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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평가에 죽고 산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싫다!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평가에 죽고 산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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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고 한국인이 평가를 좋아한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좀 성급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그런 평가에서 한국인은 차이가 그리 크게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가를 하는 사람이나 평가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서로 비슷비슷한 점수를 주고받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평가를 실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형식적이고 요식행위에 불과한, 평가를 위한 평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죽하면 웬만한 평가에서 요즘은 반강제적으로 상대평가를 실시하도록 한다. 무조건 몇 %는 최상위, 몇 %는 중간, 몇 %는 최하위를 정해놓고 강제로 배분하게 한다든지, 무조건 몇 %는 떨어뜨리라는 강제 규정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 평가를 하니 억지로 만든 규정이다. 이런 규정이 있어도 머리 좋은 한국인은 서로 돌아가면서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를 받게끔 그 평가를 요식행위로 만드는 기지를 발휘한다.

평가는 매우 많이 하는데 그 평가를 모두 무력화하는 이런 기현상은 왜 일어날까. 물론 요식행위이지만 그 수많은 평가를 실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이 낮아서다.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WVS)에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만하다”라는 문항에 대해 한국인의 30.2%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스웨덴(68.0%)과 같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보다 낮은 수치다. 특히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국회가 10.1%(OECD 평균 38.3%), 정부는28.8%(OECD 평균 34.6%)다. 2009년 국가별 부패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CPI)에 따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5점을 기록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을 기록(Transparency International, 2009)했다. 이런 상황이니 뭔가 객관적으로 나오는 자료가 없으면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도 없고, 믿지도 않는 한국 사회인 것이다. 그러니 형식상으로는 평가가 만능인 한국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원래 그 평가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의 심리적 특성은 불신 사회에서 그 평가를 요식행위로 만들고 더욱 큰 불신을 키워낸다.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는 확장된 가족주의적 성향을 띤다. 일반적인 서양 사회보다 더 넓은 범위의 친척까지 가족에 포함시키고 혈연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가족주의와 남미의 가족주의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문화를 언급하지 않고도, 가족주의(familism)라는 개념은 미국과 남미를 비교하는 비교문화심리학에서 이미 널리 연구됐다.



평가만능사회

기본적으로 가족의 범위 내에서 적용되는 분배의 원칙은 투자와 결과에 비례하는 공평(equity)의 원리가 아니라, 다 같이 똑같이 가져가는 평등(equality)이나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필요(need-based)의 원칙을 따른다. 그러니 가족 간에는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정확한 평가는 별 의미가 없고, 오히려 쓸데없이 매정하게만 보인다.

불행히도 같은 가족주의에 해당하는 남미 사회와는 달리 한국 사회는 독특하게 혈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 전체 시스템을 가족의 형태로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다. 남미 사람들은 넓은 범위의 친족까지 가족의 범위에 넣지만 가족의 경계는 오히려 명확해 누가 가족인지 묻는다면 명쾌히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국가나 회사, 그 외의 다양한 사회까지 확장된 개념으로 이해하려 한다. 부모 같은 대통령, 아버지 같은 상사, 어머니 같은 군대 상사는 국민, 부하직원, 후임병사를 자식과 같이 (막?)대하며 무한책임을 진다. 이런 사회에선 아무리 공식적으로 필요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잔인하게 드러내는 평가결과는 적절하지도 않고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가 남이가?’의 평가 버전이다.

확장된 가족주의를 넘어 한국인이 평가를 유달리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한국 문화의 예방적 특성이다. 동기 이론 중 하나인 조절초점(regulatory focus)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결과를 얻으려 해도 크게 두 가지 다른 접근 자세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가령 좋은 대학에 합격하려는 마음과 좋은 대학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같은 다이어트를 해도 더 건강해지려는 목적과 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목적은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전자는 향상적(promotion) 동기로, 후자는 예방적(prevention) 동기로 불린다.

이런 조절초점 연구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예방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예방적인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실패에 더 예민하다. 현재의 상황을 더 향상시키려는 향상적 동기와 달리, 현재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는 성향이 예방적 동기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더 나아지는 것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더 잘하는지보다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더 못하는지를 살펴보고, 같은 결과도 나빠지지 않았으면 성공한 것으로 보게 된다.

이런 한국인에게 평가는 좋은 결과, 잘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나쁜 결과, 못한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한국인에게는 ‘누가누가 잘했나, 참 잘했어요’가 아닌 ‘누가누가 못했나, 안됐어요’를 구분하기 위한 절차가 바로 평가인 것이다. 그러니 평가를 통해 얻는 것은 없고, 뭔가를 잃는 사람만 생긴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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