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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 청소년들이 다시 촛불을 든 까닭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북극곰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 청소년들이 다시 촛불을 든 까닭

  • ● 정부 ‘2050 탄소 중립 계획’ 지킬 의지 있나
    ● 기특하다며 자기 홍보하는 정치인도
    ● 텀블러 사용만으로 기후위기 막지 못해
    ● 20대 대선에서 기후 정책 토론 볼 수 있길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지난해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지난해 3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지난해만이 아니죠. 2018년에는 폭염에 시달렸고, 2019년에는 관측 이래 가장 많은 태풍이 한국을 지나갔어요. 매년 기상이변이 찾아오면 일상이 재난영화나 다름없죠.” 

김유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19)에게 지난해 여름 장마에 대해 묻자 돌아온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가려졌지만 2020년은 이상기후의 해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폭우로 4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같은 해 7~10월 미국 서부에서 산불로 발생한 피해액은 2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동아프리카에서는 지난해 5~6월 사막메뚜기 떼가 85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어치 식량을 먹어치웠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자 촛불을 들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한 온라인 촛불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청소년기후행동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구 상승 온도를 1.5℃ 이하로 제한하는 구체적 대책을 세워달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2015년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197개 국가는 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는 노력에 함께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8월 스웨덴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저지를 위한 결석 시위에 나선 뒤 전 세계 청소년이 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툰베리들은 2019년 3월 열린 첫 시위를 시작으로 총 네 차례 결석 시위를 진행했다. 현재 전국 130여 명의 학생이 청소년기후행동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북극발 한파가 잦아든 1월 12일, 김유진·김도현(18)·윤현정(17)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를 줌(ZOOM·화상회의 서비스)에서 만났다.



정부 원론적 답변에 실망

1월 12일 청소년기후행동과 줌(ZOOM)으로 진행한 인터뷰 모습. 김도현 활동가는 “한국 대선 토론에서도 기후위기를 두고 치열하게 정책 대결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1월 12일 청소년기후행동과 줌(ZOOM)으로 진행한 인터뷰 모습. 김도현 활동가는 “한국 대선 토론에서도 기후위기를 두고 치열하게 정책 대결하는 모습을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청소년기후행동이 처음 결석 시위를 기획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윤현정(이하 현정) “지난해 3월 13일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소원은 다소 무겁고 낯선 일이잖아요. 소장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던 순간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윤 활동가를 비롯한 청소년 19명은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원고는 청소년기후행동, 피청구인은 정부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국가를 상대로 낸 기후 관련 소송이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도현(이하 도현) “헌법소원 후 피청구인인 정부로부터 의견서가 왔어요. 정부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반박이었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뉴질랜드에서도 청소년들이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냈어요. 뉴질랜드 정부는 청구인의 입장에 공감하고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원한 것도 현재 우리가 느끼는 절박함에 공감해 주고 노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5일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은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공사 서초지사 앞으로 향했다. 한국전력이 베트남 붕앙2호기 석탄화력발전 투자계획을 발표한 뒤다. 활동가들은 기후 악당 중 하나로 석탄화력발전소를 지목한다. 국제에너지기구가 발표한 탄소배출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국 화석연료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은 6억t으로 세계 6위다. 이 중 석탄화력발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52%(3억1200만t)다. 

-2020년 10월 23일 국정감사장에는 윤현정 활동가가 등장했습니다. 

현정 “기획재정위원회 국감 마지막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석탄화력발전소 투자를 멈춰달라는 내용의 영상을 찍어 보냈습니다. 직접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싶었지만 상임위 위원 반대로 무산됐어요. 홍 부총리는 영상을 시청한 후 꺼낸 첫마디에서 ‘공감한다’고 했지만 현재 지어지는 국내 석탄 발전소 7기나 베트남 석탄발전소 투자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진행되는 사업을 멈출 수 있나요. 경제적 리스크가 동반됩니다. 

현정 “많은 분이 경제 손실을 말하시죠. 2024년 국내에 지어지는 석탄 발전소가 가동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2015 파리협정 기준의 3배가 넘어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지만 지킬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경제적 이윤만 바라보고 지금까지 왔잖아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20대를 재난 속에서 보내야 하나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윤현정 활동가가 보낸 영상이 재생됐다. [유튜브 캡처]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는 윤현정 활동가가 보낸 영상이 재생됐다. [유튜브 캡처]

-청소년기후행동의 외침이 가닿지 않아 답답한 마음도 들겠습니다. 

도현
“정치에 청소년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이야기에 정치인 대부분이 공감할 거예요. 그렇지만 기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에 ‘고려해 볼게’라고 말만하고 뒷짐 지고 있습니다.” 

김유진(이하 유진) “가끔 청소년을 이용하려는 느낌도 들어요. 행사에 불러놓고 함께 사진을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청소년 정치참여’라는 설명을 붙여 홍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작 우리가 한 말에 대한 피드백은 없고요.” 

-미래 일이라 와닿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거죠. 

현정 “전 세계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는 데 10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요. 일상이 재난 상황인 지구에서 20대를 보낼 생각을 하면 두렵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생존부터 걱정해야 하면 어떡하죠. 이러다간 북극곰이 아니라 우리가 죽어요.” 

도현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게 아닙니다. 지금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와서 후회하면 안 되잖아요.” 

지난해 10월 그린피스는 2030년 강한 태풍이 발생하면 인천공항과 해운대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 상황이 전제다. 김도현 활동가는 “그렇게 되면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재난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텀블러 사용으로는 변화 어려워

청소년기후행동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 한국지부다. 2018년 8월 그레타 툰베리의 결석 시위가 알려진 뒤 전 세계 청소년이 동참하기 시작하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조직으로 발전했다. 김유진 활동가는 2019년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청년기후정상회의’에 한국 청년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해외 활동가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유진 “결석 시위도 날짜에 맞춰 함께 시행하고 시위 전 메시지도 공유해요. 특히 아시아 지역 청소년들과 자주 교류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베트남 신규 화력발전소에 투자한 비중이 높아 일본·베트남 청소년들과 정기적으로 화상회의를 열어 관련 캠페인 진행 상황을 논의해요.” 

-외국에서는 청소년의 정치적 움직임을 어떻게 본다고 하던가요. 

유진 “미국 뉴욕주 교육청은 결석 시위 당시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결석계를 쓸 수 있도록 해줬어요. 미국·유럽에서는 정부나 사회가 청소년이 사회 참여하는 걸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요.” 

-부럽겠습니다. 

도현 “한국 국민들은 환경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요. 기후변화 인지 여부를 묻는 설문에 대다수가 긍정 답변을 줍니다. 아쉬운 것은 환경에 대한 논의가 일회용품 사용 금지나 분리수거 등 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미국 대선 토론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놓고 후보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올해 치러진 한국 총선에서 기후 이야기가 뜨거운 사안은 아니었잖아요.” 

-환경을 생각하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는데 긍정적으로 보시지 않나요. 

현정 “물론 기후위기를 저지하는 데 개인 활동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주가 돼서는 안 돼요. 청소년기후행동이 일상 실천보다 정부·국회·기업을 향해 변화를 외치는 이유가 있어요. 탄소 배출 자체를 줄여야 하는데 개인이 텀블러를 사용하고 고기를 안 먹는 것으로는 시스템 변화는 이뤄내기 힘들죠.” 

유진 “저는 초등학교 때 환경 전도사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사용하지 않는 전기 코드를 빼라고 매번 잔소리했어요. 중학생이 된 뒤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를 보고 놀랐습니다. 가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산업 배출량에 비하면 현저히 낮았어요.”

‘기특하다’ 대신 ‘함께하겠다’ 원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에게 ‘기후 꼰대’에 빙의해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모두 자주 듣는 말이라고 했다. 

-공부해야죠. 대학 가서 원하는 것 해도 되잖아요. 

도현 “인생의 미션이 대학 가는 게 아니라서 대학 전과 후로 삶을 나누는 게 맘에 들지 않습니다. 대학에 가든 안 가든 제가 있는 자리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요.” 

-학생들이 참 기특하네요. 

현정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 말을 들어요. 특히 정치인에게요.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제대로 해라’라고 항의하는 겁니다. 파업하는 노동자에게 가서 기업 간부가 ‘파업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유진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3년 전만 하더라도 기후 위기에 대한 목소리는 크지 않았어요. 지금은 많은 정치인이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나설 만큼 기후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 상황에서도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희망을 봤다. 김 활동가의 말이다. 

“지난해 각국 정부에서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긴급조치에 들어갔잖아요. 환경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면 급격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까지 노력을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죠. 올해 헌법소원 승소도 이끌어내고 기후 위기 관련 법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를 압박할 것입니다.”



신동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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