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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리듬체조 ‘2인자’ 김윤희의 ‘금빛 마무리’

  •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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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뭐라고 그렇게 달려왔나”

“얘들아, 나를 치고 올라오란 말야”
▼ 리듬체조 선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은퇴 수순을 밟는 게 보통인데, 처음으로 실업팀에 입단해 월급을 받는 선수가 됐다. 은퇴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12월까지는 인천시청 소속이라 월급이 나온다. 1월 1일부터는 ‘백수’다. 앞으로 리듬체조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계획이다. 부모님이 딸내미 뒷바라지 하느라 기둥뿌리 몇 개는 뽑았다. 평범한 집안에서 리듬체조 선수를 시킨다는 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을 텐데, 지금까지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젠 내가 벌어서 부모님 뒷바라지를 해드리고 싶다. 그러려면 빚부터 갚아나가야 한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빚을 많이 지셨다.”

▼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 전지훈련을 자비로 다녀오기도 했다. 꽤 오래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래저래 부담이 컸겠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러시아 전훈을 실행에 옮겼다. 지난해 12월에 갔다가 올해 10월에 완전히 돌아왔으니 약 10개월 동안 러시아와 한국을 오간 셈이다. 단체전에서 메달권에 들어가려면 연재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다. 후배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결국은 내가 해줘야 하는데 그걸 해내지 못할 경우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비로 러시아로 떠난 것이다.”



▼ 손연재 선수와 인터뷰할 때 들은 말로는 러시아 전지훈련 비용이 상당하던데….

“한국에서 1000만 원 정도 갖고 가도 두 달 지나면 흔적조차 없었다. 훈련비, 병원치료비, 숙박비, 교통비 등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선 훈련 중 부상을 많이 당했다. 보험 적용이 안 돼 병원비로만 수백만 원씩 들어갔다. 돈도 돈이지만, 다른 선수들과 생활하는 게 버거웠다. 기숙사를 이용하다보니 방 하나에 2층 침대 두세 개가 있는 데서 지내야만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애들이 새벽 두세 시까지 잠을 안 자고 떠들었다. 내일 중요한 국제대회가 있다고 해도 수다를 그칠 줄 몰랐다. 하도 열 받아서 머리 위 침대를 발로 차기도 하고, 러시아 말로 욕을 한 적도 있었다. 욕을 하면 그제야 조금 잠잠해지곤 했다. 그들과의 생활이 제일 힘들었다.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 마트에서 초콜릿과 빵만 사다 먹었다. 살은 살대로 찌고 생활은 적응 안 되고….

처음에는 김지희 코치(전 대표팀)에게 울면서 전화한 적이 많았다. ‘코치님, 저 여기서 죽을 것 같아요. 더 못 있겠어요. 저 돌아가면 안 될까요?’라고 말씀 드리면 매번 ‘조금만 더 참아라. 아시안게임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왕 참은 거, 좀만 더 참아’라고 달랬다. 어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나 싶다. 전국체전 끝나자마자 러시아에 있는 현지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퇴했다는 소식을 알렸더니 나더러 2016년 올림픽까지 뛰자고 제안하더라. ‘노 생큐’라고 했다.”

▼ 러시아 현지 선수들로부터 ‘왕따’ 당한 적도 있나.

“연재도 러시아 생활 초반에는 선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더라. 텃세나 왕따라기보다는, 애들이 동양 선수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들 관심사에 우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코치로부터 칭찬받고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같으면 그제야 우리를 제대로 쳐다본다. 실력을 통해 사람의 수준을 판단하려는 그들만의 스타일인 것 같다. 그 벽이 허물어진 후부터는 금세 친해졌다.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다보니 휴대전화로 번역기를 돌려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상한 뜻으로 전달돼 오해를 받거나 내가 오해한 적도 있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리듬체조에는 김윤희(23·인천시청), 손연재(20·연세대), 이다애(20·세종대), 이나경(17·세종고)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출전했다. 단체전에서 한국은 총점 164.046점을 받아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윤희는 첫 볼 종목에서 던진 볼을 잡지 못하는 큰 실수를 범해 15.166점을 받았다. 원래 16점대를 목표로 했지만 부진했다. 이어 두 번째 후프 종목에서도 연달아 실수했다. 또다시 마무리 던지기 동작에서 후프를 놓친 것이다. 15.083점을 받으면서 김윤희는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김윤희는 세 번째 리본 종목에서 큰 실수 없이 마무리하며 16.183점을 획득했다. 마지막 곤봉 종목에서는 16.416점이라는 최고점을 끌어내며 투혼을 발휘했다. 막판 뒷심으로 고득점을 획득해 은메달 획득에 큰 기여를 한 것이다.

▼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후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맞았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연재를 포함해 후배들과 함께 대표팀의 마지막 순간을 시상대에서 맞이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 이게 뭐라고, 이 은메달이 뭐라고, 그 고생을 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나’ 싶었다. 만약 내가 볼, 후프에서 실수하고 리본과 곤봉에서 그 실수를 만회하지 못했더라면 여론의 뭇매를 맞았을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한 덕분에 동생들에게 면목이 섰다. 무엇보다 딸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따는 걸 보고 싶어 했던 부모님에게 효도한 기분이 들었다. 은메달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낸 것 같아 나 또한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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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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