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년의 최순애와 이원수 부부. 최순애는 ‘오빠 생각’을, 이원수는 ‘고향의 봄’이란 국민노래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이 모든 노래를 뛰어넘는, 이른바 한국인의 가을 노래가 있다. ‘오빠 생각’이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보다 한국인의 가을을 절절하게 읊은 노래가 있을까. 딱 잘라 말해 없다고 봐야 한다. 노래는 ‘비단구두’ ‘말 타고 서울 가시고’ ‘뜸부기’ 등 토속적인 말과 더불어 우리 민족 서러움의 감성을 ‘오빠’라는 아늑한 이미지로 대변한다. 그래서 반세기가 넘도록 많은 사람이 애창했다.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게”
10대 소녀들이 대중스타에게 무조건 갖다 붙이는 ‘오빠’와는 전혀 다른 이 노래 속의 ‘오빠’는 누구일까. 가장 한국적인 비애와 그리움의 표상이 오빠가 된다. 그래서 노래는 동요로 출발했지만 조용필, 송창식, 이선희, 구준엽을 비롯해 소프라노 조수미 등 수많은 쟁쟁한 가수가 저마다 자신만의 목소리로 불렀다. 이는 ‘오빠 생각’이 곧 이 땅의 기성세대에게 ‘애국가’나 ‘고향의 봄’ 못지않게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소력을 가졌음을 뜻한다.
그런데 노래 속의 오빠는 과연 무엇 때문에 서울로 갔을까. 일제에 논밭을 빼앗긴 농촌의 젊은이가 어린 누이동생을 두고 돈 벌러 갔을까, 아니면 공부하러 갔던 것일까, 또는 독립 투쟁하러 만주로 떠났을까. 돌아올 기약 없는 오빠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이의 가슴속에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지는’ 이 노래는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렇듯 슬프게 작곡됐을까.
그러나 노래의 풍경은 상상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그려내기는 어렵다. 특히 1925년이라는 작사 연도가 나타내듯 이 노래의 연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록으로 보면 가사는 아동문학가 최순애 선생이 만들었고 멜로디는 박태준 선생이 붙였다. 1990년대 말 타계한 최순애 선생은 ‘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고(故) 이원수 선생의 부인이다. 1925년 늦가을, 최순애는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당시 방정환 선생이 펴내던 잡지 ‘어린이’에 한 편의 동시를 투고했다.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작(詩作) 동기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당시 나에게는 오빠 한 분이 있었다. 딸만 다섯에 아들 하나뿐인 우리 집에서 오빠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 갔다가 관동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일본 순사들이 늘 요시찰 인물로 보고 따라다녔다. 오빠는 고향인 수원에서 소년운동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 방정환 선생 밑에서 소년운동과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 때면 늘 선물을 사 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게’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다. 그러나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그런 오빠를 그리며 과수원 밭둑에서 서울 하늘을 보면서 울다가 돌아왔다. 그래서 쓴 시가 바로 ‘오빠 생각’이었다.”

동시 ‘오빠 생각’을 지은 최순애가 살던 수원 장안문 근처. 수원성 복원사업으로 옛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