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사채왕’-현직 판사 금품비리 의혹

“연수원 앞 중국집에서 3억 사택 앞에서 3억 줬다” (사채왕 前 내연녀 한모 씨)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입력2014-11-20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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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뢰 의혹 판사, 사건 담당 검사와 e메일로 상의”
    • “사채왕이 판사와 손잡고 해코지할까 두려웠다”
    • ‘전세자금’ ‘주식투자금’ ‘용돈’ 명목
    • 판사·법원, “의혹 사실무근, 사건 빨리 끝났으면…”
    ‘사채왕’-현직 판사 금품비리 의혹
    최근 법조계의 가장 큰 이슈는 현직 판사의 억대 금품수수 의혹이다.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A판사가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 씨(60)로부터 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6억3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A판사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이다. 사실로 확인된다면, 현직 판사의 수뢰금액 중 역대 최대가 될 것이다. A판사 관련 의혹은 4월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검찰은 지방법원에 근무 중인 A판사가 명동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모 씨로부터 3억 원을 수수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정황을 확보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A판사가 2008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부근의 한 식당에서 최씨 일행을 만나 수표 등으로 3억 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2014년 4월 8일 ‘한국일보’)

    ‘사채업자 돈 받은 판사 3억원 추가 수수 포착’(4월 9일), ‘금품 수수 의혹 판사 최씨 가족·측근 접촉’(5월 12일), ‘금품수수 의혹 판사, 사채왕 수사기록 검토해 줬다’(5월 13일)는 보도도 잇달아 나왔다. 그러나 A판사와 법원은 의혹을 부인했다. A판사는 여러 언론을 통해 “최씨(사채왕)와는 아는 사이다. 그러나 금품거래는 없었다. 최씨 사건에 간여한 사실도 없다. 최씨가 아닌 다른 재력가에게 돈을 빌렸고 현재 모두 변제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공갈, 협박, 마약, 변호사법 위반, 탈세, 위증교사 등 10여 개 혐의로 구속된 최씨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마약, 탈세 등 10여 개 혐의

    법조계에선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사건은 최씨의 전 내연녀 한모 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한씨는 1998년경부터 2011년까지 최씨와 내연관계를 유지했다. 서울 목동, 압구정동, 여의도 등에서 함께 살았다. 한씨는 2008년 사기도박과 마약사건으로 최씨가 기소되기 전까지 최씨의 재산을 관리했다. 최씨는 사기도박과 사채업을 통해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동아’는 최근 한씨를 두 차례 만나 2012년 시작된 사채왕 최씨 관련 사건의 전말을 들었다. 한씨가 검찰과 국세청에 제출한 각종 자료도 받아 분석했다. 먼저 한씨는 최씨의 범죄사실을 제보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1년 7월과 10월, 최씨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내연관계가 끝났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검찰에 제보한 건 아니다. 모 기업 M·A(인수·합병) 관련 사건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게 됐다가 마음이 맞는 검사를 만나 제보를 결심했다.”

    한씨는 2012년 대구지방검찰청에 최씨의 범죄를 고발했다. 비슷한 시점에 국세청에도 최씨를 탈세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검찰에 고발한 내용 중 A판사의 금품수수 사실이 포함됐다. 2009~2010년경 최씨로부터 총 6억3000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한씨는 “솔직히 그때는 A판사 부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걸 원치 않았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칫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검찰이 A판사 수뢰 의혹에 대한 수사에 머뭇거리는 동안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다. 수사를 맡은 곳은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이 사건을 내사했다. 한씨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동시에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에서 자료를 받아 A판사, 최씨 등과 관련된 돈 흐름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한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여럿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수사는 올해 4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검찰이 이 사건에 뛰어들면서 경찰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청와대가 검·경 간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음은 한씨와의 문답.

    “조카가 집을 얻어야 하는데…”

    ▼ 검찰에 A판사 관련 사실확인서를 낸 걸로 아는데.

    “맞다. 내가 작성했고 작년에 검찰에 제출했다.”

    ▼ 국세청에 낸 탈세제보서류도 직접 만들었나.

    “내가 만들었다. 기억나는 것을 정리했고 수첩에 적어놓은 것도 참고했다. 2008년까지 최씨의 돈 관리를 내가 다 맡아 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대부분 기억한다.”

    ▼ A판사 금품수수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린 이유는.

    “솔직히 A판사 문제는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일이 그렇게 커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최씨가 A판사와 손을 잡고 나를 무고(誣告)로 엮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제보를 결심했다.”

    ▼ 최씨와 A판사가 왜 당신을 괴롭힐 수 있다고 생각했나.

    “지난해 최씨의 구치소 접견기록을 확보했다. 최씨가 면회 온 지인들에게 그와 같은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 최씨는 A판사를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됐나.

    “최씨는 2008년경 부천에서 사기도박과 마약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찾아다녔다. 평소 알고 지내던 C씨도 찾아갔다. 한때 정치인이던 C씨는 법조계와 정치권에 두루두루 발이 넓은 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최씨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최씨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많은 도움을 줬다.

    C씨를 찾아갔을 때 거기서 우연히 A판사의 작은아버지인 B씨를 만났다. 당시 A판사는 검사로 재직 중이었다. 최씨는 이후 B씨에게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A판사에게 부탁해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공교롭게도 A판사와 최씨 사건 담당 수사검사가 같은 대학 출신에 사법시험 동기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어떻게 인연이 됐다.”

    ▼ 사건 해결을 청탁하기 위해 A판사에게 돈을 준 건가.

    “당연하다. 최씨는 A판사를 알게 된 직후 B씨로부터 ‘우리 조카가 집을 얻어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서울 잠실에 집을 하나 구해 A판사에게 줄 생각도 했다. 그러다 A판사가 검사를 그만두고 판사 교육을 받던 시절 사법연수원 앞의 한 중국집에서 3억1000만 원을 건넸다. 이 부분은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다 끝냈다.”

    ▼ 왜 3억1000만 원이었나.

    “3억 원은 집을 얻을 돈이었고, 1000만 원은 그냥 쓰라고 줬다. 1억 원짜리 수표 2장과 1000만 원짜리 수표 10장, 그리고 1만 원권으로 1000만 원을 준비했다. 나중에 최씨가 내게 ‘A판사에게 3억 원을 줬다’고 말해 전달한 금액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난 속으로 ‘변호사에게도 10억 원씩 주는 사람이 A판사에게는 왜 3억 원밖에 안 줬을까’ 궁금하게 생각했다.”

    ▼ 또 어디에서 A판사에게 돈을 줬나.

    “서울 여의도의 우리 집에 A판사가 왔을 때 1000만 원을 줬다. A판사는 우리 집에 2~3번 다녀갔는데, 내가 있을 때 온 것은 그때뿐이다. 그때는 A판사가 작은아버지 B씨와 같이 왔다. 최씨가 1000만 원을 주니까 A판사는 그 자리에서 돈을 B씨에게 주면서 ‘이건 작은아버지 쓰세요’라고 했다.”

    판사가 사채왕 딸 중매

    ▼ 그다음에 돈을 전달한 때는.

    “2009년 초 A판사가 교육을 마치고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 최씨와 내가 병문안을 갔다. 헛개나무로 만든 무슨 약과 현금 1000만 원을 갖고 갔다. 병실에는 A판사의 어머니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3억 원을 준 건 2009년 말쯤이다. 어느 날 최씨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3억 원을 가지고 나하고 어디를 좀 갔다오자’고 했다. 당시 나는 최씨가 맡겨놓은 1억 원짜리 수표 3장을 보관하고 있었다. 최씨는 ‘A판사가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A판사가 주식을 해서 돈을 좀 버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 그 3억 원은 어디에서 건넸나.

    “A판사가 살던 관사 앞에서 잠깐 만나 돈을 줬다. 오래 머물지 않고 돈만 주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차에서 잠시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마지막 3억 원을 건넬 당시엔 최씨와 A판사가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아주 가깝게 지내던 때였다. 나에겐 ‘형수님’이라고 했다.”

    최씨의 구치소 접견기록을 보면 최씨와 A판사의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A판사는 최씨의 아들 등 최씨의 주변인물과도 잘 아는 사이로 보인다. 다음은 2012~13년경 최씨의 구치소 접견기록 중 일부.



    (최씨가 친형에게) “아저씨(B씨)한테 특별면회 좀 부탁하세요. 그쪽(A판사)에서 부탁하면 돼요. 그거는 될 거예요.” -2012년 4월 9일

    (최씨가 B씨에게) “아재, 저기 안부 좀 전해주시고. 거기서 이야기 좀 한번 해주라고 하세요. ○○(A판사 실명)한테 한번 이야기 좀 해줘요.” -2012년 5월 15일

    (아들이 최씨에게) “성경책 준 삼촌(A판사) 있잖아. 수원으로 갔어요.”

    (최씨가 아들에게) “(매우 기뻐하며) 부탁한다고 그래. 삼촌한테 찾아가봐. 축하한다고 해. 난이라도 보내. 잘됐다.” -2013년 2월 27일

    ▼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모두 직접 확인한 것인가.

    “돈을 건넬 때 내가 현장에 있었던 경우만 얘기한 것이다. 검찰에서도 정확히 기억하는 것만 말했다.”

    ▼ A판사가 돈을 받은 대가로 최씨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나.

    “사건을 알아보는 역할을 한 건 맞는 것 같다. 최씨 담당 검사와 전화와 e메일을 주고받으며 사건에 대해 상의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에 왔을 때 A판사가 ‘검사에게 e메일을 보내 사건을 알아봤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 이상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최씨 담당 검사가 그 과정에서 최씨에게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는데,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이와 관련, 최근 검찰 고위관계자는 “검사의 금품수수 사실이나 청탁 의혹에 대한 제보자의 진술은 없었다. 수사팀이 해당 검사에게 의혹에 대한 소명을 받은 사실도 없다. 당시 검사의 사건 처리 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 A판사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나.

    “차분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 같진 않았다. 어느 날인가 ‘(전북) 부안이 고향인 한 절도범의 영장을 발부하는데, 전과만 없으면 기각하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고향사람에게 영장을 발부해 가슴이 아프다면서….”

    ▼ A판사의 작은아버지 B씨에게도 돈을 건넸나.

    “많이 줬다. 집에서도 주고 밖에서도 줬다. B씨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줬다. 말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보통 200만~300만 원, 어떨 때는 500만 원을 주기도 했다.”

    ▼ A판사가 최씨 딸 중매도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2010년인가, 최씨가 A판사에게 딸 중매를 부탁했다. 무조건 법조인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A판사가 법조계 후배를 최씨 딸에게 소개해 몇 번 만났다고 들었다. 최씨 딸이 최씨의 지시로 그 남자에게 와이셔츠도 선물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잘 안됐다.”

    1000억 대부분 은행금고 보관

    ▼ 최씨의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

    “1000억 원 이상은 될 것이다. 2008년 전까지는 내가 모든 돈 관리, 통장 관리를 다 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나.

    “대부분의 재산은 수표로 관리한다. 수표는 은행금고에 보관한다. A은행 서소문지점, B은행 동부이촌동 지점, C은행 안양 비산동 지점 등에 20여 개의 은행금고를 갖고 있다. 수표는 모두 제일은행 서소문지점에 보관했다. 수표만 800억~900억 원 됐다. 보통 한 장에 50억~100억 원짜리 수표다.”

    ▼ 부동산은 없나.

    “거의 없다. 기껏해야 조카에게 사준 주유소, 천호동과 오류동의 아파트, 딸에게 사준 집 정도다. 양도성예금증서(CD)는 많이 관리했다.”

    ▼ 2012년 세무조사 때 모두 확인이 됐나.

    “세무조사 때 확인한 것은 최씨 재산 중 일부분이다. 은행금고도 일부만 확인했다. C은행 비산동지점 같은 곳은 최씨가 빼돌리는 바람에 하나도 확인을 못했다. ‘찍기’(급전이 필요한 기업에 수십억~수백억 원을 빌려주고 하루 이자 명목으로 고리를 챙기는 사채업)로 번 돈은 의뢰인 각서가 없는 경우가 많아 세금을 물리지 못한 게 많다.”

    2012년 한씨의 탈세 제보를 받은 국세청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동원해 최씨에 대해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200억 원가량의 탈세를 확인해 추징했다. 개인에 대한 추징액으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였다.

    이 사건으로 지금 가장 골치가 아픈 건 법원이다. 법원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 올해 4월 A판사의 수뢰 의혹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을 보이던 법원 내에선 최근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법원 고위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 A판사가 의혹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뭐라 의견을 내놓기도 조심스럽다. 수사가 빨리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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