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호

‘비비고’ 아성에 도전장 ‘양반’…국·탕·찌개 ‘HMR 전쟁’ 불붙었다

[기업언박싱]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gna.com

    입력2020-09-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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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적 1위 CJ제일제당에 동원F&B ‘양반’ 브랜드로 도전장

    • CJ제일제당, 4년간 국물요리 누적 판매량 2억2000개 돌파

    • ‘레토르트 제품 맛없다’ 고정관념 깨고 마니아층 확보

    • 동원F&B, 400억 원 들여 첨단 특수 설비 마련

    • 참치 통째로 넣은 ‘양반 통참치 김치찌개’로 승부수

     CJ제일제당은 간편식 라인업을 확대하며 국·탕·찌개 HMR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CJ제일제당 제공]

    CJ제일제당은 간편식 라인업을 확대하며 국·탕·찌개 HMR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CJ제일제당 제공]

    가정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에 또 한 번 전운(戰雲)이 피어오르고 있다. HMR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붙인 집밥 열풍을 타고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식의 기본인 국·탕·찌개 HMR 시장에서 1위 CJ제일제당과 최근 대규모 투자로 HMR 시장에 뛰어든 동원F&B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상온에서 유통하는 국·탕·찌개는 HMR 제품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면서 짧은 시간에 요리를 고온·고압으로 멸균하는 기술을 적용한다. 식재료마다 조리 시간과 방식을 달리한 뒤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진 종합식품회사만이 도전할 수 있다. 어떤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지에 따라 각 기업의 위상이나 향후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어 두 회사는 시장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의 전략 포인트를 짚어봤다.

    ‘레토르트 제품 맛없다’ 고정관념 타파

    동원F&B ‘양반 국·탕·찌개’ 제품은 기존 방식 대비 열처리 시간을 20% 이상 단축시켜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렸다. [동원F&B 제공]

    동원F&B ‘양반 국·탕·찌개’ 제품은 기존 방식 대비 열처리 시간을 20% 이상 단축시켜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렸다. [동원F&B 제공]

    CJ제일제당과 동원F&B가 HMR 시장에서 또 한 번의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대결 종목은 집밥의 중심 ‘국·탕·찌개’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파우치 죽’이 30년 동안 죽 HMR 시장 1위를 지켜온 동원F&B의 ‘양반죽’을 턱 밑까지 따라잡으며 라이벌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HMR은 완전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을 집에서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도록 음식 재료를 제조·가공·포장해 놓은 식품을 아우르는 말이다. 조리 정도에 따라 △즉석섭취식품 △즉석조리완조리 식품 △즉석조리 반조리식품 △밀키트 등 4가지로 분류한다. 국·탕·찌개는 즉석조리 완조리 식품에 해당한다. 과거 편의점 도시락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요즘 HMR은 단순 도시락을 넘어 국·탕·찌개 등 집밥을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국·탕·찌개 HMR 시장은 CJ제일제당이 사실상 장악해왔다. 2019년 기준 이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57.3%에 달한다(닐슨코리아). 2016년 6월 비비고 육개장·두부김치찌개 등 4종이던 제품 라인업은 현재 추어탕·콩비지찌개·순댓국 등 총 22종 제품으로 확대됐다. 전자레인지에 4분만 돌리면 집에서 끼니를 간편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외식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특별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한테 큰 호응을 얻었다. 비비고 출시 이후 4년간 국물요리 누적 판매량은 2억2000만 개, 누적 매출은 5000억 원에 달한다. 국민 한 사람당 네 그릇을 먹은 셈이다. 그동안 판매한 국물요리 제품을 연결하면 지구 둘레 한 바퀴(4만 여㎞)에 해당한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국·탕·찌개의 성공 요인으로 ‘레토르트 제품은 맛없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한 점을 꼽는다. 레토로트 제품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고온 살균 처리로 인해 맛과 식감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었다. CJ제일제당은 맛과 식감을 제대로 보장하는 제품만 구현해낸다면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2016년 1월 육가공·김치·조미 등 각 분야 전문 연구원들로 구성한 테스크포스(TF)팀이 구성돼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자체 기술로 식재료 식감·맛 살려

    2015년 말부터 6개월간의 연구개발(R&D) 끝에 가정에서 직접 우려낸 듯한 국물 맛을 구현해냈다. 여기에 적용한 핵심 기술이 육수 제조 기술이다. 보통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쓴다. CJ제일제당은 자연스럽고 깊은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를 쓰지 않고 고기 피도 뺐다. 그 다음 고기를 삶을 때 우러나오는 육수와 솥에서 직접 볶아 만든 빨간 양념으로 깊은 국물 맛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국물 맛이 가장 맛있는 조건도 찾아냈다. 국물 맛을 결정짓는 최적의 육수 추출 시간은 2시간, 온도는 섭씨 100도라고 한다. 

    식재료 본연의 식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원재료 전처리 기술도 개발했다. 국·탕·찌개는 고온·고압에서 멸균한 후 급속 냉각시켜 만드는 레토르트 공법을 활용한다. 그런데 레토르트 공정을 거치면 고기의 경우 식감이 퍽퍽해지고 육즙이 빠진다. 양파나 무 등의 야채도 열을 가하면 섭씨 115도부터는 조직감이 저하되면서 형태가 물러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CJ제일제당은 고기 조직을 부드럽게 하는 자체 개발 성분으로 고기를 미리 재운 뒤 고기 표면을 살짝 데치는 ‘블렌칭’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야채 또한 독자적인 전처리 기술로 아삭하고 단단한 식감을 살리도록 했다. 

    정다운 CJ제일제당 홍보팀 대리는 “기존 제품은 고기·야채 등 식재료 특성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열을 가하는 바람에 맛과 식감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으나 비비고 제품은 식재료 각각의 특성에 맞는 전처리 과정으로 고기의 부드러움과 채소의 아삭한 식감은 물론 깊은 맛까지 살렸다”고 말했다. 이어 “1996년 즉석밥 ‘햇반’을 시작으로 25년간 쌓아온 HMR 제품 개발 노하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CJ제일제당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업계 최초로 지난해부터 수산물 원재료의 식감을 살린 알탕과 큼직한 동태살이 씹히는 동태탕을 선보였다. 어육은 육류보다 열에 약해 HMR 건더기로 구현하기 더 까다로워 수산물 국물요리 제품화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리는 원물(原物) 제어 기술 덕분에 상품화가 가능했다. 그동안 비린 냄새 때문에 집에서 생선요리를 해먹지 않고 식당에서 사먹던 소비자들한테 특히 반응이 좋다고 한다.

    400억 원 들인 첨단 설비로 도전장

    이에 맞서는 동원F&B의 카드는 식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을 살리는 동시에 각각의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동원F&B가 5월 20일 선보인 ‘양반 국·탕·찌개’는 탕 6종, 찌개 5종, 국 3종 등 14종으로 풍성하게 구성됐다. 동원F&B는 국·탕·찌개 시장에 출사표를 내면서 동원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참치’를 1번 타자로 내놨다. 이 제품에는 시원한 참치육수에 횟감용 통참치가 통째로 들어갔다. 소의 뼈를 삶아 낸 육수에 차돌양지를 곁들인 ‘차돌 육개장’, 한우를 삶아 낸 육수에 소고기가 들어간 ‘한우사골설렁탕’ 등도 핵심 제품이다. ‘재료가 살아야 맛이 산다’는 브랜드 철학에 따라 자연 재료를 엄선해 가마솥 전통방식으로 끓여 한식의 맛을 구현했다. 제품은 파우치 형태로 만들어졌다. 

    동원F&B는 30년 전통의 ‘양반’ 브랜드를 쥐고 간편식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양반김, 양반죽 등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양반 국·탕·찌개는 30년 전통의 한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생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동원F&B는 이 제품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양반 국·탕·찌개의 생산을 위해 광주광역시 소재 공장 9917㎡(3000평) 부지에 400억 원을 들여 첨단 특수 설비를 지었다. 그동안 위탁제조(OEM) 형식으로 간편식을 선보였으나 이제부터는 직접 만들겠다는 뜻이다. 과감한 투자로 기술의 한계도 극복했다. 동원F&B는 신규 설비를 통해 기존 방식 대비 살균을 위한 열처리 시간을 20% 이상 단축하면서 식감이 물러지고 육수의 색이 탁해져 맛이 텁텁해진다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김일규 동원F&B 홍보팀장은 “개별 재료를 따로 가열하지 않고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담아 끓여내는 ‘가마솥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국물 맛이 깊고 재료의 식감이 우수하다. 파우치 포장으로 보관 및 휴대도 간편하다”고 말했다. 

    동원F&B의 목표는 국·탕·찌개 HMR 시장에서 CJ제일제당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양한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을 통해 양반 국·탕·찌개의 올해 매출액 500억 원을 달성하고, 2022년까지 1000억 원 규모의 제품군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두 회사가 국·탕·찌개 HMR 승부에 전력을 쏟는 것은 시장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어서다. 상온 국물요리 시장은 2016년 400억 원에서 지난해 2500억 원으로 4년 새 6배 넘게 늘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앞으로도 HMR 수요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식품기업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대규모 시장이 계속 생겨나는 셈이다. 

    국·탕·찌개 HMR 시장 전체를 키우는 효과도 예상된다. 전례가 있다. 2019년 초 CJ제일제당이 ‘비비고 죽’을 들고 진입하자 정체 상태이던 죽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기존 시장 강자인 동원의 양반죽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8년 788억 원이던 간편 죽 시장 규모는 2019년 1249억 원으로 거의 2배가 됐다.

    ‘참치’ 통째로 넣은 통참치 김치찌개

    CJ제일제당과 동원F&B의 자존심을 건 맞대결에도 관심이 쏠린다. 원래 죽 HMR 시장은 동원H&B가 앞섰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양반죽은 2018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60.2%에 달하는 ‘국민 죽’이었다. 이제 막 죽 HMR 시장에 진출한 CJ제일제당의 시장 점유율은 4.1%에 불과했다. 그러다 4월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비비고 죽이 양반죽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죽은 4월 시장 점유율 39.4%를 기록하며 동원 F&B의 양반죽(39.1%)을 0.3%포인트 차로 제쳤다. 이에 대해 김일규 동원F&B 팀장은 “올해 상반기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동원F&B의 양반죽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죽을 훨씬 앞섰다”고 했다. 

    관건은 국탕찌개 HMR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독주를 동원F&B가 얼마나 막을 수 있느냐다. CJ제일제당은 건강을 강조한 프리미엄 브랜드 ‘더 비비고’로 HMR 식품군을 확장해 올해 매출액 2000억 원을 달성하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정다운 CJ제일제당 대리는 “비비고 제품은 그 어떤 HMR 제품보다 마니아층이 탄탄하다”고 말했다. 

    동원F&B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반김·양반죽 등 기존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양반 브랜드를 앞세운다면 향후 국 HMR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일규 홍보팀장은 “통참치 김치찌개는 동원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참치를 통째로 넣은 제품”이라면서 “진출 첫해 목표 매출액은 500억 원, 2022년까지 매출액 1000억 원 규모의 제품군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죽 HMR 시장에서 30년간 1위를 수성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초기 마케팅에 승부를 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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