엄청난 것 같은데요. 공동 작업 비결이 뭔가요. 

    “저는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고, 형은 몰입감이 엄청나요. 저의 경우 어떤 멜로디를 들으면 곧바로 연주가 가능하거든요. 악상도 자주 떠오르고요. 그런 부분은 좀 타고난 것 같아요. 그런데 형을 보면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음악인이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곡을 쓸 때 가수한테 완전히 몰입하거든요. 작곡가가 그러기 쉽지 않아요. 형은 송가인 노래 만들 때 자기를 버리고 송가인이 돼버린다고요. ‘서울의 달’ ‘가인이어라’ 작곡 땐 6개월 내내 송가인 음악만 듣더라고요. 송가인 특유의 리액션부터 시선 처리까지 따라 하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점 덕분에 저희가 좀 더 다양한 곡을 쓸 수 있게 된 거죠.”(김지환)

    아이유·아이돌 세션 팀과 ‘콜라보’한 이유

    서울 논현동 인근에 있는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작업실 벽면에는 송대관·태진아·장윤정·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등 유명 트로트 가수들의 앨범 200장이 걸려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서울 논현동 인근에 있는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작업실 벽면에는 송대관·태진아·장윤정·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등 유명 트로트 가수들의 앨범 200장이 걸려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 알고 보니 혼수상태와 작업하고 싶어 하는 가수도 많더군요. 

    “가수와 소통하며 그 스타일에 맞는 곡을 쓰려고 노력하거든요. 누구나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지만, 결국 노래를 듣느냐 마느냐 선택하는 건 대중이잖아요. 제작자든 작곡가든 가수든 자기 스타일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저희는 곡 의뢰를 받으면 곧바로 가수 팬 카페에 가입해요. 팬들이 가수한테 원하는 걸 알아보려는 거죠. (김)호중이의 경우 팬들이 정통 클래식을 듣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호중이 노래 만들 때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나보다 더 사랑해요’를 만들었죠. 그렇기에 이 노래가 음원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할 수 있었던 거예요.”(김경범) 

    - 젊은 트로트 스타들은 20, 30대 팬도 많더군요.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음악적으로 어떤 점을 강조하나요. 

    “요즘 트로트계에도 ‘스밍 문화’가 생겼어요. 팬 카페를 둘러보면 중장년 팬분들이 자녀의 계정으로 음원 사이트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녀한테 용돈 주면서 음원 다운로드 해달라거나 음원 스트리밍 해달라고 요청하는 거죠. 그걸 보면서 젊은 친구들도 트로트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이 뭘까 고민해 봤죠. 그러다 아이유·아이돌의 음악을 연주하는 세션 팀과의 ‘컬래버레이션’을 떠올린 거예요. 젊은 층이 자주 듣는 음악을 연주하는 팀과 작업해야 젊은 트로트를 구현할 수 있겠다고 본 거죠. 실제로 이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어요.”(김지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 2006년으로 거슬러 가보자. 작곡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두 사람의 음악 인생이 시작된다. 김경범은 다섯 살에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 재능을 깨달았다. 우연히 가수 조성모의 ‘To Heaven’을 듣고 그에게 곡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에 올라와 작곡가 김선민 밑에서 곡 쓰는 법을 배운다. 가수 페이지의 7집 앨범 ‘다시 사랑해줘요’ ‘말해줘요’ 등을 작곡하며 데뷔한다. 2006년, 그가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김지환은 학창 시절 재즈를 배우며 음악에 눈을 뜬다. 2006년, 열아홉 살 때 처음 작곡한 ‘샤방샤방’이 벅스뮤지션 발굴대회에서 수상하면서 최연소 트로트 작곡가로 명성을 누린다. 2008년 박현빈이 이 노래를 불러 당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대한민국 음악계를 뒤흔든다.

    영화 한 장면 같은 첫 만남

    - 두 분은 클래식과 재즈를 배웠는데, 어떤 계기로 트로트를 작곡하게 됐나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바빠서 절 돌봐줄 여력이 없었거든요. 할머니 집에서 지내다 보니 나훈아·이미자 선생님 노래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죠. 신기하게 경범 형도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자라면서 트로트를 자주 들었다고 해요. 그게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김지환) 

    - 어린 나이에 작곡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더군요. 

    “첫 작곡부터 초대박을 터뜨렸으니까요. (박)현빈 형이 부른 ‘샤방샤방’ 덕분에 당시 집 한 채 값 정도 벌었어요. 정작 저는 군에 입대해 잘 몰랐지만요. 엄마가 돈 관리를 하셨거든요. 그 후로는 히트곡이 없었어요. 제대 후 복학해 줄곧 학업에 열중하느라 곡을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김지환) 

    “제가 스무 살에 작곡을 시작했어요. ‘얼른 작곡가로 자리 잡아 생계를 꾸려야지’ 생각했어요. 전공이 클래식이라 주로 OST와 가요(발라드) 작업을 했죠. 그때부터 작곡한 OST가 400~500곡 정도 돼요. 숨 돌릴 틈 없이 곡을 썼는데, 정작 히트곡이 없었죠. 당시 저작권료를 5만~10만 원 받았는데, 돈벌이가 변변치 않아 레슨 활동과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했어요.”(김경범) 

    - 어려움이 많았겠군요.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고 가정을 꾸릴 때 저는 장남이어서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 고민이 많았죠.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큰일 났구나, 그러던 와중에 지환이를 만났고, 팀까지 결성했죠.”(김경범) 

    - 두 분은 언제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2014년 어느 날 신사동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곡 작업을 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카페에 들어갔어요. 옆 테이블에 앉은 한 남자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됐는데, 트로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쪽에서 활동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죠. 알고 보니 그 사람이 경범 형이었어요. 마침 저도 트로트에 관한 이야기로 통화 중이었는데, 형도 제 얘기를 듣고 업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대요. 영화 한 장면처럼 그렇게 서로 알게 됐죠.”(김지환)

    아이들에게 음악 가르쳐주는 재단 설립이 목표

    - 팀을 결성한 이유는 뭔가요. 

    “이 세계에 있다 보면 돈 버는 데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박 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니까요. 그러다 보면 초심을 잃고, 돈에 끌려다녀요. 그런데 다행히 인생에서 최종 목표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게 된 거예요. 작곡가로 성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게 저희 꿈이거든요.”(김경범) 

    - 선한 영향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죠. 매달 저작권료 일부를 갹출해 공동 명의 계좌에 저축해요. 얼마 전에 법인도 등록했어요. 재단을 운영하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저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2급을 취득했고, 형은 이제 자격증을 따려고 해요.”(김지환) 

    -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겠죠. 

    “어릴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정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더는 피아노 학원을 다닐 수 없었죠. 당시 제가 클래식을 배우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경범이한테는 학원비 받지 않겠다’며 7~8년을 무료로 가르쳐주셨죠. 그때 다짐했어요. 반드시 작곡가로 성공해 돈이 없어 피아노를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겠다고.”(김경범) 

    “부모님이 대전에서 보육원을 운영하세요. ‘샤방샤방’ 만들어 번 돈 대부분이 그곳에 쓰였죠. 그때는 어린 마음에 막 불평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이 대학생, 사회인으로 자란 모습을 보는데, 정말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두 분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요.”(김지환) 


    ‘찐이야’ 녹음 두 번 만에 마친 영탁

    - 팀을 만든 후 한동안 히트곡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나요. 

    “그때는 우리가 만든 노래가 빛을 못 보니까 답답한 마음이 더 컸죠.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열심히 곡을 썼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트로트가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힌 곡이 많았죠. 속상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변 사람한테 ‘너희는 좋은 곡을 그렇게 많이 쓰고도 왜 히트곡이 없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적잖이 받았어요.”(김경범) 

    두 사람은 곡 작업에 더 열심히 매달렸다. 김경범은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고, 김지환은 경쾌하게 치고 나가는 역량이 뛰어나다. 자연스럽게 도입부는 김경범, 후렴구는 김지환이 도맡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성향은 물론 작업 스타일까지 절로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음악은 스펙트럼 넓은 음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고 화끈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두 분의 음악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곡 작업 때 많이 부딪치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렇죠. 서로 음악 색깔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지금도 많이 싸워요. 물론 곡 작업하다 보면 마음 상할 때도 있죠. 나는 이게 좋은데 왜 형은 이상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장점이에요. 중독성 강한 가사에 경쾌한 리듬이 인상적인 노래부터 깊은 감성과 폭발적인 울림이 가득한 노래까지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거든요.”(김지환) 

    -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방영 당시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노래가 특히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작곡가로서 마음이 남다를 것 같아요. 

    “가수가 1등 하면 우리가 1등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죠. ‘미스트롯’ 결승전 ‘인생곡 미션’에서 정다경이 ‘약손’ 부를 때 둘이서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다경이가 절정의 무대를 선보이더라고요. 660점으로 마스터(심사위원단) 총점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죠. ‘미스터트롯’ 결승전 ‘작곡가 미션’ 때 영탁의 ‘찐이야’가 1위를 차지했을 때도 그랬어요. 그 순간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김지환)

    가수 역량, 좋은 노래, 분위기, 천운

    - 영탁의 ‘찐이야’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대중은 왜 유독 이 노래에 열광할까요. 

    “영탁 형의 곡 해석 능력이 뛰어나서일 거예요. 트로트 싱어송라이터이기에 작곡가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가수가 노래할 때 감정선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한데, 영탁 형은 ‘찐~하게’가 아니라 ‘쮠~하게’ 불러요. 어느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아는 거죠. 그러니 녹음도 단 두 번 만에 마쳤죠. 처음 부르는 건데도 너무 잘 부르는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불러보자 해서 다시 불렀는데, 고칠 부분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제가 경험한 최단기 녹음 작업이었죠.”(김경범) 

    - ‘노래가 좋다’는 의견도 많던데요. ‘찐이야’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어느 날 친한 동생이 ‘형, 이거 완전 찐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최고라는 뜻이래요. 제가 고3 때 샤방샤방 단어를 듣고 노래 ‘샤방샤방’을 만들었거든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 찐이야 단어로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작곡을 시작했죠. 타이밍이 정말 좋았죠.”(김지환) 

    “천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영탁 형이 미스터트롯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으니까요. 국민적 인기를 모으는 방송에서 선보인 게 노래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죠. 때마침 ‘찐이야’ 노래가 4·15 총선에서 선거송으로 많이 불리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죠. 유세 기간 내내 이 노래가 전국적으로 울려 퍼졌거든요.”(김경범) 

    - 히트곡이 탄생하는 조건은 뭔가요. 

    “삼박자가 맞아야 해요. 가수의 역량, 좋은 노래, 그리고 분위기를 타야 하죠. 여기에 운까지 따른다면 금상첨화겠죠. 그걸 알아야 해요. 히트곡이라는 게, 신이 허락해야 가능하다는 것. 결코 내가 잘나서 노래가 뜬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저희는 ‘찐이야’ 노래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김지환)

    언젠가는 꽃을 피운다

    - 트로트 예능이 최근 부쩍 늘었는데 트로트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세요. 

    “네, 그런 면이 있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트로트 인식을 바꾸어놓은 건 사실이니까요. 팬층이 한층 넓어지고 시장이 커졌죠. 무엇보다 실력 있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도 생겼어요. 영탁, 송가인처럼 원석 같은 가수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보게 됐거든요. 다만 근래 트로트 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조금 안타까워요.”(김지환) 

    - 누구나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을 볼까요. 

    “작곡가 지망생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요. ‘힘들어도 한길을 파라, 24시간 열심히 살면 언젠가 꽃을 피운다.’ 실은 청년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죠. 어떤 일이든 자리 잡기 전까지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으니 힘들고 지치겠지만 꾸준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나 보다’ 하면서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요. 저도 올 초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중간에 그만뒀더라면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는 걸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김경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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