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전작권 전환 서두를 필요 없어
내실 없는 전작권 전환 외려 위험해
전작권 전환 고집, 한미동맹 흔드는 패착될지도
병사부터 자부심 넘치는 軍 만들어야
훈련 못 하면 한국에 미군 남을 이유 없어
바이든 당선은 한미동맹에는 호재
대북전단금지법은 국제적 창피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에 빨간불이 켜졌다. 총 3단계의 ‘한미연합검증평가’를 통과해야 미국에서 전작권을 환수할 수 있지만 한국군은 2단계에 멈춰 있다. 2019년 8월 1단계인 기본운용능력(IOC·Initial Operational Capability) 검증평가는 통과했지만 다음 단계인 완전운용능력(FOC·Full Operational Capability) 검증평가를 실시하지 못했다. 검증평가는 보통 한미연합훈련과 동시에 시행되는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훈련을 축소하며 평가가 미뤄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연합훈련은 쉽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1일 남북관계 회복 조건으로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정의당을 중심으로 연합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훈련에 차질이 생겨 검증평가를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과 무관하게 연합훈련의 축소 또는 중단 자체가 한미군사동맹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은 군 시절부터 한미관계 전문가로 유명했다. [홍중식 기자]
전작권 받아도 미군에 ‘지시’는 불가능
과연 문재인 정부는 전작권 전환 작업을 임기 내에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미국은 연합훈련 축소와 중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1월 11일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을 만났다. 현역 시절 군내 대표적 미국통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전 전 사령관은 군복무 시절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의 유창한 영어 실력과 업무 능력으로 한미 양군 연합작전에서 성과를 냈다. 그가 한미 양군으로부터 받은 훈장만 11개. 한미 양국 장성 중 최고 기록이다. 2016년 전역한 예비역 신분이지만 지금도 주한미군, 한국군 핵심 관계자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의 사무실에서 전 전 사령관을 만나 전작권 전환과 한미동맹에 관해 물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현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작권 전환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 일각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작권을 받아 와 자주국방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혹시 한국이 전작권을 갖게 되면 전시 상황에서 한국군이 미군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전작권은 미군 도움 없이 싸울 수 있을 때
- 지시를 내릴 수 없나?“내릴 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미군이 한국군에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수는 없다. 전작권은 일종의 협의체다.”
- 자세히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A와 B라는 두 사람이 함께 음식점을 차렸다고 가정하자. A는 요리를 잘해 주방을 맡았고, B는 싹싹한 성격이라 홀 서빙을 맡았다. 장사가 시작되면 B는 손님으로부터 주문을 받고 A에게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할지 알려준다. 이때 B가 A를 지휘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는 보긴 어렵다. 이 둘이 동등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전작권도 마찬가지다. 전작권이 어디에 있든 한국군과 미군은 동등한 관계다.”
- 거부권이 있다는 이야기인가?
“정확하다. 전시 상황이 생기면 지휘 계통과 병력 이동 등에 대한 합의를 한다. 합의 과정에서 문제가 될 부분이 있다면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양측 모두에게 있다.”
- 한국과 미국은 국력 차이가 크다. 거부권이 있어도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않나?
“195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한국과 미국의 국력 차이는 지금보다 훨씬 컸다. 그렇지만 6·25전쟁의 주요 결정에는 항상 한국군이 참여했다. 유엔군사령부를 설득해 38선을 넘었고, 반공포로를 석방했다. 전작권이 미국에 있을 뿐 한국군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 그렇다면 한국군이 전작권을 가져와도 미군에는 큰 손해가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은 전작권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이유가 있나?
“미국은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다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군이 적합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는 전작권을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 전 사령관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 선거 캠프에서 안보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야말로 깜짝 인사였다. 전 전 사령관이 군 출신인 데다 더불어민주당과는 전혀 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그가 선거 캠프에 참여할 때 건 조건이 있었다.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할 때 전작권 전환에 대한 조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위해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내 의사와 무관하게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당에서도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은 무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들었다.”
- 전작권 전환을 서두른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나?
“전작권은 권한인 동시에 책임이다. 한국이 전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미군이 한국을 지켜야 할 책임 소재가 줄어든다. 유사시에는 미군 없이도 전쟁을 치르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전작권 전환보다는 국방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 한국이 미군 없이 전쟁 치를 수 있다고 보나?
“지금은 어렵다.”
정예 병사로 시작해 정예군 만든다
한미 연합훈련의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참모훈련이 시작된 지난해 8월 11일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 [뉴스1]
“병사·부사관·하급 장교 등 실제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이다.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 현 정부도 병사 급여 인상에 나서고 있다.
“병사를 대하는 문제에 한해서는 이전 정부보다는 잘하고 있으나 부족한 점이 많다. 급여 인상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단 군인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위 ‘작업’이라 부르는 부대 내 잡일은 물론이고 후방 부대의 경우에는 경계근무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전쟁에 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를 소홀히 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전장에서는 그 격언이 통용될 수 있으나 훈련 과정에서는 아니다. 후방 부대 경계근무는 CCTV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것보다는 훈련이나 자기계발에 시간을 더 쏟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 군인 처우 개선도 중요하지만 최첨단 무기를 들여오는 것이 더 효과가 클 것 같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어도 전쟁에 나설 용기나 자부심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 부사관이나 하급 장교는 모르겠지만 일반 병사는 군복무 기간이 끝나면 사회로 돌아간다. 이들까지 집중 훈련하는 것이 성과가 있나?
“병사를 훈련하는 이유는 정예 예비군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훈련 방식을 고치고 병사에게 지급되는 무기도 일신해야 한다. 지금의 병사들은 총을 쏠 줄 아는 사람일 뿐 실전에 입각한 훈련을 받는 일이 드물다.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통해 전역 후에도 정예 병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예비군 훈련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전 전 사령관의 사무실 한편에는 모형 총이 9정 걸려 있었다. 전부 현재 국군에서 사용하는 총기였다. 그는 총기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군 지휘관 시절에도 훈련 성과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새로운 장비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곤 했다.
특전사령관 시절 전 전 사령관은 특전사 장병들이 보급 총기 외에 다른 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당시 한국군은 보급된 총기 말고는 사용할 수 없었다. 광학 조준 장비 등을 부착해 개조하는 일도 금지돼 있었다. 전 전 사령관은 이 같은 규정이 특전사 장병의 전투 능력 증진을 막는다고 판단해 이를 폐지했다. 장비가 부대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구매를 지원하기도 했다.
주한미군 훈련 보장해 주지 않으면 철수 가능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아DB]
- 김정은 위원장이 1월 9일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해 왔다.
“연합훈련은 한반도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훈련이다. 중단은 말도 안 된다.”
- 정의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3월로 예정된 연합훈련을 중지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훈련을 하겠다는데 이를 막는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연합훈련은 참모 훈련만 시행한다. 총성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훈련이다.”
연합훈련은 크게 참모 훈련이 주가 되는 지휘소 훈련인 CPX(Command Post Exercise)와 실제 병력과 장비를 기동하는 훈련인 FTX(Field Training Exercise)로 나뉜다. 2018년부터 FTX는 거의 시행하지 않고 있다.
- 연합훈련을 거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매년 주한미군 장교의 60%, 한국군 장교의 50%가 자리를 옮긴다. 그만큼 자주 사람이 바뀐다. 1년에 두 번 하는 이 훈련이 아니라면 한미 양군이 손을 맞춰볼 기회가 없다.”
- 야외 기동훈련이 빠졌으니 전투 병력은 합을 맞춰볼 겨를이 없을 것 같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따로 기동훈련을 시행한다. 합동훈련이 아니다 보니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 훈련이 줄어들면 한미동맹도 느슨해 질 수 있나?
“그렇다.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에 군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 연합훈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주한미군은 한국에서 사격훈련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소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유에서다. 탱크도 같은 이유로 포사격 훈련조차 못 하고 장식품처럼 서 있다. 미군 전투기나 헬기는 아예 해외에서 훈련하고 있다.”
- 미국이 주한미군 수를 줄일 가능성도 있겠다.
“미국은 최근 세계 각지로 파견된 미군 수를 조정할 계획이다. 당장 주한미군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계속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훈련할 수 없다면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미군이 한국에서 훈련하기 어려우니 비행기로 2시간 걸리는 일본에 주둔하겠다고 하면 한국 정부나 군 당국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국 정권교체, 합리적 관계 기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동아DB]
“정권이 바뀌었으니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대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 등의 문제로 시끄럽지 않았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위비분담금 협상 카드로 주한미군을 이용하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문제는 쉽게 해결될까.
“정부는 방위비분담금 13% 인상안을 준비 중이라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비교적 합리적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도 새로운 인물이다. 폴 라카메라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이 지명됐다.
“실전을 거친 지휘관으로 군 운영에 관해서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특수부대 출신이라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 한미연합사령관으로 어떤 인물이 오는 편이 한국에 유리한가?
“미국에 한국군의 처지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좋다. 사실 누가 오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군의 대응이다. 한국군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 오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북전단금지법 국제적 창피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내용에는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어 ‘대북전단금지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됐다. 서방국가와 인권단체들은 대북전단금지법이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 법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원장은 2020년 12월 23일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남북 외교와 신뢰 구축 노력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이것이 북한 인권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한미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나?
“한미동맹은 물론이고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굉장히 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대북전단으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금지법을 내놓지는 않았다. 현 정부가 미국 등 서방세계에 대북전단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설명에 실패한다면 법안을 전면 수정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방송 장악? 그럴 의도도, 능력도 없다”
‘어머니 사랑’으로 세계를 잇다, 평화를 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