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비호감 대선’ 다른 이름은 ‘박진감 대선’

[베이스볼 비키니]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2-03-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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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야구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 전부 시구

    • 첫 이닝 승리한 尹, 완봉 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두산 베어스와 kt wiz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정치란 사회적 희소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데이비드 이스턴 전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야구에서 가장 정치적 행위는 시구(始球)라고 할 수 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시구를 꿈꾸지만 어지간한 사회·문화적 권력이 없다면 시구자로 초청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정치인 중 최고 권력을 누린다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에게 물어보라. 백악관 주인 가운데 처음 메이저리그 경기 시구자로 나선 건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제27대 미국 대통령이었다. 현재 백악관 주인인 조 바이든 제48대 대통령을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시구를 하지 않은 이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한 명뿐이다.

    이제 시구라면 마운드 위에서 ‘아리랑 볼’을 던지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미국 대통령은 원래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를 향해 공을 던졌다. 이 전통을 깬 건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 개막일에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다. 당시 백악관 경호팀은 구장을 둘러본 뒤 저격범이 숨어 있기 좋은 장소라는 이유로 이날 시구 행사를 아예 취소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결국 ‘깜짝 방문’ 형태로 시구를 진행했다.

    대통령쯤 돼야 오를 수 있는 마운드

    한국에서는 이보다 2년 앞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운드에 올랐다. 전 전 대통령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경기가 열린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구장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졌다. 원래 이 경기 구심은 김옥경 심판이 맡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심판은 술자리에서 전 전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선다는 사실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유치장 신세를 졌고, 결국 김광철 심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재미있는 건 애초에 김옥경 심판에게 개막전 구심을 맡긴 것 역시 청와대였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개막식을 앞두고 프로야구 심판을 대상으로 신원조사를 진행했다. 김옥경 심판은 할아버지 김용원 선생이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에 몸담았던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이었다. 반면 김광철 심판은 폭행으로 두 차례 입건 전력이 있던 ‘전과자’였다. 그러나 대통령 시구 상황에서는 ‘정보 보안’이 전과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더욱 재미있는 건 김옥경 심판이 전 전 대통령 시구 사실을 발설한 장본인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옥경 심판은 ‘모처’에서 취조를 받으면서 백인천 당시 MBC 청룡(현 LG 트윈스) 감독 친형이던 백인원 심판을 발설자로 의심했다. 그러나 백인원 심판도 같은 이유로 취조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용의자 리스트에서 그를 지웠다.

    김옥경 심판이 백인원 심판을 의심한 건 그가 아마추어 심판이자 양복점 사장으로 심판복 공급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인원 심판은 개막식을 며칠 앞두고 동대문구장 심판실로 김옥경 심판을 불러 “운동장 경비원이 입을 심판복을 만들어야 하니 치수를 좀 재자”고 말했다. 김옥경 심판이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지듯 묻고 또 묻자 백인원 심판은 마지 못해 “대통령이 시구할 때 경호원이 입을 옷”이라고 답했다. 그제야 김옥경 심판은 개막식 시구자가 누구였는지 알게 됐다.

    “각하, 스트라이크입니다.”

    김옥경 심판 대신 구심을 맡은 김광철 심판도 용의자로 지목당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물론 김광철 심판은 펄쩍 뛰었다. 그는 나중에 “옥경이 형이 나를 밀고자로 지목해 아주 애를 먹었다”면서 “개막전에 나설 심판진은 전 전 대통령이 시구를 하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절대 입밖으로 내지 말라는 함구령도 받고 있었기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김광철 심판이 밀고자였는지 아니었는지는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프로야구 심판 공모에 응했다가 떨어진 다른 심판이 심판실에서 대화를 엿듣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청와대 경호실 직원에게 밀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이 던진 공이 MBC 포수 유승안의 미트에 빨려 들어갈 때 “스트라이크”라고 외친 구심이 김광철 심판이었던 건 100% 확실한 사실이다.

    이 경기에서는 결국 MBC가 연장 10회말 2아웃 만루에 터져 나온 이종도의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11-7 승리를 거뒀다. 이 끝내기 홈런으로 시작한 프로야구는, 전 전 대통령이 어떤 의도로 리그를 출범시켰든 간에, 40년 동안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사이 대통령도 왕조 시대 무신을 뜻하던 ‘각하(閣下)’가 아니라 정치적 아이돌인 ‘대통령님’이 됐다. 대통령을 부르는 방식은 바뀌었지만 시구의 전통은 이어졌다. 전 전 대통령 이후 모든 역대 대통령이 시구자로 마운드를 밟았다.

    케네디 스코어는 콩글리시

    시구가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에 어울리는 정치적 행위라면 가장 많은 야구 팬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프레지덴셜 스코어’는 몇 대 몇일까? 적지 않은 분이 케네디 스코어, 그러니까 8-7을 떠올리셨을 터다. 1960년 미국 대통령선거 기간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8-7이 가장 재미있다”고 대답했다는 유래까지 떠올리신 분도 계실 걸로 믿는다.

    그런데 온갖 야구 관련 용어를 정리한 ‘더 딕슨 베이스볼 딕셔너리’ 어디에도 케네디 스코어를 다룬 내용은 없다. 세계 최대 인터넷 포털사이트 구글에 물어봐도 “한국에서는 왜 케네디 스코어라는 표현을 쓰나요?”라는 질문이 상단에 나올 뿐이다. 요컨대 ‘케네디 스코어’라는 표현은 콩글리시일 확률이 아주 높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8-7로 끝난 경기를 ‘루스벨트 게임’이라고 한다. 여기서 루스벨트는 제32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근거도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7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8-7 정도로 승부가 갈리는, 양 팀이 합쳐 팬들에게 15점 정도를 선보이는 경기가 제게는 최고입니다”라고 보낸 편지가 남아 있다.

    참고로 축구에서 3-2를 뜻하는 ‘펠레 스코어’ 역시 한국에서만 쓰는 표현이다. 역시 구글에서 ‘pele score’로 검색하면 브라질 축구 영웅 펠레가 골을 넣은 기록만 나온다. 한국 언론에서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1994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때였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에 2-3으로 패했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박빙 승부

    유독 한국인이 이 두 점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기 드문 ‘다득점 박빙 승부’인 데 있을 터다. 양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는 박진감 있는 승부를 좋아하는 것. 하지만 이 같은 승부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프로야구 720경기 가운데 케네디 스코어로 끝난 건 8경기(1.1%)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1에서 펠레 스코어는 228경기 가운데 11경기(4.8%)였다.

    제20대 대통령선거도 다득점 박빙 승부였다. 득표율 1, 2위를 차지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48.56%)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47.83%)는 전체 득표 가운데 96.39%를 가져갔다. 민주화 이후 8차례 대통령선거에서 1, 2위 합계 득표율이 이보다 높았던 건 박근혜 전 대통령(51.55%)과 문재인 현 대통령(48.02%)이 99.6%를 가져간 2012년 대선 한 번뿐이었다.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도 역대 최소 기록이다. 윤 당선인과 이 후보 사이 득표 차이(24만7077표)보다 대선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34만2446명)가 38.6% 더 많았다. 이런 선거에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건 민심에 대한 오만불손한 접근법인지도 모른다.

    尹, 민심 마운드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9월 8일 모교인 충암고를 방문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격려한 후 공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9월 8일 모교인 충암고를 방문해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을 격려한 후 공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

    윤 당선인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1차전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직관’했다. 그는 이 자리서 취재진과 만나 “초등학교 시절 엉덩이 밑에 야구 글러브를 깔고 앉아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글러브를 깔고 앉는 건 글러브를 길들일 때 쓰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야구 명문 서울 충암고 8회 졸업생인 윤 당선인이 아주 야구 문외한이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열면서 자기소개에 “야구는 투수”라고 적었다. 충암고 동문 투수 가운데 프로야구에서 최다승(109승)을 거둔 건 ‘개막전의 사나이’ 장호연(62)이었다. 프로 생활 13년을 전부 OB(현 두산) 베어스에서 보낸 장호연은 데뷔 시즌이던 1983년 완봉승을 시작으로 9차례 개막전에 선발 등판해 6승(2패)을 따냈다. 1988년에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개막전에서 노히트 노런 기록까지 남겼다. 이날 삼진 하나 없이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는 것도 야구팬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베어스 구단 역사상 최다승을 기록한 장호연(투수). [동아DB]

    베어스 구단 역사상 최다승을 기록한 장호연(투수). [동아DB]

    현역 투수 가운데는 LG 트윈즈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23)이 충암고 출신으로 가장 잘나가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장호연이 ‘느리게, 더 느리게, 조금 더 느리게’로 상대 타자를 현혹하는 타입의 투수였다면 고우석은 지난해 리그 최고 속구 평균 시속(153.2km)을 기록할 정도로 빠른 공에 강점이 있는 투수다. 고우석은 통산 81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프로 데뷔 5년 만에 충암고 졸업생 가운데 최다 세이브 기록을 남겼다.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정치 무대에 데뷔한 지 8개월 만에 대선에서 승리한 윤 당선인 역시 일단 개막전의 사나이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고우석처럼 훌륭한 마무리 투수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는 아직 시간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 민심에는 경기 막판의 후한 스트라이크 판정처럼 ‘퇴근 콜’이 없다는 걸 늘 기억하는 게 좋은 대통령이 되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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