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호

퇴임 강준만이 文에 분노하는 까닭…의전 중독·선택적 적폐청산·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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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02-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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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및 인물비평 삼가겠다’ 원칙 깨

    • ‘싸가지 없음’ 성찰했던 文의 배신

    • 진중권·우석훈·홍세화, 文 비판 논객들

    • “‘舊적폐’, ‘新적폐’ 구분해서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싸가지 없는 정치’를 내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뉴스1]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최근 ‘싸가지 없는 정치’를 내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뉴스1]

    1995년 2월. 막 39세가 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세기의 문제작 ‘김대중 죽이기’를 냈다. 그는 “집단적인 탐욕과 음모와 무지와 위선과 기만에 희생된, 앞으로도 희생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대중”이라고 썼다. “역사가 무슨 만병통치약인가?”라고 되묻고 “언론과 지식인은 음모를 만들어내는 무리”라고 일갈하는 등 그의 글에는 분노가 차고 넘쳤다. 그는 이른바 ‘김대중 혐오’의 밑바닥에 전라도에 대한 편견이 깔려 있다는 점을 통찰했다. 책은 20만 부 넘게 팔리면서 논객 강준만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의 귀환은 하나의 현상”

    26년이 지난 2021년 2월. 강 교수가 정년퇴임한다. 대개 은퇴를 앞두면 쟁투와는 거리를 둔 채 초연해지게 마련이다. 그러잖아도 그는 수년 전부터 ‘평온’이나 ‘희망’이라는 가치에 몰두하고 있던 터다. 그런데 퇴임을 앞두고 낸 책이 ‘싸가지 없는 정치’라니. 부제는 ‘진보는 어떻게 독선과 오만에 빠졌는가?’다. 그는 누가 묻기도 전에 ‘김대중 죽이기’를 소환한다. 

    “나는 애국을 좋아한다. ‘김대중 죽이기’도 그런 마음으로 썼다. 내 나이 이제 6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39세 젊음의 열정을 다시 소환해 ‘정말 나라가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나름 비장한 각오로 이 책을 썼다.” 

    2010년 이후 강 교수의 정체성은 교양서 작가에 가까웠다.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노무현 죽이기’를 통해 당파성 강한 정치평론을 쓰던 그는 어느새 ‘소통’과 ‘상생’을 들고나왔다. 이즈음 천착한 주제가 대중문화와 미시사(史)다. 권력에 칼을 들이대는 경우도 드물었다. 정치인 비평을 삼가겠다는 취지의 말도 수차례 했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시점에 ‘전사 강준만’이 돌아왔다. 

    철학 에세이스트 노정태가 쓴 ‘논객시대’는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등 1990~2000년대를 풍미한 논객 9인에 대한 비평서다. 이 중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국 사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정권의 위선을 고발하는 지식인이 됐다. 민주당 싱크탱크 출신인 우석훈 박사는 지난해 4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용은 밀실행정 방식”이라고 했다.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은 같은 해 12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왜 집권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직격했다.



    특히 ‘강준만의 귀환’은 상징적이다. 노정태 작가는 “노무현 정권 이후 ‘정치논객 강준만’의 포지션은 굉장히 흔들렸다”며 “강 교수가 정치평론으로 돌아왔다는 건 분명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래도 텍스트를 통해 그가 분노한 까닭을 파악해야겠다.

    “尹 비난하려면 일관성 문제 삼아야”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패한 뒤 낸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애초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의) 성찰에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패배자 문재인’의 성찰은 증발하고 말았다. 강 교수는 “싸가지 없는 정치는 ‘1퍼센트 극렬 강경파’ 지지자들이 실세로 군림하는 한국 정당정치의 구조적 문제”라면서 여권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3가지 주제어로 ‘강준만의 생각’을 짚었다. 

    ①의전 중독 : 그는 “문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는 자주 감동을 자아내는 ‘의전 정치’ 중심”이라면서 “의전도 일종의 소통이긴 하지만, 이미지만으로 소통을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전 소통’의 총연출자는 탁현민”이라고 했다. 

    의전의 사전적 의미는 ‘정해진 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다. 당연히 내용보다는 모양새가 중요하다. 행사가 있을 때만 대통령이라는 권위에 의존해 사람을 대하니 권위주의가 강화된다. 문 대통령이 등장하는 사진을 보면 대개가 행사장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강 교수는 2016년 12월 ‘박근혜의 권력중독: 의전 대통령의 재앙’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그는 의전 대통령을 두고 “독자적인 의제와 비전 없이 권력 행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상징조작”이라고 했다. 즉 강 교수의 눈에 박근혜, 문재인 두 사람은 똑같은 의전 대통령이다. 

    ②선택적 적폐청산 : “우리 사회 비정상적 적폐들을 바로잡아 안전한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갈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6월 6일 제5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꺼낸 말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은 마법의 언어였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됐고 전직 대법원장 1명과 전직 국정원장 4명이 영어의 몸이 됐다. 

    ‘남에게’ 들이댔던 잣대는 ‘나에게서’ 면제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논란도 거슬러 올라가면 선택적 적폐청산의 문제와 직결된다. 강 교수는 “적폐청산은 정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 즉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며 “문재인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불리함을 감수하면서도 외쳤거나 추진한 적폐청산이 단 하나라도 있었던가?”라고 질타했다. 또 “‘구(舊)적폐’와 ‘신(新)적폐’를 구분해서도 안 된다. 윤석열 검찰을 비난하려면 그 철저한 일관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썼다.

    “남북문제와 ‘의전 정치’ 빼곤 침묵”

    ③침묵 : 문재인 캠프 공익제보자지원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신평 변호사는 ‘추-윤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25일 ‘신동아’에 기고한 ‘추미애 활극에 침묵 文, 참모형 대통령의 비극’에서 “추 장관이 지금 저지르는 ‘미치광이’식 행동에 문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책에서 이 글을 인용하는데, 그의 시각도 대동소이하다. 그는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와 ‘의전 정치’를 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이다. 사실상 ‘청와대 정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주요 갈등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법이 없다”면서 “‘침묵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몰두할 때 여당은 권력기관 개혁에 집착하고 민생에는 ‘과격론’을 폈다. 시장을 맹신해선 안 되지만 무시해도 안 되는데, 부작용이 예상되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 뒷일은 수습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강 교수는 “이 정도면 ‘진보 꼴통’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라면서 “(여권) 열성 지지자들도 민생 문제엔 무관심하다”고 했다. 

    노정태 작가는 “강 교수는 왜곡된 세계관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는 대중을 상대로 정치평론을 한다. 김대중, 노무현을 지지하는 글을 쓸 때도 ‘왜 보수언론이 만든 가짜 이미지를 소비하느냐’고 대중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진보를 자처하는 대중이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 이에 강 교수가 정치평론을 재개했다고 본다”고 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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