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코로나가 대한민국 ‘제네릭’ ‘바이오시밀러’ 힘 입증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09-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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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덮친 감염병 위기, 한국엔 새로운 기회

    • 세계 제약바이오업계, ‘코리아 브랜드’ 주목하는 이유

    • “품질 좋은 국산 코로나 백신 치료제 늦더라도 꼭 만든다”

    • ‘개방형 혁신’으로 신약 개발 앞당긴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세계 톱클래스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잠재력이 매우 크다.” 

    원희목(66)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의 진단이다. 원 회장은 약사 출신으로 대한약사회장, 제18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2017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에 취임한 뒤 줄곧 “제약바이오는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이자 국민산업”이라고 강조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돈도 몰리는 분위기다. 정부가 지원책을 쏟아내고, 회사 이름에 ‘바이오’만 들어가면 주가가 치솟는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원 회장을 만나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하나만 짚고 가자. 제약바이오산업이 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약’이라고 부르는 의약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화학물질을 적절히 배합해 만드는 합성의약품, 다른 하나는 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바이오의약품이다. 과거 ‘제약’ 하면 합성의약품 제조부터 떠올렸다. 소화제, 진통제, 항암제 등이 보통 여기 해당한다. 최근엔 항체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바이오의약품의 비중과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다.

    “각국 대사관에서 한국 의약품 관련 문의 급증”

    양자는 제조방식 외에도 차이점이 더 있다. 합성의약품은 복제가 쉽다. 신약 개발 후 보통 20년간 인정되는 특허 기간이 끝나면 여러 제약사가 복제약 ‘제네릭’을 만들어 판매한다. 반면 바이오의약품은 세포를 사용하는 제조 공정의 특성상 ‘오리지널’과 똑같은 약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바이오의약품 특허 만료 후 다른 제약사가 오리지널을 본떠 생산한 제품은 ‘바이오시밀러’라고 한다. 효능이 원래 약과 유사하다는 의미에서다. 이런 용어를 알면 원 회장 인터뷰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협회)는 국내 제약 및 바이오 분야 기업이 모여 만든 단체로, 2019년 말 현재 194개사가 가입했다. 이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해 보자. 

    - 코로나19 확산 이후 제약바이오 분야에 대한 대중의 주목도가 높아진 듯하다. 현장에서 변화를 느끼나. 

    “물론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보며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사람이 많다. 해외의 관심도 커졌다. 각국 대사관으로부터 한국 의약품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는다. 최근 국산 의약품의 해외 수출도 늘었다. 코로나19가 산업 전반에 큰 위기이면서 동시에 제약바이오업계에는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코로나19 발생 전 세계 제약바이오업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땠나. 

    “그리 높지 않았다. 한국은 의약품 시장 및 제약사 규모가 의약 선진국과 비교할 때 작은 편이다. 신약 개발 역사도 짧다. 다른 나라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를 살펴봤다. 2018년 현재 세계의약품 시장은 약 1418조 원 규모다. 미국(약 571조 원)이 전체의 40.2%를 차지하는 ‘큰손’이고, 중국(약 155조 원, 11%), 일본(약 101조 원, 7.2%), 독일(약 63조 원, 4.4%) 등이 뒤를 잇는다. 한국 시장은 약 23조 원 규모로 세계 12위(1.6%) 수준이다. 

    기업 매출을 놓고 비교하면 한국의 현재 위치가 더 잘 보인다. 매출 세계 1위 제약사 화이자의 2018년 매출은 약 53조 원. 노바티스(약 49조 원), 로슈(약 49조 원), 미국 머크(약 41조 원), 존슨앤존슨(약 40조 원) 등 다른 대형 글로벌 제약사도 한 해 40조 원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엔 연매출 2조 원을 넘기는 제약사가 한 개도 없다. 2019년 매출 1조4803억 원을 기록한 유한양행이 국내 1위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기업 매출을 다 더해도 화이자 한 개 매출에 못 미친다”는 말이 나온다. 반도체, 철강, 조선 등 분야와 비교하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걸 확인할 수 있다.

    “제네릭 경쟁력도 한국 제약바이오업계의 자산”

    - 국내 제약사들이 내수 시장용 제네릭 생산 및 판매 위주로 기업을 운영해 글로벌 경쟁력을 기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과거 그런 면이 있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제약 역사가 길다. 실력 있는 제약사도 많다. 그런데 상당수 회사가 신약 개발보다는 제네릭 생산에 치중해 비슷비슷한 제품을 시장에 많이 출시했다. 그러다 보니 판로 확대 과정에서 병원과 약국 등에 뒷돈을 주는 ‘리베이트’가 적발돼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눈여겨볼 건 요즘 업계 분위기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신약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제약사가 늘고 있다. 국내 제약사 상당수가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기업 매출이 전부 이익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의 순이익률은 높아도 매출의 9%, 낮으면 1~2%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 매출액 10%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건 ‘제살 깎아먹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미래를 내다보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한다. 그 과정에서 신약 개발 및 해외 기술수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셀트리온의 경우 2019년 매출의 26.9%를 R&D에 투자했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부광약품, 종근당 등 유명 제약사 상당수도 지난해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사용했다. 원 회장은 “이런 변화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한국 제네릭 산업의 가치가 확인된 데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그동안 제네릭은 신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그렇다.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은 표적항암제 등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신약을 개발하고 20년간 특허권을 바탕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이미 특허가 풀린 제네릭을 생산해서는 그만큼 큰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신약 개발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제네릭 생산 또한 매우 중요한 산업 분야라는 게 코로나19를 통해 확인됐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세계 각국이 국경을 닫았다.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의약품 수출도 통제했다. 그러자 세계 1위 의약품 시장 미국에서 난리가 났다. 유수의 제약사가 거기 다 몰려 있는데, 정작 그 회사들이 신약 개발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특허가 풀린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거의 없다. 미국 소비자가 사용하는 진통제, 해열제, 항생제 등은 대부분 인도, 중국에서 생산한 제네릭이다. 이런 약 수급이 막히자 사재기가 발생하고 사회가 불안해졌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상비약 구매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기업이 질 좋은 제네릭을 안정적으로 시장에 공급한 덕분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코리아 브랜드’의 힘”

    6월 12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개최한 MIT ILP 화상 협약식에서 원희목 협회장(오른쪽)과 칼 코스터 MIT ILP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6월 12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개최한 MIT ILP 화상 협약식에서 원희목 협회장(오른쪽)과 칼 코스터 MIT ILP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 그동안은 제네릭 생산 및 판매에 치중하는 국내 중소형 제약바이오사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는데. 

    “나는 코로나19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기회 말이다. 제네릭 생산에도 기술력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좁은 내수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기술력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스마트 공장에 가보면 첨단 설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거기서 생산한 제네릭은 중국산, 인도산에 비해 품질이 뛰어나다. 게다가 ‘한국산’ 아닌가. 세계 무대에서 ‘코리아 브랜드’는 힘이 세다. 코로나19를 발판 삼아 우리 기업이 적극적으로 해외 수출을 추진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이를 돕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방금 ‘코리아 브랜드’에 대해 언급했다. 그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앞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아직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다. 해외 바이어들은 국내 기업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가 세계 무대에 진출하려면 글로벌 제약사, 연구소, 대학, 바이오벤처 등과 협력해야 한다. 지난해 우리 협회는 이 목표를 이루고자 제약기업, 투자자 및 정부 관계자 등과 함께 미국·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 중 하나인 미국 보스턴에서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운영하는 산학연계프로그램(ILP·Industrial Liaison Program) 가입을 놓고 협의를 진행하며 ‘코리아 브랜드’의 힘을 실감했다.” 

    - 어떤 일이 있었나. 

    “MIT ILP는 세계 유수의 제약바이오기업이 참여하는 소통의 장이다. 여기 회원이 되면 보스턴에 있는 150개 이상 연구소, 1800여 개 바이오스타트업, 3000명이 넘는 교수·연구진과 협업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기업당 연회비가 1억 원에 이른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이 돈을 매년 부담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래서 국내 제약사 여러 개가 컨소시엄 형태로 가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ILP 관계자한테 이 말을 하니 그쪽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반응을 보였다.” 

    -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잠재력을 보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원 회장은 이 대목에서 빙긋 웃으며 당시 MIT ILP 관계자 앞에서 했다는 말을 고스란히 들려줬다. 

    “과거 한국에 뭐가 있었나. 철강, 조선, 반도체, 자동차 가운데 어느 하나, 한국이 세계 최고인 게 있었나.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라.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그 배경에는 정부의 집중 지원이 있다. 한국은 정부가 ‘이 분야를 육성하겠다’고 정하면 곧장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나라다. 지금 한국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제약바이오를 ‘한국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이 분야는 발전할 일만 남았다. 지금 우리를 잡아라. 한국 기업이 MIT ILP에 가입하면,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다.” 

    - 그 말이 통했나. 

    “물론이다. 그들이 점점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지더라. 결론을 말하면 현재 국내 14개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MIT ILP에 가입한 상태다. 이게 바로 코리아 브랜드의 힘이다.”

    “국산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반드시 만든다”

    6월 30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발기인 총회에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오른쪽 앞에서 네 번째)이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6월 30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발기인 총회에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오른쪽 앞에서 네 번째)이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공]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는 원 회장 발언은 ‘팩트’다. 정부는 코로나19가 세상에 알려지기 훨씬 전인 지난해 4월, ‘차세대 3대 주력산업 분야’ 중점 육성 계획을 밝혔다. 이때 바이오헬스 산업이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대상으로 선정됐다. 정부는 2025년까지 혁신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 등을 위한 R&D에 연간 4조 원 이상 투자할 방침이다. 목표는 세계시장 점유율 3배 확대, 수출 500억 달러 달성, 일자리 30만 개 창출 등이다. 

    국내외의 관심과 정부 지원이 모이고 있는 이때, 한국 제약바이오업계도 한 단계 도약하고자 달려나가고 있다. 8월 5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국내 55개 제약바이오기업이 공동 출자해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을 공식 출범한 것이 한 사례다. KIMCo 참여사들은 서로 연구개발 및 생산 노하우를 공유하며 ‘개방형 협력(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 신약 개발 등에 나설 계획이다. 원 회장은 “국내 제약사들이 그동안 닫아걸었던 문을 열고 공동투자, 공동연구, 공동개발에 나서기로 한 건 큰 의미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얻은 이익을 함께 나누며 참여사 모두가 공동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단 KIMCo의 당면 목표는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이다. 원 회장은 “세계 여러 제약바이오기업이 이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걸 안다. 그 가운데 우리보다 앞서 백신 또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개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 안보 차원에서라고 한다. 

    - 그러잖아도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백신 물량 확보 경쟁을 벌인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 

    “그렇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 해도 국내 기업이 충분한 양을 생산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은 제때 필요한 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지금은 민관이 협력해 약품 개발, 생산, 물량 확보가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때다. 나는 우리 제약바이오업계가 다소 늦더라도 품질 좋은 백신, 치료제를 반드시 개발해 낼 거라고 확신한다.” 

    원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제약바이오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국민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신성장동력’으로서의 구실을 다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원희목
    ● 1954년 서울 출생
    ● 1977년 서울대 약대 졸업
    ● 1979~1981년 동아제약 개발부 근무
    ● 1991~1994년 서울 강남구약사회 회장
    ● 2003년 강원대 대학원 약학박사
    ● 2004~2008년 대한약사회 회장
    ● 2008~2012년 제18대 국회의원
    ● 2017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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