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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욕망

  • 김학순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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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은 언제나 온순하고 아주 적게 먹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양들이 너무나도 욕심 많고 난폭해져서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고 들었습니다. 양들은 논과 집, 마을까지 황폐화시켜버립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충격적인 표현 때문에 유명해진 이 구절은 ‘인클로저’를 풍자하는 것이다. 인클로저는 15세기 중엽 이후, 주로 영국에서 지주계급이 개방지·공동지·황무지 등을 경계표지로 둘러싸고 사유화한 것을 말한다.

순결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이 나라 사람들이 나체로 선을 보는 외설적인 내용도 등장한다. “결혼하려고 생각할 때, 신부가 될 여자는 처녀든 과부든 간에 존경할 만한 기혼 부인의 입회 아래 신랑이 될 남자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이며, 신랑의 보호자는 신랑이 될 남자의 벗은 몸을 신부에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중요성은 이상향 추구 못지않게 사회비판 의식에 있다. 현실비판은 4가지다. 첫째, 정부의 과도한 엄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은 억제책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둘째, 거지·부랑자·도둑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한 비판이다. 모어는 그것이 농촌에서 봉건 영주가 몰락하고 시종이나 농민이 추방된 탓이라고 본다. 셋째, 지나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다. 넷째는 정의롭지 못한 원인에 대한 비판이다. 모어는 이를 화폐에 대한 욕망, 사유재산 제도에서 찾는다.

유토피아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반전 평화주의다. 재물과 영토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혐오한다. 모어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전쟁에 반대한다.

모어 자신도 위대한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선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다. 헨리 8세의 이혼과 영국국교 창립을 반대해 반역죄로 런던탑에 갇힌 모어는 1년에 걸친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다.



1534년 그가 단두대에 올라서자 사형 집행관이 도리어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모어는 그를 끌어안고 오히려 격려했다. 그때 남긴 말은 지금도 전 세계에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자네 일을 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게. 그리고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내 목을 치더라도 수염은 건드리지 말게. 수염은 반역죄를 짓지 않았다네.” 죽음의 공포마저 유쾌한 해학으로 극복할 만큼 대담한 모어였다.

그의 가정생활 역시 ‘유토피아’에 그려진 이상적인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모어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가족들을 돌본 것은 물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학문과 신앙을 신실하게 키워나갔다.

최초의 사회주의자

‘유토피아’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비교되곤 한다. ‘군주론’이 현실주의 정치철학을 낳았다면, ‘유토피아’는 이상주의적 사상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유토피아’ 출간 이후 수많은 유토피언이 나타났다. 로버트 오언, 샤를 푸리에 같은 낭만적 이상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과학적 사회주의자들도 넓게 보면 유토피언에 속한다. 모어는 당초 의도와 상관없이 공산주의의 원조 격이 되기도 했다. 독일 사상가 카를 카우츠키는 모어를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부각했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와 혁명가’ 19명의 이름이 새겨진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기념 오벨리스크에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함께 모어가 들어 있다.

학자들은 유토피아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노력’으로 이해한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사회에 변화의 욕망을 불러일으켜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이념틀’이라고 규정했다. 역사학자인 주경철 서울대 교수는 유토피아를 ‘천년왕국설’과 견주어 설명한다.

유토피아는 수많은 파생어를 창출했다. ‘디지토피아’ ‘테크노피아’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반대어인 ‘디스토피아’가 그것이다.

‘유토피아’처럼 중요한 개념, 그와 관련된 장르의 기원이 이처럼 분명하게 하나의 작품에서 유래한 사례는 흔치 않다. 1975년 설립된 유토피아 학회는 ‘유토피아 연구’라는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을 정도다. 내년이면 출간 500주년을 맞는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유토피아를 둘러싼 거대 담론을 끊임없이 이어갈 게 분명하다.

신동아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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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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